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Human Body Expression 길현아 예술감독
[인터뷰] Human Body Expression 길현아 예술감독
  • 배하영 기자
  • 승인 2022.08.29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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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에서 가장 바쁜 안무가"
안무가 길현아 (사진제공=휴먼바디 익스프레션)
안무가 길현아 (사진제공=휴먼바디 익스프레션)

[더프리뷰=서울] 배하영 기자 = 캐나다 토론토 소재 휴먼바디 익스프레션(Human Body Expression) 무용단의 안무가인 길현아(Hanna Kiel) 씨는 언젠가부터 토론토에서 가장 바쁜 안무가가 되었다. 그녀는 지난 1996년 한국을 떠나 캐나다 밴쿠버에서 활동하다가 토론토로 이주했다. 현재 ‘토론토에서 아주 유명한 위촉 안무가’로 불리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녀는 이번 여름 댄스필름 제작을 마치고 여유가 생긴 김에 모처럼 한국에 오래 머물었다. 더프리뷰와의 인터뷰는 지난 7월 27일 더프리뷰 편집실에서 있었다.

안무가 길현아 (사진제공=휴먼바디 익스프레션)
안무가 길현아 (사진제공=휴먼바디 익스프레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1996년 5월 캐나다 밴쿠버로 가서 안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는 작가를 꿈꿨는데 어쩌다보니 이화여고 2학년 때 무용반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1995년 대학 졸업 후 교수님의 권유에 캐나다로 갔구요, 이듬해 메인댄스학교(Maindance)에 입학해 안무를 배웠습니다. 그 후 중국계 캐나다인과 결혼해 솔로 활동을 하면서 밴쿠버에서 14년 동안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30대 중반에 토론토로 이주를 했고 2년 동안 수많은 클래스와 워크숍을 들으면서 무용에만 집중하다보니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토론토의 장점은 땅이 넓다보니 기회가 많이 생긴다는 겁니다. 반대로 전에 살던 밴쿠버는 보수적이라 그렇지 않아요. 처음 토론토에 와서는 낮설고 잘 몰라서 50개 무용단체에 신청서를 넣어보기도 했으나 답이 없었어요. 그리고는 무려 4년이 지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거기서 누가 낯선 외국인 무용가를 알았겠어요? 하지만 이동이 많고 빈 자리가 많다보니 저에게도 기회가 왔고 나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토론토에서 가장 위촉을 많이 받는 안무가가 되었어요. 2019년부터는 토론토 댄스 씨어터(Toronto Dance Theater)와 캐나다 국립발레단(The National Ballet of Canada)에서 상주안무가를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최근 30년 역사를 지닌 발레요간(Ballet Jorgan)에서 예술감독 제의가 들어왔는데 제 무용단을 운영하느라 고민하는 중이예요.

제 무용단 이름은 휴먼 바디 익스프레션(Human Body Expression)입니다. 발레, 힙합, 연극 등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융합적인 스타일을 지니고 있습니다. 2014년 창단해 매년 1-2회 씩 공연을 했어요. 자랑을 하나 하자면, 창단 후 캐나다 무대공연상(Dora Mavor Moore Award)의 모든 부문(프로덕션, 안무, 퍼포먼스, 조명)에 노미네이트되거나 상을 받았습니다. 1년에 70개 공연을 선정한 뒤 심사를 하는데 카테고리 당 5개씩 상을 줘요. 저희 무용단은 시작부터 계속 노미네이트되었었고 2018년에는 5개 부문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Chasing the Path>라는 작품인데 지난 2019년 대전 뉴 댄스 페스티벌에서 한 차례 공연했지요.

Project L (사진제공=Human Body Expression)
Project L (사진제공=Human Body Expression)

안무가로서 어떤 스타일과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지요? 안무작은 몇 편이나 되는지요?

제가 추구하는 작품은 육체적으로 격렬하고 아주 피지컬해요. 무브먼트와 음악을 가장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항상 작곡가와 함께 작업을 한답니다. 어렸을 적 작가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남아서 그런지, 음악이 영화에게 주는 임팩트를 많이 써요. 유독 음악으로 감정과 공포심을 유발하는 걸 좋아하지요.

토론토에서 제일 춤 잘 추고 피지컬한 무용수들과 일해요. 지금 토론토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컨셉추얼한 작품이 많은데 저는 그런 경향에 회의적입니다. 저는 춤이 위주인 작품으로 관객들과 소통하는 것을 추구해요. 전통적인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요. 그렇기에 모양이 갖춰지지 않은(Shapeless) 무용을 굉장히 좋아해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면 결코 에너지가 떨어진다고 하진 않습니다. 움직임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작품 구성에서는 무용수에게 숙제를 내는 방식인 태스크 베이스(Task Base)를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작을 만든다면 그 과정 중 강렬한 불협화음이 있는 부분을 캐치해 수정하는 식이지요.

지금까지 제 안무작이 대략 100편은 될 것 같은데요. 무용단 외에 학교에서도 안무를 자주 했기 때문에 많습니다. 작은 무용단을 위해 솔로 작품도 많이 했었어요.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아까 말씀드린 <Chasing the Path>입니다.

Resonance (사진제공=Human Body Expression)
Resonance (사진제공=Human Body Expression)

단원은 몇 명이나 됩니까?

구성원이 딱 짜여 있는 것을 싫어해서 그 때 그 때 모집합니다. 예를 들자면, 2019년에 했던 작품은 신인들만 시키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는 요즘 컨셉추얼 댄스가 과도하게 유행하는 게 싫어서 젊은 친구들을 모아서 피지컬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평균연령은 25세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코로나 때문에 공연이 취소되어서 11세부터 60세 무용수를 모집해 영화로 만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 작품마다 콘셉트와 스타일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무용수들을 고정할 수가 없습니다.

캐나다 정부의 예술지원 정책은 어떤가요?

코로나 시기에 공연 취소가 많이 됐잖아요. 그래서 무용수들이 받기로 되어 있던 예산이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불평이 많았어요. 특히 프로듀서들이 죽게 생겼다고 난리를 쳤지요. 그러자 캐나다 전체(연방) 지원기관인 캐나다 아츠 카운실(Canada Arts Counsil)에서 지원을 했습니다. 큰 무용단들은 평소 활동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을 줬고, 작은 무용단은 적어도 단체 유지는 할 수 있을 만큼 지원해줬습니다.

어느 날 통장에 한국 돈으로 2천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 입금됐기에 이게 무슨 돈인가 매니저에게 물어봤더니, 신청하지 않아도 그동안 지원금을 받아온 예술단체들을 선정해서 제공하는 지원금이라고 하더군요. 세금도 안 떼고 자유롭게 써도 되는 거라서 작품제작에 썼습니다.

또한, 코로나 사태 이후 수입이 50% 이하로 감소한 사실이 입증된 예술가에게는 2년 동안 매월 200만원씩 제공했습니다. 무용가들이 이 지원을 받고자 전에 납세하지 않았던 세금을 납부하는 재밌는 상황도 있었어요.

The National Of Canada © Alana de Haan
The National Ballet Of Canada © Alana de Haan

캐나다 무용의 스타일과 안무가들의 관심사가 미국과 유럽에 비교해 어떤가요?

현재 캐나다 무용계는 3개 지역이 가장 활발합니다. 밴쿠버, 토론토, 몬트리올입니다.

첫째로 몬트리올은 주(퀘벡) 정부가 다른 주들과 달리 유럽처럼 문화예산을 많이 책정합니다. 그곳 관객들 역시 유럽인들과 비슷해서 문화생활에 돈을 많이 쓰고, 입장권 가격이 비싸도 아까워하지 않아서 예술계가 전반적으로 풍성해요. 스타일로 말하자면 유럽과 매우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요. 유럽과 비슷한 사례로 굉장히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제가 잠깐 퀘백에 가서 안무를 하던 때였어요. 그 때 잠깐 여름동안 같이 작업한 프랑스 무용수가 “몬트리올은 유럽을 따라하는 것 같아 맘에 안 든다.”라고 하더라고요. 본인이 보기에는 ‘가짜 유러피언’ 같다는 얘기죠. 그렇지만 몬트리올을 포함하는 퀘벡은 다른 주보다 지원금이 많이 때문에 캐나다의 무용인들이 가장 선망하는 주입니다. 그만큼 큰 단체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두 번째로 밴쿠버는 좁아서 지원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좁기 때문에 모두가 힘을 합쳐 한 사람이 유명해질 때까지 지원을 해줘요. 크리스털 파이트가 대표적인 사례예요. 그러고나서는 또 다음 타자를 내세워서 대폭 지원해줍니다. 자기 순서가 올 때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일단 차례가 왔다 하면 한 번에 집중 지원을 해줘요. 전반적인 작품 스타일은 발레이면서도 컨템퍼러리 같은 발레 뤼스풍을 띠어요.

GROUP 1 (사진제공=Human Body Expression)
GROUP 1 (사진제공=Human Body Expression)

마지막으로 토론토는 오랫동안 마사 그레이엄 같은 스타일이 꽉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정체성을 잃었어요. 댄스 메이커가 탄생하면서 흥행하다가 컨셉추얼 무용을 추구하기 시작하며 관객들이 떠나갔습니다. 결국 스튜디오 공연만 하다가 문을 닫았어요. 토론토 사람들이 얼마나 '움직이는 춤'을 좋아하는데, 컨셉추얼이 먹힐 리가 없죠.

그런데 현재 토론토 댄스 씨어터가 똑같은 현상을 겪고 있어요.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예술가들이 컨셉추얼 무용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진정한 철학이 없고 폼만 잡으려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의 흥미가 떨어졌고 점점 현대무용을 안 보려고 합니다.

제가 위촉을 많이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저는 안무에 동작과 춤을 많이 구성하니까 사람들이 보러 와요. 그래서 많은 무용단과 학교들이 부릅니다. 관객층은 젊은 연령대가 굉장히 많아요.

고민은 토론토가 여러 분파로 나뉘어서 융화가 안 된다는 점입니다. 온타리오주는 지원금을 여러 사람에게 분배해줍니다. 그러나 이런 정책은 이제 막 시작한 작은 단체에게는 좋지만 큰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단체나 개인에게는 행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매우 불편해요. 그래서 요즘은 공공이 아닌 민간후원(프라이빗 도네이션)으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현재는 저희 무용단에게 2-3명 정도가 행정적인 도움을 줍니다. 예술적으로는 도움을 많이 받으나 행정적인 면은 부족한 게 실상이지요.

휴먼 바디 익스프레션을 풀타임 단체로 할 것인지, 프로젝트성 단체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있습니다. 풀타임 베이스 단체의 지원금 선정평가를 보면서 느낀 점은 규모가 커질수록 예술보다는 몸집만 커지더라고요. 어차피 늘 동일한 무용수들과 함께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당장은 프로젝트성 단체 운영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처럼 운영을 해도 공연을 할 만큼은 지원을 받습니다. 받는 돈은 개인 돈이 아니라 무용단 재정으로 들어가도록 하고 있어요. 이외에 분배하는 요령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코로나가 터지고 느낀 점은, 그동안 정말 바쁘게 살았다는 거예요. 전에는 하루에도 이메일을 60통씩 쓰고 지원금 신청서를 1년에 10개씩 쓰던 사람이 2년 동안 쉬니까 너무 편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서 익사이팅한 공연을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하자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 관객들이 공연을 보러 나오질 않아요. 그래서 마케팅하는 게 힘들어졌습니다. 또 젊은 무용수들이 공연으로 어필하지 않아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니 무용단과의 작업에 대한 간절함이 없어졌습니다.

공연을 하려면 무대에 올라야 하는데 뒤뜰에 올라서 무용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게 맞는 줄 착각하는 거지요. 좀 있으면 괜찮아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무용가는 끊임없는 연습과 연구, 리허설을 통해 익혀지면서 배워가는 과정을 관객과 소통하는 것인데, 짧은 시간내 1-2분의 영상으로 호응을 얻으며 만족하는 모습을 보니 걱정이 됩니다. 물론 이런 방법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아요. 그러나 무용은 빠른 결과물과 호응보다 연습과 과정을 통해 얻는 깨달음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그렇게 발전된 나의 모습을 관객과 나누는 것에 더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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