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쓰다-4] 무용생활연구 - 평범하게, 때로는 비범하게
[춤을 쓰다-4] 무용생활연구 - 평범하게, 때로는 비범하게
  • 유화정 무용이론가
  • 승인 2023.01.30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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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유화정 무용이론가 = 세상에 비범한 사람들이 많아졌다. 표면적으로 무난한 듯 보여도 유별난 취향 하나 정도 갖고 있는 것이 평균이라, 튀지 않는 사람 찾기가 어렵다. 사전적으로 평범은 주류를 따르는 성향이고 비범은 다수의 사람들이 갖지 않는 성향인데, 비범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은 사실 모순이다. 독특한 취미라곤 일절 없는 무채색의 사람이 오히려 비범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 것처럼, 평범과 비범의 고정적인 성질이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비범한 사람을 굳이 찾자면 평범과 비범의 양면성을 동시에 실천하고 있는 사람일 것 같다.

변신하고 이동하는 비범한 취미

전공과 직업 그 어느 것도 무용과 관계없는 성인이 무용학습에 몰입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과거, 취미무용은 비범한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었다. 이제는 무용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 평범한 취미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전력을 다해 춤추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각자의 특별함을 빛낸다. 이들에게 무용의 의미란 거울 앞에 나로서 온전히 서는 경험, 타인과의 경쟁보다는 나 자신에게 집중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결실, 평소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신체 구석구석을 보듬는 시간 등 각양각색인데 다수가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경험으로 변신'이동의 의미가 두드러져 주목할 만하다.

가장 좋은 느낌은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을 때에요. 점점 겁도 많아지고 삶이 단조로워지는 것 같아서 아쉬웠는데 춤을 추는 순간은 꿈꾸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진짜 집중이 잘 되는 날은 몸도 가벼워져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요."  (한국무용 학습 3년차, 50대  K씨)

생활무용인들의 무용공연(사진제공=윤정아플랫폼무용단)
생활무용인들의 무용공연 (c)팝콘 (사진제공=윤정아플랫폼무용단)

카타르시스라고 하잖아요. 행복한 감정 슬픈 감정 다 꺼내서 동작으로 표현하고 땀이 막 날 정도로 열심히 한 날은 같은 작품을 다섯 번, 여섯 번 해도 힘든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작품 하나에 3분 정도인데 그 시간동안 멀리 여행 다녀오는 느낌이에요.” (현대무용, 스트릿댄스 학습 1년차, 20대 N씨)

스트릿댄스 수업 현장(사진제공: 최용원 퍼스트댄스학원)
스트릿댄스 수업 현장 (사진제공=퍼스트댄스학원 최용원)

춤추는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용에 몰입함으로써 상상 속의 시공간으로 이동하고, 또 다른 나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면 무용의 비범함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변신과 이동의 경험은 뇌과학적으로도 설명된다. 춤을 추면 심박수와 호흡이 안정적으로 변화하고, 근육의 이완과 수축작용이 활발해지고, 엔도르핀, 코르티솔, 도파민의 분비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동시에 정신적으로 잠재되어 있던 기억과 정보를 향상시킨다. 특별할 것 없이 살다가 눈을 돌렸는데 거기에 무용이 있었고 용감하게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이 변신과 이동의 신비로운 경험을 끊지 못하면서 생활무용인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춤과 뇌의 관계에서 더욱 흥미로운 점은 춤을 추는 사람뿐만 아니라 춤을 보는 사람에게도 일어나는 변화이다. 특정 춤을 춰본 사람은 유사한 춤을 추는 사람을 지켜볼 때 거울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 마치 레몬을 먹어본 사람이 레몬을 보는 순간 입 안에 침이 고이는 현상처럼, 춤을 보는 사람과 춤을 추는 사람의 뇌에서 서로 유사한 부위가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춤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 춤 감상도 깊이 있게 할 수 있음을 방증한다(참고자료: 김종성, 2020, 춤추는 뇌, 사이언스북스).

춤추는 사람과 춤 보는 사람 간의 얄팍한 경계

거울신경세포의 원리를 체험해서였을까, 우리 문화의 다양한 지점에서 춤을 보는 사람과 춤을 추는 사람 간의 중첩현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첫 번째로, 춤을 보는 행위에 몰입하다가 전문 예인으로 나선 사람들을 조선후기 한양의 풍류방(風流房)에서 찾을 수 있다. 풍류방은 당대 최고의 예인들과 그들의 예술을 사랑했던 중간계층이 만나 춤과 연주를 벌였던 일종의 동호회 공간이다. 고정된 장소에서의 영업 공간은 아니고 목적과 상황에 따라 시간과 장소를 바꿔가며 열었던 문화예술의 장인데, 풍류방의 존속을 책임졌던 중간계층의 남성들 중 일부가 예술 활동에 심취하여 전문예인집단인 가단(歌壇)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예인으로서의 활동을 펼쳤다.

혜원 전신첩_납량만흥, 신윤복, 19세기(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135호)
혜원 전신첩_납량만흥, 신윤복, 19세기(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135호)
전문 예인과 중간계층의 춤, 연주, 감상이 어우러진 풍류방의 정취

두 번째로 춤을 추는 역할과 춤을 보는 역할을 현장에서 맞바꿨던 사람들을 굿의 무감(舞感)서기'에서 찾을 수 있다. 굿은 우리 민족의 샤머니즘 의식이자 문화예술의 근원으로, 굿의 관장자인 무당이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고 연기를 하는 행위 끝에 접신하여 병이 든 사람, 슬픈 사람, 재수(財數)를 원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 일종의 퍼포먼스(performance)이다. 굿의 과정 중 굿을 보고 있던 사람이 무당의 옷을 대신 입고 굿판에 들어가 춤추는 절차를 무감 선다라고 말한다. 이 때 무당은 관객의 자리로 들어가 응망하거나 부근에서 악기를 연주했다.

세 번째로 춤추는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벅차 그의 춤을 모방하고 재창조하는 행위로 표출하는 사람들을 현대의 케이팝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 기획된 아이돌 중심의 음악 산업이 전 세계의 관심을 받으며 '케이팝'의 이름을 얻었고 그 인기의 중심에는 케이팝댄스와 팬덤 문화가 자리한다. 아이돌 산업이 시작된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가수의 춤과 외형을 완벽히 모방하는 데 초점을 두었던 '커버 댄스(cover dance)'가 화두에 있었고 그 후 '댄스 챌린지(dance challenge)', '랜덤 댄스(random dance)' 등 독특한 키워드가 등장하며 팬덤 문화로서 춤을 향유하는 방식의 확장이 이뤄졌다. 즉 가수의 춤을 그대로 재현하던 방식에서 나아가 팬들이 춤의 일부를 연출하여 전유하고, 말미에는 가수가 팬들이 재창조한 춤의 밈(meme)을 역으로 소비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팬들은 이제 가수의 춤에 자발적으로 관여하는 언론이자 후원자이며, 춤의 안무를 재해석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춰 보이는 역할까지 자처한다.

벨기에 브뤼셀 포레스트 내셔널 콘서트홀에서 열린 K-커뮤니티 페스티벌 콘서트, 2019
벨기에 브뤼셀 포레 나시오날 콘서트홀, K-커뮤니티 페스티벌, 2019
(사진제공=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케이팝 팬들이 한국에 와서 부채춤을 배우고 있는 현장, 2019 (사진제공=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케이팝 팬들이 한국에 와서 부채춤을 배우고 있는 현장, 2019
(사진제공=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이처럼 춤을 보는 사람과 춤을 추는 사람의 역할이 중첩될 때, 고유해보였던 평범과 비범의 경계는 어그러진다. 특히 춤을 추면서 변신과 이동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춤을 보는 활동만으로도 신경, 호흡, 심장박동의 변화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으니 평범과 비범의 양극을 넘나드는 사람이 된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서 취미무용인, 전문무용가,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에 어설프게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해보자. 평범과 비범, 생활무용인과 무용가의 경계가 앞으로 어떻게 재조직될지 그 틈의 괴리와 혼입을 감각하기 위해 세 명의 내러티브를 나열해본다.

A씨: 인생의 절반 정도를 내달리듯 살다 전환점을 찾아 무용을 만났다. 어릴 때부터 무용을 하지 않은 것은 콤플렉스지만 무용에 공을 들인지 15년 가량 지났다. 그간 훌륭한 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며 최고의 스승들을 사사했고 개인발표회도 열었기 때문에 이제 아마추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날 때부터 비범했다. 환경을 잘못 만나 늦게 시작했을 뿐이다.

B씨: 무용을 빼면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어린 시절부터 무용에 푹 빠져 살아왔다. 대학 졸업 후 다양한 메소드를 경험하며 창작활동을 했고 내 이름을 검색하면 꽤 많은 기사와 사진들이 나온다. 무용가로서 버티기 위해 낮 시간은 전혀 다른 종류의 일을 한다. 근래 코로나 때문에 수입활동에 차질이 생겨 쿠X 배달 일도 하고, 오히려 무용에 할애하는 시간보다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이 훨씬 많아졌다. 무용학원을 차릴 생각도 해봤지만 성격에 맞지 않고 돈은 무용이 아닌 평범한 환경에서 벌고 싶었다. 늘 비범하게 활동하는 데 집중하니까 평범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려니 생각한다.

C씨: 무용 전공으로, 대학 졸업 후 남들보다 이르게 결혼하고 출산까지 하느라 경력 단절된 지 10년째다. 친구들은 안무도 하고 강의도 하는데 나는 이제야 다시 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찾고 있다. 예전에는 나름 비범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지금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고 다시 시작될 내 인생을 기대하는 중이다. 몸이라도 풀고 싶은데 다시 춤출 곳이 마땅치 않다. 동네 문화센터 무용수업을 생각해봤지만 만족하지 못할 것 같고, 무용 전문단체의 문을 두드리기는 겁이 난다. 취미무용 학원은 주변에 많은데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 끼어 있는 것만 같다.

위의 세 사람이 처한 현실을 관찰하면 생활무용인과 무용가, 비전공자와 전공자, 취미무용과 전문무용으로 호명하는 일이 더이상 의미 없어진다. 평범과 비범의 간극이 좁아지다 못해 중첩되고 바뀌는 사례들은 긴 역사를 가졌고 지금 이 순간도 다양한 장르의 춤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순수한 진심으로 무용을 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문을 열어줄 너른 마음이 필요하다. 동시에 오랜 시간 감내하며 무용가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 온 사람들을 지켜줄 기준도 필요하다.

스트릿댄스 수업현장(사진제공=최용원, 퍼스트댄스학원)
스트릿댄스 수업 현장
(사진제공=퍼스트댄스학원 최용원)
스트릿댄스 수업현장(사진제공=최용원, 퍼스트댄스학원)
스트릿댄스 수업 현장(사진제공=퍼스트댄스학원 최용원)
발레 수업 현장 (사진제공=최용원 퍼스트댄스학원)
발레 수업 현장
(사진제공=퍼스트댄스학원 최용원)

 

유화정 무용이론가
유화정 무용이론가
hjyoo27@gmail.com
이대 무용과 박사. 어릴 적부터 춤춰온 몸의 기억을 머리와 손끝으로 전달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춤추는 사람들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을 포착할 때 짜릿함을 느낀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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