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10] 치열한 열정과 성숙의 경험, 김성용의 ’Process In It‘
[낭만논객의 춤시선-10] 치열한 열정과 성숙의 경험, 김성용의 ’Process In It‘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3.01.17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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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5년, 이제 또 다른 진화를 꿈꾼다
김성용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사진제공=대구시립무용단)
김성용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사진제공=대구시립무용단)

[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유난스레 사건, 사고 많았던 임인(壬寅)년이 기어코 저물었다. 계묘년의 시작이다. 착하고 귀여운 검정 토끼의 모습이 반가워지는 건 왜일까? 팬데믹 3년이 던져준 일상의 피로감과는 전혀 다른 밝은 앞길이 느껴진다. 이제부터 좋은 일들만 기억 창고에 저장해 놓으려 한다.

지난해 12월 대구시립무용단 정기공연을 보았다. 김성용 예술감독의 5년 임기를 마치는 마지막 무대였기에 의미가 깊었다. 최근 국·공립 단체 수장이나 예술감독들의 인선을 앞두고 이런저런 풍문을 접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모든 문화예술계 인프라와 실제 현장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영역을 보더라도 이건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수도권과 나머지 지역의 격차나 차별은 상상 이상이다. 그래서, 그런 속에서 지난 5년 대구광역시 산하단체 대구시립무용단을 이끌었던 김성용 예술감독에 대해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필자의 소견을 나름 피력하려는 것이다.

그의 고향도 바로 대구다. 경북예고에서 현대무용 전공, 한양대 무용학과 졸업 전 동아일보 주최 무용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 금상 수상으로 병역특례를 받기도 했다.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며 무용수로서 안무가로 지도자로서 그의 존재감은 이미 성숙해지고 있었다. 일찍부터 국제교류에 관심을 두고 일본, 베트남, 유럽, 그리고 미국, 중남미 등지에서의 공연과 페스티벌에서 체감한 문화다양성에 천착하며 자신만의 스펙트럼의 결을 차곡차곡 춤 내공으로 숙성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수 년 전 작고한, 일본 문화계의 한 축을 담당해 온 무용기획자로서 춤 전용극장을 운영했던고(故) 타카야 세이지 선생은 김성용을 친아들처럼 아꼈다고 한다. 타카야 선생은 김성용이 젊은 예술가로서의 재능과 국제적 감각을 키우도록 배려했고, 그의 용기와 실천의지를 칭찬하며 안무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원했다. 이후 그와 타카야 선생은 10년 이상 만남을 지속해 갔다. 김성용은 세계 각지의 연수나 초청공연을 통해 여러 고마운 분들을 만나면서 한층 깊어진 시선과 다양한 에술적 체험 기회를 얻게 되었고, 특히 그런 과정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려는 마음가짐을 통해 스스로 직접 담금질을 계속해 나갔다.

김성용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연습장면(사진제공=대구시립무용단)
김성용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사진제공=대구시립무용단)

동문단체 가림다댄스컴퍼니의 대표를 지내던 시절에는 제34회 서울무용제 대상과 안무상을 수상했고, 국제현대무용제(MODAFE, 모다페)와 한국현대춤작가 12인전, 서울국제안무가페스티벌(SCF), 그리고 일본 나고야 국제안무페스티벌을 통해 완성도 높은 작품을 잇따라 발표하는 등 춤 작가로서의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고양예술고 현대무용 전임교사직을 몇 년간 수행하고 다시 춤작업 현장으로 귀환하기에 이른다.

2017년, 그는 평생의 꿈으로 간직해 왔던 우리나라 시.도립 직업무용단 중 유일한 현대무용단체인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선임되어 고향인 대구로 금의환향한다. 그 후로 5년 동안 다채로운 실험과 독창성 있는 공공재로서의 직업현대무용단이 가진 매너리즘를 타파하려는 행동을 조심스레 시도하는 등 다른 지역 무용단들에게 자극을 선도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해 주고 싶다. 묵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다소 무거운 짐을 기꺼이 수용하며 예술가 정신의 보폭을 넓혀 나갔다. 아울러 의미 있는 다채로운 국제교류 작업들을 시도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녹록치 않은 지역 텃세와 곱지 않은 주변 시선들과 타협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 간 것이다.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의 수행인 작품 작업을 통해 예술가의 숙명과 실천의지, 한편으로 특유의 신중함과 예민함을 증명하며 지난 5년간의 임기를 마무리했다.

대구시립무용단 The car(사진제공=대구시립무용단)
대구시립무용단 'The car' (사진제공=대구시립무용단)

대구시립무용단 제82회 정기공연 <Process In It>을 작년 12월 9-10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 무대에 펼치면서 무용단 송년 공연이자 자신의 마지막 안무 작품으로 장식한다. 이 공연은 묵직한 메시지를 담아내기 보다는 오히려 힘을 뺀 노련한 대형 가수의 ’말하듯 노래하는 김성용표 작품’이라는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른바 초심의 작업, 그 선상에서 출발을 시도한다. ‘한 편의 작품을 올리기까지’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렉처 퍼포먼스 형식의 단순한 의미들이 오히려 진정성 있다는 모범을 보여 주기에 충분했다.

‘제작과정이 공연이 되다’라는 명제 아래 ‘감각하는 몸’ ‘반응하는 몸’ ‘탐색의 과정, 춤이 되다’로 70여 분이라는 시간, 공간 속에 무용수들의 자연스런 연습실 풍경으로부터 다양한 모습을 담아낸다. 움직임의 안내자로 무대에 선 무용평론가 김미영과 안무자 김성용이 의자에 자연스레 앉아 이번 작품의 배경과 의도를 설명하면서 진행해 나가는 방식을 활용해 ‘바야흐로 무용의 시대’임에도 여전하게 ‘현대무용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편견 아닌 오해를 풀어주었고, 출연 무용수들이 저마다 닮은 듯 다른 진지한 움직임들을 펼쳐 보이는 가운데 작업현장을 오롯이. 그리고 친철하게, 또한 알뜰살뜰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대구시립무용단 'Process in it'(사진제공=대구시립무용단)
대구시립무용단 'Process in it' (사진제공=대구시립무용단)

한편, 후반부 <정글>에서 25명의 무용수들의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곳, 반응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 즉 인간정글 사회를 온 몸의 감성과 감각들로 소환해 냈다. 이 연출은 25분여 동안 객석으로 하여금 숨죽이며 무대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했다. 음악감독이자 현장 디제잉을 맡은 김나언의 즉흥음악 변주는 이 작품을 끝까지 끌고가는 동력에 또 다른 큰 힘으로 작용했다.

무대 조명이 서서히 꺼지며 모든 것이 끝난 듯 한동안 침묵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김성용 예술감독의 임기 마지막 작품은 지난 팬데믹 3년차로 무용가들이 스스로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에 대한 의문과 해답을 영상작업과 그리고 진솔한 작품제작 과정을 적나라하게 직접화법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주었고 그 마음을 흔들었다. ‘춤은 분명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는 서사와 함께 ‘춤은 가장 진실해야 한다’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머리를 버리고 감각으로 내려오라’ ‘맞고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다’와 함께 ‘감각과 반응에 집중하는 움직임’으로 마침내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곳, 정글(Jungle)이라는 공간에서 탐색의 과정을 순수하게 펼쳐 보여준다.

대구시립무용단'DC DC'(사진제공=대구시립무용단)
대구시립무용단 'DCDC' (사진제공=대구시립무용단)

작품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그것이 예술이다‘라는 정의로 ’예술의 가치‘에 대한 논제를 무용수들의 몸으로 혹은 표정으로 증명해보인 것이다. 팬데믹 정점인 2021년, 대구시립무용단 창단 40주년 기념 작품 <DCDC>의 안무는 물론, 심포지엄 개최 및 영상제작 등으로 용감하게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그리고 전 세계가 비대면 예술 시대에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최근까지 현재진행형으로 대처해오고 있는 만큼 김성용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과 전 단원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무엇이 우리를 춤추게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된 댄스필름을 나름 열과 성을 다해 제작한 바 있다. 이 영상물은 권위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댄스필름 페스티벌 본선에 당당히 진출하며 유의미한 성과의 결과물을 도출하기도 했다.

지역 무용단체의 예술감독으로 치열하게 부딪치며 직업현대무용단 예술감독직을 뚝심으로 소신 있게 이끌었음을 크게 칭찬해 주고 싶다. 5년 동안 쌓은 성과와 내공, 그리고 소리 없이 강한 행보를 지지하며 응원과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이 말 많고 탈 많은 춤 동네에서 강건하게 살아남아 후배들과 젊은 예술가들의 모범적 선례를 쉼 없이 계속 보여주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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