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新명무'라는 명칭과 전통춤마켓의 방향성
[공연리뷰] '新명무'라는 명칭과 전통춤마켓의 방향성
  • 김영희 무용평론가
  • 승인 2022.10.1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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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세계무용축제 '한국의 춤-전통춤마켓'을 보고
김춘희 '축원-향발무' (사진= 더프리뷰 박상윤기자)
김춘희 '축원-향발무' (사진= 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더프리뷰=서울]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 제 25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예술감독 이종호) 중에 ‘한국의 춤-전통춤마켓’ 공연이 9월 27일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있었다. 서울남산국악당과 공동사업이었고, 국제무용협회(CID-UNESCO) 한국본부 김진희 대구지부장이 작년에 이어 프로그램 디렉터의 역할을 했다. 서브타이틀로 ‘명무에서 新명무로’를 달았으니, 컨템퍼러리 춤 축제를 지향하는 서울세계무용축제가 붙일만한 홍보 문구이다.

1998년에 시작된 서울세계무용축제는 전통춤 무대를 지속적으로 올렸었다. 세계의 춤들을 초대하는 축제의 주최국이므로, 한국 고유의 전통춤 무대는 한국 춤의 깊은 뿌리를 선보이는 의미있는 기획이었다. 우리 춤의 풍부한 유산에 대한 자긍심이 바탕에 있었고, 초창기에는 전통춤의 원로들이 생존하셔서 유서 깊은 우리 춤을 선보일 수 있었다. 1회에 국립무용단, 국립창극단, 국립국악원 무용단,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의 개막 축하공연과 ‘명무 초청공연’ ‘전통춤 6인전’이 있었고, 이후 ‘전통춤 초청공연’(1999), ‘한국 전통 명무전 시리즈: 진주명무전’(2000), ‘춤의 고을, 고성 사람들’(2003), ‘전무후무’(2005), ‘축제의 땅’(2008), ‘풍무(風舞)’(2011), ‘산조예찬’(2013), ‘검무전’(2014)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몇 년간 전통춤 무대가 만들어지지 않다가 2019년부터 ‘한국의 춤-전통춤 마켓’이 처음 기획되었다. 그 의도는 우리 전통춤이 일회성 공연으로 소비되기보다, 한국의 전통공연예술을 지속적으로 전파할 수 있는 어떤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들었다. 한 해 거르고 2021년에 재개되었다. 2020년에도 '전통춤마켓'이라는 이름은 쓰지 않았지만 전통춤 공연이 있었다.

올해 공연된 ‘한국의 춤-전통춤 마켓’의 프로그램들은 신명무라는 서브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원형의 전통춤 작품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각 프로그램은 기존의 전통춤 종목들에서 비롯된 창의적 계기가 분명한 바, 전통춤을 그대로 무대에 올리지 않고 기존의 전통춤에 무언가 새로운 개념이나 아이디어를 입혔다.

김춘희의 <축원-향발무>는 궁중무 향발무에서 무구인 향발을 사용하되 독무로 구성했고, 음악은 청성곡으로 시작해 민속악으로 풀었으며, 의상은 원삼에 족두리를 썼다. 임성옥의 <살풀이춤-홀연>은 자신의 살풀이춤이었다. 마(麻) 질감으로 진녹색 치마에 앞섶이 긴 청색 저고리를 입었는데, 의상의 느낌 때문인지 일상에 침잠했다가 풀어내는 듯 표현했다. 마지막에 수건을 팔방의 허공에 올려 뿌리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이주연의 <녹수청산>은 정재만의 부채산조춤 <청풍명월>을 여성스럽고 단아한 춤동작 중심으로 재구성한 춤이라 했다. 거문고 산조로 묵직하게 앉아서 시작했다가 화사하게 춤추었다. ‘녹수청산(綠水靑山)’이나 ‘청풍명월(淸風明月)’은 은일(隱逸) 또는 풍류(風流)를 떠올린다. <녹수청산>의 결이 좀 더 선명할 필요가 있겠다.

 

김충한 소고무 (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김충한 '소고무' (사진= 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김충한의 <소고무>는 조택원이 추었던 소고춤을 토대로 재구성한 신무용 양식의 작품이다. 조택원이 1944년 공연한 소고춤 영상에는 손북으로 활달하게 춤추는데 농악춤 동작을 포인트업한 포즈로 맺으면서 흥겹게 추었다. 김충한 역시 서양악 곡조에 따라 손북으로 추며 상체하체를 두드리기도 했는데, 신무용 기법으로 능숙하게 추었다. 노현식의 <현학무(玄鶴舞)>는 작품설명에서 고구려 왕산악의 거문고 연주에 검은 학이 날아와 추었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여 검은 학의 춤을 떠올렸지만, 검은 학은 등장하지 않았다. '현학(玄鶴)’이 갖는 복합적인 은유(隱喩) 내지 메타포를 이용한 선비춤 내지 가상의 인물 춤이었다. 현(玄)은 검은 빛으로 어둡다, 헤아릴 수 없다 등의 뜻으로 통용되며, 도교의 영향을 받은 청담(淸談)에서 현학(玄學)이 발전하기도 했다. 여기에 학(鶴) 역시 신선이나 청렴한 선비의 이미지를 갖고 있으니, <현학무(玄鶴舞)>는 철학적인 주제를 표현한 춤이다. 이 춤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현학(玄鶴)에 대한 문화사적 배경이 필요할 것이다. 창작 작품이며, 이러한 주제를 좀 더 완성시켜 볼 수 있겠다.

 

양승미 진쇠춤 (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양승미 '진쇠춤' (사진= 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양승미의 <진쇠춤>은 꽹과리를 들고 추는 쇠춤으로 본인이 안무한 작품이다. 경기도당굿에서 유래한 진쇠춤이 있지만, 이와는 다른 구성이다. 그래서 장단도 굿거리-동살풀이(오방진)-굿거리로 구성되었다. 쇠채를 거꾸로 잡아 너슬로 놀음하는 대목이 많고, 후반에서 독특한 발놀음 동작도 보여주었다. 장유경의 <선(扇)살풀이춤>은 무당이 등장하듯 휘몰이조로 들어와서 굿거리로 장단을 바꿔 계면조로 살풀이춤을 추었다. 부채와 수건을 양손에 나눠 잡고, 또한 이어서 놀리며 춤추었다. 굿에서 사용하는 부채와 쾌자와 갓을 흰색으로 설정한 점이 색다르고, 자진모리로 넘어가면 부채에 감았던 수건을 풀어내는 대목이나 단순 반복하는 동작들이 무속(巫俗)의 콘셉트와 표현방식을 결합했음을 보여준다. 춤꾼의 심정을 내보이기보다 살풀이의 어원에 초점을 맞춘 특이한 살풀이춤이다.

 

정은혜 학춤 (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정은혜 '학춤' (사진= 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정은혜의 <학춤>은 김천흥에게서 사사받은 학춤을 토대로 본인이 재안무한 작품이다. 날개를 좀더 확대하고 날갯짓은 한층 풍성하고 다양해졌다. 사실 학춤은 조선 초 『악학궤범』에도 남아있는 오래된 춤이고, 학의 모습과 의미를 흉내내어 흰 도포를 입고 추는 학춤도 있는데, 학춤 콘텐츠에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정은혜는 학춤를 모티브로 이미 여러 학춤을 창작하고 추었으니 학의 생태나 관련된 이야기들, 춤사위들을 토대로 밑그림이 풍성한 <학춤>을 추었다. 관객으로 하여금 여러 상상을 떠올리게 했다.

전체적으로 이전에 선보였던 작품들이며, 새로운 구성, 질감, 정조를 보여준다는 의도가 반영된 작품들을 선정했다. 그런데 이 공연의 서브타이틀 ‘명무에서 新명무로’에서 명무에 신(新)을 붙인 ‘新명무’라는 용어가 눈에 띤다. 명무는 명창(名唱), 명인(名人), 명필(名筆), 명화(名畫) 등과 같이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룰 뿐만이 아니라 시대를 대표하는 전형성을 획득한 춤을 말한다. 명무라는 용어는 1979년 무용학자 정병호가 전통춤 중 민속춤 예인들을 소개했던 ‘명무전(名舞展)’을 처음 개최하면서 사용되었고, 1980년대에 널리 사용되었다. ‘한국명무전’ ‘한국의 명무’와 같은 기획이 속속 이어지자 무용평론가 강이문은 명무(名舞)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노현식 현학무 (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노현식 '현학무' (사진= 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널리 알려지지 못한 향토무용이나 장기(長技)춤들을 소개하려는 목적에서라면 몰라도 그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명무로 소개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용사회의 질서를 위해서나 후진을 위한 예술적 척도를 위해서도 바람직스럽지 못한 것 같다. 모름지기 명무란 천부적 자질을 가진 자라도 오랜 세월을 거친 피나는 규범적 학습과 보고 듣고 행하는 풍부한 미적 체험에 의해 조성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규범으로 삼는 형의 숙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 예컨대 서예에서는 왕희지의 필법을 발판으로 하되 끝내는 자기의 형태로 조성한 사람들을 우리는 명필이라고 한다. … 따라서 중국에서의 명필이란 개념은 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몇 사람의 배출이라는 점에서 명필은 희귀하고 위대하며 숭앙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명무도 이와 마찬가지로 적어도 한 시대 한 민족사회의 심미적 규범이 될 수 있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강이문, ‘신선하고 분명한 움직임-김진홍 무용발표회’, 『춤』 1986년 6월호)

즉 아무에게나 명무라 칭하는 것은 무용사회의 예술적 수준과 질서를 논하는 데 있어서 혼란과 저열화를 가져온다는 의미이다. 올바른 지적이었고, 현재도 유효한 지적이다. 아무나 명무로 칭한다면 ‘명무’라는 이름의 값이 추락한 것이다. 또한 명무를 감식할 시대적 심미안이 무너진 것이다. 명무(名舞)라는 타이틀에는 그만큼 시대의 무게가 받침된다고 하겠다. 또한 명무는 한 시대의 전형을 획득한 춤으로서 시대마다 다른 명무가 등장할 수 있으므로, 명무에 ‘신(新)’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일 필요는 없다. 시댄스 측에서 신명무라는 조어(造語)를 공연 타이틀에 사용한 이유는 명무라는 용어를 그동안 주로 전통춤 분야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전통춤과 동의어로 사용했을 수 있다. 즉 ‘명무에서 신명무로’라는 문구는 전통이 아닌 새로운 전통, 다시말해 전통춤이 아닌 새로운 전통춤을 보여주겠다는 기획의도를 표방한 것이라 본다. 그러한 기획의도는 현재 전통춤계의 흐름을 일정 부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명무라는 용어가 전통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발레, 현대무용 등 창작춤에도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에 적용될 수 있는 용어라는 점에서, 명무의 용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또 한 가지, 명무라는 용어는 장르 용어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명무는 시대의 전형을 획득한 춤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했을 때 전통춤 분야에서 신명무라는 어떤 스타일 내지 장르를 언급한다면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시댄스에서 '전통춤 마켓'의 일환으로 기획한 공연의 타이틀에 들어간 신명무라는 조어는 일종의 광고 문구, 홍보를 위한 카피일 뿐인 것이다.

 

임성옥 살풀이 홀연 (사진제공=서울세계무용축제)
임성옥 '살풀이 홀연' (사진= 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새로운 전통춤은 이미 풍성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전통시대에 추어졌던 막연한 상상 속의 전통춤과는 전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새롭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용어가 따라가지 못한다면 기존의 용어에 꿰어맞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용어 내지 개념을 만들어야 한다. 이 시대 춤의 현상이기 때문이며, 시대 속에서 춤을 보아야 할 것이다.

시댄스가 새로운 전통춤을 세계의 예술시장에 내놓은 것도 무대 메커니즘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현재의 춤시장에서 전통춤계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다만 그런 의도라면 홍보 방향이나 작품 설명부터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 본다면 고유한 한국 전통춤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전통춤이므로 작품의 배경은 좀 더 세심하게 설명되어야 하고, 안무자의 경력이 아니라 작업 경향과 음악에 대한 설명도 들어가야 한다. 또한 마켓에 선보이고자 한다면 외국 기획자나 예술가들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야 하며, 현재 한국의 전통춤 흐름에 대한 소개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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