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짜르의 화려한 대관식,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의 데뷔 무대
[공연리뷰] 짜르의 화려한 대관식,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의 데뷔 무대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2.0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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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2일 롯데콘서트홀
얍 판 츠베덴의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 (사진제공=서울시향)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치 않은 츠베덴만의 연주였다. 앙코르곡인 드보르작 <슬라브 춤곡 제8번>이 끝나고나서야 마치 온몸이 감전된 듯한 긴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브람스로 시작하여 바그너와 요한 슈트라우스로 끝나는 여정은 무엇인가 전형적인 순서를 거스르는 듯한 배열이었고, 작곡가와 사조에서 기대하는 전형적인 해석과는 거리가 있는 츠베덴 그 자체의 음악이었다. 작년 서울시향 음악감독으로 지명 받고서 2024년 정식 임기를 시작하는 그는 당초 올해 4월 서울시향 무대에 데뷔할 예정이었으나, 전임 감독의 부상으로 갑작스럽게 선을 보이게 되었다. 단지 사흘간 리허설의 결과물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웠다. 서울시향의 이전과 전혀 다른 면모를 현악기의 응집력과 초점이 잘 맞는 목관의 앙상블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시향과는 첫 만남이었지만, 츠베덴은 그의 악기라고 할 수 있는 홍콩 필하모닉과 내한 연주, 그리고 이어서 경기필하모닉, KBS교향악단과 수 차례 연주에서 한국 청중들에겐 이미 잘 알려진 거장이다. 무엇보다 철저한 리허설과 훈련을 통한 트레이너로서의 면모로 한국 오케스트라에 새로운 전기를 불어 넣어 레벨 업에 크게 기여하리라는 기대가 크다.

강력한 근육질의 브람스 <교향곡 제1번>은 마치 샤를 뮌슈가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1968년 EMI 레코딩을 연상케 했다. 절묘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낸 '낭만적인 브람스'와는 거리가 먼, 활활 타올라 재도 남지 않은 강렬한 연주였다. 완전히 연소된 후 남아있는 강건한 구조의 아름다움은 또 다른 매력이었다. 제2악장에서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한 현악군의 일사불란한 합주에 불어넣은 긴장감은 오랜만에 느끼는 쾌감을 주었다. 하지만 역시 악장의 솔로 연주는 2% 부족했다. 마지막 제4악장 역시 얼마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내한한 틸레만의 연주와 오버랩되면서 개성 만점의 연주를 만끽하였다. 피날레를 향해 끝없는 저너머로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에 올라탄 듯하였다.

제2부는 바그너의 걸작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전주곡으로 시작했다.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 그의 시그니처 작품이다. 다만 장엄하고 웅장한 스케일로 다가오는 옛 거장들의 어프로치가 아니라 정교한 관현악이 치밀하고 섬세하게 울려퍼지는 색다른 면모였다. KBS교향악단 연주보다 좀더 섬세한 통제 아래 놓인 결과를 내놓았다. 바로 이어서 <트리스탄과 이졸데> 1막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을 연주했다. 여전히 음악에서 색채와 정서를 반쯤 덜어낸 듯한 다소간 창백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서울시향의 기능적인 탁월함을 음악에 앞서 보여주고 싶은 접근이 아닌가 했다.

얍 판 츠베덴의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 (사진제공=서울시향)

바그너 연주를 마치고 츠베덴은 뛰어 오르듯 포디움에 올라 번개처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 서곡을 들려주었다. 이 작품을 들으면 반사적으로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곡예와도 같은 구절양장의 묘기 대행진이 떠오른다. 하지만 츠베덴은 마치 격투를 벌이는 검투사의 그것과 같았다. 롯데콘서트홀에 일진광풍이 불었고, 오케스트라를 완전히 장악한 츠베덴의 전율적인 데뷔 콘서트는 막을 내렸다.    

카멜레온같이 다채로운 컬러를 구사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로 조련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얍 판 츠베덴의 시대가 열렸다. 정명훈이 만들었고 구현했던 수 많은 기적적인 연주는 이제 전설로 남은 느낌이다. 2024년 본격적으로 음악감독으로서 임기가 시작되지만 올해도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인 로얄 콘서트헤보의 최연소 악장으로 17년간 재임했고, 홍콩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등을 거치며 세계적인 거장, 특히나 누구보다 빼어난 트레이너로서 명성이 높다. 게다가 그는 엑스톤(EXTON)에 남긴 무수한 오디오파일 명반으로도 애호가의 사랑을 받아온 바 있다. 그의 모든 역량을 결집하여 대한민국 클래식 애호가의 가슴에 잊히지 않는 감동의 순간을 선사해 주길 바란다.

얍 판 츠베덴의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 (사진제공=서울시향)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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