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더 그레잇 커미션의 '밤의 찬가'
[공연리뷰] 더 그레잇 커미션의 '밤의 찬가'
  • 김미영 무용평론가
  • 승인 2022.08.26 10: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밤의 찬가 공연 (사진제공=더 그레잇 커미션)
밤의 찬가 (사진제공=더 그레잇 커미션)

[더프리뷰=서울] 김미영 무용평론가 =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문화비축기지는 갈 때마다 마치 여행을 간 듯 힐링이 되는 장소이다. 언제 가도 좋은 곳이지만 특히 해질 무렵은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답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성을 활용한 공연이 얼마 전에 있었다. <밤의 찬가>. 낮에서 밤으로 가는 사이시간을 뜻하는 ‘L'Heure Bleue(푸른 시간, 개와 늑대의 시간)’를 부제로 한 이번 공연은 창작집단 더 그레잇 커미션의 다원예술 퍼포먼스였다. 7월 15일부터 8월 7일까지 8회에 걸쳐 공연된 이번 무대는 해가 저물어 갈 때쯤 실내에서 시작해 야외 공간으로 이동하며 진행되는데,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밖으로 나와 보면 어느새 어둠이 깔려 있다.

 

밤의 찬가 (사진제공=더 그레잇 커미션)

<밤의 찬가>는 독일 시인 노발리스의 산문시 <밤의 찬가>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노발리스는 연인 소피의 죽음 이후 삶의 전반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초월하며 밤이 주는 쉼과 회복력을 칭송한다. 보통 이성과 빛이 희망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던 기존 철학과는 반대적인 표현으로 자신의 슬픔과 극복, 희망의 과정을 담으며 종교전쟁 이후 회복의 메시지로 썼다. 같은 맥락으로 이 공연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친 사람들의 일상을 회복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무대를 마련한 창작집단 더 그레잇 커미션은 2015년 결성된 비영리 현대예술 창작기관으로 전시, 공연, 출판,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협업을 통한 실험적 예술을 선보이고 있는 단체이다.

밤의 찬가 (사진제공=더 그레잇 커미션)

“하지만!” 이라는 대사로 시작된 이번 공연은 무엇보다 장소의 특성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문화비축기지의 T4 공간은 탱크 내부를 그대로 살린 복합문화공간으로 탱크로 사용되던 공간의 웅장함과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8면체 프레임을 중심으로 하는 높은 천장에서부터 쏟아지던 빛과 정육면체를 변형시킨 두 개의 프레임(오브제)을 통해 모든 것을 삼킨 어둠이 점차 회복의 메시지임을 밝히는 데 일조한다. 배우들은 넓은 공간 안에서 이동하며 연기하는데,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관객들도 함께 이동하며 관람하게 된다.

밤의 찬가 (사진제공=더 그레잇 커미션)
밤의 찬가 (사진제공=더 그레잇 커미션)

공간 입구에 쓰러진 듯 앉아 있는 배우는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시인의 모습으로 ‘밤’의 역할이다.  ‘밤’ ‘빛’ ‘새벽’의 역할을 맡은  송철호, 이가은, 장찬호 세 명의 배우는 각각 강성룡, 박서란, 고소천 퍼포머와 쌍을 이룬다. 말하자면 한 가지의 역할을 배우는 대사로, 퍼포머는 움직임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가령 배우가 시인의 슬픔이 가득 찬 모습을 바닥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대사를 읊으며 보여준다면 쌍을 이룬 퍼포머는 공간의 한 쪽에서 춤을 통해 이런 시인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정서적, 정신적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퍼포머는 이런 인간의 말을 대변하는 움직임을 넘어 인간을 초월하는 신적 존재로서의 의미를 갖는데, 이 부분은 나에게 있던 기존의 고정관념을 부수는 작업이기도 했다. 보통 신의 존재가 언어로 표현되고 몸은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대변하지 않았던가? 어둠을 좌절이 아닌 희망으로, 몸을 인간이 아닌 신적으로 표현한 이번 작품은 그것만으로도 매우 신선했다.

밤의 찬가 (사진제공=더 그레잇 커미션)
밤의 찬가 (사진제공=더 그레잇 커미션)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사전에 안내가 되긴 했지만 천장이 높고 공간이 넓어 대사 전달력이 매우 약했다. 간간히 들려오는 귀에 박히는 몇몇 단어와 한 쪽 벽에 비춰주는 대사를 힐끔거리며 작품을 쫒아갈 수 있었다. 대사와 움직임의 연결고리도 사실상 찾기 어려웠다. 의상의 차이 정도로 각각의 캐릭터가 구분될 뿐이었다. 역할이 분명한 만큼 움직임의 차이가 더 드러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그 차이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관객들의 참여 유도를 위한 이동관람 역시 보다 전략적인 계획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T4에서 다소 공간의 이동이 있었는데 이동했다는 것 외의 의미가 크게 발견되지 않았다. 작품의 표현이나 감상에 있어 이동 동선에 따른 당위성이 부가되었다면 어땠을까 한다. 이동해야만 볼 수 있는 것이 있거나 이동해야만 느껴질 수 있는 또 다른 감상 포인트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밤의 찬가 (사진제공=더 그레잇 커미션)

마지막 T2 공간으로의 이동 동선은 그 자체로 좋은 경험이었다. 공연장 간의 이동을 통해 갇힌 공간에서 확장된 공간을 경험함으로써 밤에서 새벽으로, 상실에서 회복으로의 키워드를 완성한다. 어두운 숲속을 함께 산책하듯 모두가 걸어 나올 때 느꼈던 상쾌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쉬운 점은 너무나 밤이었다는 것이다. 작품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동트기 전 미명을 경험할 수 있는 이른 시간이라야 하겠지만 공연 시간으로 적절치 못하니 아마도 조명을 통해 그런 효과를 내어 보려고 했겠지만 말이다. 작품과는 반대로 새벽에 시작해서 밤에 끝난 것 같은 아쉬움에, 만약 밤에 시작해 미명에 마치는 공연을 언젠가 하게 된다면 꼭 다시 찾고 싶다. 불가능한 바람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