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후기] 2022 춘천공연예술제를 마치며
[축제후기] 2022 춘천공연예술제를 마치며
  • 더프리뷰
  • 승인 2022.09.0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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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CCAF 춘천공연예술제 포스터 (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2022 CCAF 춘천공연예술제 포스터 (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더프리뷰=춘천] 이윤숙 춘천공연예술제 축제감독 = 춘천공연예술제가 8월 9일부터 20일까지 2주간 축제극장몸짓과 춘천인형극장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다. 2002년 첫 선을 보인 춘천공연예술제는 매년 여름 8월 음악과 무용 등 국내 정상급 공연예술을 선보이는 축제이다.

올해 축제에는 무용 11팀과 음악 9팀, 어린이 공연 2팀으로 총 22개 예술단체가 참가했다. 첫 번째 주는 무용 주간, 두 번째 주는 음악 주간으로 나뉘어 펼쳐졌다. 나름에는 특정 장르의 마니아라면 일주일간 매일 좋아하는 장르를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일부 관객들에게 그런 의미가 닿았기를 바란다. 이 글에서는 무용 작품을 중심으로 춘천공연예술제를 돌아보고자 한다.

 

담작은 도서관 (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어린이 공연이 열리고 있는 담작은 도서관 (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춘천공연예술제는 지난해 ‘맞닿음’이라는 주제에 이어 올해에는 ‘살핌’이라는 주제를 내놓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자신과 주변을 돌보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함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비대면 공연과 좌석 띄어앉기 등 공연예술계는 팬데믹에 직격탄을 맞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시점에서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 공연을 보는 행위 ‘살핌’에서부터 시작하여 나와 우리, 주변을 ‘살피’자는 의미이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공연 사진을 활용하여 제작하고 있는 포스터 디자인에서도 스프링처럼 피어오르는 민트색 리본과 손끝이 맞닿은 동작 이미지를 통해 상승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포스터 디자인은 디자인스튜디오 홍단의 작업인데, 화려한 색감의 공연 포스터들 속에서 회색조와 산뜻한 색상으로 차분하게 삶의 리듬감을 보여주었다.

 

김소라 © 우종덕
김소라 © 우종덕

개막작으로 올린 쿰댄스컴퍼니의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는 한국춤의 뿌리를 살피는 작품이었다. 전통 소재와 웅장한 군무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한국무용이 낯설었던 춘천 관객에게 강렬한 비주얼을 통해 한국무용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축제극장몸짓과 인형극장으로 나뉘어 매일 현대무용 작품들이 공연되었다. 8월 10일(수)에는 축제극장몸짓에서 주빈컴퍼니(JUBIN Company)의 <새다림>과 임댄스텐(ImDance10)의 <생존기계>가 공연되었다. <새다림>은 제주의 씻김굿을 차용한 한국무용으로 김주빈 안무가의 에너지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카메라의 프레임을 회전시켜놓은 듯이 팔꿈치로 딛고 걸어가고 바닥을 벽 삼아 기대는 움직임으로 시작되는 작품의 초입은 음향 하나 없이 조용하지만 뒤집히고 살기 힘든 세상을 강렬하게 은유했다. 마지막 부분의 신나는 음악과 시원스러운 춤동작으로 풀려나가는 이 작품은 자체로서도 일종의 ‘정화 의식’과도 같았다. 임선영 안무가의 <생존기계>는 공연을 본 평론가들에게 인상 깊은 작품으로 회자되었다. 남자 무용수 2명의 밀도 있는 움직임으로 관객을 압도했다는 평을 받았으며, 중견 안무가의 고민과 완숙한 작업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시나위 현대국악 © 우종덕
시나위 현대국악 © 우종덕

8월 11일(목)에는 춘천인형극장에서 조금 결이 다른 두 편의 무용 작품을 선보였다. 임정하의 <뉴-에튜 프로젝트>는 무용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렉처 형식을 차용해 영상과 소품을 적극 활용한 작품이었다. 이전까지 김호연 안무가와 함께 활동하던 댑댄스프로젝트의 임정하 안무가가 단독 안무작으로 선보인 이 작품은 움직임의 원형과 변형을 탐구하였으며, 댑댄스 특유의 재치있는 동작과 리듬을 담기도 한 개성 있는 작품이었다. 이번 축제의 포스터에 사용된 원본 사진이 댑댄스프로젝트의 공연 사진인데, 이들이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동작들을 통해 이 젊은 안무가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진 공연 <와일 While>은 지난 해 <제로>를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또 올해 춘천마임축제에서 초청 공연을 하기도 한 인기 무용단 시나브로가슴에의 최근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끊임없는 흔들림 중에서도 중심을 잡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표현했으며, 독특한 무대 의상과 비주얼, 반복적인 베이스가 강한 음악 등을 통해 춤을 대하는 진지한 무용수의 태도를 환기하는 공연이었다.

8월 11일(금)에는 축제극장몸짓에서 트리플 공연이 있었다. 첫 번째 순서로 공연한 탄츠테아터원스의 <반.meet>은 이번 춘천공연예술제에서 첫 선을 보이는 작품이었는데, 공연 직전 한상률 공동 안무가의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 급하게 무용수가 변경되었다. 2004년 이후 18년 만에 우리 축제에 방문한 김원 안무가의 녹슬지 않은 춤 실력과 변함없는 스토리텔링과 디테일을 만나 무척 반가운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김정수 안무가의 <적당한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가장 문제작이지 않았나 싶다. <적당한 사람들>이라는 제목에 맞게 가장 ‘적당한’ 의상과 안무를 취사선택하고 관객들에게 ‘적당한’ 기억을 남겼다. 파스텔 톤의 의상마저도 평범함과 적당함 그 자체를 보여주었는데, 세 무용수의 집중력과 균형, 그리고 김정수 안무가의 표현력은 결코 ‘적당’하지 않고 아름다우며 특별했다.

그리고 올해 관객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 정보경 안무가의 <친애하는 나의 그르메>가 공연되었다. 관객을 웃기고 울리는 탁월한 이야기꾼 정보경 안무가의 내레이션과 <새다림>에서도 힘 있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던 김주빈의 에너지와 두 사람의 묘한 조화가 작품을 빛나게 했다. 공연이 끝나고나서도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그리움과 여운이 밤하늘의 작은 별빛처럼 남아 있었다.

무용 공연의 마지막 날인 8월 13일(토)에는 아트랩 프로그램으로 선보인 주혜영 안무가의 <무릎 달리기, 허벅지 구르기, 팔꿈치 걷기, 배꼽 흔들기>라는 긴 제목의 워크-인-프로그레스(work-in-progress) 공연이 있었다. 이 작품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춘천공연예술제의 프로그램 구분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춘천공연예술제가 지난해 20회를 맞이하여 부문별 프로그래밍을 새롭게 신설한 바 있다. 대표적인 작품에 시그니처, 한 단계 발전된 재공연에 버전업, 신작 발표에 파인더, 그리고 작품의 기획 단계부터 축제가 지원하기 위해 신설했던 아트랩 네 개 부문으로 작품을 프로그래밍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선정작이 없었으나 올해 아트랩 부문에 처음으로 선정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무용수의 몸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하여 대상화된 몸이 아닌 움직임의 주체로서의 몸을 발견하자는 주제를 담은 독특한 작품이었다. 이러한 주제를 담기 위해 관객들이 작품에 직접 참여하여 스스로의 몸을 인식하는 워크숍의 형태로 작품이 진행되었다. 축제에 방문한 평론가들과 선배 무용수들도 참여하고 일반 관객들도 참여해 다양한 피드백을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저녁 시간에는 춘천인형극장에서 이번 무용 주간의 마지막 작품 두 편이 준비되었다. 모든 컴퍼니의 <바디 스트링 Body String>은 철현금의 연주에서 영감을 얻은 안무가 김모든이 무형의 소리와 연주 형태를 몸으로 표현한 초연작이었다. 기타와 거문고를 합쳐 놓은 현대 국악기 철현금의 묵직한 음색과 리서치를 통해 밀도 높은 움직임을 구성하는 안무가의 구성력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기존에 펜싱, 클라이밍 등 다양한 일상의 소재를 작품으로 구성해오고 있는 김모든 안무가가 처음으로 음악에서 소재를 갖고 와서 작품을 구성했다는 것이 특이점이다.

 

김정수 © 이도희
김정수 © 이도희

마지막 공연은 김성훈댄스프로젝트의 <Pool>이었다. 이 작품은 물웅덩이가 생기고 고인물이 썩어가듯이 도시에서 발생하는 잉여의 사람들이 모이고 꿈틀대는 빈민가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축제를 준비하면서 김성훈 안무가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바라보았던 빈민 사회의 모습들-겹겹이 입은 옷가지, 거리에 누워 잠든 발바닥이 하얀 사람들, 역 근처로 모여든 노숙인 등-이 작품 속에 담겨져 있었다. 한국과 유럽을 오가면서 일상의 공간들을 낯설게 바라보고 그 속에서 인간 삶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고 있는 김성훈 안무가의 ‘살핌’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춘천공연예술제는 공연 안팎으로 ‘살핌’의 주제를 전달하고자 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살핌 캠페인’을 알려서 보이지 않는 예술의 가치를 추구하는 공연예술 축제로서 관객들과 함께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환경 메시지를 공유했다. 또한, 보이지 않는 향기처럼 분명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감각을 확장하자는 의도를 담아 비건&제로웨이스트 브랜드 ‘타이거릴리’와 함께 축제의 향기를 만들었다. 축제를 대표하는 이 향기의 이름은 ‘뭇별의 환영’이다. 여름밤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밤을 즐겼다는 요정들의 축제를 뜻한다. 향기의 콘셉트는 춘천공연예술제가 처음 시작된 야외무대 옆에 의암호, 무대 뒤로 피어오르는 호수의 물안개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다. 이 향기는 향후 2년간 시범적으로 축제에 사용될 예정이다.

2022 춘천공연예술제는 3년간의 팬데믹을 종식하고 다시 일상으로의 회복을 꿈꾸며 공연자와 스태프, 관객들을 만나는 여정이었다. 하지만 축제 전후로 출연자가 교체되거나 스태프가 확진되는 등 팬데믹은 분명 현재진행 중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전반적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이 많이 줄어들었다. 20년간 축제를 이어오면서 춘천공연예술제만의 마니아 관객을 점차 늘려가고 있던 시점이었는데, 그러던 중 일어난 팬데믹이 축제에 적지 않은 타격이 된 것 같다.

보통 춘천공연예술제를 소개할 때 이 축제를 ‘시스템’의 축제라고 소개한다. 예술가가 공연에 집중하고 더 좋은 퍼포먼스를 하기 위해 환경과 시스템을 만드는 축제가 바로 춘천공연예술제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관객’은 예술가가 좋은 공연을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환경이다. 약 2주간 춘천공연예술제의 공연장에서는 매일같이 새로운 공연이 펼쳐졌고, 공연장을 온 관객들은 예술가가 준비한 퍼포먼스에 매료되어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것은 분명 손안에 펼쳐서 편안하게 보는 유튜브나 집에서 누워서 보는 TV에서는 느낄 수 없던 뜨거운 에너지이며, 살아있음의 호흡이자 온몸으로 느끼는 공연예술이라는 환경이었다. 관객이 예술가의 공연을 집중해서 관람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 그래서 예술가는 ‘춘천공연예술제의 관객’이라는 좋은 환경을 만나는 일이 우리 축제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내년에는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축제로 돌아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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