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겨울 끝자락에 첼로 선율이 전하는 모노드라마
[공연리뷰] 겨울 끝자락에 첼로 선율이 전하는 모노드라마
  •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01 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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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양욱진의 '겨울 나그네'
첼로 양욱진, 피아노 박민선 (c)placquie@
첼로 양욱진, 피아노 박민선 (c)placquie@

[더프리뷰=부산]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슈베르트(1797-1828)는 자신이 쓴 24개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초연을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원제목 ‘빈터라이저(Winterreise)’는 도이칠란트어로 ‘겨울 여행’이란 뜻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겨울 나그네라 부른다. 슈베르트가 발견한 뮐러의 시집 제목이 “빌헬름 뮐러의 방황하는 노래(Wanderlieder von Wilhelm Müller)”라서 그랬을까. 이 곡을 국내에 처음 소개했던 사람이 슈베르트보다 한 해 먼저 32세의 나이로 요절한 빌헬름 뮐러(1794-1827)의 원작시에서 나온 방랑자 또는 여행자의 개념을 빌려 '겨울 나그네'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겨울 여행’보다 ‘겨울 나그네’가 더 어울린다.

슈베르트는 〈겨울 나그네〉를 쓰고 있을 때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어쩌면 곡을 쓰는 내내 어두운 등잔 앞에 앉아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을지도 모른다. "상실의 끝은 어디인가? 사랑을 노래할 때마다 사랑은 고통이 되고, 술을 마셔도 슬픔만 생겨난다. 내 사랑의 끝은 어디인가? 이제는 슬픔이 더 깊어지고, 파고드는 한기(寒氣)는 뼛속까지 사무친다."

사랑하는 사람을 타인에게 잃은 뒤 슬픔에 잠긴 청년이 강과 길을 따라 마을을 지나고 공동묘지에 도착하여 죽음마저 자신을 외면하는 과정을 거쳐 발견하는 버려진 거리의 음악가까지. 상실이란 단일 주제를 한 시간 넘게 독백으로 노래하는 모노드라마에서 슈베르트는 삶이란 것이 원래 추운 겨울을 방황하는 나그네의 운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리의 음악가에 자신을 투영했다.

지난 2월 23일 부산문화회관 챔버홀에서 첼리스트 양욱진(인제대 교수)이 ‘보리수’라는 가곡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24곡을 첼로 음률로 선보였다. 피아니스트 박민선(인제대 외래교수)과 호흡을 맞춘 이날 무대 위에는 스크린까지 준비해 뮐러의 시가 연주 순서에 따라 올라왔다.

양욱진의 첼로가 상실감에 찬 남성의 목소리를 담아 나그네로 와서 나그네로 떠나는 고독한 비애를 관객에게 전달하려고 했다면, 함께 연주한 피아니스트 박민선의 연주는 화창한 봄처럼 즐거웠다. 이 연가곡 시리즈에서 노래하는 분위기는 햇살 가득한 봄날에 느끼는 그런 명랑함이 아니다. 황량한 땅으로 시집가서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고 흐느꼈던 왕소군의 심정과 비슷할 것이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기댈 곳 없이 떠도는 병들고 가난한 나그네인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인생의 허무와 절망을 노래한 것이다. 연주가 끝난 후 무대 뒤에서 만난 양욱진은 “연주하는 내내 어둡고 황량한 곳에 혼자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연주회에 가는 이유 중 하나는 라디오나 오디오로 음악을 듣는 것과 달리 실황에서만 볼 수 있는 다양한 기대감 때문이다. 현장에서 직접 듣는 음악뿐만 아니라 연주자의 모습과 환경까지 보는 것을 포함한다. 이날 무대에 띄운 뮐러의 시(가사)를 우리나라 시인의 손길을 빌려 좀 더 정제된 글로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을 남겼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몇 개의 오타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전체 해석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뮐러의 시와 교류한 것처럼 클래식 음악이 한국의 시인과도 교류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었다면, 그리고 그 해석이 누구 것이라고 밝혔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연주자는 악기와 연주, 의상과 자신의 모습 등 자신이 무대 위에 올려놓은 모든 장치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는 것 아닌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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