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기, 멈추지 않았던 비대면 국제교류 춤작업을 기억하며(1)
팬데믹 시기, 멈추지 않았던 비대면 국제교류 춤작업을 기억하며(1)
  • 김혜라 공연평론가
  • 승인 2022.12.26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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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벨과 김윤진의 협업 '갈라'

국제교류 협업의 태도와 방식 변화의 필요성

[더프리뷰=서울] 김혜라 춤비평가 = 팬데믹은 좀처럼 종식되지 않고 엔데믹(Endemic, 감염병의 주기적 유행)의 시간으로 넘어왔다. 무용수의 몸과 몸이 부대끼며 만드는 춤작업은 팬데믹 시기 물리적인 환경이 정지된 상황에서 비대면 영상 조건에서만 진행되었고, 그 과정에서 춤의 본질적인 정체성이 흔들리던 때였다.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의 팬데믹 선언 이후, 국가 간 이동이 멈추며 공연도 극장도 문을 닫기 시작했으나 무용계는 무관중 온라인 스트리밍을 시작하며 비대면으로 창작 가능한 공연방식과 댄스필름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공공·민간의 국제교류와 축제도 유례없는 상황에서 온라인으로 협업하는 방법 이외에는 뾰족한 창구가 없었다. 그렇게 지난 2년이 넘는 동안 생존을 위해 노력하면서 관계를 지속하려 교류한 예술가와 스태프들의 대표적인 국제교류 활동을 선별해 인터뷰를 했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 때 기록을 기반으로 우리가 겪었던 경험을 간략하게라도 공유하려 한다.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공연이 현장으로 돌아왔고, 다시 해외교류의 물꼬가 트여 공연계는 활기를 되찾고 있으나, 팬데믹 시기에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멈춰있지 않았었다. 


제롬 벨과 김윤진의 ‘갈라’     

제롬 벨과 김윤진의 '갈라' (사진출처=SPAF)
제롬 벨과 김윤진의 '갈라' (사진출처=SPAF)

우선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스파프)가 주최했던 프랑스 제롬 벨 컴퍼니와 김윤진 총감독의 협업 <갈라> 작업,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와 싱가포르 M1 CONTACT 컨템퍼러리 댄스 페스티벌의 공동주최인 싱가포르 아델 고와 한국 권혁의 공동안무 <A Time Within Time, 공존> 작업, 국립현대무용단 주최 스페인 안무가 랄리 아이과데와 한국 무용수들의 워크숍 과정을 담은 <승화> 작업이 팬데믹 시기 대표성과 차별성을 가진 국제교류 작업이라 하겠다. 이 세 작업의 성격, 국적, 주최기관, 교류에 참여한 감독, 기획자, 무용수들과 만나 환경적 대안으로 실행된 국제교류 방식이 ‘예술가의 창작적 지평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와 ‘지속가능할 프로젝트로서의 한계와 가능성’까지 예측해 보았다. 이 칼럼은 두 달 여간 진행했던 리서치를 다시 회상하며, 공존을 향해 연대한 예술가들과 스태프들의 흔적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프랑스 제롬 벨 컴퍼니와 김윤진 총감독의 <갈라> 협업

-국제교류에서 협업의 태도와 안무 스코어의 이동에서 지역적 해석 문제

먼저 스파프 주최로 제롬 벨 컴퍼니와 <갈라> 작품 교류를 성공시킨 김윤진 감독이 협업 과정과 결과 후에 겪은 경험을 복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농당스(Nondanse)의 대표 주자이자 시의적인 이슈를 선도하는 프랑스 안무가 제롬 벨은 기후문제 해결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노 플라이트’를 선언, 과단성 있는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하여 제롬 벨은 물리적인 이동 없이 <갈라>의 안무 스코어만 이동시키는 방식을 여러 나라에서 펼쳤고, 이러한 작업이 미래지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필자는 순진하게 기대했었다. 그러나 스코어 이동 과정에서 발견된 균열들, 다시 말해 세계적으로 저명한 제롬 벨 컴퍼니가 보여준 불합리한 작업과정을 겪은 김윤진 감독은 ‘국제교류에서 협업의 태도’와 ‘스코어의 지역적 해석’ 등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필자는 제롬 벨 측의 입장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고 그들이 김윤진 감독 측에 보낸 답신만 확인, 한국의 입장에서 정리했다). 구체적인 문제는 이미 서울아트마켓 에어 밋(<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국제이동성, 유통의 새로운 담론과 기준> 2021년 6월 3일)에서 다루었기에, 우리는 이후 김윤진 감독과 박지선 기획자 그리고 최기섭 안무가와 좌담(2022년 2월 14일 오후 3-6시, 펠든크라이스 무브 스튜디오)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짚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논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Kaaitheater, KunstenFestivaldesArts, Brussels(Belgium,May 2015). © Herman Sorgeloos.
Kaaitheater, KunstenFestivaldesArts, Brussels(Belgium,May 2015). © Herman Sorgeloos.

간략하게, 제롬 벨의 서울 <갈라>는 2020년 스파프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인종, 체형, 나이, 장애 유무에 상관없이 전문 무용수와 비전문 무용수들이 함께 춤추면서 다양성과 평등을 지향하며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성격의 퍼포먼스이다. 코로나로 인해 제롬 벨 컴퍼니 스태프와 한국의 협력 스태프들은 온라인에서 전반적인 과정과 실제 공연까지 진행했다. 제롬 벨 컴퍼니 측에서 한국 출연자를 확정했고, 아홉 차례 화상회의를 거쳤으며, 정해진 프로토콜 스코어에 맞춰 한국의 무용수들이 참여한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제롬 벨 측에서 공연 전 리허설 과정에서 사전에 협의되지 않았던 영상 편집을 요구하거나, 작업의 핵심적인 부분을 교체(무용수에게 강압적인 태도로 의상을 갈아입으라고 지시하는 등)하는 등 무례한 태도를 보인 것이었다. 따라서 김윤진 감독은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예경)를 통해 공식적으로 컴퍼니에 그간 발생했던 여러 문제를 지적하는 12장 분량의 문서를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답신은 무성의한 말과 프랑스 측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정도의 내용이었다고 한다. 일례로 서울 <갈라> 영상을 파리에서 상영 시 출연자 전원의 동의하에 크레딧을 명기하고 사용하기로 합의했음에도 한국 측과 동의하기 전에 이미 사용해서 감독은 예경(예경측도 모르고 있었음)을 통해 항의를 제기, 이런 과정을 거쳐서야 수정되었다. 또한 한국에서 참여한 감독과 조안무를 비롯한 핵심 제작진의 이름도 빠져 있어 영상 크레딧에 표기를 요청했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김윤진 감독은 <갈라> 작업이 협업이 아니라 기업의 외주화(outsourcing) 방식처럼 작업을 유통·재생산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갈라> 작업이 평등과 다양성과 도전의 철학을 표방하지만 제롬 벨 컴퍼니가 현지 파트너를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는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제롬 벨 컴퍼니가 아무런 협의 없이 작업의 철학과 위배되는 내용 요구, 사과나 유감 표명 없는 안이한 인식과 대응, 참가자인 장애인과 어린이에 대한 조감독의 부적절한 발언과 행동, 협업의 파트너십 결여로 <갈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고 김윤진 감독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공연을 끝마치고 김윤진 감독은 부당한 처우를 인지하고도 작업을 그만두거나 아니면 강력하게 저항하지 못한 것을 상기하며, 자신 또한 문제를 감수하더라도 시간 안에 공연을 올려야 한다는 절대적 믿음과 억압된 관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더불어 예경측에 대해서도 기관의 구조(예술경영을 지원해 주는 공기관이고 축제기획의 전문성 없이 순환보직하는 행정기관이며, 당시에는 예술감독도 부재했다)상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지만, 적극적인 공조를 못한 것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덕션 및 협업방식의 변화 필요

박지선 피디는 제롬 벨 컴퍼니와 이 작품을 성사시킨 페스티벌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이 작업이 왜 이 시대에 중요한지 공유가 되었어야 하는데, 실제 기후위기에 대한 논의와 성찰은 없고, 그냥 "프로덕션만 진행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롬 벨의 생각과 철학이 작품을 통해서 옮겨와야 성공한 것이라고 보는데, 양측 모두 그런 부분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제롬 벨 작품의 생산 매뉴얼 같은 방법론만 공유된 셈이다. 따라서 현지에서 작업하는 파트너 예술가로 존중하기 보단 프로덕션을 실행하는 사람으로만 여기는 건 아닌지 질문하게 된다고 했다. 뮤지컬이나 상업 연극은 라이센싱 방식으로 현지 제작진이 지역에 와서 작품을 올리지만, 예술작품은 라이센싱이나 아웃소싱하고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지역적 맥락 안에 존재하는 개개인의 특수성이 고려돼야 한다. 또한 국제교류를 오래 해본 경험상 박지선 피디는 교류 안에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있으며, 서로의 문화에 대한 지식과 정보의 불균형에서 오는 문제로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이 다르기에 한국 창작자도 서구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함을 지적했다.

최기섭 안무가는 <갈라>가 2015년 초연된 이후 현재까지 세계 각지에서 100회 이상 재공연되는 동안 단 며칠의 간격을 두고 여러 대륙에서 동시적으로 공연이 이루어지기도 했는데, 이건 스코어를 통한 아웃소싱이라는 독특한 제작방식 덕분이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현지의 퍼포머들을 고용해 단기간에 제작하다가, 서울에서는 현지 감독 체제로 협업을 하게 되며 글로벌 기업운영 체제와 같은 제작방식에 내재된 문제가 처음으로 표면화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아웃소싱하는 방식은 2000년 이후 미술관 퍼포먼스의 주된 경향으로, 클레어 비숍은 이런 방식의 퍼포먼스를 ‘위임된 퍼포먼스(delegated performance)’라고 하며 예술적 성취를 저해하는 요소들이 내포(위임된 퍼포먼스는 사회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주체들을 부당한 방식으로 이용하고 전시함으로써 재현의 윤리에 대한 논쟁을 야기함.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아웃소싱이라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기업경영 모델을 차용한 위임된 퍼포먼스는 반복적인 재생산을 통해 퍼포먼스의 경제를 확립할 수 있음)되어 있음을 지적했는데, 그게 <갈라>의 문제와도 공명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멈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

과거와는 달리 지구촌이 동시간대에 세계의 흐름을 공유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에 이제는 국제교류에서 성과 중심의 양적 수치나 결과보다는 교류과정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 질적 성장과 본질이 흔들리지 않는 방식이 필요하다. 또한 앞서 제기된 이슈, 즉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작업을 멈추지 못한 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목표지향적으로 작품을 만들어왔던 분위기 때문이다. 김윤진 감독은 덧붙여 제롬 벨도 자신이 왜 기후위기 행동을 하는지, 작품이 현지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존중될지 들여다보며 지역 스태프와 논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런 과정은 생략되고 스코어를 분석하여 짧은 시간 안에 무대에 올리려는 작업의 성취에만 집중된 현실을 반성하며, 이번 협업을 통해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 잠시 멈추고 해결할 방법을 찾는 일에 우리의 에너지를 써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작업과정에서 사람간의 윤리뿐만 아니라 이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 그게 미학적 비전이든 기후위기 행동이든 이제는 이런 고민이 작업과 연결되지 않으면 결과가 아름다워도 성공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박지선 피디는 긍정적인 예시로 스위스 로잔 비디 극장에서 케이티 미첼과 제롬 벨이 기후위기와 관련된 작업을 하는데, 케이티도 탄소 발자국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이동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리허설을 하고 대본만 이동시키는 방식을 취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협업은 2년 동안 진행되고 있으며 적절한 방법론을 만들고 무엇보다 극장과 축제 측과 문제를 공유하며 협력한다는 것이다. 또한 대본과 작품의 형식이 지역의 환경에 따라 변형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제는 국제교류에서 작품의 가치와 철학이 공유되는 방식의 교류가 더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팬데믹 이후 새로운 국면에서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교류방식이 필요하다는 중론에 도달했다. 축제도 작품을 선택해서 초청하는, 예전에 늘 했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들을 시도해야 한다. 디지털 글로벌 망으로 연결된 동시대는 오히려 사람 중심의 교류와 로컬이 더욱 중요해지기에 프로덕션의 거대한 이동방식인 작품의 투어가 큰 주류이기는 하지만, 예술가들의 생각과 미학을 옮겨와서 지역의 커뮤니티와 만나 서로 배우고 영향을 미치는 교류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다시 협업을 하게 된다면, 김윤진 감독은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인정과 상호이해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국제협업이 진행되어야 하고,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며, 문제 발견 시 멈출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임하겠다고 했다. 최기섭 안무가는 예술가가 작업을 중단하는 옵션은 사실상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 가능성을 염두하고 작품을 하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라 했다. 우리는 좌담을 통해 작업과정 또한 작품의 철학을 실현하는 시간이어야 하며, 과거와는 달리 국제교류의 본질적인 의미와 실행방식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기라는 데 공감했다.

김윤진은 2020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 <갈라> 총감독을 했고, 안무가이자 펠든크라이스 무브 대표이며 콜렉티브 데구루루 대표이다.

박지선은 프로듀서이자 기획자로 춘천마임축제와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일했고, 극단여행자, 사다리움직임연구소, 공연예술 창작집단 뛰다, 창작그룹 노니 등과 국제 공동제작과 국제교류를 하고 있다.

최기섭은 이인 프로젝트 그룹에서 활동하는 안무가이자 무용수이다. 2021년 <무용수-되기>로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수여하는 베스트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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