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기분 좋은 상상과 아쉬움
[공연리뷰] 기분 좋은 상상과 아쉬움
  •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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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젠슈타인 현악 4중주 한국 초연

 

로젠슈타인 현악 4중주(Rosenstein String Quartet). 바이올린 알렉산더 크낙, 이수은, 비올라 디륵 헤게만, 첼로 마누엘 본 데어 나머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로젠슈타인 현악4중주(Rosenstein String Quartet). 바이올린 알렉산더 크낙, 이수은, 비올라 디륵 헤게만, 첼로 마누엘 본 데어 나머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더프리뷰=부산]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한 해의 시작과 함께 열린 2023 부산문화회관 챔버페스티벌은 7개의 타이틀로 2주 동안 이어지고 있다. 질병과 전쟁이 우리를 무겁게 짓누르는 혼란기에 살고 있다. 숨죽이며 지나온 길고 긴 터널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처럼 ‘최초’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여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며 설레게 했다. 공연 당일에 만난 김동욱 예술감독은 올해의 챔버페스티벌을 “국제 페스티벌로 면모를 갖추는 첫해라고 생각한다”며 “부산 연주자들도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겨뤄 손색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개인적 포부를 밝혔다.

지난 1월 12일, 페스티벌의 다섯 번째 무대에 올라온 로젠슈타인 현악4중주(Rosenstein String Quartet)도 국내에 처음 초청된 연주단이다. 그들은 에마누엘 무어(Emánuel Moór, 1863-1931)의 한국 초연 작품들로 선을 보였다.

도이칠란트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과 뮌헨 필하모니 단원으로 구성된 로젠슈타인 현악 4중주는 2022년 토카타 클래식스(Toccata Classics) 레이블로 나온 자신들의 음반에 수록된 <현악 4중주를 위한 전주곡과 푸가 Prelude and Fugue for String Quartet, P.182>와 <현악 4중주를 위한 서정 소곡집 작품139 Pièces lyriques for String Quartet, Op.139>로 프로그램의 보따리를 풀었다.

합스부르크, 헝가리 그리고 에마누엘 무어

무어의 <현악 4중주를 위한 전주곡과 푸가 P.182>는 1917년 플론잘리 현악 4중주에 의해 뉴욕에서 초연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곡이다. 무어는 헝가리가 독립을 이루려는 혼란한 시기에 유럽을 떠돌다 1907년에야 겨우 스위스에 안착하였다. 그러나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는 전쟁의 와중에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며 마치 도이칠란트 낭만주의의 아이러니를 상징하듯 전주곡을 썼다. 그 뒤를 따라오는 푸가는 미로에 갇혀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 속에서 탈출구를 찾아가는 간절한 기도와 같다.

<현악 4중주를 위한 서정 소곡집 작품139>의 제1곡은 햇살 가득한 창가에서 창문을 두드리며 아련한 기억 속으로 여행하는 듯 마치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 1928-2020)의 <시네마 천국>(1988) OST 중 <토토와 알프레도>를 연상시킨다. 나머지 곡 전반에 흐르는 우울감과 소리 내며 슬퍼하지 못하는 흐느낌 속에서도 우아함과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자존감과 편안했던 과거의 기억(réminiscence)을 담고 있는 곡이다.

무어의 음악에는 브람스의 전통을 이어받은 흔적이 있으며, 느린 움직임에서 드러나는 가슴 아련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로젠슈타인 현악 4중주의 연주는 감정을 정확하게 두드리는 강렬함과 낭만주의의 뿌리가 느껴지는 서정적 아름다움을 찾기 어려워 몰입도가 떨어졌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음반에 실린 곡과 다른 곡을 듣는 것 같은 미묘한 아쉬움이 남았다.

앙코르로 연주된 <청산에 살리라>의 첫 선율이 나오자 자세를 세우고 귀를 쫑긋하며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보수성 짙고 무미건조한 도이칠란트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아쉬움이 들었다. 같이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모자랐는지도 모르겠다.

연주자와 청중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로젠슈타인 현악 4중주의 개인적 기량은 훌륭했다. 다만 지극히 인색한 음악적 표현에 그쳐 같은 곡으로 음반까지 낸 4중주단의 연주로 보기엔 뭔가 3% 부족한 느낌이었다. 음악 앙상블은 여러 사람의 대화와 같은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와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더라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며 균형을 깨지 않는 것이 음악적 '조화(調和)'이다. 여독이 풀리지 않은 탓인지 이들의 연주에는 무어의 음악이 가진 특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게다가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산더 크낙의 경우 초반에 악보를 떨어트리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사실 음악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연주할 때 그런 일은 항다반사다. 물론 연주하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몹시 당황스러울 것이다. 다만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는 그 뒤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이다. 악보가 떨어져 엉켰다면 한 곡이 끝나고 잠시 나갈 때 악보를 가지고 나가서 정리해 왔어야 했다. 그랬다면 관객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냥 바이올린만 들고 나갔고 다시 들어와서 악보를 정리하느라 제법 시간을 보냈다. 좋은 음악을 듣겠다고 숨까지 죽이며 기다리는 청중들을 앞에 두고 할 일은 아니다. 무대에서 악보의 순서를 맞추느라 불필요한 시간을 보내고 그것을 정리하는 소리가 소음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부산 클래식 음악의 미래

로젠슈타인 현악 4중주의 연주자들. 바이올린 알렉산더 크낙, 이수은, 비올라 디륵 헤게만, 황여진, 첼로 마누엘 본 데어 나머, 홍승아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로젠슈타인 현악 4중주의 연주자들. 바이올린 알렉산더 크낙, 이수은, 비올라 디륵 헤게만, 황여진, 첼로 마누엘 본 데어 나머, 홍승아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이 날 연주는 오히려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인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6중주 작품70, ‘피렌체의 추억’>을 연주할 때 더 풍성해졌다. 이 곡은 이방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다른 나라의 이미지를 그린 곡이다. 특히 2악장의 제1바이올린의 선율과 나머지 현악기들의 균형감 있는 피치카토는 보석 같이 반짝이며, 햇살 가득한 사랑스러운 풍경을 상상하게 했다. 3악장에서는 러시아 민속춤의 긴밀한 발동작을 연상시켰으며 4악장은 모두가 어우러져 춤을 즐기는 축제의 장을 펼쳤다.

차이코프스키 곡에서는 균형감을 갖춘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줬다. 흔치 않은 구성인 현악 6중주곡에서 작곡가가 가진 음악적 균형에 대한 배려심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함께 연주한 비올리스트 황여진과 첼리스트 홍승아는 악보에 충실하면서 음악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였다. 다만 챔버홀의 음향 탓도 있겠지만 첼로 소리가 충분히 객석으로 빠져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연주할 때는 자신에게 들리는 소리도 중요하겠지만 청중에게 어떤 소리가 들릴지 미리 살펴보는 세심함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이런 연주자들이 있어 부산 클래식 음악의 미래는 밝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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