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헬싱키 댄스하우스는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나?
[인터뷰] 헬싱키 댄스하우스는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나?
  • 편집자
  • 승인 2022.12.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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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 댄스하우스 건립의 숨은 주역 이리스 아우티오(Iiris Autio)

[더프리뷰=서울] 편집자 = 우리 무용계 숙원사업 중 하나인 국립무용원 건립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그 타당성을 평가하기 위한 용역보고서가 완성되었다. 다음 단계는 지을 터의 선정과 예산 확보다. 유럽에서는 약 30개의 국립무용극장이 유럽 댄스하우스 네트워크(European Dancehouse Network, EDN)를 만들어 네크워크 확장은 물론 다양한 공연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홍콩 댄스하우스가 2024년 개관을 목표로 현재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다.

국립무용단의 손인영 예술감독은 올해 초 새로 개관한 핀란드 헬싱키 댄스하우스(Dance House Helsinki)에서 <회오리>를 공연하던 기간(9월 22-24일)에 헬싱키 댄스하우스 건립을 주도했던 추진위원 중 한 명인 이리스 아우티오(Iiris Autio) 테로 사리넨 무용단 대표를 만나 댄스하우스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긴 이야기를 들었다.

헬싱키 댄스하우스에서 이리스 아우티오 대표와 손인영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사진제공=손인영)
헬싱키 댄스하우스에서 이리스 아우티오 대표와 손인영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사진제공=손인영)

헬싱키 댄스하우스, 독지가와 정부가 절반씩 부담해 조성

손인영: 한국은 25년이 넘도록 댄스하우스를 지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아직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헬싱키 댄스하우스를 둘러보니 꼭 필요한 시설들로 채워져 있어 무척 부러웠다. 수도인 헬싱키에 어떻게 댄스하우스를 지을 수 있었는지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다.

Iiris Autio: 핀란드에서는 댄스하우스에 대해 얘기를 시작한 지가 거의 90년이 되었다. 1930년대부터 무용가들이 얘기하기 시작했다. 핀란드의 유명한 안무가인 매기 그리펜버그(Maggie Gripenberg)가 처음으로 댄스하우스의 필요성에 대해서 역설했다. 모던댄스를 제대로 올리려면 무용전용극장이 필요하다고 그녀는 주장했다. 1937년에 무용가들은 그들을 대변하는 협회(Union of Finnish Dance Artists)를 창설하여 그 주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그런 것을 실행할 만큼의 여력은 없었기에 이런 얘기들은 서서히 사라졌다. 이후 1980년대에 도리스 라이너(Doris Laine)가 중심이 되어 다시 댄스하우스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시위도 했다(사진 참조. 1986년 4월 29일). 당시 헬싱키 중심가가 아닌 외곽지대에 댄스하우스를 세울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 아주 작은 공간이었고 극장보다는 스튜디오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당시 건축설계까지 논의가 되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이후 1999년 핀란드무용협회가 결성되고 2000년에 또 한 번 얘기가 돌았다. 당시 오래된 알렉산더 극장을 리노베이션해서 쓰자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극장이 소극장이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용단이 와서 공연하기에는 너무 적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모두 여의치 않았다. 장소도 장소지만, 정부나 헬싱키 시에서조차 새로운 공간의 조성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춤은 예술 중에서 가장 비인기 종목이기도 했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2007년에 다시 댄스하우스 추진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2010년에 댄스하우스를 만드는 일이 유토피아이거나 말뿐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다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2011년 유명한 안무가 알포 알토코스키(Alpo Aaltokoski)가 주축이 되어 무용계를 이끌던 20명 정도가 추진위원이 되어 댄스하우스 건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먼저 하바-마리(Habba-Mari Peltomaki)라는 프로젝트 매니저를 영입했다. 그는 쿠오피오무용축제의 운영을 맡기도 했고, 정치나 이런 걸 잘 아는 사람이었다. 헬싱키 시가 파트너가 되어 도시 안에 합당한 건물이 있는지 조사를 시작했다. 당시 노키아(Nokia) 건물을 예술가들이 이미 임차해서 쓰고 있었기에 그 건물이 합당하다고 판단했다. 스튜디오나 사무실은 노키아 건물을 쓰고 옆에 딸린 부지에 무용전용극장을 새로 짓기로 결정을 했다.

댄스하우스 건립을 촉구하는 핀란드 무용가들의 시위 (1986년) (사진제공=손인영)
댄스하우스 건립을 촉구하는 핀란드 무용가들의 시위 (1986년)
(사진제공=손인영)

손인영: 노키아 건물이 있다 해도 리노베이션도 해야 하고 또 극장도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재원은 어떻게 조달했는가?

Iiris Autio: 맞다. 나도 그 추진위원회의 일원이었는데 우리는 돈이 하나도 없었다. 계획만 세웠지 돈을 어떻게 조달할지는 그 다음에 생각하기로 했었다. 당시 헬싱키 시도 댄스하우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노키아 건물을 이용하기로 했으나 돈이 없었기에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무용을 굉장히 좋아하는 독지가가 있었는데 당시 문화재단(Jane and Aatos Erkko Foundation)을 설립한 상태였다. 우연히 그 독지가에게 우리의 상황을 얘기하면서 지원을 요청했더니 너무나 흔쾌히 ‘예스’라고 했다. 문화재단은 1천500만 유로(209억 원 정도)를 지원할 수 있는데 조건이 있었다. 정부와 헬싱키 시가 나머지 반을 지원한다면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댄스하우스를 짓는데 3천600만 유로(500억 원 정도)가 드는데 정부와 시가 반 정도를 부담하라는 것이었다. 정부와 헬싱키시가 그 제안을 승낙했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내 생각에 독지가의 지원이 없었다면 절대 댄스하우스를 만들지 못 했을 거다. 무용은 음악이나 연극에 비해 아무래도 인기가 없기에 기업이나 독지가의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

헬싱키 댄스하우스 로비 (사진제공=손인영)
헬싱키 댄스하우스 로비 (사진제공=손인영)

손인영: 한국 무용계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댄스하우스 건립에 관한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등은 마련되었는데 터 선정과 재원이 문제다. 정부나 시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데 워낙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보니 선뜻 지원을 받기 어렵다. 어떻게 독지가의 기부를 받을 수 있었는지 알고 싶다.

Iiris Autio: 그 독지가는 춤을 굉장히 좋아했다.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살아 계실 때 이미 자신이 돌아가신 뒤에도 유산으로 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으셨다. 사실 그 재단은 아주 재산이 많았기에 댄스하우스를 그들의 돈만 갖고 지을 수도 있었으나 정부와 시에서 반을 내도록 한 것은 상당히 머리를 잘 쓴 것이다. 댄스하우스를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지하는 것도 큰 문제인데 유지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것까지 그 독지가는 생각을 했었다.

극장 로비 (사진제공=손인영)
극장 까페 (사진제공=손인영)
극장 까페 (사진제공=손인영)

손인영: 이후 어떻게 추진위원회에서 댄스하우스를 조성해 갔는가?

Iiris Autio: 2014년에 독지가로부터 돈을 받았고 그때부터 댄스하우스를 어떻게 지을 것인지 협의를 시작, 건축 설계안을 공모했다. 장소가 협소했기에 가장 합당한 설계를 찾아야 했다. 2020년에 건축을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시와 정부가 댄스하우스에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지도 명확히 해야 했기에 실질적인 건축을 하기까지 2014년부터 2020년까지 긴 시간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손인영: 어떤 시설들로 이루어져 있는지 궁금하다.

Iiris Autio: 극장은 모두 가변형으로 지어졌다. 대극장 에르코 홀은 700-1천석, 소극장 파누홀은 235-400석 규모의 객석을 만들 수 있다. 공연 단체의 연습이 가능한 스튜디오와 카페도 갖추고 있다.

댄스하우스 입구(사진제공=손인영)
댄스하우스 입구 (사진제공=손인영)

극장경영은 전문가, 4개 단체가 프로그램 자문, 운영경비는 정부와 민간재단이 지원

손인영: 추진위원회에서 애를 쓴 분들이 많았을 텐데 댄스하우스의 운영과 관련, 중요한 직책을 놓고 갈등은 없었나? 공로의 측면에서 보면 댄스하우스 이사진이 무용가들이어야 할 것 같은데...

Iiris Autio: 그렇지 않다. 댄스하우스를 이끌어가는 주요 이사진은 무용가들이 아니다.

손인영: 의아하다. 건립 추진과정에서 애쓴 무용가들은 그것을 받아들였는가?

Iiris Autio: 아까도 얘기했지만, 처음에는 20명의 무용가들이 논의를 오래 해오다가 예산을 받은 2014년 이후에는 프로젝트 매니저인 하나가 극장을 제대로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이사들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무용가들은 빠지기로 했다.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힘이 있는 무용애호가들과 홍보 마케팅 전문가 등 6-8명의 이사진을 구성, 이들이 다양한 사안을 결정하면서 극장을 전문적으로 이끌고 있다. 하나는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프로젝트 매니저로 있었는데, 그녀의 끈질긴 설득으로 무용가들이 그녀를 믿고 그녀의 결정에 따랐다.

손인영: 그러면 댄스하우스의 운영과 관련, 중요한 결정은 누가 하는가?

Iiris Autio : 지금은 새로운 매니저가 선임되어 극장을 경영하는데, 물론 전문가 그룹인 이사진이 극장의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하게 된다. 현재 댄스하우스는 정부기관으로 되어 있고, 4개 단체의 파트너쉽을 통해 시즌 프로그램을 계획한다. 4개 단체는 핀란드에서 현재 가장 유명한 단체들이다. 뉴 서커스센터(Center for New Circus), 후르자루트 댄스 씨어터, 테로 사리넨 무용단, 젊은 안무가들 그룹인 조디악(Zodiac, Center for the New Dance)이다. 이들이 극장에 올릴 프로그램을 결정한다. 결국 책임을 지고 극장의 프로그램을 올려야 하기에 예술적으로나 흥행 면에서 실패를 하게 되면 4개 단체가 공동으로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손인영: 테로 사리넨이 워낙 유명한 단체이긴 하지만 전문 무용단이 어떻게 이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는가?

Iiris Autio: 거액을 기부한 문화재단(Jane and Aatos Erkko Foundation)의 독지가는 테로가 젊었을 때부터 후원을 하고 있었고 테로의 공연을 아주 좋아했었다. 그래서 내가 그 독지가에게 기부를 부탁하기도 했기에 당연히 얻을 수 있었던 혜택이 아닌가 싶다. 헬싱키 댄스하우스는 첫 외국단체 공연으로 이번에 한국 국립무용단의 공연을 올렸는데, 사흘 동안의 공연이 모두 매진이 되는 엄청난 일을 해내 아주 기분이 좋다. 사실 더 많은 날짜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개관 프로그램이라 안전하게 가려고 그랬는데, 아쉬웠다.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c)손인영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c)손인영

손인영: 언뜻 보기에 4개의 파트너 단체가 주로 프로그램 결정을 한다면, 그럼 외국 무용단 초청은 테로가 결정하는가?

Iiris Autio : 그렇다. 극장은 크게 3개의 프로젝트로 구분해서 지원을 받고 있고 지원처도 다르다. 댄스하우스의 모든 활동은 헬싱키 시와 타이케(Art Promotion Centre Finland)에서 받은 돈으로 경영하고, 스팍스(Sparks) 프로젝트는 주로 젊은 안무자를 위한 공연으로 소극장에서 하는데 이건 핀란드 정부의 지원으로만 운영한다. 외국단체 초청공연에 드는 돈은 문화재단(Jane and Aatos Erkko Foundation)이 지원을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테로가 주로 결정을 한다.

손인영: 아까 독지가가 극장을 짓는 것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경영하는 것까지 생각했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Iiris Autio: 그렇다. 댄스하우스를 지속적으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면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으면 경영에 문제가 생길 게 뻔하다. 특히 무용은 비인기 예술이기에 더더욱 지원이 없다면 지속적인 경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무용가들에 의해 움직이면서도 시나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고 또한 재단법인의 지원도 받고 있다. 재정적인 뒷받침이 탄탄하게 구축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처음에는 극장이 잘 돌아가다가 나중에는 그 가치가 상실될 수도 있다. 공연이 재미가 없다는 소문이 나거나 작품이 질적으로 나쁘다면 관객들이 공연을 보러 오지 않게 될 것이기에 극장을 경영하는 매니저와 이사들, 그리고 파트너들은 최선을 다해 작품을 선정하고 최고의 작품을 올리려고 노력할 것이라 본다.

손인영: 하나의 기관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안정된 운영을 위한 방책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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