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6) - 여자들의 수다
[김윤정 칼럼] 펜으로 쓰는 춤(26) - 여자들의 수다
  • 김윤정 무용가
  • 승인 2023.01.19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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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뒤셀도로프] 나에게 여자들만의 수다는 소소한 일상 중에 큰 행복이다. 여자들의 수다는 가볍고, 무겁고, 진지하고, 때로는 비극적인 이야기들까지 뒤섞여 마치 하루에 사계절이 다 있는 독일의 4월처럼 다이내믹하다. 가끔 오랜 친구들이 모이면 맘 놓고 누군가를 안주삼아 씹는 조금은 경박한(?) 재미도 쏠쏠하지만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고 보니 어차피 우리 모두가 경험 속에서 이해 안 될 것이 없다고 느껴져서 그런지, 누군가를 도마 위에 올려놓는 수다는 어느덧 사라졌다. “나는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의 어떤 면도 내게는 낯설지 않다.“라고 했던 고대 희극작가 테렌티우스(Terentius, BC 185?-BC 195?)의 말처럼 말이다.

주변인을 씹기보다는 한때는 경외감으로 바라보던 시대적 인물의 사상이나 예술작품 또는 건축물들을 찬미하거나 감히 비판할 수 있는 수다가 훨씬 즐겁다. 맘껏 경배하고 우상화하다가 비판을 가해도 특별히 죄책감 같은 것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말이다. 예를 들면 나는 한때 프랭크 게리(Frank Gehry, 1929-)의 건축을 너무 좋아해서 그의 건축을 찾아다니며 춤을 추고 영상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느날 파리의 루이 뷔통 파운데이션을 가보고 실망했는데 그의 특유의 곡선을 살린 건축은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 이후로는 어쩐지 그 아류 같은 느낌마저 들 뿐만 아니라, 화려한 디자인에 비해 내부는 너무 쓸데없이 버려진 공간들이 아깝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유행지난 패션 같은 느낌이었다면, 밀라노 근처에 있는 렘 쿨하스(Rem Koolhaas, 1944-)의 프라다 파운데이션은 현대적인 미적 감각과 공간감에 놀랐는데 로테르담에 있는 그의 마켓홀(Market Hall)은 전통시장과 주거 아파트의 환상적인 조합으로 언제 보아도 감동적이다. 건축에는 문외한인 한 사람의 고작 현실적 시각의 작은 비평일 뿐 아무런 영향력도 없기에 편하게 떠들 수 있는 자유는 즐겁다.

렘 쿨하스의 마켓홀(Markthalle, 마르크트할레) 밖과 안 (사진=김윤정)
렘 쿨하스의 마켓홀 밖과 안 (사진=김윤정)
렘 쿨하스의 마켓홀(Markthalle, 마르크트할레) 밖과 안 (사진=김윤정)
렘 쿨하스의 마켓홀 밖과 안 (사진=김윤정)

그리고 이제는 친구들의 아이들도 다 성인이 되었고, 결혼을 하지 않고도 몇 십 년 째 부부처럼 사는 친구, 사별하고 재혼했다가 다시 이혼한 친구, 또는 이혼을 두 번이나 겪은 친구들이기에 더 이상 아이들 교육 문제나 남편과의 갈등 문제에서도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예전에는 커플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서로 이렇게 저렇게 양보하거나 어떻게 해보라고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는 그냥 그렇게 상대방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그대로 평생 살거나 아니면 지금이라도 끝낼 건지 결정하면 된다고 말해줄 정도로 조언은 단순해졌다. 희망은 인생의 중요한 동기가 되지만 때로 희망은 극복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희망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얼마나 실존적인가 말이다. 그 단순함은 다양한 복합적인 경험과 고난(?)을 겪은 사람들의 연륜에서 나오는 혜안이라고 우기면서 우리는 제법 단순한 결론에 이르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수다의 테마가 다양해지면서 진짜 맛난 수다, 그러니까 대화의 즐거움은 더욱 깊어진다. 각자의 가족사, 정치나 환경문제, 때로는 정말 기억도 못할 쓸데없는 잡담에서 부터 여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섹스 앤 더 씨티> 같은 은밀한 이야기까지 대화의 소재와 주제는 끝이 없다. 가끔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대화에서 생각지 못한 이상기류가 잠시 흐르기도 하지만 나는 점점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을 큰 화두로 두고 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고 늘 얼굴 보고 살아야 하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처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다.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관점을 존중하면서도 ‘나에게 강요만 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조건 아래 어떤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데 그런 전제조건까지는 아직 어쩌지 못한다.

가령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시작될 때 우리는 미투 운동을 지지함과 동시에 평생 쌓아온 명성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난도질당하는 남자들 뒤에는 섹스 어필로 성공한 여자들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도 이야기한다. 미투 피해 여성들만큼이나 그 반대의 여성들도 있다는 것이다. 환경 문제에 관련해서도 전기차를 독일은 국가적으로 권장하지만 과연 전기차는 정말 에너지와 환경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나중에 그 많은 배터리들, 그 전기를 충당하기 위한 발전소에서 나오는 유해 물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심지어 사고가 나면 문이 열리지 않는 전기차의 위험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 끝도 없이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 내서 생산해 내고 소비를 지속시키는 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우리는 얼마만큼 충실하게 그 바퀴 속에서 살고 있는가? 미디어와 세상 사람들이 한결같이 쏟아내는 것들에 대해 한번 쯤은 다른 각도로 각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얼굴을 마주하고 목소리의 톤을 듣고, 호흡을 느끼고, 흔들리는 눈동자를 바라볼 수 있는 수다의 맛은 문자를 주고받거나 SNS에서 몇 백 개의 좋아요를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요즘처럼 과도하게 숫자적으로 연결된 디지털 관계보다 그렇게 일부러 시간을 내서 단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움직이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나누는 무목적적인 대화들은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생각하고 지각하는 방식이 같을 수 없는, 똑같은 유전자적 인간이 아니기에 누군가를 절대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우정이, 친밀한 관계가 좋은 것은 이해할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의지의 문제이고 이 의지는 억지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했던 지나간 시간 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므로 오래된 친구들은 너무 소중하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서로 다를수록 각자 빛이 난다는 것도 알게 된다.

세 친구

나에게는 독일에서 만난 중요한 친구들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오래된 친구는 브리타이다. 브리타는 독일인답지 않게(?) 감정적이어서 눈물도 많고 쉽게 행복에 빠지고 쉽게 절망에도 빠진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새로운 독일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유학 초년생이었고 그녀는 한창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교생실습을 하던 때였다. 중간중간에 자기가 선생님이 되는 게 맞는가? 하는 자조적인 질문들로 방황하곤 했는데 지금 그녀는 너무나 훌륭한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여행을 가서도 문구점이나 서점에 들러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고 교재로 삼을 생각에 무언가를 열심히 사들였는데, 늘 아이들에게 어떤 주제를 어떻게 하면 더 흥미롭게 가르칠 것인지 골몰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는 그 열정에 내심 박수를 보내곤 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르는 일들에 경외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언젠가 자신이 하는 수업에 나를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니까 아이들이 그녀에게 달려와서 안기며 엉겨붙는 모습을 보면서 그녀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사랑 받는 선생님인지 알 것 같았다.

이십대에 우리는 휴가 때마다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 친구 샬루이스의 집이 있는 스위스로 여행을 가곤 했다. 자연을 사랑하는 그녀는 늘 스위스를 동경했었다. 휴가 동안 맘껏 편하게 샬루이스 집에 머무는 조건은 단 한 가지, 그가 어질러 놓은 테이블이나 부엌을 치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샬루이스는 정리된 집에 있으면 불안해진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엄청 많은 새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새의 소리만 듣고도 이름을 알았고 가장 괴상한 소리를 내는 새에게 가수 이름을 붙여 놓기도 했다. 그는 일 년에 한번 크리스마스 전에 미용실을 가는데 마치 악마와 천사 같은 전과 후의 사진으로 지금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온다.

브리타는 결혼 후 우연히도 그녀의 평소 바람대로 정형외과 의사 남편을 따라 스위스 뇌샤텔에서 5년간 살게 되었는데 그렇게 살고 싶었던 나라 스위스가 살아보니 녹록치 않더라고 고백했다. 산악인 기질의 스위스 사람들은 관광객 외지인들에게는 친절했지만 막상 자기들의 땅에 들어와 사는 외국인에게는 그렇게 호의적이진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그녀는 지금은 독일로 돌아와 자신의 고향인 즈빙겐베르크 숲속의 집에서 살고 있다. 정원과 맞닿아 산이 연결되어 있는 지점에 작은 사우나를 만들어서 우리는 가끔 산 아래로 보이는 마을을 보면서 수다를 떨며 사우나를 한다. 그녀는 작은 순간순간들은 좀 자기중심적이지만 막상 큰 일 앞에는 몸과 마음을 다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이타심과 인정이 많은 친구다. 우리는 가깝지 않지만 그렇게 멀지도 않은 거리를 오가며 시간을 함께 나눈다. 그리고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일 년에 한번씩 다시 이십대로 돌아간 듯 설레이는 여자들만의 여행도 하고 있다.

친구 브리타와 함께 (사진제공=김윤정)
친구 브리타와 함께 (사진제공=김윤정)
숲속 집의 사우나 (사진제공=김윤정)
숲속 집의 사우나 (사진제공=김윤정)

다른 친구 안나는 설명하자면 소설 한 편 써야 하는 인생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친구다. 그녀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꽤나 유명한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 아버지는 늘 부재했고 어머니는 그 허전함을 늘 엄청난 독서로 채우는 조금은 특이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엄마 곁을 떠난 이후 그녀가 불과 아홉살 되던 해 엄마는 자살을 했고 친구는 여기저기 떠돌며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아버지만 같고 어머니가 다른 형제들이 여럿 있었지만 가족의 결속력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하다가 피아노를 하는 이복 오빠를 만나게 되면서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고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그 오빠의 부인이 한국인 피아니스트였는데 두 사람은 피아노 콘서트를 다니며 꽤나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부인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고 장례를 치른 이후 오빠도 사랑하는 아내를 따라 자살을 했다고 한다. 친구의 불안과 불행은 계속되다가 남편을 만나면서 다시 안정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과 내 아들이 어린 시절 공원에서 둘이 친구가 되면서 우리도 자연스레 절친이 되었다.

큰 사업을 하는 안나의 남편은 독일에서 하는 내 공연의 후원도 해주었고 여행도 함께 다니며 우리는 돈독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 나는 주로 늘 가을에 공연이 잡혔고 아들은 같은 시기 학교에 큰 축제가 있어 엄마의 역할이 많을 때 나는 부재했는데 친구 부부는 나의 공연을 늘 지지해 줄 뿐만 아니라 기꺼이 엄마 역까지 도맡아 해주었다. 친구와 친구 남편까지 회사도 나가지 않고 아이 축제 기간 내내 함께해주고 비디오와 사진을 찍어서 남겨주곤 했다. 어느 날 그렇게 친구의 인생을 가장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으로 인도하던 그조차 갑작스럽게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남편이 암으로 병원에 있을 때 도저히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한밤중에 찾아와 나의 침대에서 유난히 큰 키를 웅크리고 잠을 자던 그녀는 어린아이 같았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예술가적 기질이 풍부한 그녀는 갑자기 남편을 떠나보내고 남편이 남겨준 사업을 이어 나가면서 경제적으로는 풍족해도 불안증에 치료를를 받아야 했다. 이제는 차츰 안정을 찾아가며 그녀의 예술가적 재능을 발휘하는 독특한 작품들로 그녀의 집은 그렇게 그녀만의 세상, 그녀만의 동굴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그녀만의 컬러풀한 부엌 한 켠에 라디오를 작게 켜놓고 요리를 같이하고 와인을 홀짝이며 추억을 씹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친구 안나와 (사진제공=김윤정)
친구 안나와 함께 (사진제공=김윤정)
컬러풀한 안나의 집 부엌 (사진제공=김윤정)
컬러풀한 안나의 부엌 (사진제공=김윤정)
거울 조각 정원 (사진제공=김윤정)
거울 조각 정원 (사진제공=김윤정)
그리고 정원에서 (사진제공=김윤정)
그리고 정원에서 (사진제공=김윤정)

또다른 친구 다니엘라는 화가다. 워낙 긍정적인 나보다도 심하게 초긍정적 마인드인 그녀는 유태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이스라엘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리고 요셉 보이스와 백남준이 교수로 있던 시절 쿤스트아카데미(국립미술대학교)에서 공부했던 자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녀는 잘 팔리는 작품보다는 진짜 자기가 원하는 작품을 그려보고 싶다고 할 정도로 꽤나 잘 나가는 작가다. 언젠가 그녀는 비밀리 나에게 생일 선물로 그림을 줄테니 맘껏 골라 보라고 했다. 그녀의 카탈로그를 신중하게 검토하던 중 그림에 꽤나 일가견이 있는 나의 독일 파트너는 그녀의 부엌에 걸린 그림에 그녀의 자유로움이 가장 잘 보인다면서 마켓에 나와 있는 그림 말고 그걸 택하라고 일러주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게 보였다. 친구는 그 그림은 팔려고 그린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주려고 그린 것도 아니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기꺼이 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다른 그림을 선택했으면 갤러리에 소속이 되어 있기에 팔지 않아도 몇 퍼센트는 자신도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 선택에 우리는 모두 흡족했고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 그림을 모셔왔다.

그녀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20년 전부터 출품을 하고 거절당하기를 반복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나는 왜 안 되는가? 하는 연락을 끈질기게 하다가 결국 초대작가로 선정되었었다. 어찌 보면 예술가에게 재능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그 다음은 끈기와 열정의 문제인 듯하다. 무엇보다 절실함으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두드리는 그 열정 말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시인이다. 가끔 책이 출간되면 오래된 카페에서 시를 낭독하고 대화를 하는 출판기념회를 열곤 했는데 시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분위기만으로도 취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그리고 그녀는 가끔 인도나 페루 같은 곳으로 아주 긴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친구들을 초대해서 여행 중에 찍은 영상을 상영하는 파티를 열기도 했다. 가끔은 너무 세상을 이상적으로만 보려는 그녀의 돈키호테적인 시선에 참지 못하고 브레이크를 걸기도 하지만 나의 직설적인 견해에 대해서도 겸연쩍은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그녀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소녀처럼 사랑스럽다.

친구 다니엘라 (사진제공=김윤정)
친구 다니엘라 (사진=김윤정)
다니엘라 (사진제공=김윤정)
친구 다니엘라 (사진=김윤정)
친구 다니엘라 (사진제공=김윤정)
친구 다니엘라 (사진=김윤정)

아들들끼리 유치원 시절부터 친구가 되어 자연스럽게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는 부부가 있다. 그들은 가장 이상적인, 평범하고도 행복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우리 둘 다 외아들인 우리의 아이들끼리 워낙 형제처럼 자라온 사이였고 내가 공연으로 집을 비울 때도 그 부부는 기꺼이 서재로 쓰던 방을 말끔히 치우고 아들 유진이의 방을 만들어 놓고 내가 집을 비워야 할 때마다 유진이를 보살펴 주었었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던 해 갑자기 남편이 부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을 나갔고 이혼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눈물로 지새는 부인을 찾아가고 또 우리 집으로 불러 그녀를 위로해주었다. “혹시 알아? 지금은 이렇게 슬퍼도 훗날 아이 아빠에게 너무 고마워하게 될지 말이야. 네가 지금보다 휠씬 더 행복한 인생을 찾게 될지 모르니까”라고 말이다. 그랬더니 자신은 젊은 날 남편에게 양보하며 자신의 커리어도 포기하고 살다가 이제 와서 중년이 되어 혼자가 되었다며 억을하다고 했다.

중간 이야기 건너뛰고, 지금 그녀는 스페인계 남자를 만나 재혼을 해서 심지어 자신이 대체 어떻게 그렇게 딱딱한 독일 남편과 이십년을 살았는지 모르겠다며 행복에 겨워하며 잘 살고 있다. 전남편도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 잘 살고 있고 그 집 아들은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양쪽 부모님 집에 오가며 각자 모두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결국에는 다 자기 자리를 찾는다. 물론 그 다음에 어떤 드라마가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옛 남편은 집을 나갈 때 이미 여자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떻게 부인을 두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질 수가 있어? 아니지, 행복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거니까 남자만의 탓은 아니지 않아? 그렇게 같은 상황에서도 제 삼자의 생각은 사실과는 관계없이 다 다르기 마련이다.

한 도시에도 수만, 수십만 편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다양한 인생 각자의 드라마들이 진행 중이다. 내 친구들과 나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단단하지 못한 말랑말랑한 자아 때문에 아직도 흔들리면서 가고 있지만 그 여정을 가까이, 때로는 멀리서 함께하면서 갈 것이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문득 찾아가서 문을 쾅쾅 두드리면 아무 때고 문을 열어주고 차 한 잔 내어주는 친구가 있고 서로 맘 놓고 아무 이야기나 나눌 수 있다면, 그리고 그런 친구들이 곁에 있다면 나이가 드는 과정이 한층 풍요로워진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한 인간이 일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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