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쓰다-3] 무용생활연구 - 판을 뒤집는, 무용(無用)하게 무용(舞踊)하는 사람들
[춤을 쓰다-3] 무용생활연구 - 판을 뒤집는, 무용(無用)하게 무용(舞踊)하는 사람들
  • 유화정 무용이론가
  • 승인 2023.01.17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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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유화정 무용연구자 = 춤문화를 연구하기 위해 현장을 찾다 보면 춤에 푹 빠진 다양한 군상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 모두가 무용 전공자는 아니다. 뼈를 깎는 고통으로 춤에 인생을 바치지는 않지만 우연히 춤이 곁들여진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무용과 같이 비생산적인 노동으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에 대해 고급취미를 가진 부르주아의 삶이라 칭하기도 했지만, 근래 춤에 빠진 사람들을 살펴보면 잉여의 돈과 시간으로 무용을 한다고 볼 수도 없다. 생산적인 노동으로 하루를 소진하는 현대인이라면 꽉 채워진 일정표에 따라 쳇바퀴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시대인데, 춤에 빠진 사람들은 시간 속 작은 틈을 힘겹게 비집어 춤으로 채우고야 마는 근성의 생활무용인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간 감상자와 무용가로 단순히 구성되었던 무용계에 나타나 이도저도 아닌 중간자의 역할을 자처하면서 무용계 전체의 판도를 흔들기 시작했다. 남들은 킬링 타임(killing time) 목적의 가벼운 취미로 자투리 여가시간을 채우는데, 굳이 무거운 몸 이끌어 또 다른 노동의 현장인 무용학원으로 향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동네 발레학원 다니던 수많은 소녀들의 귀환

무용학원을 차리고 싶다면 본인의 전공이 무엇이든 일단 유아발레반부터 개설하고 보라는 말이 있다. 학원의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 기본적인 수익을 보장해주기도 하고, 특출난 끈기와 재능을 보인 아이들이 전공반으로 넘어가 입시에 성공하면, 학원 창문에 현수막으로 걸리는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평등을 지향하는 시대에 남녀 가리기는 뭐하지만 일단 남자아이는 태권도장으로, 여자아이는 발레학원으로 몰리게 되는 현상이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아이가 여섯 살 정도 되면 국영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부모들의 고민이 시작되는데, 운동도 시키고 예술적 감각도 키워야 한다는 생각까지 구체적인 계획이 서면 자연스레 동네마다 간판을 내건 발레학원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국내 초중고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약 23조4000억원인데 이 중 예체능 관련 규모가 5조3102억원에 육박하여 수학학원 시장의 규모를 넘어설 정도라고 하니, 어릴 때 예술 하나 정도는 시켜야 교양을 갖춘 어른이 되리라 생각하는 부모들의 의욕과 자본이 동네 발레학원에 모이게 된 결과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면 공부하느라 치일 게 뻔하니까 지금이라도 예체능학원 많이 보 내줘 야지 생각했어요. 우리 애는 안 그래도 에너지가 넘쳐서 우아하게 발레하면서 에너지도 뺄 수 있고, 발레하면 자세도 좋아지고 키도 큰대요. 그리고 동네 언니들이 다 모여 있어서 서로 챙겨주는 관계도 만들어진다고 하네요.” (동네 발레학원 보내는 아이 엄마 J씨)

1990년대에 학원 무용실을 날아다녔던 꼬마들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이제 그 꼬마들이 30-40대의 사회인이 됐을 만큼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무용의 문외한으로 살아가고 있더라도 길을 지나다 들리는 피아노 음악 소리에, 혹은 우연히 시청하게 된 무용영상에 자극받아 활짝 피워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 발레리나의 꿈을 상기하기도 한다. 현재 성인 발레학원에 몰리는 수강생의 층이 다양한 것은 과거 국내 사교육 시장에서 발레학원의 위엄이 대단했다는 사실과 상응하는 부분이다.

“저도 사실 4학년 때까지 무용학원을 다녔었어요. 보통은 더 빨리 그만두는데 저는 너무 발레 를 좋아해서 끈질기게 다녔던 것 같아요. 나름 작품도 하고 대회도 한두 번 나갔었는데 현실 에 부딪혀 그만뒀고 그 후로는 한 번도 못했죠. 요즘 우리 애를 발레학원 보내는데 성인발레 반도 있다는 거에요. 가슴이 두근거려서 고민하다가 바로 등록했어요. 어차피 운동도 해야 하 니까요.” (동네 발레학원 보내는 아이 엄마이자, 대기업 팀장이자, 성인발레 4년차인 J씨)

60.70대 일반인을 위한 발레클래스,성신여대 평생교육원, 2021 (사진제공=유화정)
성신여대 평생교육원의 60-70대 일반인을 위한 발레클래스, 2021 (사진제공=김순정)

어머니 날 낳으시고 우리 무용선생님 날 빚으셨네

발레, 한국무용, 현대무용을 막론하고 성인 취미반에 등록한 사람이라면 앞으로의 무용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사람을 직면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무용 선생님이다. 단 한 번도 웃어주지 않는 카리스마로 앞에만 서면 코어 근육이 자동으로 잡아지는 듯한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내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듯 상냥하게 대해주는 선생님도 있다.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더 끌리는 스승, 더 끌리는 제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무용에 빠지다보면 선생님에게도 빠져버리기 일쑤다. 수강생의 입장에서는 전문가로서의 무용 선생님과 친해지는 기회이고,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나의 전공을 이리도 사랑해주는 일반인을 만나는 시간으로 서로에게 큰 의미가 있다.

“저희 원장 선생님을 만나서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일단 멋있어요! 처음에는 좀 무서운 이미지였는데 매주 두 번씩 만나고 수업 후 이야기도 나누고 하면서 친해졌어요. 골반, 어깨, 무릎 하나씩 세밀하게 잡아주시고 무대에 섰던 경험도 나눠주시니까 그런 것들이 발레를 계속 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발레학습 관련 블로그 운영중인 K씨)

일반인을 위한 발레, 미대학생,불문과 교수,주부 등(가운데 뒤, 강사 김순정),2022 (사진제공=유화정)
성신여대 평생교육원 발레 클래스. 미대학생, 불문과 교수, 주부 등(가운데 뒤는 강사 김순정), 2022 (사진제공=김순정)

훌륭한 무용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소중한 친구이자 인생 선후배의 관계까지로도 갈 수 있는 행운이기도 하다. 무용의 교육적 효과가 육체와 정신의 건강은 물론 창의성 및 사회성의 개발지 아우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용 선생님의 역할도 특정 장르의 무용기술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즐거운 삶의 회복을 돕는 안내자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가 살아보니까 알겠어요. 춤과 삶이 닮았더라고요. 사회생활도 그렇고 집안에서도 지치니까 뭔가 나를 바꿀만한 가장 미친 짓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무용을 해보자 결심하게 된 거예요. 일단 옷을 갈아입고 서는 것 자체도 용기가 필요했고 매시간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선생님이 잘 이끌어주셨어요. 교육 관련해서 공부하신 분이고 나이도 저와 비슷해서 그런지 멘토처럼 고민상담도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어요.” (취미 한국무용반 수강생 L씨)

신체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카타르시스는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이런 기억을 공유하는 선생님과 수강생들의 관계는 그 어떤 취미 학습보다도 끈끈할 수밖에 없다. 춤을 배우는 과정에서 신체접촉이 불가피하다는 점, 모두가 무용복을 입고 동등하게 서야 한다는 점, 신체는 물론 내면까지도 낱낱이 노출해야 한다는 점들이 무용 학습자를 지리한 일상생활로부터 탈피시키고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경험을 옆에서 이끌어주고 몸소 함께해주는 사람이 무용 선생님이다.

저요? 무용가는 아니고 무용인이에요

무용이 순수예술로서의 자격을 얻어 장르별 미학과 기술을 발전시켜온 역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누구나 쉽고 빠르게 학습할 수 없는 범주의 기술과 철학을 갖게 되면서 무용의 아비투스(habitus)가 만들어졌다. 무용 관련 천부적인 재능, 신체조건, 조기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환경에서 성장한 특별한 사람만이 무용계라는 범주 안에 속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무용계의 중심은 대개 무용전공 학생, 무용수, 안무가, 무용교육자가 차지하고 그 외연에 무용비평가, 무용연구자, 무용기획자, 무용의상 디자이너, 무용음악 작곡가, 공연 스태프가 차지해 왔다. 더불어 무용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자본이 유통되는 현장은 무용콩쿠르 현장이고 그 기저에는 입시제도가 자리해왔는데 최근 눈에 띄는 커뮤니티가 새로이 등장하여 기존의 판을 흔든다. 취미로 무용을 시작했지만 평균 연습량이 전공생의 연습량을 뛰어넘는 사람들, 고급 작품을 연습하여 콩쿠르에 참가하는 것은 물론 무용연습에 관한 경험을 정기적으로 온라인상에 기록하거나 책을 내는 사람들이 바로 주인공이다.

“저희 학원은 전공반은 아예 개설하지 않아요. 여기서 배운 어린이들이 전공의 길로 가고 싶다고 하면 다른 학원이나 선생님을 소개해 줍니다. 성인반 수강생들은 모두 취미로 무용을 배우지만 열정적인 분들은 두세 시간씩 주 4회 하시는 경우도 많고, 작품으로 콩쿠르에도 꽤 나가세요. 요즘은 취미로 시작한 분들이 콩쿠르 일반부에서 상도 많이 받아오니까 서로 좋은 자극제도 되고요.” (서울 xx동 발레학원 원장 Y씨)

“원래 글을 쓰는 직업이라 이런 부분을 살려서 무용학습의 기록을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개인 블로그에 올렸는데 인기가 많아져서 책으로 내볼 생각까지 하게 된 거예요. 제가 현재 가장 좋아하는 무용을 저만의 방법으로 세상에 알릴 수 있어서 만족해요.” (무용 관련 블로그 운영자 K씨)

70대 부부 마지막 수업에 본인들이 직접 음악 고르고 안무한 창작작품  각자  발표하고나서 기념 컷,2021 (사진제공=유화정)
성신여대 평생교육원의 마지막 수업에서 본인들이 직접 음악 고르고 안무한 창작을 발표한 부부, 2021 (사진제공=김순정)

무용계에서도 이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힘입어 취미 무용인들에 특화된 콩쿠르를 주최하거나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관련 연구 역시 활성화되는 변화가 나타난다. 또 전공자만을 대상으로 운영되었던 소규모의 무용관련 산업이 새로운 소비자를 만나면서 확장되기 시작했는데 특히 다양한 레오타드의 생산과 공급, 생활한복 디자인이 적용된 한국무용 연습복의 개발, 알맞은 자세를 잡아주며 최상의 무용사진을 찍어주는 스튜디오, 무용관련 이미지가 돋보이는 상품의 판매 성장이 두드러진다. 현재 이들은 자타공인 ‘(생활)무용인’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무용수는 무대에서 춤을 추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고, 무용가는 무용계 내외에서 실력과 공적을 인정받은 사람인데 무용인은 무용과 삶을 가까이 하는 사람, 실생활에서 시간적으로 큰 비중을 무용에 할애하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의미가 있다. 이들의 무용 관련 활동이 기존 무용계에 역동성을 더하며 일으키는 긍정적 변화들이 흥미롭고, 향후 무용계를 완전히 전복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세력이 커질 수도 있을지 또한 기대된다. 다음 편에서는 ‘평범하게, 때로는 비범하게’라는 주제로 생활무용인들이 무용활동을 통해 겪는 변신과 이동의 다양한 경험을 다뤄보겠다.

"무용생활연구-판을 뒤집는, 무용(無用)하게 무용(舞踊)하는 사람들" (사진제공=윤정아플랫폼무용단)
일반인들의 무용창작 (사진제공=윤정아플랫폼무용단)
"무용생활연구-판을 뒤집는, 무용(無用)하게 무용(舞踊)하는 사람들" (사진제공=윤정아플랫폼무용단)
일반인들의 창작무용 공연 장면 (사진제공=윤정아플랫폼무용단)
"무용생활연구-판을 뒤집는, 무용(無用)하게 무용(舞踊)하는 사람들" (사진제공=윤정아플랫폼무용단)
"무용(無用)하게 무용(舞踊)하는 사람들" (사진제공=윤정아플랫폼무용단)
"무용생활연구-판을 뒤집는, 무용(無用)하게 무용(舞踊)하는 사람들" (사진제공=윤정아플랫폼무용단)
"무용(無用)하게 무용(舞踊)하는 사람들" 비전공자들의 공연 장면. (사진제공=윤정아플랫폼무용단)
"무용생활연구-판을 뒤집는, 무용(無用)하게 무용(舞踊)하는 사람들" (사진제공=윤정아플랫폼무용단)
일반인들의 한국무용 공연 모습. (사진제공=윤정아플랫폼무용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유화정 무용이론가
유화정 무용이론가
hjyoo27@gmail.com
이대 무용과 박사. 어릴 적부터 춤춰온 몸의 기억을 머리와 손끝으로 전달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춤추는 사람들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을 포착할 때 짜릿함을 느낀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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