[낭만논객의 춤시선-3] 한국 창작발레 안무가의 역할, 과연 누구의 몫일까?
[낭만논객의 춤시선-3] 한국 창작발레 안무가의 역할, 과연 누구의 몫일까?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2.07.1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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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 허용순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을 중심으로
허용순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 (BAKI)
허용순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제공=BAKI)

[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2022년은 국립무용단과 국립발레단 창단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팬데믹의 장기화로 인해 지난 2년여 동안은 공연예술계가 비상이었다. 정기공연 무대를 비롯해 해외 투어는 물론, 지역순회 공연조차 용납되지 않는 암울함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마치 악몽을 꾸고 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코로나가 약세를 보이던 지난 봄 시즌부터 각 공연장들에서는 앞 다투어 미루어 두었던 크고 작은 공연들과 축제들이 봇물 터지듯 펼쳐지기 시작해 관객들이 일정 잡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6월 9일, 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예술감독 박인자)가 개막공연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문병남 안무)으로 시작되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토월극장, 자유소극장, 그리고 신세계 야외무대 공간에서 역대급 규모로 펼쳐졌다. 매일 축제의 열기가 이어지는 풍경 속에서 13개 레퍼토리(기획공연, 초청공연 및 공모작품)가 6월 29일 폐막까지 무탈하게 진행되었다. 한편, 축제 후반부에는 <청소년 발레갈라>와 <시티발레단 갈라> 공연에 이르기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로비와 야외무대까지 발레 애호가들의 발길로 넘쳐 났다.

민간 발레단체로서 36년여 동안 다채로운 명품작품 소개로 한국 발레계의 발전을 선도해 온 유니버설발레단이 10년 만에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다시 클래식 전막발레의 대표작인 차이코프스키 음악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으로 축제 초반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아울러 국립발레단은 최근 몇 년 간 창작발레 레퍼토리 확보라는 절대적 명제 실천의 중심에 선 강효형의 안무 <허난설헌-수월경화>로 폐막공연 축제의 열기를 주도했다. 그간 예산 부족으로 신작 제작이 어려웠다면 금년엔 예술의전당측에서 예산을 증액하며 토월극장에서 신작들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자유소극장 공모작에서도 기대 이상의 수작들이 공연되어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화제를 불러 모으기 충분했다.

김용걸댄스씨어터 '로렌스' (사진제공=박상윤)
김용걸댄스씨어터 '로렌스'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발레는 다른 장르보다 조기 교육이 반드시 필요한, 신체적으로 가혹한 공연예술 장르이다. 국립발레단은 60년이라는 비교적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도 대한민국 발레 수준을 끌어올리며 전 세계 발레인들을 놀라게 했다. 한국의 많은 발레 인재들은 세계 각국에서 개최되는 유명 발레콩쿠르 입상 등의 쾌거를 이루며 뛰어난 기량과 작품해석 및 발전 속도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런 변화는 발레 강국 유수의 발레단에서 주역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수 십 여명의 한국 무용수들의 소식에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발레 장르만의 고난도 학습과 발레 테크닉을 겸비한 무용수들의 눈부신 성장세의 이면에 있는 창작발레 안무가 부재는 오랜 숙제로 남아 있다. 발레 선진국에 비하면 이렇다 할 만한 창작작품 레퍼토리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안타깝기만 하다. 다행히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 지원사업과 ’K-발레 월드‘, 그리고 ’대한민국발레축제‘ 등을 통해 간혹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오긴 하지만 장기적 레퍼토리로 재공연되는 작품의 부재 현상은 우리 발레계가 처한 숙제이자 민낯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와이즈발레단 'VITA' (사진제공=와이즈발레단)
와이즈발레단 'VITA' (사진제공=와이즈발레단)

이번 축제에서 눈에 띈 것은 그간의 현실적 고민들을 나름 해소할 만한 몇몇 작품들이 금년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지난해 초연된, 미국 뉴욕 무대를 중심으로 안무가로 활동 중인 주재만(전 뉴욕 컴플렉션스 컨템포러리발레단 예술감독) 안무의 <VITA>가 축제 중반부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예술가로서 오랫동안 고민해 온 순수한 열정을 볼 수 있었다. 지구촌 환경 문제를 고민하듯 ’자연의 힘, 실존하는 삶‘을 주제로 안무자 특유의 섬세한 분위기의 춤과 무용수들의 앙상블이 돋보였다.

첫 장면부터 숲 속 푸르름이 담긴 비현실적 영상을 통해 이미 관객들의 마음이 정화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옴니버스식 구성과 형식미가 무용수들의 움직임들에서 진정성이 묻어나는 무대를 재현했다. 주재만은 와이즈발레단(단장 김길용)과 두 차례 중편 작품을 작업한 경험을 바탕으로 와이즈발레단 무용수들과 더욱 완성도 높은 협업을 이루어냈다.

김용걸댄스씨어터 '로렌스' (사진제공=박상윤)
김용걸댄스씨어터 '로렌스'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한편 자유소극장 공모작 6편 중 김용걸 안무의 <로렌스>에 이목이 집중되었다. 김용걸은 35분 가량의 중편 발레 <로렌스>를 통해 원작인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인 로렌스 신부의 고뇌와 함께 또 다른 인간의 양면적 모습을 반추하게 만들었다. 리스트의 피아노 음악을 배경으로 한 이번 작품은 7명의 무용수와 특히 주역 로렌스 신부 역에 여성 무용수(김다예, 김다운)의 파격적 캐스팅과 <로미오와 줄리엣>의 외전으로 재해석된 신선한 도전의식이 반가웠다.

허용순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
허용순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제공=BAKI)

이번 2022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는 재독 안무가 허용순의 전막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이 공연 전부터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허용순이 지난 2019년 이 발레축제에서 보여준 유니버설발레단과 유럽 무용수들의 공동작업 <완전한 불완전(Imperfectly Perfect)>이라는 다소 이율배반적 제목의 공연은 당시 여러 매체들로부터 호평을 받았으며, 그 해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 작품상 수상으로까지 이어졌다. 2017년 광주시립발레단과 아시아문화의 전당 공동제작으로 국내 초연된 허용순 안무의 전막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지난 2007년, 독일 슈베린컴퍼니에서 세계 초연된 작품이다.

발레리나와 안무가, 그리고 지도자로 현재까지 쉼 없이 활동해 온 허용순은 만 18세에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를 졸업, 곧바로 프랑크푸르트발레단 오디션에 합격하며 본격적인 프로페셔널 무용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스위스 취리히 발레단, 바젤 발레단 그리고 독일 뒤셀도르프 발레단 등에서 윌리엄 포사이드, 마츠 에크, 우베 숄츠 등 쟁쟁한 안무가들의 작품에 캐스팅되기도 했다. 동양인으로서 체격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열정과 피나는 연습으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하며 마츠 에크 안무의 <카르멘>에 캐스팅되며 그녀의 발레리나 전성기의 변곡점을 스스로 입증한 바 있다. 한편, 뒤셀도르프 발레단의 단원 안무작품 발표 기회에서 그녀만의 감성이 돋보인 창작발레 작품으로 기대 이상의 안무력을 검증받았다.

이후 독일 주요 도시 여러 무용단은 물론, 유럽과 미국, 호주 등 여러 발레단에서 안무 요청을 받으며 세계적 수준의 안무가로 평가받고 있는 현실이다. 한편, 한국에서도 서울발레시어터, 유니버설발레단 등 몇몇 민간단체들과의 협업 작업으로 국내 관객들을 위한 작품을 안무하며 어느새 34편의 중/장편 창작발레 필모그래피 목록을 차곡차곡 쌓아 왔다. 유난스레 컨템포러리 발레 안무가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 발레계 현실에서 볼 때, 그녀의 활동은 ’가뭄에 단비‘와도 같다.

허용순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제공=BAKI)
허용순 안무 '로미오와 줄리엣' (사진제공=BAKI)

이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그녀 특유의 빠른 움직임과 발랄하고 에너지 넘치는 캐릭터 춤으로 객석으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이끌어 냈다. 주역인 신승원(줄리엣 역)과 윤전일(로미오 역)의 고난도 테크닉과 물오른 연기력은 젊은 청춘의 사랑의 서사를 통해 작품의 몰입도를 한껏 증폭시켰다. 허용순에 의해 과감하게 재탄생된 이번 작품은 1막과 2막 배경이 닮은 듯 다른 묵직한 무대의 효율성과 함께 원작의 이탈리아 베로나 광장을 현대의 공간인 당구장으로 대체시켜 현재진행형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펜싱용 칼 대신 당구 큐대를 휘두르며 두 집안간의 갈등과 복수를 상징하는 결투(싸움놀이) 장면을 마치 친근한 영화 장면으로 희화화시켰다. 의상 또한 시대를 20세기 현대의 정서로 소환, 단순 명쾌한 캐릭터의 성격들을 대변시켜 주기 충분했다.

작품 준비 기간이 그리 넉넉지 않은 가운데에도 독일과 한국을 바삐 오가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 애쓴 안무자의 열정에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전한다. 아울러 이번 작업에 오디션과 연습진행 등 여러 상황에 대처하며 진심을 아끼지 않은 2022 대한민국발레축제 사무국 관계자들과 함께 백연옥, 신현지 지도위원의 노고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난 3년여 팬데믹으로 지친 일상의 피로감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 이 새로운 버전 - 안무가 허용순이 재해석한 명작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명실상부 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의 아이콘으로 인정받은 만큼, 향후 레퍼토리 시스템으로 더 많이 무대화되길 희망해 본다.

추신 = 우리에게도 대표적 발레 안무가 - 허용순과 주재만, 김용걸과 조주현, 그리고 강효형이 존재하고 있다는 희망을 새삼 확인했다. 제12회 대한민국발레축제 현장을 통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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