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기] 작품 ‘노동무’
[작업기] 작품 ‘노동무’
  • 권효원
  • 승인 2022.09.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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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겪는 일에 대한 감사 그리고 기록

[더프리뷰=대구] 권효원 안무가 = 글을 쓴다는 것은 작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설레지만, 두려운 마음이 함께한다. 작품과 마찬가지로 글에서도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시선으로 주변의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올해 서울에서 매년 열리는 국제현대무용제(MODAFE) 국내 초청작 공모에 선정되어 공연을 마쳤다.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글을 통해 작업의 과정을 기록해 보자고 용기를 내었다.

‘노동무’ 초연(2020) ©황인모
‘노동무’ 초연(2020) ©황인모

작품 <노동무>

<노동무>는 2020년 갑작스러운 팬데믹으로 공연이 취소되었을 때 ‘아, 내 일이 춤이었구나.’라는 인지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는 창작자들은 작업할 때마다 일상에서는 물론 잠잘 때 꿈까지 꿔가며 작업에 대해 고민하는데, 우리도 정말 ‘일’로서 ‘작업’을 대하고 있는데, 일부에서 바라보는 ‘하고 싶은 걸 하고 산다.’는 시선 때문에 깨닫지 못했던, 작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작품을 통해 한 번쯤 말해보고 싶었다.

‘일’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리서치를 하던 중에 ‘예술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동 중에 가장 수준 높은 창의적 노동’이라는 문구를 보게 됐다. 사회주의자 카를 마르크스가 한 말로, 그는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의 반복 노동이 생산량과 부를 늘게 했지만 인간 개인의 입장으로 봤을 때는 사람을 기계처럼 만들어 개인의 개성을 희미하게 만든다고 봤다. 그런데 예술은 개성과 창의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인간이 하는 노동 중에 가장 창의적인 노동이 ‘예술’이라고 했다. 이 지점에서 많은 힌트를 얻었는데, 만약 사람이 하는 모든 생산활동을 ‘노동’이라고 본다면 우리가 만드는 ‘춤’ 또한 노동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노동’을 무용수들과 함께 ‘춤’으로 표현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계화된 인간이 반복 노동을 하다가 주변에 다른 사람들(무용수) 또한 모두 기계처럼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서로 연대를 하게 되면서 점점 창의적 노동인 춤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작품으로 만들게 되었다.

‘반복 노동’으로 어떤 움직임을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이것이 ‘노동’으로 보이기 위해 사람이 신체를 가장 많이 사용해서 노동했던 시대의 노동 형태 중 ‘밭 밟기’ ‘그물 당기기’ ‘도리깨질하기’ 세 가지 움직임의 반복에서 작품을 시작했다.

움직임 리서치와 작곡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작곡가 서영완 선생님과는 전국무용제 이후 두 번째 작업이었다. 연습이 시작되기 전 서영완 선생님과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반복 노동으로 작품을 시작하기로 정하고 음악도 단일 사운드의 일정한 리듬이 반복되다가 변주되는 과정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연습이 진행되면서 음악도 같은 진도로 함께 작곡되었다.

30분 길이인 이 작품은 총 3장으로, ABA 구조의 형식(기계화된 인간 - 서로를 인지하는 과정 - 창의적 노동)으로 구성하였다. 개인이 보이지 않는 집단의 움직임에서 각자의 개성을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작품 안에 모든 무용수의 솔로 장면이 있었고, 솔로 장면은 무용수들의 연대가 시작되는 2장부터 등장하기 시작해 3장까지 나열되었다.

1장에서는 기계화된 인간을 표현하기 위해 거대한 기계 안의 부속 기기들이 맞물려 움직이는 듯한 이미지를 주고자 3개의 움직임만 반복하면서 무용수의 대형(Formation)이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구성하였다. 무용수들이 1장에서 가장 힘겨워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반복되는 음악에 헷갈려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자리만 바뀌는, 춤출 수 있는 자유로움이 제한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2장에서 서로를 인지하게 되는 과정은 음악의 변화에 의해서 전개된다. 2장에서는 리듬이 사라지고 거의 무음에 가까운 볼륨으로 현(String)과 불규칙한 리듬의 음악으로 진행되었다. 서로의 움직임에 대한 반응(Reaction)이 없었던 1장과 달리 2장은 상대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이에 다시 반응하여 서로 움직임을 주고받는 접촉(Contact) 움직임을 주로 사용하였다. 이 과정을 연대의 시작으로 정하고 2장의 종반부에는 모두 무대 중앙에 모여 서로를 바라보고 각자 원하는 이상인 어딘가를 향해 무대 위로 천천히 손을 뻗는 장면이 있다. 정해진 박자가 아닌 서로의 속도에 맞춰 각자의 이상을 향해 바라보는 것, 무용수와 제작진이 가장 좋아했던 장면이기도 하다.

3장은 1장의 음악이 다시 나오며 세 개의 움직임에서 발전된 춤을 창의적 노동으로 춘다. 움직임의 변화가 크기 때문에 음악도 아프리카 리듬을 더해 리듬감을 살렸다. 세 개의 움직임 중 도리깨질하기는 털기(Shake), 자르기(Cut)의 원리를 이용하여 움직임을 만들고, 그물 당기기는 당기기(Pull), 끌기(Drag), 밭 밟기는 누르기(Push) 등 주로 발 움직임(Step)으로 발전시켜 군무로 진행하였다. 3장에서는 대형의 변화를 줄이고 움직임을 잘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창의적 노동이 펼쳐지고, 작품의 마지막에는 어떤 움직임으로 끝을 내야 할지 고민이 길어져 공연 전까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쳤다. 무용수들과 상의 끝에 작품의 마지막에는 무대 앞(Down Stage)에 모여서 관객석을 향해 도리깨질을 수없이 반복하며 끝냈다. 신체 반경이 큰 움직임을 수없이 반복하기에 무용수의 체력 소모가 큰데 음악이 끝나도 도리깨질을 계속했다. 이는 앞서 말했듯 ‘우리도 춤을 일로서 대한다’라는, 작업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내 개인의 ‘외침’같은 것이었다.

초연 때부터 계속된 팬데믹으로, 거리 두기 단계에 따라 연습실이 갑자기 셧다운되는 상황과, 언제 누가 감염될지 모르는 막연한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 연습하는 그 시간, 그 순간 서로만을 믿어가며 만들었던 작품. 우여곡절 끝에 <노동무>는 대구에서 3회 공연되고, 올해 서울에서까지 공연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새로운 이들과의 출발

하지만 캐스팅부터 난항이었다. 2년 동안 고생해서 작품을 함께 만든 무용수들이 일정 관계로 과반수가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노동무>는 군무가 주를 이루는 작품으로, 연습량이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습이 많이 필요한 작품이다. 그런데 대구에서 함께하던 무용수들 중 과반수가 함께하지 못하게 되자 막막했다. 귀하게 얻게 된 공연 기회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최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독립 무용단체들의 무용수 오디션 공고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대구에서는 늘 함께해 주는 무용수들이 있었기에 무용수 공개모집은 ‘남의 일’같은 영역이었는데 이번에는 캐스팅이 어렵게 됐으니 모집을 통해 다양한 무용수들을 알아보고 싶었다.

 

무용수 모집공고 이미지. (제공=권효원&크리에이터스)
무용수 모집공고 이미지 (제공=권효원&크리에이터스)

모집은 간단한 자기소개와 개인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움직임 영상을 구글폼을 통해 접수했고, SNS를 통한 홍보로 적지 않은 프리랜서 무용수들이 지원을 했다. 놀라운 점은 지원 인원의 90%가 서울에 거주하는 무용수였다. 아마도 지역에는 이런 식으로 무용수를 모집하는 경우가 드물어서인 듯하다. 무용수 선정은 나름의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 박선화, 박서란 무용수와 의논해서 작품에 잘 어울리는, 서울에 거주하는 3명을 선정하였다.

무용수를 모집하는 것은 나에게 큰 변화였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이전까지는 잘 모르는 사람은 캐스팅한 적이 없었다. 소통에 불편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로 운영되는 단체이지만 계속 작업을 이어오다 보니 고정 멤버가 생기기도 했고, 새로운 멤버들의 춤 배경도, 그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작업을 시작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다. 열심히 만들어서 서울까지 가게 됐는데 초연 때 고생했던 무용수들이 모두 함께 가지 못하는 것도 너무 아쉬웠다. 하지만 참여 가능한 무용수가 있고,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일을 진행했다.

이렇게 무용수는 초연에 참가했던 무용수 2명, <노동무>는 아니지만 다른 작업에서 함께했던 무용수 2명, 그리고 무용수 모집을 통해 알게 된 무용수 3명, 총 7명이 작업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중 대구에 거주하는 무용수는 2명, 서울에 거주하는 무용수는 5명이어서 한 주에 대구 2회, 서울 4회 연습을 진행했다. 그런데 연습을 진행하다 보니 작품의 구성적인 면에 있어서 무용수가 홀수인 것이 보기에 안정적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대구에 거주하는 무용수 한 명을 추가해 총 8명이 참여하게 되었다.

파트 연습 영상 캡처(서울). (사진제공=권효원&크리에이터스)
파트 연습 영상 캡처(서울)
(사진제공=권효원&크리에이터스)
파트 연습 영상 캡처 (대구). (사진제공=권효원&크리에이터스)
파트 연습 영상 캡처 (대구)
(사진제공=권효원&크리에이터스)

대구-서울 프로젝트

처음 모다페에 선정되었을 때만 해도 연습은 당연히 대구에서만 할 거라고 생각해서 연습실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데, 갑자기 서울 지역 무용수들이 캐스팅되면서 연습을 대구와 서울, 두 곳에서 진행해야 했다. 대구에도 대구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대구공연예술연습공간이라는 곳이 있고 수시 대관이 가능해 이곳에서 연습을 진행했었는데, 서울도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서울무용센터라는 곳이 있었다. 그런데 서울무용센터는 팬데믹 이후로 정기대관만 받고 있어서(현재 서울무용센터는 한 달 단위로 정기대관을 받고 있다) 당장 서울 연습을 진행할 곳이 없었다. 다행히 서울 연습은 무용수 중 한 명이 연습실을 운영하고 있어서 첫 한 달은 그곳에서 연습을 했다. 그후에는 서울무용센터를 대관해 연습했다.

마찬가지로 대구에도 연습실을 운영하는 무용수가 있어서 대구 연습도 그곳에서 진행했다. 각 지역에서 파트 연습 주 2회씩, 그리고 전체 연습은 (서울 거주 무용수 인원이 더 많기에 대구 무용수들이 서울로 이동해) 서울에서 2회 진행했다.

파트 연습 때는 움직임 연습을 주로 하고 전체 연습 때는 전체 구성과 음악과의 호흡 등을 주로 연습했는데, 모두가 모이는 전체 연습의 횟수가 많지 않아서인지, 내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연습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고 늘 아쉬운 지점을 해결하지 못하고 연습을 마무리해야 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무용수들 앞에서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제일 가까이서 나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초연 때부터 트레이너를 맡고 있는 서란이가 무용수들의 호흡을 잘 맞추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 서란이는 대구 연습까지 참여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전체 연습 영상 캡처(서울) (사진제공=권효원&크리에이터스)
전체 연습 영상 캡처(서울)
(사진제공=권효원&크리에이터스)

그렇게 연습이 진행되고 공연 한 달 전, 전체 연습 때 런스루를 진행했다. 남성 무용수의 수가 더 많았던 지난 <노동무>와 달리 여성 무용수가 더 많은 이번 <노동무>는 초연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무용수의 성별 비율이 바뀌면서 작품도 초연 때와 달리 많이 수정된 상황이었는데, 전체 런스루를 보고 나니, ‘공연은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완해야 할 것들은 더 많이 생겼지만.

 

‘노동무’ 공연 (2022) (사진제공=모다페)
‘노동무’ 공연 (2022) (사진제공=모다페)

공연 그리고 생각

그렇게 정신없이 한 달이 지나가고, 공연 전날 극장에 도착했다. 아르코 예술극장은 관객으로는 정말 많이 가본 극장이었는데 안무자로는 처음 가봐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처음엔 대기실도 찾지 못했다. 공연 전날 리허설은 무용수들 위치와 조명 메모리를 하고 마지막 런스루를 하고 마무리했다. 우리 팀은 흰색 댄스 플로어를 사용해야 해서 공연 전날 마지막 타임, 공연 날 첫 타임으로 팀 리허설 스케줄이 잡혀있었다. 때문에 서울에 거주하지만 극장과 집이 먼 무용수들은 극장 근처 호텔에서 함께 묵었다. 리허설을 마치고 무용수들과 호텔에서 함께 모니터링하고 코멘트를 정리하고 새벽에 잠이 들었다.

공연 날. 아침부터 대구의 지인들에게서 응원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고마웠다. 리허설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다행히 코로나가 확진되거나 크게 다친 무용수도 없어서 정상적으로 공연을 준비할 수 있었다. 마침내 객석이 열리고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꽉 찬 객석을 볼 수 있었다. 대구에서는 공연을 하면 관객들이 나나 출연자의 지인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정말 전혀 모르는 사람들, ‘진짜 관객’들로 꽉 차있는 객석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이 공연을 어떻게 볼지 너무 궁금하고 긴장되었다. 그렇게 암전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공연이 무사히 마치길 두 손 꽉 쥐고 30분을 보냈다. 커튼콜의 순간, 많은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무사히 공연을 마친 것에 벅찬 감정이 들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객석을 응시하는 무용수들에게 온 감정을 담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노동무’ 공연‘ (2022) (사진제공=모다페)
‘노동무’ 공연‘ (2022) (사진제공=모다페)

많은 것이 처음이었다. 팬데믹도, 새로운 무용수도, 서울에서의 연습과 공연까지. 지금이 아니면 해볼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순간에 집중했다. 매주 대구와 서울을 오가면서 <노동무>를 위해 진짜 ‘노동’을 하면서 작품에 참여한 시간들 덕분에 작품에 더 다가갈 수 있었음을 느낀다.

함께해준 16명의 무용수들(오찬명 김인회 강현욱 권준철 김가영 여연경 이재진 박서란 김학용 이재형 박선화 김가현 신이안 강한나 서정빈 이예림)에게, 그리고 제작진(작곡 서영완 선생님, 조명 디자인해 주신 김보경, 송영견, 김정화 감독님, 무대감독 김진구, 김태완, 이도엽 감독님)에게 감사를 전한다.

필자 소개

안무가 권효원은 사람과 춤, 동시대에 대한 고민을 화두로 작품을 만드는 현대무용 단체 ‘권효원&CREATORS’의 대표로,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독립 무용가이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받는 다양한 인상을 글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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