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6] 공연예술축제도 ‘기대수명(壽命)’이 있다
[낭만논객의 춤시선-6] 공연예술축제도 ‘기대수명(壽命)’이 있다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2.09.14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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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1회 춘천공연예술제를 갈무리하며
쿰댄스컴퍼니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쿰댄스컴퍼니 '걷다, 바라보다 그리고 서다'(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더프리뷰=춘천] 장승헌 공연기획자 = 칭찬인지 비아냥인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라고 한다. 워낙 여기저기 축제가 많은 탓일 게다. 성과도 있고 부작용도 있겠지만 하여간 종종 입방아처럼 오르내리곤 하는 말이다.

어쩌면 그 어딘가에 필자 역시 어느 정도 관여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모름지기 지난 3년 동안 우리 모두에게 축제의 의미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지 묻고 싶다. 그 누구도 선뜻 대답하기 어려운 나름의 명분과 이유는 충분하겠지만, 이 지상최대의 명제가 과연 향후 문화예술계 전반에 어떤 유의미한 모습이 되어야만 할 것인지도 궁금해진다. 한편, 팬데믹 이후 우리는 또 어떤 축제의 모델을 고민해야만 할지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JUBIN Company '새다림'(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JUBIN Company '새다림'(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 큰 축제의 엄청난 열기 속에 세계 4강!! 이라는 믿기지 않는 결과도 대박이었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대한민국인의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응원 열기도 엄청났다. 붉디붉은 색감의 단체 응원복과 노래와 구호까지, 월드컵 개최국 국민으로서의 자존감이 한동안 다른 세상을 정복하고 돌아온 느낌이 들만치 기세등등했던 기억이 새롭다. 어느새 개인들 각자의 미래의 꿈도 아름답게 피어나면서 자신만만함이 가슴에 스며들기도 했다. 월드컵 폐막 이후, 한동안 그 무언가의 헛헛함과 아쉬운 마음과 함께 뭔가 돌파구가 필요해 보였다.

그런 즈음, 기획자와 스태프들, 그리고 예술가들이 어느 무용공연 이후 뒤풀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모였다. 누군가의 제안이 불쑥 던져졌다. 우리끼리 ‘다른 개념의 축제’를 한번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는 급물살을 탔다. 몇 가지 기본 원칙에 대해 합의에 이르렀다. 우선 경제적 개념을 염두에 두지 않고 모든 것은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재능기부 공연예술 축제’를 여름 휴가철에 열자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특별한 휴가 형식, 예술가들과 스태프들의 수평적 모임을 담은 신개념 ‘춘천무용축제’의 출범 작업이 그렇게 호기롭게 시작된 것이다. 이 초심은 ‘스태프들의 명절’이라는 축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대신하게 되기도 했다.

ImDance 10 '생존기계'(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ImDance 10 '생존기계'(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건축가 고(故) 김수근 선생은 한국 근대건축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지난 1981년 대학로(동숭동)에 개관한 아르코 예술극장과 공간사랑 등을 설계한 건축가로서 일반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인물이다. 이 분의 손길이 닿은 건물이 강원도 춘천에 두어 개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천혜의 야외무대 공간을 품은 춘천어린이회관 건물(현 춘천 KT 상상마당)이다. 2002년 여름, 우리들만의 특별한 여름휴가 축제가 시작되었다. 해서 언제나 ‘8월 둘째 주 축제 개막’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임정하 뉴-에튜 프로젝트(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임정하 뉴-에튜 프로젝트(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호반의 도시 춘천 야외에 모여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야외공연장을 만들고 자원봉사자들과 무대기술인력, 아카데미 수강생까지 일찌감치 춘천 한림대학교 기숙사에 저마다 짐을 푼다. 인사에 이어 짧은 회의를 가진 후 곧바로 각자 맡은 영역의 일들에 돌입한다. 제 10회까지 천혜의 야외공간인 어린이회관 야외무대는 정말 ‘한여름 밤의 꿈’같은 일들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비가 내리면 신문지와 대걸레로 밀고 닦아내며 다시 공연을 이어가곤 했다. 간혹 폭우가 내려도 우산도 쓰지 않은 관객들이 그 광경을 보고 박수를 보내주며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 주었다. 사실 이런 ‘관객들의 힘’ 또한 이 축제를 지켜 온 동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축에서 이해하자면 지난 2000년대 초반, 전국에서 강원대학교 무용학과가 가장 늦게 설립된 탓에 무용장르에 대한 인식이 열악했지만 이를 나름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고 무용관객 저변확대를 도모하고자 시작된 특별한 만남이 바로 이 축제였다. 하지만 지역 예술인들의 오해도 있고 해서 결국 이 춤축제의 이름은 제 3회부터 ‘춘천아트페스티벌’로 변경되었다.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장르를 연극, 음악 및 국악으로까지 확장시켜 나갈 수 있는 뜻밖의 혜택(?)이 주어졌다.

시나브로 가슴에 '와일'(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시나브로 가슴에 '와일'(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봄내(춘천)에서 축제를 시작한 것은 서울에서 1시간 30분 내의 거리, 주민들의 관심과 대면성, 그리고 호반 도시가 주는 낭만성, 풍부한 무공해 먹거리와 다정다감한 주민들의 표정 등 여러 가지가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해마다 다양한 예술가들이 춘천어린이회관 야외무대 공간에서 체험한 수많은 기억들을 공유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그리하여 ‘스태프 정신’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는 하나의 지역축제로서 작지만 의미 있는 축제로 그동안 자리매김해 왔다고 자부한다.

정보경댄스프로덕션 '친애하는나의 그르메'(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정보경댄스프로덕션 '친애하는나의 그르메'(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사실, 강원도 춘천은 대학시절부터 왠지 친숙하게 느껴졌다. 오정희, 한수산, 이외수 등 문인과 화가들이 다수 거주해 문화예술의 도시로 인식되고 있기도 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부터 자연스레 주변 지인들의 영향으로 공연예술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만큼 이미 춘천 지역에서 대표 공연예술축제로 개최되고 있던 춘천마임축제와 춘천인형극축제 등에 대해서는 어디선가 한두 번쯤 들어 보기도 했다. 해서 어쩌면 춘천이라는 도시의 문화 인프라에 대해 긍정적 마인드까지 이미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아울러 강원대, 한림대, 성심여대, 춘천교대 등 대학생들이 많고, 인구 30만이라는 적절한 규모도 지역축제를 창설하고 운영하기에 효율적이라는 분석도 축제 초기부터 참고사항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하여 소리 소문 없이 입소문을 타며 진행되던 춘천아트페스티벌은 제 15회부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대한민국공연예술제 지원대상에 선정되며 일대 전환을 맞게 된다. 그저 우리만 즐겁고 행복한 재능기부 축제에서 탈피해 ‘축제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겁고 행복한 축제’로 전환하려는 노력들이 보다 객관성을 갖추고, 구체적인 방향설정에 큰 과제가 더해지게 되었다. 해서 팬데믹 확산에도 비대면 축제로 전환시켜 영상 사전촬영 제작과 편집으로 ‘홈 딜리버리’라는 이름으로 가을 시즌에 영상송출을 시도하는 등 변화를 수용하는 대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탄츠테아터원스 반.meet(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탄츠테아터원스 반.meet(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지난해 제 20회를 맞아서는 ‘사단법인 텐스푼’이라는 이름을 부여, 비영리 예술단체로서의 출범을 알렸다. 축제의 명칭도 ‘춘천공연예술제’(7월 13일-8월 21일)로 과감하게 다시 바꾸었다. 한편, 영어 표기는 지금까지의 ‘Chooncheon Arts Festival'을 그대로 쓰기로 결정했다. 코로나 시대, 문화예술 예산의 사용처를 찾지 못했는지 우리 축제에 대폭 늘어난 지역 예산증액 지원이 주어졌다. 그래서 대면과 비대면 방식을 병행하며 지난 19년간 춘천을 찾았던 예술가들 중 심사숙고 엄선된 초청공연들과 역대급 출연진이 1개월간 ’제 20회 특별공연‘들을 관객들께 선사했다. 또한 <시그니처> <버전업> <파인더> <아트랩>으로 분류된 신작들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무용과 음악 그리고 컬래버레이션 공연까지 다채롭게 펼쳐졌다. 그런 반면, 영문도 모르게 금년 제 21회 춘천공연예술제는 다시 강원도 및 춘천시 매칭 예산이 대폭(전년대비 75% 삭감)되어 무용 11편, 음악 9편, 그리고 아동극 2편 등 총 22편의 작품 선정으로 작품 수를 줄였다. 그러나 기술인력 워크숍을 통해 우리 주변 보이지 않는 곳을 진심 알뜰살뜰 ’살핌‘이라는 주제 속에 축제의 진정성의 마음을 담아냈다.

한편, 지난 20년간 축제감독을 맡아 진두지휘를 해 온 최웅집(스탭서울 대표) 씨가 지난해 성년식(20회)을 마친 이 축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신임 이윤숙 축제감독을 선임, 40대의 새로운 현장 인력들의 동력 가동과 함께 새로운 지역축제 발전의 탐색과 발전 및 운영의 묘를 살리며 축제 분위기까지도 쇄신했다. 필자 역시 운영위원으로서 2002년 축제 시작부터 프로그래머로서 예술감독 역할을 자처하며 현장 기획자로서 재능기부 대열에 동참해 왔다.

김성훈댄스프로젝트 POOL(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김성훈댄스프로젝트 POOL(사진제공=춘천공연예술제)

 

사실 강원도 지역은 유난스레 지역축제들이 사계절에 걸쳐 수없이 많이 펼쳐지고 있다. 금년 30회를 훌쩍 넘긴 춘천마임축제는 지역관광 축제로 변화를 이미 도모했다. 같은 해 출범한 춘천국제인형극축제도 정체성을 고민 중이다. 축제극장 몸짓 1층 한 쪽에 국제인형극학교 건립을 위한 TF를 구성, 여름 아동 및 가족축제 현장교육 터전으로의 변신을 계획하고 있다. 이 축제의 향후 정체성과 모습이 몹시 궁금해진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필자와 몇몇 스태프들, 예술가들은 춘천지역에 훌륭한 무용축제를 제대로 만들어 춘천시민들께 선물하고 싶다는 외람된 생각을 했었다. 이 축제의 모델을 춘천시민에게 선물하고 또 다른 인구 30여만 규모의 도시를 찾아 새로운 축제를 제작해 조금씩 풍경이 다른 지역축제, 그 의미를 확장해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10여년이나 앞선 춘천의 대표 브랜드 축제들의 이미 인프라를 형성해 일종의 프리덤으로 무용예술축제에도 지역주민들의 관심이 당연히 이어지리란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기대가 주는 배반의 자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특히 팬데믹 창궐 이후 3년여 동안 비대면 영상축제로 진행되며 안타깝지만 고화질의 공연 영상 촬영과 편집을 거쳐 방송용으로 제작된 특별한 영상물, 그 미래 변화의 방향까지 염두하며 암중모색을 시작하기도 했다. 녹음실과 공연장을 대관, 공들여 애써가며 제작, 사후 편집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방송을 시도했지만 역시 현장 공연예술의 특성상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기가 힘들다는 사실의 경험치를 직접 현장에서 체험하는 결과에 만족해야 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공연예술축제들은 저마다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과 리옹 댄스 비엔날레, 그리고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축제의 화려하고 이국적인 겉모습만 잠시 보고 귀국해, 저마다 여러 지역 단체장들에게 이러한 국제예술축제들을 제안했다. 어쩌면 공급과잉의 형태로 각 축제마다 대중가요 가수나 트롯 가수들이 주인공으로 야외무대를 장악한 다소 의외의 축제 민낯의 모습을 심의위원 자격으로 지근거리에서 지켜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주객이 전도’된 축제 본연의 모습은 안타깝고 대중성 확보에만 몰두하는 축제 풍경을 직접 가까이서 매번 목격을 해왔다.

여전히 팬데믹 장기화의 후유증으로 우리 예술계 역시 조심스런 분위기 속에서도 가을 시즌 여러 공연예술축제들이 저마다 출정식을 앞두고 있다. 여전히 변이 바이러스 확산 등 불안한 현실 노출로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2022년 가을,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세계적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 독창적이고 차별화된 대한민국 대표 예술축제로서의 위상을 관객들께 선사하기 위해 저마다 애쓰고 있는 듯 보인다. 해서 진정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감성과 시선과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 줄 ‘축제의 진정성과 정체성’들이 어떤 소통의 채널로서 자리매김하길 응원해 본다.

 

한편으로는 공연예술축제도 분명 기대수명(?)이 존재한다는 엄연한 역사성과 그 존재의 이유가 분명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는 팩트 체크를 한번쯤 생각해 보기를 제안해 본다. 지난 20년여 시간, 춘천지역 공연예술축제 운영의 시행착오를 체험해 본 ‘실패한 현장기획자’의 애증과 노파심에서 비롯된 선험자의 마음이 조금은 무거워지는 가운데...

변화무쌍한 날씨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전파되는 다소 위험한 상황 속에도 대한민국의 다채로운 공연예술축제들이 매년 그 역사를 쌓아가려 노력하는 분들의 노고와 진심을 이해하고 남음이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예술감독과 축제운영의 주최 및 주관자들의 스스로에 대한 책임의지와 운영방식에까지 무조건 격려와 신뢰의 마음을 전한다. ‘변이 바이러스 장기화에도 공연예술은 분명 그 가치와 실존의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너무도 분명한 진실이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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