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음악으로 그려낸 약자들의 잔혹사 - 오페라팩토리 창작오페라 ‘양철지붕’
[공연리뷰] 음악으로 그려낸 약자들의 잔혹사 - 오페라팩토리 창작오페라 ‘양철지붕’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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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오페라 ‘양철지붕’ (사진제공=오페라팩토리)
창작오페라 ‘양철지붕’ (사진제공=오페라팩토리)

[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창작’이라는 단어는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3천 년 전 솔로몬이 쓴 전도서에도 나오듯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보니 창작자의 고통은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수많은 창작오페라가 재공연되지 못하고 일회성으로 사라진다. 강렬한 줄거리, 실험적인 음악적 시도, 대중적인 요소까지 갖추고자 하건만 관객은 좀처럼 알아주지 않는다.

오페라팩토리의 창작오페라 <양철지붕>(2월 16-17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이다. 2012년에 이미 연극으로 검증받은 고재귀 작가의 대본으로 만들어졌다. 최근의 창작오페라들을 보면 연극이 더 잘 어울리겠다 싶은 작품들이 많다. 사실적인 묘사와 날카로운 사회적 메시지 때문이다. 메시지가 무거우면 음악이 들리지 않을 때가 많고, 음악이 작품의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면 오페라의 기능을 상실한다.

<양철지붕> 역시 연극적 요소가 강한 어두운 주제의 작품이었으나, 음악과 연출로 무거운 대본을 섬세하게 빚어냈다. 작곡가 안효영의 음악에 힘입어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오페라가 나왔다.

현숙은 동생 지숙을 성폭행하려는 의붓아버지를 살해하고 이름도 바꾼 후 공사장을 전전하며 함바집을 운영하고 있다. 의붓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한때 현숙이 구원이라고 믿었던 애인 구광모. 그러나 자매에게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준 구광모는 또 다른 폭력자, 새로운 아버지로 변해갔고, 자매는 그런 광모를 피해 달아나 공소시효 만기만을 기다리며 숨어 지낸다. 광모는 기를 쓰고 자매를 찾아내 폭력과 협박으로 이들을 제압하고, 역시 자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의붓아버지의 아들 성호가 나타난다. 현숙은 때를 기다려 광모가 성호를 죽이도록 만들고, 광모는 공사장에서 가까워진 작업반장 기태가 죽이도록 계획을 꾸민다. 마침내 성호와 광모가 사라지자 자매에게 평화가 온 듯하지만, 관객은 곧 기태가 새로운 폭력자의 자리에 앉으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메조 소프라노 김선정, 바리톤 최병혁과 박경종, 테너 강현욱의 연기가 놀라웠다. ‘노가다는 막장이 끝이고 식당은 함바집이 끝인’ 밑바닥 인생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인부 3인조의 노래들도 기억에 남는다.

동생 지숙은 말을 못하는 언어장애인으로 나온다. 주은주 배우가 무대에서 지숙을 연기하고, 지숙의 속마음은 무대 뒤에서 소프라노 박미화가 노래하는 연출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연극적인 대사들 가운데 지숙의 노래들이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는 예술적 장치로 사용된다.

창작오페라 ‘양철지붕’ (사진제공=오페라팩토리)
창작오페라 ‘양철지붕’ (사진제공=오페라팩토리)
창작오페라 ‘양철지붕’ (사진제공=오페라팩토리)
창작오페라 ‘양철지붕’ (사진제공=오페라팩토리)

강물은 흘러, 바다로 가고

우리는 흘러, 망각에 닿네

오늘은 어제를 지우는 하루

내일은 오늘을 지워갈 하루

그들은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손에 피를 묻혔다. 잊으려 하지만 결코 잊히지 않아서 그들은 ‘죽지 못해 사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의 아픔과 절규를 누구도 들어주지 않아서 선택한 길이다.

이제 세상은 아무리 외쳐도

온 힘으로 소리쳐도 듣지를 않네

세상은 듣지를 않네

아무리 불러도, 아무리 울어도

듣는 사람 하나도 없네

하나도 없네

그들 손의 피는 또 다른 피를 부른다. 그러나 어디에도 완전한 구원이란 없다. 세상의 끝에 선 가장 약한 자에게 허락된 것은 뫼비우스의 띠 같은 폭력의 굴레일 뿐.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쳐 구원자인 주인에게로 갔으나 주인에 의해 나무에 매달린 백구처럼.

담배를 피던 아버지는 메리를 뒤쫓으며

녀석의 이름을 무서운 목소리로 불렀어

메리, 메리, 이리 와 메리.

그 순간 도망가던 메리는 발걸음을 멈춰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지

아버지는 이리 오라 메리에게 손짓을 하네

주저주저하던 메리는 결국 꼬리를 치며

아버지에게 다시 뛰어가 그 품에 안겼지

그리고 그렇게 나무에 걸려 죽어갔네

양철 조각으로 이루어진 지붕은 위태롭게 덜컹거리며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해 작품 전개에 효과를 더했다. 양철은 한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차게 식는다. 양철지붕은 더위도 추위도 막아주지 못한다. 죄악과 비극의 공간은 음악으로 인해 더 깊이 침몰한다.

함바집 자매 앞에 놓인 길은 여전히 지옥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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