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김시종 시인, 제4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자 선정
재일 김시종 시인, 제4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자 선정
  • 이시우 기자
  • 승인 2022.08.17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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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와 경계 넘는 미학적 실천” 높은 평가
시집 ‘잃어버린 계절’ 자전(自傳) ‘조선과 일본에 살다’ 등
김시종 시인 (사진제공=국립아시아문화전당)
김시종 시인
(사진제공=국립아시아문화전당)

[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아시아문학 페스티벌 조직위원회(위원장 이경자)가 주관하는 제4회 아시아문학상 수상자로 오랜 기간 ‘경계인’의 삶을 살아온 재일 문학가 김시종(金時鐘) 시인이 선정됐다.

채희윤 소설가를 위원장으로 소설가 방현석, 문학평론가 고명철, 소설가 정지아, 목포대 교수 신정호, 시인 신용목으로 구성된 아시아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김시종 시인은 냉전의 분극 세계뿐만 아니라 국가주의와 국민주의에 구속되지 않고 이것을 해방시킴으로써 그 어떠한 틈새와 경계로부터도 구획되지 않는 시적 행위를 실천해 왔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아울러 “한반도의 분단에 종언을 고함으로써 남과 북의 민주적 평화통일독립 세상을 염원하는 재일(在日) 시인으로서 정치사회적 욕망을 미학적으로 확장한 점도 고려했다.”라고 부연했다.

김시종 시인은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에서 유소년 시절을 보내던 중 관립광주사범학교에 진학했다. 제주 4·3항쟁에 참여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까지 ‘자이니치(재일 조선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의 문제의식은 우리의 삶을 이루는 유무형의 제도와 대상들, 특히 지배 언어와 피지배 언어 사이에 끼여 있는 존재의 문제로 확장된다. ‘재일(在日)의 삶’이 그의 문제의식의 바탕을 이루는 핵심인 이유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어에 대한 자의식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다. 재일 시인으로서 일본을 위한 맹목적 동일자의 삶을 완강히 거부하고, 오랜 세월 아시아의 식민종주국인 일본 사회에 내면화된 식민지배의 내적 논리에 균열을 낸다. 이를 통해 식민지배의 권력을 내파(內破)하는 것이다. 김시종의 시적 언어와 일상어는 이와 같은 원대한 과제를 해결하고자 일본 사회 내부에서 힘든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그의 첫 시집 <지평선>(1955)은 재일조선인 사회뿐만 아니라 일본 시단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에세이집 <재일의 틈새에서>(1986)는 제40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본상, 시집 <원야의 시>(1991)는 제25회 오구마 히데오상 특별상을 받았다. 시집 <잃어버린 계절>(2010)은 제41회 다카미 준상을, 자전(自傳) <조선과 일본에 살다>(2015)는 제42회 오사라기지로 상을 각각 수상하는 등 일본 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시집 <광주시편>(1983)도 발간했다.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압살당한 ‘자유 광주’를 조금씩이라도 토해내는 것이 일본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문이었다.”라고 토로한 바 있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20일(목) 오후 2시, ACC 문화정보원 지하 2층 국제회의실에서 진행되는 제4회 아시아문학 페스티벌 개막식에서 열릴 예정이다. 상금은 2천만 원이다.

다음은 김시종의 시 3편

 

4월이여, 먼 날이여

나의 봄은 언제나 붉고

꽃은 그 속에서 물들고 핀다.

나비가 오지 않는 암술에 호박벌이 날아와

날개 소리를 내며 4월이 홍역같이 싹트고 있다.

나무가 죽기를 못내 기다리듯

까마귀 한 마리

갈라진 가지 끝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거기서 그대로

나무의 옹이라도 되었으리라.

세기(世紀)는 이미 바뀌었다는데

눈을 감지 않으면 안 보이는 새가

아직도 기억을 쪼아 먹으며 살고 있다.

영원히 다른 이름이 된 너와

산자락 끝에서 좌우로 갈려 바람에 날려간 뒤

4월은 새벽의 봉화가 되어 솟아올랐다.

짓밟힌 진달래 저편에서 마을이 불타고

바람에 흩날려

군경 트럭의 흙먼지가 너울거린다.

초록 잎 아로새긴 먹구슬나무 밑동

손을 뒤로 묶인 네가 뭉개진 얼굴로 쓰러져 있던 날도

흙먼지는 뿌옇게 살구꽃 사이에서 일고 있었다.

새벽녘 희미하게 안개가 끼고

봄은 그저 기다릴 것도 없이 꽃을 피우며

그래도 거기에 계속 있던 사람과 나무, 한 마리의 새,

내리쬐는 햇빛에도 소리를 내지 않고

계속 내리는 비에 가라앉아

오로지 기다림만을 거기 남겨둔

나무와 목숨과 잎 사이의 바람.

희미해진다.

옛사랑이 피를 쏟아낸

저 길목, 저 모퉁이,

저 구덩이.

거기에 있었을 나는 넘치도록 나이를 먹고

개나리도 살구도 함께 흐드러지는 일본에서,

삐딱하게 살고,

화창하게 해는 비추어,

사월은 다시 시계(視界)를 물들이며 돌아 나간다.

나무여, 흔들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나무여,

이토록 봄은 무심하게

회오(悔悟)를 흩뿌리며 되살아오누나.

 

먼 날

언제 적 일이었던가.

내가 짧은 매미의 생명에 놀랐던 것은.

여름 한철이라 생각했는데 사흘 생명이라 듣고서

나무 둥치 매미 허물을 장사지내며 다닌 적이 있다.

먼 옛날 어느 날의 일이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창 무더위에 소리 높여 우는 매미 울음소리를

나는 조심스레 듣게 됐다.

한정된 이 세상에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존재가

심려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겨우 스물여섯 해를 살았을 뿐이다.

그런 내가 벙어리매미의 분노를 알게 되기까지

100년은 더 걸린 듯한 기분이 든다.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야

나는 이런 기분을 모두에게 알릴 수 있으려나.

 

유민애가

-혹은 “학대당한 자들의 노래”

흡사 돼지우리 같은

오사카 한 구석에서 말이야

에헤요 하고

도라지의 한 구절을 부르면

눈물이 점점 차올라

어찌 잊을 수 있겠나

이 노래를 좋아했던 아빠가

폐품을 줍고 고물을 찾아다니며

탁배기 한 사발이라도 걸치면

아빠는 바로 도라지를 불렀지

울리지도 않는 폐품 수집통을

두드리며 노래했지, 두르리며 울었지

꼬맹이들이 지싯거려서

망연자실하며 고함을 쳤어

그야 참말로 마음이 쓸쓸했을 거야

도라지 도라지 하고 부를까

아리랑 아리랑 하고 부를까

탄광에서 죽은 아빠가 떠올라

감자처럼 타 죽은 엄마 생각에

에헤요 하고 노래를 불러볼까

오사카 한 구석에서

추방되기 전의 가난한 내가

노래해 본다 고함을 쳐 본다

아빠를 죽게 한 건 누구냐?

엄마를 살해한 건 누구냐?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전쟁이다

이 전쟁의 한복판으로 우리를 보내겠다니

가난한 사람을 실업자를

평화를 외친 눈 뜬 사람을

40년 동안 써먹어서 낡아빠진 우리를

우울하고 가슴이 타들어가

이렇게 휘이잉 하고 불어온 가을바라이 몸에 스며들어

나라를 향한 마음도 깊어가

푸념을 외치고 싶어진다네

그런데 내 나라를 어디냐?

정말 아빠가 말했던 것처럼

아름다운 산일까? 아름다운 강일까?

정말 엄마가 말했던 것처럼

붉은 댕기를 한 아가씨들일까?

부푼 뺨을 한 아가씨들일까?

그 산은 있을까?

그 강은 있을까?

붉은 댕기를 한 아가씨들이

있을까? 정말 있을까?

옛 이야기에 나오는 할아범도 죽었겠지

긴 곰방대 손잡이가 타고

담배통도 녹아버렸겠지

누가 세워야만 하는 나라란 말인가?!

누가 없애야만 하는 나라인가?!

가을 비 부슬부슬 내리는

오사카 한구석에서

목청 높여 불러봐도 미쳐봐도

이상하게 기가 죽어서

무언가가 홱 하고 가슴으로 치밀어 올라와

누가 간단 말인가

형제를 죽이러

누가 간단 말인가

육탄이 되려

아빠 엄마의 유골을 찾을 때까지 비석을 채울 때까지

흡사 돼지우리 같은

오사카 한구석에서

아리랑 아리랑 부르면, 부르면

목이 울컥 메어와

어디서 온 놈이 우리를 쫓아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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