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또 다른 천재를 만난 황홀한 밤
[공연리뷰] 또 다른 천재를 만난 황홀한 밤
  •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07 1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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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 처음 초대한 '트리오 바클레이(Trio Barclay)'
트리오 바클레이의 연주자들. 바이올린 미셸 김, 데니스 김, 비올라 최영식, 첼로 벤자민 휴즈, 피아노 션 케너드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트리오 바클레이의 연주자들. 바이올린 미셸 김, 데니스 김, 비올라 최영식, 첼로 벤자민 휴즈, 피아노 션 케너드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더프리뷰=부산]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음악 공연이 다른 도시보다 다채롭지 못하다는 ‘부산’이 국내에 처음 소개한 트리오 바클레이(Trio Barclay)와 연주자들은 시대를 읽고 있었다. 그들은 믿기 힘든 각자도생의 시대를 사는 암울한 우리들에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 공연에 올려 동시대를 사는 예술가의 책무를 보여 주었다.

예술은 언제나 움직이는 세상의 모든 신호에 반응하고 진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보통의 사람보다 감각이나 지각에서 항상 앞서 나가야 한다. 지난 1월 4일, 부산문화회관 챔버페스티벌 트리오 바클레이(Trio Barclay: 피아노 트리오와 퀸텟의 진수) 공연 프로그램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고난의 시대를 사는 인류에 대한 애도와 위로를 동시에 전달하였다. 청중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주었고, 오래 지속되어야 하는 예술의 영속성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이라는 여지(餘地)를 열었다.

예고 없이 프로그램 순서가 변경되어 당초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이었던 브람스의 <피아노 오중주 작품34>가 첫 곡으로 연주되었다. 첼로 파트는 당일 연주계획이 없었던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 수석 벤자민 휴즈가 맡았다. 기본에 충실한 이성적인 브람스의 내면을 고스란히 담은 작품답게 피아노의 중후한 힘과 온기 가득한 현악기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각기 처한 상황이 다르고 복잡하고 치열한 현실 속이지만 조화로운 균형으로 평화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려내었다. 갑갑한 현실의 절망감 속에서도 굳건하게 버티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음악 속에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이들이 표현하는 평화는 막연한 잔잔함이 아니라 바쁘게 돌아가는 소우주 안에서 평범하지만 활기찬 일상을 사는 사람들의 꿈이 담겨있었다.

인터미션 때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눈 2023 부산문화회관 챔버페스티벌의 김동욱 예술감독은 “오늘은 트리오 바클레이가 좀 더 집중도 높은 연주와 더 많은 곡을 관객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프로그램의 순서를 바꿨습니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 연주 계획이 없었던 벤자민 휴즈에게 양해를 구했는데 브람스 <피아노 5중주>를 흔쾌히 연주하겠다고 해 주었어요.”라고 했다.

2부의 첫 곡으로 연주된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트리오 제2번 작품67>은 역사적 요소와 비극적 사건들에 대한 작곡가의 묵직한 개인적 감정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곡은 그의 오랜 벗이자 음악학자 솔러틴스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만든 곡으로 자신의 피아노 연주로 초연되었다.

트리오 바클레이 (Trio Barclay) 앙코르 장면. 바이올린 데니스 김, 첼로 요나 김, 피아노 션 케너드 (C)placquie@
트리오 바클레이 (Trio Barclay) 앙코르 장면. 바이올린 데니스 김, 첼로 요나 김, 피아노 션 케너드 (C)placquie@

러시아의 작곡가들은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존경의 표시를 위해 피아노 트리오의 형식을 종종 취한다. 이 트리오 작품에는 특히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겪으며 어두운 시대를 살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강요받으며 자유로운 예술 의지를 마음껏 펼칠 수 없었던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개인적 슬픔과 시대적 고민을 함께 투영한 작품이다. 이 곡에서 쇼스타코비치는 예술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가 생각한 예술가의 임무가 그대로 반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내던 아련한 휘파람 소리를 형상화한 가녀린 첼로 선율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였다. 무심히 이어지는 바이올린과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피아노 소리는 황량한 폐허 속에 홀로 남은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곡의 전반에 흐르는 억지스러운 경쾌함 속에서 번뜩이며 튀어나오는 조각난 파편들이 거칠게 떨어지면서 만들어내는 복잡한 아이러니. 공포 속에서 나누는 대화와 간간이 들리는 탄식. 그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 모든 것들을 심연(深淵)으로 당기는 어두움의 힘. 이런 복잡미묘한 것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다만 너무 리얼한 기교와 음악적 표현에 압도당한 청중을 즉각 환호하게 만들어 버린 아쉬움이 있었다.

음악이 끝난 뒤에 자신들의 연주로 청중이 다시 한번 더 고민에 빠져들 수 있게 하는 관찰자적인 시선을 보여 주었다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 즐거워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지만 다쳐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은 드보르작 <피아노 트리오 제4번 작품90, '둠키'>였다. 이 곡에서 희망과 역동성을 상징하는 듯한 뱃고동, 마두금 같은 다채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요나 김 덕분에 음악에 푹 빠져들었다. 이어서 트리오 바클레이가 그들만의 색깔로 들려준 세 곡의 앙코르는 자칫 놓치고 지나기 쉬운 현실 외면에 대한 반성과 밝은 미래의 희망을 실은 즐거운 기도와 같았다.

이날의 최고 연주자는 한국에 처음 소개된 첼리스트 요나 김이었다. 피아노 트리오가 아닌 첼로 트리오를 보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 35세의 이 젊은 연주자는 넘치는 에너지로 트리오 바클레이가 만들어내는 연주를 보완하고 완성하는 역할을 했다. 표정뿐만 아니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으로 연주하는 그의 모습에서 자클린 뒤프레(Jacqueline du Pré, 1945-1987)를 떠올렸다.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 했던가? 까칠하기로 따진다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했던 그의 스승 야노스 슈타커(Janos Starker, 1924-2013)가 말했던 “그의 세대 중 최고”라는 찬사 이상이다. 솔직히 ‘차세대 요요마’라는 수식어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의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서 모방하며 연습했다는 그는 21세기 카잘스로 다가왔다. 공연을 보는 내내 너무 일찍 떠난 자클린 뒤프레가 세상이 아쉽고 첼로가 아쉬워 남자로 다시 환생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 시대 최고의 첼로를 만났다. 새로운 천재 한 사람을 만난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

앙코르 곡은 <Jesus loves me> <Be Thou My Vision> <Battle Hymn of the Republic>.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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