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트팝의 씨앗을 뿌린 김효근의 새로운 꿈
[인터뷰] 아트팝의 씨앗을 뿌린 김효근의 새로운 꿈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2.09.02 08: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뮤지컬 ‘첫사랑’의 작곡가 김효근을 만나다
뮤지컬 '첫사랑'의 작곡가 김효근 (사진=더프리뷰 서봉섭 기자)
뮤지컬 '첫사랑'의 작곡가 김효근 (사진=더프리뷰 서봉섭 기자)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이여 설레는 내 마음에 빛을 담았네

말 못해 애타는 시간이여 나 홀로 저민다

그 눈길 마주친 순간이여 내 마음 알릴세라 눈빛 돌리네

그대와 함께 한 시간이여 나 홀로 벅차다

내 영혼이여 간절히 기도해 온 세상이여 날 위해 노래해

언제나 그대에게 내 마음 전할까 오늘도 그대만 생각하며 살다

그 마음 열리던 순간이여 떨리는 내 입술에 꿈을 담았네

그토록 짧았던 시간이여 영원히 멈추라

내 영혼이여 즐거이 노래해 온 세상이여 우리를 축복해

내 마음 빛이 되어 그대를 비추라 오늘도 그대만 생각하며 살다

첫 사랑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 칼럼니스트 = 한국가곡계는 김효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한국 예술 가곡계에 ‘아트팝’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연 작곡가 김효근. 그가 또 다른 시도에 나섰다. 오는 9월 2-4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그의 가곡 16곡으로 이루어진 아트팝 뮤지컬 <첫사랑>을 선보이고, 또 9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K-아트팝 가곡의 밤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공연하는 것이다.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이자 예술계에서 오랫동안 아트팝 운동을 하고 있는 김효근 작곡가를 만나보았다.

뮤지컬 '첫사랑'의 작곡가 김효근 (사진=더프리뷰 서봉섭 기자)
뮤지컬 '첫사랑'의 작곡가 김효근 (사진=더프리뷰 서봉섭 기자)

 

“아트팝은 예술성의 아트와 대중성의 팝을 동시에 추구하는 한국 가곡의 새 장르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넓게 본다면 세계적으로 살아남은 모든 장르의 예술활동은 아트팝의 특성을 갖고 있지요. 예술적 감동과 공감력을 갖춘 작품들이 결국 그 시대의 예술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으니까요”

김효근은 ‘눈’으로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이던 1981년 문화방송(MBC) 주최 대학가곡제 대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나타났다. 당시 비전공 대학생이 대상을 거머쥘 것은 그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

“전혀 기대 안 했어요. 예선 통과조차 신기했어요. 저 말고는 모두 작곡과 전공생들이었거든요.”

대상 수상자에게는 피아노가 부상으로 주어져서 기뻤다고 한다. ‘그리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은’ 같은 가곡들이 그 시절 습작한 곡들이다.

대학가곡제로 수상은 했으나 그후에는 경영학 공부에 매진하며 학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2007년에 원로 작곡가 모임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다시 한국 가곡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의 가곡 ‘눈’이 인터넷도 없던 시기에도 입소문을 타고 알려져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리고 겨울이면 TV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터라, 한국 가곡의 중흥을 꾀하던 원로들이 김효근을 찾기에 이른 것이다. 김효근은 ‘우리 시 우리 음악’ 주최의 대한민국가곡제에서 ‘가을의 노래’와 ‘나룻배’를 발표했고, 한국 가곡의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6년 공백기 끝에 작곡 활동을 재개했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작곡가와 시인이 돈을 걷어서 공연장을 대관하고 음반 작업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었어요. 성악가에게 최소한의 사례만 하고, 티켓 판매는 거의 신경 못 쓰고. 다른 하나는 발표한 가곡을 듣고 공감해줄 관객층이 계속 나와야 하는데, 당시 40대 이하 젊은 분들은 그 곡들을 올드하게 여기고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경영학자로 20여 년을 일하다 작곡이라는 생산 현장에 들어서니 보인 것이죠. 생산을 하면 판매가 되어야 하는데, 소비자로부터 외면 받는다면 지속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미활동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대로라면 15년만 지나도 한국 가곡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도대체 왜 한국 가곡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기 위해 주위 청년들에게 리서치를 해보았다. 합창단 단원들에게 정통가곡을 연습시켜보는 실험도 해보았는데 다들 지루해 했다.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당시 대학 교수들이 발표하는 현대가곡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등장한 무조 음악이나 우연성 음악 같은 현대음악어법에 충실했는데, 일반 청중에게는 난해한 곡들이었다. 예술가로서 예술성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나, 소비하는 감상층은 공감할 수 없었던 것. 반면 여전히 서정적인 곡들을 추구하던 재야 작곡가들은 1960-1980년대 한국가곡의 선율, 화성, 리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해 새로운 청중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했다.

뮤지컬 '첫사랑'의 작곡가 김효근 (사진=더프리뷰 서봉섭 기자)
뮤지컬 '첫사랑'의 작곡가 김효근 (사진=더프리뷰 서봉섭 기자)

 

“예술은 반드시 대중에게 사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 제 노선은 분명합니다. 오해도 받고 저항도 있었지만, 그 점이 전제되지 않고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시작된 아트팝 운동. 2010년 1집 ‘내 영혼 바람 되어’를 내면서 아트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효근의 뒤를 이어 윤학준의 ‘마중’, 최진의 ‘시간에 기대어’, 이원주의 ‘연’, 박대웅의 ‘더 오래 사랑하기 위하여’ 같은 노래들이 세상에 나왔다. 김효근은 후배 작곡가들과 아트팝 운동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한다.

“아트팝에 공감하고, 나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후배 작곡가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 가곡이 멸종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김효근은 아트팝 가곡을 제대로 소화할 성악가들을 찾는 일에도 열심이다. 서울국제음악제나 국내 콩쿠르에 두루 다니며 젊은 성악가들을 관찰한다.

“성악적 발성으로 노래하되 가사의 딕션이 잘 들리는 것, 아트팝 운동의 목표와도 관련이 있지요. 유럽에서 유학하신 많은 성악가들이 한국 가곡을 노래할 때 고음부에서 자음 음가가 약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 부분을 극복하지 않으면 팬을 늘려갈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제 노래를 많이 부르시는 소프라노 김순영이나 최정원 같은 분들은 고음역에서 한국어가 분명히 들리도록 부르시죠.”

좋은 성악가의 아트팝 발성 샘플을 녹음해서 소개한지 13년이 되었다. 그동안 아트팝을 많이 접하며 자란 세대가 성인이 되었고, 그들의 한국어 딕션도 보다 정확해졌다고 자부한다. 신세대는 한국어 발성이 뛰어나다. 연주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려야 듣는 이가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다. 뮤지컬 프로덕션에도 이를 강조하고 있다.

딕션을 중요시하는 김효근 가곡의 가사는 한 마디 한 마디 놓칠 수 없이 아름답다. 대부분을 직접 썼다. 가사를 들여다 보면 서정적이고 깊은 선함이 묻어난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장면이 시상의 원천이지요. 감정이 움직일 때, 자연에 경탄할 때,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혹은 시를 읽다가... 문득 영감이 떠오릅니다. 필 받을 때가 중요해요. 그때마다 녹음을 합니다”

평소에는 클래식을 듣지만 사실 하드록도 좋아한다. 대학 시절 록밴드 ‘에코우스’ 활동을 하기도 했다. 성가대 지휘를 하며 클래식과 ccm을 접하고 한쪽으로는 록음악을 하다니.

김효근의 가사에는 그가 오랫동안 찾아온 해답이 담겨 있다. 2003년 무렵, 그는 근원적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삶이란 무엇인가, 세상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모든 인류는 살면서 언젠가는 이 질문을 만난다. 경영학에서 출발한 철학적 질문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으로 확장되었다.

“근원적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동양철학과 고대 한국사를 공부했습니다. 철학, 종교학, 과학과의 접점을 탐구했고 비로소 통합적인 해답을 찾았지요. 제가 찾은 이야기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가사를 썼습니다. 인간이란 내면에 있는 자신을 찾아주기만 해도 선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곡 ‘첫사랑’의 가사는 아내를 처음 만난 순간을 담고 있다. 성가대 지휘자이던 대학원생 시절, 대학 신입생인 아내가 전도사님과 연습실 문을 들어설 때, 어둡던 공간이 환해지며 후광이 비추었다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죠. 가사 첫마디, ‘그대를 처음 본 순간이여 설레는 내 마음에 빛을 담았네’가 그 첫 순간을 묘사한 것이랍니다”

1985년, 두 사람의 결혼식 때 성가대원들이 축가를 불러주었다. 김효근은 아내에게 ‘첫사랑’을 피아노곡으로 완성해 선물했다. 가사를 붙인 노래는 2011년 유엔젤보이스의 음반을 통해 발표되었다. 이 노래는 지금도 많은 결혼식장에서 축가로 불우고 있다.

9월 2일 초연되는 뮤지컬 <첫사랑>에 관해 이야기했다. 히트곡들만으로 이루어진 쥬크박스 뮤지컬 작품들은 많다. <맘마 미아> <위 윌 록 유> <그날들> 같은. 듣기만 해도 따라부를 수 있는 팝 음악들이 나오는 작품들이다. 가곡만으로 구성된 뮤지컬은 최초다. 대학로의 블루칩이라는 오세혁이 대본과 연출을, 그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호흡을 맞추었던 이진욱이 음악감독을 담당한다. 초대 팬텀 윤영석과 초대 콰지모도 조순창이 50대의 주인공 태경을, 그리고 일본 극단 사계 출신의 변희상과 2019 DIMF 최우수상 수상의 김지훈이 20대의 태경을 연기한다. 태경의 첫사랑 선우는 그룹 스피카 출신의 배우 양지원이 맡는다. 김효근은 작곡가이자 예술감독으로서 뮤지컬을 총지휘한다.

“깊이 있는 대본에 놀랐습니다. 오세혁 작가는 시대의 천재에요. 사람 안에 있는 순수함과 지저분한 욕망을 모두 끄집어내서 극에 녹여내는 역량이 대단하더군요. 물론 저도 아이디어를 보탰습니다. 초반의 대학가곡제 같은 장면도 그렇고.”

오세혁 연출가가 오래된 사진관을 배경으로 한 아이디어를 냈고, 여기에 김효근은 글로벌한 사진작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스케일을 키우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뮤지컬 <첫사랑>은 50대의 성공한 사진작가이자 인기 유튜버 태경이 20대의 태경과 선우를 만나며 빛나는 기억들을 떠올리는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오는 9월 14일에 공연되는 <K-아트팝 가곡의 밤 –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김효근은 음악 여정의 터닝 포인트를 노린다.

뮤지컬 '첫사랑'의 작곡가 김효근(사진=더프리뷰 서봉섭 기자)
뮤지컬 '첫사랑'의 작곡가 김효근(사진=더프리뷰 서봉섭 기자)

 

“아트팝 가곡 앞에 ‘K’라는 글자를 처음 넣어봤습니다. 지난 20년은 K-pop의 시대였죠. 우리 대중음악이 전세계 음악시장을 바꾸어 놓았어요. 바야흐로 한국이 전세계 음악을 끌고 가는 토대를 마련한 것입니다. 댄스 음악이 그렇게 세계의 시선을 한국으로 가져왔다면, 한국의 클래식, 한국 가사로 노래되는 한국 가곡 역시 전세계가 좋아할 만한 시대를 열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해 왔습니다.”

김효근의 꿈은 크고 구체적이다.

“데이비드 포스터와 안드레아 보첼리의 라스베이거스 공연을 아주 좋아합니다. 전용 오케스트라가 있고 월드 클래스 뮤지션들이 게스트로 출연하고, 데이비드 포스터가 나와 작곡 배경이나 아티스트에 대한 해설을 하고. 완성도 높은 무대, 보첼리의 빛나는 노래에 지구촌이 열광했죠. 그 뒤를 이을 수 있는 스타는 한국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알레산드로 사피나, 조쉬 그로반, 캐서린 젠킨스 다음은 한국에서! 비주얼 뛰어나고 매력있고 언어의 문제가 없는 솔리스트가 많잖아요.”

K-아트팝 가곡이 세계의 주류가 될 그날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좋은 오케스트라, 프로듀싱, 그리고 다양하고 세련된 연주 방식과 녹음 방식이다.

“팝적인 임팩트를 내려면 현장감과 세련된 청취감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한국의 기술이 탑클래스여서 가능합니다.”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K-아트팝의 가치를 눈여겨보는 날도 상상해 본다. “좋은 작품과 좋은 연주가 확실한 마케팅 노하우와 스타메이킹과 결합되어 나온다면 세계인이 반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김효근의 꿈은 진행형이다.

김효근은 수학, 논리, 컴퓨터 교육뿐만 아니라 예술교육을 병행해야만 다가올 새로울 문명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아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생활예술 플랫폼 아트링커를 만든 이유도 맥을 같이 한다.

“경영의 여러 문제 해결을 꾀할 때, 예술적 관점에서의 해결 방법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예술의 관점은 창조성이 중요한 기준이 되지요. 모방하지 않고. 그래서 경영의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또 예술적 문제에 부딪히면 이 방법이 논리적으로 최적인가를 고민하게 되지요.”

2017년 김효근은 <경영예술>이라는 책을 내면서 현대경영학 100년사는 경영과학의 시대였으나 논리적 패러다임만으로 경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경영을 예술의 관점으로 한다면 어떤 것을 새롭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던졌고, 그 고민은 점차 여러 기업과 사람들에게 환영받기 시작했다. 성공사례나 검증되었는지를 따지는 모방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창조의 제품과 서비스로 소비자를 감동시켜야 하는 것이 경영예술의 목표다. 경영예술의 마인드로 그가 음악계에서 시도한 것이 바로 아트팝이다. ‘아트팝’은 그 이름이 지닌 무게로, 시대의 요구에 따라 진화할 것이다. 그리고 아트팝 작곡가 김효근은 미래를 상상하며 준비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