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모니터] 한옥에서 춤을, 오감과 상상력을 자극한 실험적인 공연
[공연모니터] 한옥에서 춤을, 오감과 상상력을 자극한 실험적인 공연
  • 나수진 무용이론가
  • 승인 2022.12.2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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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차세대열전' 조인호의 ‘서양극장 속 한옥집’

[더프리뷰=서울] 나수진 춤연구가 = 예술의 한 장르로서 무용은 공간을 전제로 한다. ‘몸’과 ‘행위’가 가장 중요한 수단이지만, 무용이 예술로 완성되려면 작품에 적절한 무대 디자인, 조명 같은 무대 설정과 공간사용, 의상 등의 유기적인 관계가 춤과 함께 안무가의 의도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이 공연은 다소 실험적인 무대였다. 공연 팀은 무대를 한정하는 전통적인 공간 연출방식을 벗어나 무용의 퍼포먼스로서의 가치를 새롭게 환기하고 ‘몸짓’의 표현력을 공간으로 완성하는 극적인 실험을 보여주었다.

(사진제공=조인호 촬영=김주빈)
조인호 안무 '서양극장 속 한옥집' (사진=김주빈)

지난 11월 5, 6일 양일에 걸쳐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 한옥이라는 공간을 접목한 실험적인 무용공연 한 편이 올라왔다. 바로 '2022 차세대열전' 작품인 <서양극장 속 한옥집>이다. 안무가는 전통춤 전공자로서 한국무용의 시대성을 고민하는 젊은 춤꾼으로 주목받는 조인호이다. 그동안 조인호가 보여준 섬세한 춤사위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조금은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서양식 극장 속에서 한옥의 구조적 특성과 성격적 특성을 구현하고 더 나아가 움직임을 접목한 한 안무가의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작품에서 그가 무대에 올린 혁신적 실험의 첫 번째 키워드는 ‘공간’이었다. 무용공연에서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조명 같은 장치와 함께 꾸준히 커져 왔다. 이번에는 더욱이 이러한 공간이 뒷배경 정도로 끝나지 않고 춤과 대등한 지위를 점한 채 극장 안에 전시되었다. 이로써 관객이 먼 객석에서 수동적으로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이 펼쳐지는 공간 안으로 직접 진입하는 듯한 착각이 일어났다. 이 효과는 독특한 감상의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공간의 구조적인 특성을 잘 뽑아내 표현한 점은 한옥이라는 구조물에 대한 사전조사가 잘 이루어진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러한 기획력은 안무자가 발견한 한옥의 특징을 명확히 보여주기 위해 포스터 작품 제목을 사각형 형태로 배열한 부분에서도 돋보였다. 특히 마지막 씬 ‘다양한 공간을 품은 남자’는 큰 여운을 남겼다. ‘사각형’ 틀을 겹겹이 짊어지고 등장해 하나의 구조물을 남긴 퍼포먼스가 한옥의 특징을 드러내고자 한 안무자의 의도를 명확히 전달해주었다.

다만 각각의 씬마다 남긴 구성물이 결국 모두 해체되어 이러한 의도 전달을 방해한 점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들이 더 긴밀하게 연결되고 하나의 주제로 응집되었더라면 이들 오브제가 드러내는 주제의식을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 터다.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기하학적 오브제는 안무가의 의도를 부연해줌과 동시에 물리적 공간인 공연장에 입체적이고 추상적인 공간감을 덧입혀 공연 전반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처럼 한옥의 구조적인 면을 강조한 기획이 공연의 혁신성을 더해주었다면 한옥의 성격적인 면을 전달한 장치들은 관객에게 다소 낯설고 난해할 수 있는 새로운 공연형태를 친근하게 느끼고 편히 즐길 수 있도록 완충작용을 해주었다. ‘다도, 따뜻한 차 한 잔의 시간’ ‘처마 밑 흔들리는 풍경’ ‘비 오는 날의 처마’ 같은 한옥의 정취를 전달하기 위한 시청각 장치는 오감을 넘어 상상력을 자극해 풍성한 감상의 세계로 관객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특히 풍경 소리로 청각을, 나무 냄새로 후각을 자극할 때는 한옥의 정취를 생생하게 느껴보도록 준비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이 아날로그적인 정취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이 상상력을 통해 감각이 확장되는 경험은 디지털 기술의 힘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최근 공연 추세에 비교한다면 의미 있고 독특한 작업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사진제공=조인호 촬영=김주빈)
조인호 안무 '서양극장 속 한옥집' (사진=김주빈)

이번 무대에 오른 혁신적 실험의 두 번째 키워드는 ‘전통’이었다. 한옥은 한국의 전통적인 주거 양식이다. 제목이 미리 귀띔해주듯 서양극장과 한옥은 대조를 이룬다. 프로시니엄 형태의 극장에서 무용공연을 관람하는 행위는 서양에서 유입된 근대적 산물이다. 반면 한옥은 삶과 퍼포먼스가 구분 없이 혼재된 전통적인 공간이다. 즉 ‘정자, 가무악의 공간’이라는 순서 제목처럼 한옥은 궁궐부터 민가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연회나 잔치를 치르던 공간이다. 마당에 춤과 노래판이 벌어지면 관객은 있는 자리에서 공연을 보거나 그 한복판에서 함께 어우러지곤 했다. 극장에 이러한 한옥을 접목한 시도는 조인호 안무가의 고뇌와 이어진다. 그는 그동안 <아리랑> <홀로시나위>는 물론 <방하착> <노동> <이방인> 같은 창작무용에 전통사상이나 철학, 정서는 물론 국악이나 한복 같은 한국적인 장치를 활용해 전통춤의 동시대성을 진지하게 고민해왔다.

구식 주거공간 또는 다가가기 어려운 유물에 불과하던 한옥이 공간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쳐 젊은 세대가 앞서서 열광하는 친자연적이고 혁신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서양극장 속 한옥집>은 한국무용을 이처럼 현대적으로 리뉴얼하는 작업의 일환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특히 ‘온고지신’은 모두가 입을 모아 그 중요성을 외치지만 실행하기는 어려운 과제다. 이번 공연은 이에 대한 고민을 조인호 같은 젊은 안무가들이 진지하게 가져가고 있으며 이로써 전통춤의 맥이 여전히 세차게 뛰고 있다는 믿음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사진제공=조인호 촬영=김주빈)
조인호 안무 '서양극장 속 한옥집' (사진=김주빈)

실험적인 이번 무대의 세 번째 키워드는 ‘관객’이었다. 무용을 액자 속 전시 형태로 공연한 시도는 관객의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관객의 공연장 입장 직후 진행된 첫 순서는 ‘다도, 따뜻한 차 한 잔의 시간’이었다. 이에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은 가장 먼저 의자가 빼곡한 일반적인 서양식 극장이 아닌 좌식 관객석과 마주했다. 우리나라 좌식문화에 따라 바닥에 앉는 색다른 경험부터가 관객을 실험적인 공연장으로 빠져들게 했다. 특히 큐레이터가 순서를 끌어나가는 새로운 방식은 대중의 공감대 형성에 유리한 장치로서 그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만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한 기획만큼 무용 전문가 층을 위한 ‘안무가 조인호’의 예술세계 구현에도 조금 더 무게를 실었더라면 더할 나위가 없었으리라 본다. 공연에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일과 예술관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풀어내는 일은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관객들의 오감과 상상력을 자극한 다양한 효과에 비해 다소 소극적이었던 춤사위와 움직임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무용공연의 본질이 춤인 만큼 관객은 일반적으로 다채롭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물론 현대에 들어서 무용공연의 ‘움직임’이 가지는 지위는 현저히 달라졌다. 즉 춤이 안무 의도를 표현하는 데 있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는 추세다. 오늘날 작품의 미장센은 보통 움직임과 함께 무대장치, 조명, 음악, 의상 등이 대등하게 협력하는 설계를 취한다. 그러나 춤이라는 예술 장르의 본연은 콘셉트나 아이디어를 넘어서는 ‘몸짓 그 자체’의 힘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주요 장면에서조차 춤이 다른 장치들에 주도권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한옥이 한국적인 정서나 동시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소재인 만큼 그 특징을, 특히 선이 가지는 특색을 적재적소 춤으로 구현하며 탈구축하는 작업에 더 무게를 실었다면 춤이 작품의 화룡점정이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서양극장 속 한옥집>은 한옥이라는 공간이 가진 미학, 즉 선(線)의 특색과 아름다움을 한국 춤과 접목한 아주 매혹적인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작품이 한 안무가의 예술세계를 함축적으로 잘 풀어낸 작품임을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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