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박인환 평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신간] 박인환 평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이미우 기자
  • 승인 2022.09.24 2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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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산 시인의 베스트 셀러 개정판 출간
박인환 평전 (사진제공=도서출판 도훈)

[더프리뷰=서울] 이미우 기자 =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그 입술 내 가슴에 있네...”

‘영원한 낭만시인’ 박인환(朴寅煥, 1926.8.15.-1956.3.20)의 평전이 나왔다. 윤석산 시인이 젊은 시절에 출간, 당대의 베스트셀러가 됐던 <박인환 평전-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의 개정증보판이다. 도서출판 도훈, 280페이지, 1만8천원.

윤석산 시인이 30대 중반이던 시절, 젊은 열정과 패기 넘치는 문체로 써내려간, 우리 시대의 잊지 못할 시인 박인환의 작품평과 관련 화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만 30세에 요절한 시인, 오래도록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편들, 여전히 멜로디를 타고 흘러내리는 그의 시구(詩句)들.

박인환은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麟蹄郡 麟蹄邑 上東里) 159번지에서 아버지 박광선(밀양 박씨)과 어머니 함숙형(咸淑亨, 양근 함씨) 사이의 4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영특했던 박인환은 아버지의 권유로 평양의전에 입학하게 된다.

해방 후 의대를 그만둔 박인환은 종로3가에서 낙원동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조금 내려온 곳에 ‘마리서사’라는 책방을 차린다. 이후 이곳은 문인들이 교류하는 대표적인 장소가 되었고 이곳에서 아내가 될 이정숙 여사를 만나게 된다.

 

마리서사 앞에서.
왼쪽부터 임호권, 이한직, 이흡, 박인환.

그가 전흔이 도처에 깔린 1950년대 황량한 거리에서 가장 아프게 만나곤 했던 것은 바로 어둡고 슬픈 생애를 안쓰럽게 견디며 살아간 여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같은 강인한 슬픔, 또는 방울 소리만을 남기고 가을로 떠난 목마의 애절함 같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시에는 늘 도시의 우울한 음영(陰影)과 함께 인간으로서의 고독, 또는 ‘검은 준열(峻烈)의 시대’에 선 존재로서의 갈등과 번민이 드리워져 있다.

박인환은 멋쟁이였다. 훤칠한 키에 영화배우를 연상시키는 잘 생긴 얼굴, 항시 말끔한 중년신사 차림을 하고 기분을 내며 명동을 활보하던 모습. 그를 알았던 이들은 한결같이 그가 대단한 멋쟁이였으며 전형적인 신사였다고 이야기한다.

 

시인 박인환
시인 박인환

박인환은 1948년 이른 봄 덕수궁 석조전에서 이정숙 여사와 결혼식을 올린다. 이정숙 여사의 집안이 이왕가계여서 궁궐에서의 결혼식이 가능했다고 한다. 그의 결혼식에는 소설가 박영준 송지영 이봉구, 시인 김경린 양병식, 극작가 이진섭 최재덕 채성근 등 당대의 많은 문인들이 참석했다.

 

박인환 · 이정숙 결혼사진, 1948년 이른 봄, 덕수궁 석조전
박인환 · 이정숙 결혼식. 1948년 이른 봄, 덕수궁 석조전

박인환은 1956년 3월 20일 오후 9시, 31세라는 젊디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불시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듯 눈을 뜬 채였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문학, 사랑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영원히 바라보기라도 할 듯이 이 답답함을, 이 세상의 답답함을 모두 걸머지고 초봄까지 입었던 무거운 러시아식 오버코트와 같은 그 답답함을 호소하며, 그는 만 30년이 못 되는 짧은 생애의 짐을 벗어 던지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 작별을 고했다.

 

묘비 앞에 선 박인환의 세 자녀. 왼쪽부터 세곤, 세형, 세화.
묘비 앞에 선 박인환의 세 자녀. 왼쪽부터 세곤, 세형, 세화.

“오늘 우리가 다시 박인환을 읽는 것은 다만 지나간 과거를, 잊어버린 지난날을 회상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지금은 사라진 우리의 시에의, 예술에의 열정을 박인환을 통해 다시 만나보기 위함이다. 비록 가난한 삶을 살았어도 박인환을 비롯한 당시의 시인들이 지녔던 시에의 열정은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없었다. 오늘도 그렇지만, 당시는 더더욱, 특히 ‘시’는 결코 돈이 되지를 못했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이들은 비록 돈이 되지를 못하는 ‘시’를 선택했으면서도 스스로 자긍심을 지녔다. 시에는 부와 권력과는 또 다른 가치와 세계가 있다고 믿고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저자 서문 중에서

 

박인환

1939년 서울 덕수공립소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공립중학교에 입학했으나 1941년 자퇴하고, 한성학교를 거쳐 1944년 황해도 재령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했다. 그 해 평양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으나 8·15 광복으로 학업을 중단했다.

그 뒤 상경하여 마리서사(茉莉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했다. 1948년 서점을 그만두면서 이정숙(李丁淑)과 혼인했으며 그 해에 자유신문사, 이듬해에 경향신문사에 입사하여 기자로 근무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로 활동했고 1955년에는 직장인 대한해운공사의 사무장으로 배를 타고 미국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955년 첫 시집 <박인환선시집(朴寅煥選詩集)>을 낸 뒤 이듬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1976년 그의 20주기를 맞아 장남 박세형(朴世馨)이 <목마와 숙녀>를 간행했다.

윤석산

평전의 저자 윤석산(尹錫山)은 1947년 서울 신당동 출생으로 경동고등학교 재학시절이던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시부문에서 당선했으며, 197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는 시부문에서 당선했다. 시집 <햇살 기지개> 등 다수의 책을 냈으며 신석초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다. 한국시인협회 회장 역임.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는 같은 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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