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극 <견고딕-걸>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연극 <견고딕-걸>
  • 이미우 기자
  • 승인 2023.02.21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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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해의 또 다른 고통과 아픔에 대한 고찰
- 남겨진 짐을 짊어지는 용기에 대한 이야기
견고딕_걸 포스터 (사진제공=극단작은방)
연극 '견고딕-걸' 포스터 (사진제공=극단작은방)

[더프리뷰=서울] 이미우 기자 = 2022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인 극단 작은방의 <견고딕-걸>이 지난 2월 1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막을 열었다. 공연은 26일까지.

<견고딕-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 그 뒤에 남겨진 이들의 갈등과 고통을 다룬다. 남겨진 짐을 짊어지고, 은둔했던 삶과 이별하는 '견고딕-걸' 수민을 통해 현실 대면의 의미를 드러낸다.

“나 견고딕체로 말한다. 볼드까지 넣는다. 내 면상에 신경 꺼! 내 인상 내 인성 내 인생에 신경 끄라고!”

연극은 온통 까만 고딕 룩, 고딕 메이크업을 한 18세 소녀 김수민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포효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어떻게 인생을 끝낼지 고민하는 김수민은 살인사건 가해자와 얼굴이 똑같은 가해자의 쌍둥이 자매다.

2년 전, 동생 수빈이 전철을 기다리다가 한 사람을 철로로 밀고 본인도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타살과 함께 자살이 벌어진 사건으로, 살인을 저지른 피의자가 사망하면서 공소권은 소멸되었고 사건의 당사자는 이 세상에 없지만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숨 쉬고 있다.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가치들이 세상을 도배하며 펼쳐지는 동안 누구도 자신의 속마음을 가늠할 수 없도록 검은 고딕 메탈 스타일에 숨어 있는 가해자의 쌍둥이 자매 수민의 여정을 통해 뜻하지 않게 세상에 던져진 우리의 삶이 미래에 어떤 질문을 던지며 살아갈 것인지 자문하고 그 대답에 마주하는 작품이다.

수민의 여정에는 동행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피해자 한지은의 각막을 이식받은 화이트 해커 윤미나와 심장을 기증받은 강현지다. 이들은 수민이 피해자를 만나 사과하러 가는 일을 돕는다. 수민은 가해의 이유를 전혀 다른 곳에서 찾는 가족들 사이에서 홀로 피해자 앞에 마주 서려 한다.

“누군가의 상처를 마주할 때 견고딕의 굳은 마음이 녹기 시작한다.”

연극은 단지 가해의 또 다른 갈등과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비극 이후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살아갈 방법으로 마주한 대답은 '현실을 대면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실 대면이란 지금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이고, 그것은 상황을 회피하거나 이유를 다른 곳에 전가하지 않고 가해자가 남겨놓은 짐을 마땅히 짊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수민은 가해자의 책임을 짊어지는 과정을 통해 아이로니컬하게도 은둔의 삶과 이별하고 세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박지선 작가는 미국의 고등학교에서 총기참사를 일으킨 가해자의 가족이 쓴 책을 읽고 ‘만일 범인 또래의 형제가 있다면 그 아이는 이 거대한 진앙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이 희곡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작품 제목인 ’견고딕-걸‘은 누구도 위로할 수 없고 대신할 수 없는 견고한 슬픔 속에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하다가 견고딕체처럼 두텁고 강한 외피를 걸쳤지만 사실은 슬픔으로 취약해진 인물을 떠올리면서 나왔다. 감히 자신의 고통을 드러낼 수 없는, 평생 검은 상복을 입고 사는 듯한 가해자 가족의 죄책감을 견고딕이라는 이미지로 표현한 것.

발화하는 지문과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음악

특히 <견고딕-걸>은 발화하는 지문과 시각과 청각으로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게 특징이다. 보통 지문이 인물의 동작, 표정, 말투 등을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면, 이 작품에서는 인물의 심리를 대변해 주거나 극의 상황을 변화시키기도 하며, 때론 인물의 따뜻한 대변자가 되기도 한다. 지문은 배우의 입을 통해 발화되며, 인물 내면의 소리로 해석해 인물이 겪는 상황을 관객들 역시 감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간다.

또한 건반과 타악, 베이스로 이루어진 음악이 라이브 연주로 진행된다. <견고딕-걸>은 인물의 심리가 리듬 있는 대사로 표현되며 이것은 음악적 구성을 필요로 하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라이브 연주를 진행한다. 특히 타악은 극의 리듬감을 조절하며, 인물과 실시간으로 반응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배리어 프리의 새로운 가능성 제시

<견고딕-걸>은 장애인들을 위한 배리어 프리로도 진행된다. 전 회차 스크린을 통해 한글자막이 제공되며, 여기서 자막은 단순히 화면에 글씨만 나오는 형태가 아니라 청각장애인들도 소리의 효과를 자막을 통해 공연을 감각할 수 있도록 그래픽적인 부분을 추가했다. 또한 마지막 3회차 공연(2/25, 2/26)에서는 시각장애 관객에게 FM 송수신기로 폐쇄형 음성해설을 제공한다.

출연진은 배우 김채원 문가에 박세정 서지우 임예슬 등이며, <틴에이지 딕> <금조 이야기> 등을 통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신재훈 연출과 아르코 창작기금 수상 경력의 박지선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또 작가/음악가인 정준 음악감독, 작곡가 고수영, 퍼커션 및 타악 연주자인 윤두호, 베이스 최율태 등이 인물의 심리를 대변하는 음악으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그 외 무대디자인 송지인, 조명디자인 김효민, 의상디자인 이윤진, 분장디자인 장경숙, 소품디자인 이수진, 영상디자인 고동욱 등이 함께한다.

견고딕_걸 (사진제공=극단작은방)
'견고딕-걸' 장면 (사진제공=극단작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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