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9] ‘한국춤의 세계화’ 그 야심찬 꿈을 키우는 무용가 김현선
[낭만논객의 춤시선-9] ‘한국춤의 세계화’ 그 야심찬 꿈을 키우는 무용가 김현선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2.12.17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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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it)>과 <괴물조리법>의 춤꾼이자 안무가
'괴물조리법' 포스터 (사진제공=김현선)

[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이른바 ‘송구영신’의 계절이다. 유난스레 ‘다사다난’이라는 단어를 실감하면서 이 칼럼의 아홉 번째 이야기를 고민했다. 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의 올 한 해 행적을 돌아보게 된다. 팬데믹 3년차, 마치 봇물 터지듯 터져나온 우리 무용계의 다채로운 공연들 속에서 근래 한국창작춤 안무가들이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펼쳐 보인 여러 작품들의 완성도를 확인하는 한편, 안무력은 물론 공간활용 등 여러 측면에서 긍정적 모습이었다는 결론을 필자 스스로 도출하기에 이르렀다. 하며 지금까지 전통춤꾼으로만 인식했던 30대 중반의 여성 안무가 한 사람을 주목해 보기로 한다. 바로 김현선이다.

김현선의 '잇(it: connection)' (사진제공=남산국악당)
김현선의 '잇(it: connection)' (사진제공=남산국악당)

대한민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전통춤을 근간으로 다채로운 창작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춤 빛깔을 찾아 나가고 있는 젊은 무용가 김현선은 어린 시절 한국무용에 입문, 국립국악중고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전통과 창작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다양한 시도와 실험적인 작품 활동을 지금까지 해 오고 있다. 특히 한국 전통춤인 궁중정재와 수많은 민속춤 레퍼토리를 학습하며 우리 춤의 깊은 호흡과 ‘느림의 미학’을 무대에서 소리 없이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그동안 스승인 복미경의 무용단에서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국내외 무대에서 특유의 춤결을 빛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또한 프로젝프 그룹 Dance us Project 대표로서 안무 이력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중이다. 넘치는 호기심으로 외국 예술가들과의 협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독일, 프랑스 등 유럽 무용단체들의 작업 현장과 공연 시스템을 공부하기 위해 단기연수도 수 차례 다녀왔다.

지난 2010년 자신의 첫 안무작 <너는 또 다른 나>를 시작으로 ‘섬 시리즈’‘후, 아유 시리즈’ 등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존재와 그 내면의 세계에 대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의미 있는 창작춤사위에 담아냈다. 이후 2015년부터는 전통춤을 바탕에 두면서도 현대인들의 감성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품들 - <상생> <비. 태평> <무향(舞香), 무취(舞取), 무색(舞色)> <안항> 등을 발표했다.

필자는 김현선 춤꾼이 차세대 한국창작춤 안무가 대열에 진입, 당당히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맘으로 이 글을 쓰는 중이다. 그녀는 지난 가을, 서울남산국악당 기획공연인‘2022 젊은 국악 단장_ 평론가 초이스’의 무용부문(삼인삼색의 창작춤)에서 현장 라이브 피리 연주(김시율/재영 예술가)와 함께 창작춤 <잇(it: connection)>을 통해 춤꾼과 안무가로서의 위치가 한층 성숙되는 기회를 연출했다. 필자는 한국창작춤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실감, 오래 전부터 강단은 물론 소소한 모임 자리에서도 진심으로 소리 높여‘춤의 교과서는 바로 음악이다!’라는 화두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고 있다. 안무를 꿈꾸는 자는 주변에 음악가 친구 한 두 명 정도와는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라는 조언을 거듭해가며 말이다.

김현선의 '잇(it: connection)' (사진제공=남산국악당)
김현선의 '잇(it: connection)' (사진제공=남산국악당)

연극 장르에는 희곡이란 어마무시한 문학적 텍스트가 있어 연출가와 배우들에게 아주 유의미하고 효율적인 교재이자 참고서가 되고 있다. 무용에서는 바로 음악이 희곡의 대체재로 필수불가결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좋은 작품을 안무하기 위한 첫 단추, 즉 안무자의 작업에서 최우선순위가 음악이라는 사실은 수 천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필자의 이 제안은 단언컨대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스태프 정신’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생각해 온 현장 기획자로서 오랜 신념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제안을 직접 체험한 듯 무대에서 실천하는 예술가 김현선의 속내를 눈치 챈 필자로서는‘미완의 대기’라는 표현을 빌려 감히 그녀의 소망을 대신 말해 주고 싶은 것입니다!

어느 해보다 다사다난했던 올해, 12월 7일과 8일 이틀 저녁, 아직은 일반인들에게 조금 낯선 공간 연희예술극장 무대에서 <괴물조리법>을 통해 그녀는 곧 결혼을 앞둔 인생과 예술의 동반자이자 사운드 디자이너로 합류한 프랑스 출신 다비드 라바이쓰(David Lavaysse), 그리고 지난 10월 하순‘단장’ 공연에서 강한 존재감을 확인시키며 협업했던 김시율(재영 연주자 겸 퍼포머)과 다시 또 음악적 동지애로 뭉쳤다. 참고로 얼마 전 국립현대무용단 기획공연‘스텝 업’의 <우리는>(안무 강요찬)에서도 김시율은 무심한 듯 피리를 연주하며 마이크까지 들고 무대를 종횡무진 옮겨다니면서 의외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었다.

김현선의 '괴물조리법' (사진제공=김현선)
김현선의 '괴물조리법' (사진제공=김현선)

이번 공연 역시 이들 셋의 협업과정과 실천의지에 일단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근래 젊은 무용가들의 공연들로 알게 된 연희동 골목 지하 연희예술극장은 강남의 컨템퍼러리 L을 연상시켰다. 공간이 넓지 않고 기역(ㄱ)자 형태로 낯설지만 안무자 김현선은 최대한 공간구성을 절묘하게 연출해 다섯 가지 이미지를 도출했다. 조카의 물체놀이용 장난감을 통해 작품의 모티브를 가져온 설치미술을 입구에 전시해 놓고 관객들이 손으로 만져보도록 하면서 긴장감을 유도한다. 이윽고 핑크색 털로 무장한 정체불명 동물의 모습으로 신 스틸러 역을 자처하는 중견 무용가 최진한이 특유의 동물적 감각의 움직임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어서 천으로 가려진 공간에서 세 명의 무용수가 한 덩어리 물체를 상징하며 궁금증을 유발하다가 한 명씩 모습을 드러내며 기형적 신체의 조각상 포즈들을 취한다. 시종일관 음향 디자이너 다비드의 미니멀한 음악이 변주를 더해가며 관객들의 귀를 부담스럽지 않게 마법의 기운을 불어넣고 김시율의 피리 연주까지 어울려 하나의 변곡점을 선사했다. 청아한 젓대(피리)의 신묘한 라이브 연주와 녹음음악이 공연 전반에 멋지게 스며들었다.

김현선의 '괴물조리법' (사진제공=김현선)
김현선의 '괴물조리법' (사진제공=김현선)

마지막 하이라이트. 피아노 연주와 핑크빛 바닥에 스며든 물체 위에 조용하게 등장한 김현선은 흰 드레스를 착용하고 마치 그리스 신화 속 여신처럼 우아한 솔로 춤으로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전혀 상상치 못했던 모습이라 모두가 일순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임산부 몸의 아름다움이 환각을 불러 일으킬만치 여성성과 모성이 합쳐진 느린 움직임이 한국무용 전공자로서 노출하기 힘든 신의 한 수(?)로 방점을 찍기에 충분했다. 안무가 김현선의 용기와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이 장내를 압도했다. 그녀의 변신에 크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 글자 그대로 독창적이고 신선한 융복합 공연형식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한동안 계속되던 한국창작춤 침체기를 벗어나 최근 몇 년 전부터 30대 초중반에서 40대 초중반에 이르는 중견 한국춤 전공 안무가들의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속속 발표되면서 우리 무용계에 이른바 ‘K-Dance’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는 가운데 예술춤 완성도의 상승곡선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듯하다.

김현선의 '괴물조리법' (사진제공=김현선)
김현선의 '괴물조리법' (사진제공=김현선)

특히 공공 직업무용단 예술감독들(김용철 김충한 정신혜 윤혜정 홍은주 이혜경 김진미 김혜림 이정윤 김현태)의 세대교체 흐름 역시 괄목할 변화의 상징으로 현실적 체감을 느끼게 한다. 이들을 잇는 다음 세대의 창작춤 안무자들, 전성재 정보경 서연수 강요찬 장혜림 보연 한정미 표상만 김재승 정명훈 조인호 김민우 김주빈 이이슬 최종인 박소영 서상재 김원영 등의 대열에 소리 없이 조용하게 김현선도 다크호스로 부각되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김시율의 피리 연주모습 (사진제공=김현선)
김시율의 피리 연주 모습 (사진=장승헌)

그녀는 <잇(it)>에서 피리 연주자의 즉흥 연주와 산조가락에 오롯이 몰입하며 23분간 솔로 춤으로 자신만의 뚝심을 보여 주는가 하면(10월 22일 서울남산국악당), <괴물조리법>에서는 도발적인 제목처럼 특유의 엉뚱한 예술적 호기심을 관객들에게 촉발시키면서 이색 춤 풍경을 열린 공간에 펼쳐 놓았다(12월 8일 연희예술극장).

그녀는 새해 2023년부터는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국제적 감각의 체득은 물론, 보폭을 조심스레 넓혀가며‘한국춤 세계화’라는 시대적 명제의 반열, 그 최전선에 서 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얘기했다. 반짝이는 눈망울과 어느새 단발머리 소녀, 파리지엔 느낌이 스민 이국적 모습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그녀에게 우선 응원과 감히 격려를 보낸다. 수 년 후, 한 사람의 글로벌 아티스트로 우뚝 자리매김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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