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기, 멈추지 않았던 비대면 국제교류 춤작업을 기억하며(2)
팬데믹 시기, 멈추지 않았던 비대면 국제교류 춤작업을 기억하며(2)
  • 김혜라 공연평론가
  • 승인 2022.12.26 12: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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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혁과 아델 고 공동창작 '공존'

온라인 공동창작 과정에서 발견된 새로운 감각

A Time Within Time, 공존. Photo by Bernie Ng
'A Time Within Time, 공존'. (사진=Bernie Ng)

싱가포르 아델 고와 한국 권혁의 <A Time Within Time, 공존> 공동안무

[더프리뷰=서울] 김혜라 춤비평가 =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이하 시댄스)와 싱가포르 M1 CONTACT 컨템퍼러리 댄스 페스티벌(이하 콘택트) 공동 주최로 한국의 권혁 안무가와 싱가포르의 아델 고가 공동 창작한 <공존>에 참여한 권혁 안무가와 김윤아 시댄스 프로듀서, 그리고 김지원 통역과 함께 그 과정을 짚어보았다. 먼저 이 작업의 경위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2020년 시댄스에서 권혁 안무가를 추천, 콘택트축제의 국제공동창작 레지던시인 ‘Co. Lab. Asians’에서 아델 고와 공동창작 및 초연을 진행한 후 이후 시댄스에서 공연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온라인상에서 영상을 교환하며 작품을 완성하기로 했다. 락 다운된 상황에서 서로가 느끼는 ‘고립, Isolation’이라는 주제로 비대면 리서치와 줌(Zoom) 미팅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원래 아델 고는 극장에서 실연을 하고, 권혁은 영상으로 출현할 예정이었으나 이마저도 불가능하게 되어 둘 다 영상으로 대체되어 2021년 두 나라에서 상영하게 되었다.

문화적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

방향성이 틀어진 상황에서 두 안무가 간 소통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노출되었다. 우선 언어적 차이와 말의 뉘앙스가 달라 통역과 표현 해석의 문제도 발생했고, 두 안무가의 상이한 안무성향을 조율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비대면에서 처음 해보는 권혁 안무가는 줌으로 소통했기에 감각은 배제되고 텍스트로만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 어려운 점이라 했다. 상대 안무가인 아델 고와 함께 춤을 춰야 하나 노트북으로는 거리가 확보되지 않아 실제로는 혼자 추는 것이었고, 이를 영상으로 찍어 다시 피드백을 나누는 절차도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윤아 피디는 비대면 레지던시를 위한 매뉴얼이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콘택트와 아델 고는 대면 레지던시와 동일한 장시간의 연습을 확보하고자 했고, 한국측은 효율적인 소통으로 선택적인 안무 교류를 원했기 때문에 양자간에 인식의 차이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움직임을 리서치하는 개인의 시간도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한국 측과 싱가포르에 왔을 경우 같이 동일한 시간적 기여를 바라는 싱가포르 측의 입장 차이를 조율해야 하는 중재자로서 역할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통역을 맡은 김지원은 두 안무가의 표현방식과 성향을 이해하며 서로가 전하는 말과 말 사이의 뉘앙스와 느낌을 전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했다. 감각적인 권혁과 논리적인 아델 고가 대면에서 만났으면 쉽게 해결했을 문제도 제3자의 통역을 거치며 대면과는 다른 경로로 소통하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으로 이해되었다.

국적과 상황이 다른 두 안무가의 차이가 시너지로, 새로운 작업 탄생

아델 고는 텍스트로 일을 하고 마인드맵을 펼치는 스타일이고, 직관적 스타일의 권혁은 안무 방식이 달라 어려운 점도 있었으나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음악 구절과 마디별로 정리한 표를 제시하는 아델 고, 이미 시나브로가슴에 무용단에서 영상작업을 여러 차례 경험했던 노하우를 갖춘 권혁과 영상감독과의 기술이 시너지를 일으켰다. 권혁은 챕터별 콘셉트 움직임 영상을 아델과 공유했고, 아델은 노트에 적은 텍스트를 보내주며 순서를 편집,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작업을 한 것이었다. 

권혁은 텍스트로 교환되는 과정이라 감성적이지 않은 작품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오히려 몸성이 강조된 작품이 나온 것이 온라인 창작에서 발견된 새로운 점이라 했다. “텍스트로만 개념이 제게 전달되다보니 오히려 제게 동작보다 느낌이 남은 거죠. 언어는 사라지고, 오히려 반대로 결과가 나온 셈이죠.” 감각적이나 감성적인 작업을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데, <공존>에서는 슬픈 느낌이 묻어나와 신기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건조할 수밖에 없는 작업과정에서 기표들은 사라지고, 기의가 이미지로 표현된 것이 의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발견인 것이다. 
 

2021년 비대면 리서치 중 첫 즉흥 연습 (사진제공=시댄스)
2021년 비대면 리서치 중 첫 즉흥 연습 (사진제공=시댄스)

온라인 공동안무의 차별점

2020년에 시작해서 2021년 가을에 완성된 2년 여의 과정을 통해 안무가로서 피디로서 대면 창작 사례와의 차별점을 우리는 찾아보려 했다. 권혁은 국내 신작은 보통 4개월이면 준비하는데 반해 2년 동안 준비하며 오히려 생각이 흩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상대와 만날 때마다 옛날 자료를 찾아보며 준비했기에 작품을 지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윤아는 신기한 순간들을 목격한 나날이 기억난다며 두 안무가가 서로의 노트북을 바라보며 하나의 음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던 첫 즉흥이 아름다운 순간이었고, 신기루 같이 이 작품은 안무가들이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마치 아델이 전설 족 존재같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권혁도 공연이 이뤄졌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느낌, 그리고 앞으로도 못 볼 사람이라는 느낌이 대면 작업과는 다른 경험이라고 했다. 동시에 이 작품을 무용이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댄스필름이라고 해야 되는 건가? 어떤 개념으로 정의해야 하는가? 매우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그랬었다. 댄스필름이라고도 할 수 없고 단지 특별한 시기에 대안적으로 행해진 새로운 방식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 그럼에도 우리 모두는 최선을 다해서 출구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대면 공동창작, 지속 가능할 것인가

지금이야 다시 대면 공연이 일상화되었으나, 작년 이즈음만 해도 온라인 교류 방식이 일정 부분 긍적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며 논의를 이어갔다. 권혁과 아델 고의 사례가 토양이 되어서 기관에서 이런 기획을 어어 나갈 수 있을지 말이다. 대안으로만이 아니라 비대면 프로젝트의 지속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필자는 이번 과정을 포맷으로 해서 콘셉트를 달리해 보는 작업도 흥미로울 것으로 제안했다. 주최 측은 포맷의 노하우가 쌓여갈 테고, 새로운 예술가를 섭외하면 결과물은 당연히 계속 다양해질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권혁은 비대면 프리프로덕션 도입에 찬성하며 미리 콘셉트를 잡고 비대면으로 소통하면 결과물의 퀄리티도 높이면서 시간도 줄일 수 있다는 것에 동의했다. 2020년에도 사전 리서치를 하며 왓츠앱에서 주고받은 내용들 덕에 21년 작업을 빠르게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스코어로 작업하는 안무는 충분히 비대면으로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례들이 많아지면 댄스필름도 아니고 단순 녹화영상도 아닌 새로운 양상의 작품으로 기획하여 소개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라 전망했다. 김지원 통역자도 실제 영화제에서는 그런 섹션이 많이 나온다며 타깃을 정해놓고 만든 다큐멘터리 식으로 기획해도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김윤아 피디는 온라인 과정에서 기록된 자료를 통해 놓친 부분을 복기할 수 있었던 장점과 비대면 안무와 그렇지 않은 안무가 구분되지 않겠냐고 예측했다. 권혁과 아델 고의 사례는 매칭형 공동창작이기에 비대면 레지던시가 가능했지만, 대부분의 레지던시는 그 나라에 직접 가서 문화와 인적 자원을 발굴해가며 리서치를 해야 하기에 비대면으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반면 재원이 충분하지 않은 민간단체에서 진행할 수 있는 유일한 레지던시 방법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줌 구독료 2만원과 사례비, 발표할 공간과 기술지원만으로도 공동창작이 가능하기에 항공권과 장기 숙박료를 지불하는 것보다 효율성은 높다고 했다.

권혁은 온라인이나 댄스필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이번 공동창작 협업을 통해 달라졌다며 이런 기회가 다시 온다면 도전할 것이라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다. 또한 이제는 안무가도 기확자도 모두 영상기술은 배워야 하는 필수 종목이라며 우리는 코로나가 준 숙제로 영상과 친해져야 한다는 중론을 모으며 인터뷰가 마무리되었다. 언젠가 다시 최소한의 접촉만을 요구하는 시대가 온다면, 원래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제작된 <공존> 같은 비대면 공동창작 레지던시 경험담이 참고가 될 지도 모를 일이지 않겠는가.

김윤아는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 프로듀서로 덴마크 보라보라극장 <ROK IN DK>(2019) 홍보 매니저, 일본 요코하마 <HOTPOT 동아시아무용플랫폼>(2020) 한국측 매니저, 한국과 싱가포르 공동창작 <공존> 한국측 프로듀서 등으로 일했다.

권혁은 시나브로가슴에 대표, 무용수이자 안무가이다. 대표작 <Zero>로 제28회 무용예술상을 수상했으며, 다수의 안무작이 있다.

김지원은 <공존> 작업과정에서 통역을 맡았고, 주로 예술통역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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