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지휘하듯” 여자경의 능숙한 대담 진행
“공간을 지휘하듯” 여자경의 능숙한 대담 진행
  • 이시우 기자
  • 승인 2022.09.06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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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와 셰프의 만남 – 여자경&권우중의 ‘소소살롱’
소소살롱 관람객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소소살롱 관람객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지난 8월 20일(토),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일곱 번째 <소소살롱>이 열렸다. <소소살롱>은 ‘소소하고 소탈하게’ 예술가와 예술가가, 예술가와 관객이 만날 수 있는 대담의 자리다. 이번 <소소살롱>에는 호스트로 지휘자 여자경이, 게스트로 한식당 ‘권숙수’의 오너 셰프 권우중이 출연했다. 오랜 시간 무대에 서 온 여자경은 “리사이틀홀은 오늘이 데뷔”라며 능숙하게 운을 뗐고, 이어 권우중이 친근한 웃음을 지으며 무대에 등장했다. 권우중은 2016년 예술의전당에서 <맛있는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봄의 식재료와 봄의 음악을 결합한 공연을 선보인 적이 있다.

좌 권우중 우 여자경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좌 권우중 우 여자경 (사진제공=예술의전당)

Part 1. 음식이 주는 즐거움

여자경과 권우중의 공통점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책임지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과 음식은 모두에게 힐링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권우중은 권숙수의 ‘사장 셰프’로서 경영, 채용, 급여, 세무, 홍보, 마케팅 등 전반적인 책임을 맡고 있다. 권숙수의 ‘숙수’는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단어로 잔치와 같은 큰 행사가 있을 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셰프, 주방장, 요리사, 숙수 등 여러 호칭 중 무엇이 가장 좋은지 묻는 여자경에게 권우중은 셰프가 좋다고 답했다. ‘주방장’은 예전에 사용하던 단어로 노포에 어울린다고, 나이가 더 들면 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어릴 적 작가와 역사학자, 요리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었던 권우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와 교보문고에 가 <세계 요리 백과사전>이라는 책을 사서 요리를 했다고 한다. 오너 셰프였던 외할아버지의 비법을 전수받은 어머니는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와 관련된 신문을 스크랩하는 등 도움을 주셨다고. 또한 권우중의 아버지는 해외에서 요리는 예술의 한 분야라고 이야기하며 정신적 지지를 해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작가나 역사학자가 아닌 요리사가 되었다.

그는 중고등학생 때까지는 양식에 관심이 더 많았다. 그러나 사회에 나가 요리를 먹으러 다녀보니 양식은 많았는데 한식 ‘레스토랑’은 당시 전무했다고 한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에 ‘내가 한번 제대로 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근무하던 조선호텔을 나오자 동료와 선배들은 ‘미쳤냐’ ‘왜 인생을 포기해’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여자경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여자경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여자경은 권우중의 음식을 가리켜 “예쁜 접시에 예술 한 점이 올라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며 요리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이전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는데, 서른 살 유학길에 오르며 요리 책을 하나 사서 요리를 해 먹어 보니 너무 맛있었다고 한다.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도 맛있었는데 귀국하고는 시간이 없어 못 하다가, 현재는 가족을 위해 집밥과 후식까지 직접 만든다고 한다. 맛있어하니까 계속하게 된다고.

여자경은 코로나 사태로 6개월 동안 공연이 없었을 때 ‘음악회는 이제 안 열릴 거야.’라고 생각해서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하나 고민했다고 한다. 당시 매일 만들었던 케이크가 예쁘지는 않지만 맛이 좋아 정말로 빵집을 열 생각이었는데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신 지방 공연이 있으면 가족이 먹을 음식, 빵을 일주일 치씩 만들어 놓고 간다고 했다. 빵집은 열지 못했지만 식구들에게만큼은 최고의 요리사, 제빵사인 듯하다.

여자경은 자신의 경험담에 이어 권우중에게 집에서도 요리를 하느냐고 질문했다. 권우중의 답변은 “셰프는 집에서 요리 안 한다. 하지만 저는 하는 편.”이었다. 부모님께서 무언가 드시고 싶어하실 때도 하고, 식당에 아이들을 편히 데려가기가 힘들기에 요리를 해 주고 싶다고도 했다. 아내와 둘이 있을 때는 코스 요리를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생기고는 파스타나 비프 부르기뇽 등 단품을 만든다고 말했다. 이에 여자경은 처음 들어본다는 듯 “뭐라고 하셨어요? 비프 부르기뇽?”이라고 물어 웃음을 자아냈다. 비프 부르기뇽은 프랑스식 소고기 스튜 요리다. 권우중은 자신의 레시피를 간단히 소개했는데, 시판 파스타 소스를 쓸 때 각각 다른 소스를 섞어 쓰면 좋다고 했다. 전문 식당에서는 된장찌개를 끓일 때도 다른 된장을 섞어 쓴다고도 알려주었다.

 

권우중 (사진제공=예술의전당)
권우중 (사진제공=예술의전당)

권우중은 맛집을 찾아다니냐는 질문에 정신적으로 업무인 것과 업무가 아닌 것으로 나눈다고 했다. 파인 다이닝은 분석을 하거나 배울 점을 얻기 위해 친구 셰프나 직원과 가고, 편하게 가는 맛집으로는 노포를 좋아한다며 맛집을 추천하기도 했다. 여자경은 맛있는 것을 먹는 건 인간의 순수한 즐거움인데, 이를 일로서 만났을 때 반감이 들거나 부작용은 없는지 물었다. 권우중은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다 업계 사람들이니 말도 조심해야 하고 접시를 모두 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번 소소살롱은 관객이 실시간 채팅 프로그램 슬라이도에 질문을 남기면 문답 시간에 출연자들이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 질문은 여자경에게 왜 권우중을 게스트로 모셨는지, 평소 권숙수의 단골인지 묻는 것이었다. 이에 여자경은 한식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직 권숙수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한식 셰프를 만나보고 싶었다고. 한식이 상품화되고 예술적 요소가 가미되는 것이 반갑다고 했다.

권우중은 클래식 음악에 대해 잘은 모른다고 했다. 어릴 때 자장가로 듣곤 했는데, 직업 특성상 활발해야 해 밝고 활기찬 음악을 듣는다고. 또한 번아웃되지 않는 법에 대해 ‘우리는 울트라마라톤을 달리는 것이다. 지치지 말고 페이스를 유지해야 한다.’라고 스스로에게도, 직원들에게도 말한다고 한다. 자신은 음식으로 페이스를 유지하는데, 일요일에는 만족할 만한 음식과 와인을 먹고 마신다고 했다.

자녀들이 결혼한다고 할 때 상견례는 어떤 식당에서 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권우중은 “당연히 한식당이다. 프러포즈도 할 수 있는 한식당을 만들고 싶다. 이전에 실제로 우리 식당에서 프러포즈하는 분을 본 적도 있다.”라고 답했고, 여자경은 “결혼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상견례는 없는 걸로.”라고 대답해 모두들 웃었다. 이외에도 ‘권숙수에 취업하고 싶어요.’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권우중은 “이력서를 내셔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소소살롱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소소살롱 (사진제공=예술의전당)

Part 2. 일이 주는 즐거움

“행복이란 순수한 즐거움과 목적의식의 균형으로 이루어진 설계된 경험이다.”
- 영국 행복학자 폴 돌란(Paul Dolan)

여자경은 폴 돌란의 어록을 소개하며 두 번째 주제를 열었다. 셰프는 업무 강도가 높고 바쁜 날들이 많을 텐데 하루 일과와 한 해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예전에 만든 일과를 유지 중입니다. 셰프들 가운데 95%는 장을 직접 보지 않고 매장에서 재료를 확인해요. 일식 셰프들은 노량진 시장에서 직접 장을 보곤 하는데, 저는 일식을 넘어서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 시장에 가요. 남양주에서 재료를 구해 오기도 하는데 여기는 수확을 직접 해야 합니다. 다 해서 돌아오면 11시쯤 되고, 점심을 서비스하고 나면 1시 40분에서 50분 정도인데, 아이스커피를 한 잔하고 다른 레스토랑에 가서 확인을 하거나, 경동시장에 가서 김치 등 재료를 직접 삽니다. 그러고 나서 4시쯤 되면 제대로 된 밥을 먹어요. 그 후에는 업무 메일이나 서류 등을 처리하고 저녁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서비스가 끝나면 8시 40분에서 9시 정도가 되는데, 치우지는 않고 나와요. 퇴근하면 아이들 안아주고, 맥주나 와인 등 ‘노동주’도 마셔요. 그때 요리를 해서 먹기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배달을 시켜 먹기도 하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눠요. 쿠팡이츠도 사용합니다. 요리는 주로 제가 합니다. 아내는 아이들 키우니까 요리해 달라고 하면 안 되죠. 그리고 제가 하는 게 더 빠르거든요. (웃음) 10시 반쯤 뉴스나 신문을 보고 12시에 잡니다.
한 해 중에는 봄가을에 바빠요. 봄에는 장도 담가야 하고 가평에도 몇 번 다녀와요. 가을에는 콩이나 참깨, 야생 버섯 구하러 다닙니다. 야생 버섯 사러 소백산 쪽 가서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그렇게 말해요. 그럼 재료를 손질해야 하는 직원들은 입이 삐죽 나옵니다.”

현장에는 권우중의 딸도 와 있었다. 여자경은 딸에게 “아빠 음식과 엄마 음식 중 무엇이 더 좋냐”라고 물었고 우물쭈물하자 여자경은 “둘 다 맛있구나, 미안해.”라며 사과(?)하기도 했다.

공연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해 여자경은 “간혹 거울 보고 지휘 연습을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지휘 연습은 안 합니다. 대신 공부를 해요. 공부가 곧 연습입니다.”라고 말했다.

“집에서 부엌에 가장 오래 있고, 12시부터는 온전히 제 시간이에요. 그때부터 다음날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만 오래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프로그램 협연자는 지휘자가 정해요. 저는 리더보다는 헬퍼예요. 가끔 ‘저 연주자는 없었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그런 연주자의 역량도 끌어올려야 합니다.”

 

연주하는 여자경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연주하는 여자경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여자경은 지휘자가 누구인지, 피치(Pitch, 음의 높이)가 어떤지에 따라 같은 음악이라도 길이와 템포 등이 다르다며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의 연주 영상을 다양한 버전으로 보여주었다. 개중에는 지휘는 시작되었는데 연주는 시작되지 않는 영상도 있었다. 여자경은 이를 가리켜 ‘좋지 못한 예시’라고 설명했다. 연주자들은 언제 연주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며 악장을 보고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여자경: 드라마를 보면 메뉴 개발을 위해 밤을 새우기도 하던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또 일하는 과정에서 언제 가장 즐겁고 성취감을 느끼시는지, 또 언제 절망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권우중: 요리하기 전 아주 철저하게 계산한 뒤에 실물로 만듭니다. 실패한 경우에는 머릿속에서 다시 시뮬레이션을 하고 방향성을 새로 잡아요. 드라마와는 조금 다르죠. 일하면서 힘든 것은 손님들이 표현을 잘 안 해 주시는 겁니다. 우리나라 손님들은 표현력이 없으신 편이에요. 외국인 손님들한테 여쭤보면 반응을 잘 해 주시는데, 우리나라 손님들은 수줍게 ‘네…….’ 하고 대답할 때가 많아요. 가끔 말 대신 편지, 냅킨에 하고 싶은 말을 적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또 음식을 제대로 안 드시고 나오실 때, 비즈니스 미팅하시는 분들이 오셔서 ‘설명 필요 없다’ ‘들어오지 말아달라’ 말씀하실 때가 있는데, 어려움을 겪죠. 일하면서 즐거울 때는 후배 셰프들이 인사하러 올 때입니다. 외국에서 오기도 하는데, 각자 잘 살고 있다고 하면 좋죠.

여자경: 요즘은 인터넷에 리뷰도 많이 올라오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후배 셰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은 없으신가요?

권우중: 가끔 악의적인 리뷰가 있죠. 와보지 않은 게 틀림없는 사람이 리뷰를 올리기도 해요. 저희 마지막 서비스 시간이 저녁 7시인데 자기가 8시, 9시에 왔다면서 음식이 너무 빨리 나온다는 평을 적기도 해요. 그래서 우울할 때도 있고, 악플 받는 연예인들의 마음에 공감이 가기도 합니다. 후배들에게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100m를 9초 만에 뛸 수는 없지만 13초는 가능하거든요. 그전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한결같이 초심을 유지하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가끔 저도 초심을 잃었다는 말을 들어요. 식재료 때문에 가격을 올리는데, 그럼 초심을 잃었다는 말이 쭉쭉쭉 올라옵니다. 고물가 시대에 초심 지키기가 참 어려워요…….

여자경은 자신이 음악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음악을 한다고 하면 ‘딴따라’라고 불리는 시대에 살았던 여자경은 경상도에서 성장하며 ‘가시내가 무슨 음악을 하노, 때려치워라.’ 같은 말을 들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여자경은 음악을 좋아했지만 뭘 해야 할지 몰라 음악을 할 수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음대 작곡과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당시 여자경의 선생님은 ‘너는 특출나게 잘하는 한 가지가 없고 다 조금씩 잘하니 지휘자는 어떻겠냐’고 물어 유학길에 올랐다고. 또 그는 언제라도 음악을 그만둘 수 있을 것 같다고도 이야기했다. 다른 직업이 주어져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오늘까지는 아직 음악가라고 말했다. 권우중은 직업을 바꾼다면 여행 가이드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외국인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것도 좋을 듯하고, 유럽 와이너리 여행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둘은 자신의 이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권우중의 한자 뜻은 ‘또 우’에 ‘무거울 중’이라고 했고, 여자경은 ‘사랑 자’ ‘공경 경’이라는 뜻이며, 어린 시절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누군가 이름을 물어 ‘여자경입니다.’라고 말하면 ‘여자인 건 아는데 이름은?’이나 ‘네, 여자분 몇 분 계시나요?’ 하고 되물었다고. 여자 경찰, 여자 경로당, 여자 경리 등의 별명도 들었다고 한다.

 

소소살롱 현장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소소살롱 현장 (사진제공=예술의전당)

Part 3. 우리의 플레이리스트

그들은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며 대담을 이어갔다. 권우중은 아내와 관련된 노래를 많이 선택했는데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OST <Si tu vois ma mere>를 첫 번째로 소개했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고 신혼여행지도 골랐다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또한 결혼 전에 함께 보았다고 한다. 플레이리스트에 선정한 OST는 <Think of me>. 여자경은 가사에 큰 감동을 받고 울컥하곤 한다고 했다. 공연이 끝난 후에는 클래식은 듣지 않고 가요나 팝송 등을 듣는다고 한다. <Think of me>와 뮤지컬 맘마미아 OST <thank you for the music>은 함께 나누고 싶다며 소프라노 이윤지와 함께 시연했다.

두 사람은 음악과 요리가 주는 즐거움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끝으로 서로의 공연에, 식당에 방문할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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