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12] 서울남산국악당의 민간협업, 그 신선하고 의미있는 성과들
[낭만논객의 춤시선-12] 서울남산국악당의 민간협업, 그 신선하고 의미있는 성과들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3.03.1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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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방-권번춤나들이> ‘장인숙 희원무용단’ 공연

 

[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서울남산국악당과 민간단체들 간의 협업이 갈수록 적극적이고 흥미로운 양상을 띠고 있다. 공동기획과 공동사업을 대폭 늘리면서 제작 PD 시스템을 도입, 제작에 적극 참여하는 가운데 의미 있는 성과물들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충무로 남산 입구라는 서울남산국악당의 지리적 이점과 공연장의 특성을 고려한 작품 선별과 프로그래밍으로 ’선택과 집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한국 음악과 춤의 소통 채널로서 이미지 쇄신은 물론, 그간 이 공간을 잘 모르던 일반인들과 전통예술 애호가들의 박수갈채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획능력은 국악만이 아니라 전통춤 분야에서도 두드러져 보인다. 금년 첫 시도는 무용역사기록학회와 서울남산국악당 공동사업인 <코리아그라피 Koreagraphy>(1월 27-28일, 3회 공연)였다. 시의적절한 신조어 제목으로 10개 작품을 통해 무용가 각자의 개성과 국악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채로운 무대를 펼침으로써 단연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무용이론을 전공한 이들의 기획 협력과 연출에도 시선이 갔다. 최종 결과물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는 저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일단 관객몰이에서는 대대적 성공을 거두었다.

 

대한민국 대표 트로트 가수로 우뚝 선 송가인의 효심 가득한 기획 및 제작으로 마련된 어머니 송순단(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의 <무가2>(2월 11일) 무대는 공연 오래 전부터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송순단 무가 2집> 앨범 발매에 즈음해 이루어진 이날 공연에서 송 예인은 무려 3시간 동안 남녘 진도 무형문화재의 소중한 전통문화유산 ’씻김‘ 연희와 살아남은 가족들의 애통한 맘을 달래고 그 자리에 함께한 문상객들의 위로와 안녕을 기원하는 소리를 절절한 감성에 녹여내 먼저 떠난 영혼들을 위한 진도 특유의 정서를 고스란히 무대에 재현해 주었다.

이들 공연에 이어 필자는 각별히 지난 2월 17일과 18일 두 중진 무용가가 주도적으로 구성해 올린 <서울교방-권번춤나들이>를 놓고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고려시대부터 교방청에서는 다채로운 재능을 가진 예인들을 양성해 왔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기생조합을 통해 ’기생‘이라는 최초의 직업춤꾼들이 고도의 훈련과 엄격한 교육 아래 전통예술의 모든 교육을 학습하고 그 결과물들을 세간에 널리 전파해 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권번‘이라는 특별한 공간에서 여러 예인들의 다채로운 활동이 소리 없이 소문으로만 전해지는 그들만의 숨겨진 문화로 이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특별 신분들만이 향유하는 유흥문화로 전락하면서 당사자 및 직계가족들까지 조금은 숨기고 싶어 하던 시대가 이어졌다. 게다가 유신시대에는 적폐의 온상이란 위정자들의 오판으로 이런 춤들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권번춤은 이제 우리 전통춤의 테두리 안에서 당당하게 한국춤 미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영호남 지역 세 명인, 김수악(진주), 조갑녀(남원), 장금도(군산) 권번춤의 예맥을 잇고 있는 서울교방(예술감독 김경란)의 이름은 무척이나 정겹다. 한편으론 따스함과 묘한 먹먹함이 동시에 교차한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기 위해 권번에서 ‘해어화’라는 이름 없는 기생의 신분으로 살아 온 예인들의 춤이 우리 주변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던 무렵, 김경란 명인과 그녀의 제자들인 전문 춤꾼 70여 명이 모여 만든 춤 수련터이자 네트워크 모임이 서울교방이다. 그들은 연중 제 각각 무용단의 이름으로, 혹은 모두가 모여 함께하는 공연과 행사들을 통해 활발한 전통춤 시대를 이끄는 모임으로 성장했다. 이들이 지난 2월 17-18일 이틀간 서울남산국악당과 공동기획으로 두 개의 다른 프로그램을 통해 권번춤의 진정성과 열정을 관객들에게 한가득 안겨준 것이다.

김수악제 김경란류 살풀이춤(사진제공=옥상훈)
김수악제 김경란류 살풀이춤(사진제공=옥상훈)

 

첫 날 무대는 장인숙 희원무용단의 <춤의 정원-4대를 잇다>로, 20대부터 30-40대, 그리고 50대 장인숙, 성윤선과 60대 후반인 김경란 예술감독까지 여러 세대를 아우르며 기쁘고 아름다운, 진심어린 춤을 펼쳐보였다. 유인상 음악감독의 지휘아래 소리꾼 어연경과 김보라의 민요, 그리고 구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춤 반주음악이 객석에 청각적 즐거움까지 덤으로 선사해 주었다. 첫 무대는 장인숙의 <논개별곡>으로, 진주권번을 대표하는 김수악제 김경란류의 살풀이 춤이다. 논개의 충절을 담고 있는 만큼, 비장한 여인의 마음을 대변하듯 살풀이 수건의 휘날림까지 공간을 결연하게 물들인다. 오래 전부터 서울과 진주를 오가며 김수악 명인의 교방굿거리와 살풀이춤을 사사한 그녀의 춤집의 내공과 춤의 결은 일순간 기생 논개의 모습으로 빙의되며 관객들의 몰입감을 고조시켰다.

조갑녀제 김경란류 쌍승무(사진제공=옥상훈)
조갑녀제 김경란류 쌍승무(사진제공=옥상훈)

 

다음 무대는 남원 권번의 조갑녀제 김경란류 춤을 재구성한 <쌍승무>. 흔히 불교의식무의 하나로, ‘구도와 해탈’의 춤으로 알려진 <승무>는 장단의 흐름에 긴 장삼의 휘날림이 공간을 장악하는 신묘한 힘의 완급조절이 핵심이다. 엎드린 채 시작되는 무형문화재 <승무>와는 다르게 무대로 걸어 나오며 시작하는 조갑녀류 승무는 스승 이장산 예인에게서 물려받은 호남지역 민속춤이다. 검은 장삼과 흰 고깔은 연꽃과 나비로 장식되고 청/홍의 대비적 색감의 미학은 이 춤의 시각적 흥미를 자극한다. 승무 북을 무대 가운데 자리시키고 2인무의 대무로 재구성한 홀춤은 장인숙의 재해석이 눈길을 끈다. 김채린, 심지윤의 호흡은 서로의 마음을 북가락과 장삼자락의 뿌림이 마치 한 사람의 춤인 듯 착시현상마저 불러일으키는 느림의 미학, 그리고 양쪽에서 두드리는 북가락이 희열의 순간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특히 북의 위치를 바꿔가며 한 마음으로 동요 없이 힘차게 두드리는 두 젊은 춤꾼은 북 장단의 흥겨움을 물론, 긴 호흡과 강약의 조절, 그리고 비워낸 마음의 결로 객석에 신묘한 기운을 오롯이 안겨주었다.

김수악제 김경란류 교방굿거리춤(사진제공=옥상훈)
김수악제 김경란류 교방굿거리춤(사진제공=옥상훈)

 

세 번째 춤 역시 김수악제 김경란류로, <교방굿거리춤>인데 4인무로 재구성했다. 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된 이 춤은 어쩌면 서울교방 식구들이 가장 많이 추는 권번춤의 교과서 격으로, 현재 수많은 춤꾼들이 저마다 조금씩 춤사위를 바꾸어 보여주면서 관객들에게 친숙해진 춤이다. 원래 김수악 선생의 구음으로 널리 알려진 이 춤은 진주 남강의 봄빛을 닮은 노란색 저고리와 남강의 푸른 물결을 상징하듯 짙푸른 치마가 어우러지고, 남색끝동이 너무도 밝은 기운을 전해 준다. 경상도 춤의 본질인 굿거리장단으로 다소곳이 시작한 이 춤이 중반에 이르면 무용수들의 얼굴이 너무도 화사하게 변하며 무대공간을 사랑스럽게 물들여 놓기 마련이다. 장인숙의 특별한 구성력이 다시 빛을 발하는 순간. 김서현, 배우진, 김진성, 이정현은 마치 촘촘하게 잘 짜인 씨줄과 날줄의 춤사위로 ‘젊음과 청춘’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도 밝고 신명난 춤판을 이끌어 간다. 이윽고 동여맨 치마폭의 맵시가 일견 성숙해진다. 후반부 소고놀이를 시작하자 관객들의 호응은 추임새와 박수로 화답을 하기에 이르고 발사위와 바닥을 두드리는 소고채의 울림이 아직 이른 봄의 기운을 노출시키며 노란 개나리 빛 춤꾼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며 다시 예의바른 인사로 대미를 장식한다. 참으로 경상도 춤의 매력을 새삼 인정하게 하는 전통춤이다.

다음은 우정 출연한 서울교방 장고 명인 성윤선과 윤민정의 사제동행 <노래가락 장고춤>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민요에 답하는 흥과 신명이 객석을 흥분시키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 김병섭류 설장고를 변주한 성윤선의 무대 장악력은 명불허전이다. 아울러 김보라가 부르는 민요와 유인상의 장고 장단까지 합세해 마당춤의 별미를 무대화시킨 두 춤꾼. 장고가락의 기세가 놀랍기만 하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처럼 보이는 풍경이 다섯 번째 춤에서 펼쳐졌다. 권번의 엄격한 사제간 예절과 존경의 마음이 흠씬 스며드는 춤이다. 장인숙 희원무용단이 지난해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선정 프로젝트를 통해 서촌 한옥 상춘재에서 용기있게 소개한 <권번춤 기행 여동의 꿈>에서 이미 이 풍경을 단아하게 선보인 바 있다. 50여 명의 관객을 안방에 모셔놓고 어린 여동들의 민살풀이춤을 보여주면서 춤학습 풍경을 재연했었다. 이 엄격하지만 사제지간의 정이 물씬 묻어나는 엄정아, 김서현 등 7명의 여동들이 단아한 기본 춤사위로 시작을 알린다. 군무의 구도까지도 정갈하다. 흰색의 기본 한복으로 살포시 손을 들며 시작한 권번 입문자들의 조심스런 마음이 객석에 가감 없이 전해진다. 처연한 아쟁과 대금 그리고 장고 장단이 그녀들의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이윽고 무대 하수에서 권번춤 2세대이자 서울교방 예술감독인 김경란이 등장하자 서로 마주하며 먼저 여동들이 머리 숙여 인사를 올리고 스승 김경란이 화답의 목례를 하자 뒷걸음으로 소리 없이 무대를 빠져 나간다.

이제 명인 김경란의 남원권번을 대표하는 조갑녀제 <민살풀이춤>의 장고 장단으로 묵직한 연주 음악들이 가세한다. 민살풀이춤은 남도시나위와 구음가락이 처연한 춤이다. 대부분 명주수건을 흩날리며 춤꾼의 마음을 담고 있지만 그 명주수건 없이 맨손 춤사위로 손끝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드는 ‘특별한 맨손 춤’이다. 그만큼 어깨 사위와 이어지는 손의 결, 그리고 흰 한복이 상징하는 한민족, 그 역사 속 권번 여인들의 애환이 손장단에 오롯이 담겨 있다. 느린 장단으로 이어지는 무게감 있는 김경란의 춤은 언제나 처연하고 단단한 비장미를 보여준다. 그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조갑녀제 <민살풀이춤>은 금년 탄생 100주년을 맞은 남원 조갑녀의 춤을 김경란류로 재구성해 중견 무용가들이 각자 저마다의 호흡으로 전승 진행 중이다. 다소 무거워진 분위기는 영상을 통한 그리움의 시간으로 대체된다. 1분 30초 분량 ‘권번춤 기행’의 시간여행 스틸사진이 편집되면서 옛 권번의 모습들을 재현한다.

김경란의 조갑녀제 민살풀이춤(사진제공=옥상훈)
김경란의 조갑녀제 민살풀이춤(사진제공=옥상훈)

 

이제 공연의 대미를 장식하려는 중진 무용가 장인숙이 6인무 <구음검무>의 가운데 자리를 지키며 비장하게 서 있다. 조명이 들어오면 등을 돌리고 있던 주역 무용수인 그녀가 조심스레 방향을 튼다. 소리꾼 김보라가 종을 울리며 내뱉는 조용한 대사가 서늘하고 엄숙하다. 두 세 줄, 대사 내용은 이미 객석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어느새 5명의 춤꾼이 무대 양쪽을 통해 자리를 잡고, 조용히 양 손에 든 칼을 소리 없이 내려 넣고 다시 일어선다. 이제 장단과 함께 오방색 한삼을 뿌리며 장단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이미 춘천공연예술제를 시작으로 2022 서울국악축제 등 여러 무대에서 소개되어 박수갈채를 받은 이 6인 <구음검무>는 여러 지역 기본 대무형식의 검무를 뛰어넘은 ‘검무의 재발견’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현재진행형의 감각과 한국 여인의 강인함과 충절정신, 검이 주는 매서운 손목놀음과 함께 공간을 휘감는 칼이 부딪치는 쇳소리가 주는 날카로운 음향 파장효과는 경이롭기 그지없다. 이 <구음검무>는 향후 여러 축제나 공연에 러브콜이 충분히 예견된다. 어쩌면 <부채춤>이나 <사물놀이>, 그리고 궁중정재를 노래한 BTS의 <대취타>에 이어 케이댄스(K-Dance)의 최전선에 우뚝 자리매김할 가능성도 충분하리라 예견해 본다.

둘째 날 기획공연 <6개의 봄>에서는 서울교방 중견 동인 6명이 각자 자신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춤을 선택해 무대에 섰다. 김회정의 ‘봄 눈’ <민살풀이춤>, 성미나의 ‘매화가 피는 창’ <구음검무>, 김은희 ’꽃마중‘ <교방굿거리춤>, 김혜윤(25현가야금/박순아)의 ‘끝 봄’ <논개별곡>, 그리고 이상연의 ‘다향‘ <승무>가 이어졌다. 마지막 순서는 ’남색고름‘을 부제로 서울교방 지킴이 서정숙의 군산권번 장금도제 김경란류 <민살풀이춤>이 장식했다. <6개의 봄>은 중견/중진 무용가들이 권번춤의 다양한 표현력과 함께 동시대성을 고려한 70여 명의 춤꾼을 대표해 각자의 향기로 봄을 맞는 용기 있는 실천의지, 민간단체와 기관이 함께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배려한 또 하나의 완성도 높은 공연이었다. 오래도록 관객들의 잔상에 아스라이 남아 있으리라. 전통예술이 전하는 세월의 흐름과 그 정서를 통해 넘치고 넉넉한 시간을 제공해 주기에 충분했다. 3월과 4월로 이어지는 서울남산국악당의 전통춤 공동기획 공연, 조갑녀 탄생 100주년 <류-조갑녀>와 <김숙자 선생 추모공연>에도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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