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11] 소극장 춤의 매력과 춤 작가들의 메시지
[낭만논객의 춤시선-11] 소극장 춤의 매력과 춤 작가들의 메시지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3.02.03 0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2022 송년시즌에 발견한 몇 편의 소극장 춤, 그 인상들

[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팬데믹 3년차에 접어들던 지난 봄 시즌부터 조심스레 움직이기 시작한 공연예술 장르, 여름을 지나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지역축제를 시작으로, 그 동안 숨죽이며 관망하고 있던 예술가들의 공연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지난 가을, 많을 때는 하루에 4-5편씩 춤 공연이 봇물 터지듯 무대에 오르면서 무용계 관계자들은 물론 마니아 관객까지 선택의 어려움을 토로하기에 이르렀다. 이 열기는 12월 초부터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리는 2022년 마지막 날까지 이어졌다. 필자는 꼭 챙겨보고 싶은 안무가들의 공연을 중심으로 우선순위를 정했다. 해서 서울은 물론, 지역의 춤판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길 위의 시간을 보낸 바 있다. 송년시즌 기억에 남는 소극장 춤들의 매력을 새삼 체감하면서 기분 좋게 2022년을 떠나보냈다.

‘공연예술의 메카’라 불리는 대학로, 혜화동 혹은 동숭동 부근에는 무용인들에게 친숙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공공극장인 아르코 예술극장과 대학로 예술극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와 함께 그 규모는 다르지만 200여 곳의 소극장 공간이 있지만 대부분 연극 전용극장이다. 무용장르 기획공연이나 대관공연들이 이루어지는 곳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과 조금 떨어진 전통춤 전용 성균 소극장이 전부라 해도 무방하다.

젊은 무용가들은 자신의 야심찬 첫 안무작을 상대적으로 열악한 무대에 올리고 싶지 않을 것이리라. 그럼에도 소극장 무대는 젊음과 참신함을 무기로 갖춘 신예 예술가들이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펼쳐 보일 수 있는, 아울러 무용가 개인의 춤 기량을 온전히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공간이다.

1975년 12월 초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 창단 이후, 한동안 돈화문 부근 공간사랑에서 시작된 소극장 춤 운동은 1980년대 신촌의 한국춤 전용 창무춤터와 종로 3가 미리내 소극장에서 소박하게 펼쳐졌다. 춤비평가 김태원 선생은 1980년대 76극단을 중심으로 연극에서 출발한 소극장 춤 운동의 중요성과 실험적 예술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무용 전문지와 포럼 등에서 피력했다. 현재 대학로 인근을 벗어난 민간 춤전용 소극장으로는 포스트극장, M극장 그리고 두리춤터가 대표적이지만 다양한 실험적 작품을 수용하기에는 불편하거나 관객 접근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다. 이른바 MZ세대, 젊은이들의 예술과 표현, 새로움을 담아내는 전용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에도 뭔가 조금은 불편하다. 이런 즈음, 작년 12월부터 이어진 공공 소극장 작품들 가운데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완성도 높고 춤 메시지를 전달해 준 인상적 작품들을 소개하려 한다.

장혜림 '침묵'
99아트컴퍼니 장혜림 안무의 '침묵'

우선, 몇 년 사이 한국 창작춤계를 대표하는 그룹의 일원으로 성장하고 있는 99아트컴퍼니 장혜림 안무의 <침묵>이 12월 소극장 무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 작품은 지난 2016년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과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제각각 다른 버전의 레퍼토리 공연으로 강한 춤 메시지를 담아냈다. 2022년 12월 3-4일, 초연 장소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서 또 다른 이미지 연출을 시도, 무대 왼쪽에 온전히 해체된 피아노를 미장센으로 노출시켰다. 초연 당시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한국으로 음악 유학(성악)을 온 소프라노 엘라 뫈자시의 노래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신 스틸러 역할을 묵직한 존재감으로 표출해 낸 바 있다.

그 옛날 아프리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선조 노예들의 마음까지를 필자에게 소환시켰다. 그녀는 오래전 아프리카의 아픈 역사의 상처를 대변해 냈다. 안무자 장혜림까지 출연, 이국적 분위기를 넘어 어마무시한 무대연출을 통해 춤 풍경을 그려냈다. 반면, 이번 2022년 버전은 음악 전공이 아닌 건축학도의 피아노 해체를 시작으로 피아니스트(강다니엘)가 합세해 초연에서 볼 수 없는 깨끗하고 선명한 주제의식을 각인시키며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한층 밀도 있는 안무력을 바탕으로, 외부 폭력에도 스스로를 달래는 몸과 마음을 더한 출연진의 위무의 힘을 ‘침묵’이라는 단어에 각인시키기 충분했다. 한편, 흰 사각 한지 무대에 남겨진 피멍울과 함께 장서이, 이고은 등 7명 무용수의 처연한 춤과 연기는 말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소리 없는 분노와 통곡의 몸짓을 ‘예스’ ‘예스‘라는 단어의 반복적 울림을 통해 고통스럽고 슬프게 펼쳐냈다. 그간 <에카> <숨그네> <심연> <제> <타오르는 삶>에 이은 99아트컴퍼니 출연진의 앙상블이 안무자의 절절한 메시지의 힘을 객석에 붉디붉은 ‘침묵’의 흔적으로 스며넣었다.

멜랑콜리 댄스 컴퍼니 정철인의 '비행'
멜랑콜리 댄스 컴퍼니 정철인의 '제로 그램(og)'

다음은 멜랑콜리 댄스 컴퍼니 정철인 안무가의 차례이다. 그는 후배 류지수와 남성 듀엣 <비행>을 발표하며 이미 안무와 춤의 결로 국내외 평단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몸의 중력’이라는 화두와 피지컬을 근간으로 격한 움직임을 실천 중이다. 아울러 <초인>으로 오브제와 무용수들의 일사불란한 에너지와 니체의 철학 개념을 작품에 녹여내 공연마다 평단과 관객들의 눈높이를 상승시켰다. 이후 <당신의 징후> <모빌리티>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긴장감, 그리고 진화하는 춤 작가로서의 이미지를 확인시켰다. 작품 <제로 그램(0g)>은 지난 2018, 2019년 연속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초연되었다.

이후 2021년 ‘스텝 업’ 지원사업에 다시 선정되며 레퍼토리 순회공연까지 이어진 명품 컨템퍼러리 공연으로 자리 잡았다. 해서 끈끈한 단원들의 합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가면서 공간을 촘촘히 활용했고, 온전히 튀어 오르는 공처럼 자유자재로 몸의 도발성을 무대에 풀어 놓았다. 그 강렬한 춤 기운이 객석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초연에서 30분, 재공연에서 25분여 중편 길이였던 이 작품은 12월 29-30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공연을 통해 50분으로 확장되며 보다 풍성해졌다. 무용수 1명이 가세, 긴장감이 높아졌고 몸의 운동성과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제로 그램’의 실체를 지근거리에서 숨소리를 넘어 거친 호흡과 땀으로 표현했다. 류지수 문경재 전중근 정철인 주영상까지 5명 남성 무용수 모두 강도 높은 극한의 움직임으로 운동성의 카타르시스를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했다. 신화 속 시시포스의 헤어 나올 수 없는 낙하의 반복적 행위에서 우리 인간 삶을 발견함과 동시에,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일탈의 움직임에 존재의 의미를 오롯이 담아내면서 땀과 열정의 정직한 마력을 실천했다.

멜랑콜리댄스 컴퍼니 정철인의 '비행'
멜랑콜리댄스 컴퍼니 정철인의 '제로 그램(og)'

세 번째 무대는 12월 29-31일 아르코 소극장에서 사흘간 공연된 춤판야무 금배섭의 신작 <WORK>였다. 소리 없이 강한 작업자의 아이콘으로 인정받는 금배섭은 주로 소극장 공간에서 꾸준하게 필모그라피를 축적하며 중견 안무가로서 위치를 확고하게 다지고 있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2021년 다섯 개의 솔로춤(5시간 30분 공연) 연작 시리즈를 발표,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지난 해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수여하는 작품상을 수상,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의 독창적 안무 코드는 마니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그는 무용학과 출신들의 통상적 작업과는 다른, 현장작업의 세심한 구성력 구현과 오브제를 활용하거나 혹은 휴머니즘을 근간으로 중의적 의미를 내포하는 명상과 사색 그리고 운명 점치기 등 스토리 텔링의 즐거움을 무심히 즐긴다.

금배섭의 'WORK'
춤판야무 금배섭 안무의 'WORK'

2009년부터 발표한 <미친놈 널뛰기> <섬> <니가 사람이냐?> <포옹> <간 때문이야> <횡단보도> 등을 통해 자신만의 운명 같은 사색과 오랜 생각들을 촘촘하게 나름의 계산법으로 재해석하며 객석에 웃음과 짠한 감성을 던진다. 인접 장르 연극과의 협업도 꾸준하게 진행하고 판소리꾼과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의 독특하고 실험적인 소극장 결과물들이 차곡차곡 쌓여 금배섭만의 색깔을 만들고 있다. 이번 작품 <WORK> 역시 우리가 평생 하는 일, 완벽한 가짜와의 결합, 우연한 시간이 전하는 감각을 ‘꿈’ ‘추락’ ‘대화’ ‘생년월일과 쌀과의 상관관계’ 그리고 ‘셰익스피어 <햄릿> 4막7장’을 재해석하는 등 다섯 가지 저마다 다른 명제를 영상작업을 더해 객석에 각인시킨다. 너무 친절한 배려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하기 전, 출연자들의 퍼포먼스는 상상 이상의 풍경을 노출시킨다. 또한 이색적 소품 활용과 퍼포머들의 진지함이 사뭇 존중심을 유발한다. 금배섭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먹먹함 그리고 사유의 시간을 관객들에게 넉넉히 선물해 주었다. 이 작품은 새해 1월 25일에 열린 한국춤비평가협회의 춤 비평가상 ‘베스트 6에 선정되었다.

한편, 2022 서울문화재단 창작지원사업에 선정, 성수동 대안공간 언더스탠드 애비뉴 아트스탠드 B18에서 12월 30일 단 1회만 귀하게 공연된 강요찬 안무 <구조와 의식> 역시 필자에게는 개념무용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켜 준 작업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는 국립현대무용단 기획공연 ‘스텝 업’에 선정돼 자유소극장 무대에서 선 보인 작품 <우리는>에서 일상의 다양하고 촘촘한 놀이정신 및 움직임과 개성 넘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바 있다. 이러한 그의 다양한 관심과 주제의식에 신선하다는 표현과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강요찬의 '구조와 의식'(사진제공=장승헌)
강요찬의 '구조와 의식'(사진제공=장승헌)

<구조와 의식>에서 그는 흰 사방 공간에 붉은 양탄자를 깔아 놓았다. 특별한 조명 없이 비닐 구조물과 세 무용수의 치열한 인간관계, 그리고 의상 디자이너(황석민)를 비롯, 스태프 정신이 더해진 신비로운 협업 작품이다. 천정 높은 이색 공간 속에 나름의 구조와 의자와 익명의 군중, 그리고 오브제들까지... 무심한 듯 진풍경 속 작업 결과물들을 작정하고 맘껏 펼쳐 놓았다.

계묘년 1월 15일, 새해 첫 무용공연을 만났다.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댑 댄스 프로젝트의 <>“hello world”,>(김호연 임정하 공동안무). 마지막 장면이 압권. 증강현실과 아이패드 기능을 적극 활용해 춤은 좀 보이지 않았지만 영상효과가 강한 매력적 공간연출에 시선이 머문다.

댑 댄스 '헬로 월드'(사진제공=옥상훈)
댑 댄스 '헬로 월드'(사진제공=옥상훈)

독창적이고 실험성 강한, 완성도 높은 무용작품들을 연속 보게 된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올해도 역량 있는 신진, 중견 안무가들의 ‘소극장 명품 공연 릴레이’를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