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리뷰] 제8회 고양국제무용제(GIDF)
[축제리뷰] 제8회 고양국제무용제(GIDF)
  • 김미영 무용평론가
  • 승인 2022.10.16 10: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월 26일-10월 2일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
제8회 고양국제무용제 행사현장 (사진제공=고양국제무용제)
제8회 고양국제무용제 행사현장 (사진=강선준)

[더프리뷰=고양] 김미영 무용평론가 = 2022 제8회 고양국제무용제(GIDF)가 막을 내렸다. 지난 9월 26일 개막한 축제는 국내외 열 세 작품을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 올리며 고양지역 주민들의 예술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고양국제무용제는 지난 2015년 임미경 조직위원장이 시작해 어느새 8회를 맞으며 명실공히 고양시를 대표하는 문화행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지역 문화예술 발전과 무용예술 보급, 지역 무용예술가 창작활동 지원, 국제 문화교류를 통한 활동들로 지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제8회 고양국제무용제 행사현장 (사진=강선준)

10월 2일 폐막을 앞둔 새라새극장을 찾았다. 로비는 지역인사들과 지역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3일 내내 공연장을 찾았다는 한 주민은 “고양시에서 이런 무용을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뻤어요. 가까운 동네에서 무료로 하는 공연이라 수준이 걱정되었는데 첫날 막상 와서 보니 작품도 너무 좋아서 다음 공연부터 가까운 지인들을 모시고 왔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갇혀 있어서 답답했는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내년의 축제도 벌써 기대됩니다.”라며 들뜬 표정이었다. 코로나로 공연계가 한참 침체기에 있었던 지난 2년 동안에도 장승헌 전문무용수지원센터 이사가 프로그래밍을 맡으며 국내 거주 외국인 무용수들과 국제적 위상을 지닌 국내 안무가들의 작품으로 축제를 구성해 내실을 기하는가 하면, 거리두기 및 온라인상영, 실시간 공연실황 중계 등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 내었다.

 

표상만 '살펴주소서' (사진제공=고양국제무용제)
표상만 '살펴주소서' (사진=강선준)

올해는 세 가지 섹션으로 진행되었는데 첫 날 공연은 고양시를 대표하는 무용단과 해외초청 무용단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고양안무가초대전’으로, 두 번째는 ‘국제교류안무가전’으로 주목받고 있는 남성 안무가들의 무대가 펼쳐졌다. 내가 찾았던 마지막 날은 ‘우리 시대의 무용가 in 고양’으로 표상만의 <살펴주소서>가 첫 무대를 열었다.

노랑 바지에 노랑색 비닐을 쓰고 무대에 나오자마자 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천천히 걷는 동작을 보인 표상만은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 있는 듯 했다. 쓰러지듯 누워 있는 뒷모습과 중력을 잃은 것 같은 움직임. 다리를 공중에 들고 엉덩이로만 걷거나 온 몸을 오로지 두 팔에 의지한 채 이동하는 모습은 현실의 공간에 실재로서 존재하는 모습이 아니다. <살펴주소서>는 죽음을 향한 여정 그 어디 즈음에 있는 인간을 고찰한다. 때문에 현실의 땅에 발붙이고 중력을 느끼는 움직임이 아닌 떠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물 속에 잠겨서 물 밖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현실은 점점 멀어지고 죽어가는 사람은 잊혀간다. 알 수 없는 세계로 빠져드는 두려움과 낯설음 속에서 움직임은 점점 고조되고 테크닉은 거세진다. 쓰러져 숨만 헐떡이는 사이 삐---하고 울리는 소리.

 

표상만 '살펴주소서' (사진=강선준)

두려움에 온갖 기괴한 소리를 내고 온 몸을 쿵쿵 털어내는 사이 이승의 상징인 옷가지들이 벗겨져 나간다. 꽁꽁 묶여 팔을 쓰지 않고 오로지 발로만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모자를 쓰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죽음을 맞아야 하는 순간은 그토록 힘에 겹지만 그 시간을 버텨내며 삶은 더욱 단단해지고 때문에 지금의 삶은 더욱 빛이 난다.

 

이현준-김한결 '너와 함께 날 수 있을까...?' (사진=강선준)

두 번째 작품은 유니버설발레단 이현준-김한결의 <너와 함께 날 수 있을까..?>였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이현준의 안무작으로 가야금 병창 <새타령>으로 시작해 시조동요 <두려움>, 김주홍과 노름마치의 꽹과리 4중주 <짝드름> 등 아름다운 발레동작과 하모니를 이루는 우리 전통음악을 만나는 묘미를 선사했다. <새타령>에 맞춘 새의 동작으로 보여준 파드되는 리듬의 변화에 따라 빠르게, 강하게 혹은 느리고 약하게 이루어지는 변화무쌍한 움직임으로 볼거리를 선사했다. 전통음악이지만 그랑 파드되의 형식을 유지하여 아다지오, 바리에이션, 코다의 구성을 갖추었다. 특히 바리에이션에서 보여준 각각의 솔로에는 관객들의 박수가 멈추지 않았다. 마치 꿈을 꾸었던 양 품에 있던 김한결이 떠나고 무대에 남은 이현준이 그녀의 그림자를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처럼 관객들도 오래도록 박수로 그들을 따랐다.

 

최지연-박호빈의 '난리블루스' (사진=강선준)

세 번째 무대는 중년 무용가 최지연과 박호빈이 채웠다. 이들의 <난리블루스>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때로 실타래처럼 엉켜버리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두 중년 무용가의 흥과 열정으로 진행된다. 이하이의 <누구 없소>의 가사처럼 누군가에 대한 간절함과 자신의 처지를 보여준다. 무대 양 옆으로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실타래는 이런 관계에 대한 욕구이기도 하고 삶 속에서 끊임 없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인가? 관계로 인해 소모되는 우리의 감정이 될 수도 있고 하염없이 흐르는 시간일 수도 있다. 이런 실이 두 안무가의 몸에 칭칭 감겨 움직임을 방해하고 때로는 끊어져 나가 한바탕 난리블루스가 추어진 후에야 풀어진다.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관계들이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아닐까?

 

김운선 '도살풀이춤_김숙자류' (사진=강선준)

다음은 고양의 자랑 김운선 한국무용가가 <도살풀이춤_김숙자류>로 무대에 섰다. 경기도 도당굿에서 추는 도살풀이춤은 의식의 성격이 강해 단순한 춤사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인데 반해 김숙자류의 도살풀이춤은 한국춤의 아름다움이 강조된다. 김숙자춤보존회, 우리춤연구회 회장인 김운선은 어깨에 걸친 긴 수건을 공중으로 휘날리며 마치 공간의 그림을 그리듯 우리네 한을 풀어내었다.

 

시나브로 가슴에 '제로' (사진=강선준)

이후 시나브로가슴에의 <제로>로 제8회 고양국제무용제가 막을 내렸다. 같은 동작을 미련하리만큼 계속 반복하며 고행하듯 작품을 펼쳐가는 <제로>처럼 해마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쉬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만들고 국내외 유수의 작품을 지역에 소개하고 있는 이번 축제의 취지와 발자취를 보여주는 듯하다. 고양국제무용제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닌 지역주민 전체의 예술적 소양을 증진시키고 또한 지역 내 무용 인재들에게 자양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아가 지역축제로 머무는 대신 춤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양시로 몰려드는 대표 무용축제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