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음악으로 인간성의 회복을 꿈꾼다 – 조이스 디도나토
[인터뷰] 음악으로 인간성의 회복을 꿈꾼다 – 조이스 디도나토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3.1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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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2017년 <전쟁과 평화>, 2022년 <에덴>, 그리고 올해 3월 7일 링컨센터에서 발표한 <오버스토리 서곡>.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노래하는 무대 위의 디바 조이스 디도나토(메조소프라노)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3월 14일은 피아니스트 크레이그와 함께 하이든과 말러, 헨델부터 재즈와 샹송에 이르는 폭넓은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그리고 16일에는 <오버스토리 서곡>을 아시아 초연으로 세종솔로이스츠와 함께 연주한다. 3회의 그래미상 수상, 2회의 그라모폰 수상을 비롯한 숱한 수상 경력은 그녀의 음악적 행보와 대중성을 증명한다. 공연을 앞두고 13일 신사동의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에서 조이스 디도나토와 인터뷰를 가졌다.

조이스 디도나토
조이스 디도나토 (사진제공=두나이스)

2019년 첫 내한 이후 4년 만입니다. 첫 내한 때의 기억을 듣고 싶네요.

대단한 경험이었어요. <전쟁과 평화> 앨범으로 공연했었는데, 따뜻한 한국 청중의 호응과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에 놀랐어요. 인천공항을 떠나면서 “I will be back!” 한국에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결심했죠. 4년 만이군요.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전 세계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14일의 무대에서는 제가 고독에서부터 기쁨에 이르는 감정을 모두 노래합니다. 의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네요.

3월 14일 공연은 ‘조이스에게 기대하는 모든 것을 들으실 수 있다’고 홍보되었답니다.

리사이틀에서는 최대한 다양한 곡을 선보이려 합니다. 저와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음악을 느껴보면 좋겠네요. 저는 운이 좋게도 정말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연주해왔습니다. 이탈리아, 프랑스, 클래식, 바로크, 재즈, 드라마, 아주 평화롭거나 재미있는 곡까지. 무대에서 지금까지 걸어온 나의 궤적을 보여주고 싶어요. 내가 음악가로서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는 거죠. 커다란 감정적 임팩트를 선사하는 것이 제 희망사항입니다. 제 음악을 듣고 춤추는 분도 있다면 환영입니다.

지난 3월 7일 뉴욕에서 세계초연된 <오버 스토리 서곡>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군요. 클래시컬 리뷰에서 "조이스가 아니라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신작을 두 번째로 한국 무대에서 공연하는 데 저도 굉장히 흥분 상태랍니다. <오버스토리 서곡>은 세종솔로이스츠가 토드 마코버에게 위촉해 발표된 곡입니다. 토드의 차기 오페라 <오버스토리>를 압축해 보여주는 서곡이죠.

리처드 파워스의 소설 <오버스토리>는 자연, 특히 나무를 들여다보는 내용입니다. 이미 우리는 과학의 진보를 통해 나무들이 지하에서 소통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나요. 작품은 나무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명체들의 소통과 공존을 조명합니다. 우리가 아이팟으로 K-pop을 들으며 길을 걷는 순간에도 지하에서는 자연의 소통, 소통의 네트워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요. <오버스토리 서곡>을 통해 우리는 소통에 귀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지하에서 일어나는 소통을 느껴보세요. 음악으로 우리가 얼마나 소통하고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지. 뉴욕 공연에서는 정말이지 청중이 아무도 숨 쉬지 않을 정도로 몰입했답니다. 서울에서도 같은 기대를 해봅니다.

21세기 현대음악의 핵심인물인 작곡가 토드 마코버와의 인연을 말해주세요.

토드는 정말 놀라운 마인드와 상상력의 소유자예요. 그러면서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답니다. 그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리듬과 화성, 전자음을 들으면 신기하지만 항상 재미있게 즐기며 작업하지요.

1999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의 <부활>에서 주역을 맡으며 토드와 처음 만났습니다. 어렵고 드라마틱한 캐릭터였지만 음악가로서의 지경을 넓혀주는 작품이었어요. 그리고 <오버스토리 서곡>으로 두번 째 작업을 하는데, 과학자 패트리샤 웨스터퍼드가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이끌어가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으로 저를 생각해주어 정말 기쁘지요. 여성 과학자가 나무와 나무 사이의 교감을 연구하는 이야기로, 지난해 발표한 <에덴>과도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자연과 세계를 탐구하는 내용이거든요. 내년에는 <에덴>을 가지고 다시 한국 무대에 서고 싶네요.

정치적인 음악가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음악가들의 사회적 책임이나 역할은 무엇일까요. 어제 한국의 젊은 성악도들과 만나보셨지요.

모든 예술가가 사회적, 정치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예술가의 책임은 예술을 진실하게 창조해내는 것이죠.

저는 보았습니다. 난민, 수감자, 소외계층의 아이들을 만났을 때, 음악이 그들의 삶을 바꾸어놓는 것을 현실에서 목도했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고, 사람들이 종종 잊고 사는 휴머니즘을 상기시켜주고 싶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할 필요는 없겠지만, 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행동하는 것이죠. 조이스라는 시민은 목소리와 마음과 플랫폼을 통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습니다.

어제 한국의 젊은 성악도 50명을 만났는데 그들은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에 목말라 있더군요. 한국은 다양한 문화와 전통, 예술이 꽃피어나는 르네상스를 맞고 있어요. 모든 나라들이 그렇지는 않기에 한국에 대해 깊은 존경심이 듭니다. 이번 무대를 통해 저도 한국인의 정서, 마음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한국은 젊은 음악가들이 전 세계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처럼 뒤늦게 데뷔해서 세계를 사로잡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끝없이 도전하고 진로를 수정하면서 꾸준히 추진해가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많이 노력했습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욕구를 세상이 받아들이지 않는 데 대해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해야 했었지요. 20대의 나는 오페라 무대에서 요구하는 대로 따라야 했고, 배운 대로 불러야 했습니다. 입으라면 입고, 정해놓은 방식을 그대로 재현해야 했지요. 가수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나의 소리를 막고 있는 모든 것들을 떨쳐버리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음악적인 훈련은 계속 했지만 가면을 벗어야 했습니다. 가면을 벗었을 때 비로소 조이스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었어요. 예술가에게 ‘내가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내 기쁨과 열정을 진실하게 그대로 표현해야 해요. 물론 제 의견을 가로막고 제 표현을 묵살하는 이들이 있었지요. 그래도 계속 노력했습니다.

사실 오페라 가수들에게는 힘든 일입니다. 가수들은 한 음 한 음 내는 소리와 단어, 연기에서 모두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으니까요. 물론 가수는 발성과 테크닉을 마스터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훈련보다 사람의 마음을 터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젊은 성악가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끝까지 인내하라. 참고 기다리라. 나를 찾도록 노력하라.

Diva라는 호칭을 싫어한다고 들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인간 조이스로 불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무대에서는 디바이고 싶습니다. 제가 여왕 같은 권위있는 캐릭터를 할 때가 많거든요. 오케스트라를 압도하는 노래를 불러야 하고요. 디바의 어원이 divine(신성한)인데, 모차르트나 헨델을 부를 때 숭고한 어떤 느낌에 휘감기곤 하지요. 하지만 무대 밖에서는 그냥 조이스로 불러주세요.

재즈를 부를 때는 다른 느낌이 드나요?

14일 공연 중반에 부를 ‘오 내 사랑(Caro mio ben)'은 바로크와 재즈의 가교 역할을 해줄 곡입니다. 크레이그의 편곡으로 그래미상을 받은 앨범 <Songplay>에 실린 곡으로, 사실 모든 성악가들이 처음 배우는 아리아일 거에요. 저는 클래식한 발성을 사용하면서도 재즈의 느낌을 덧입혔는데, 듀크 엘링턴의 ‘고독’이나 ‘장밋빛 인생’ 같은 곡에도 역시 다른 색채를 더해보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바로크 연주에도 비슷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양식을 따른 음악이지만 새로움을 추가해야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영화 <돈 룩 업>을 가리켜 환경에 대해 모른 척하는 사람들과도 같다고 한 바 있습니다. 환경을 다룬 <오버스토리 서곡>이나 <에덴> 프로젝트를 통해 스스로 변화된 생각이 있나요. 예술가로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오버스토리 서곡> 역시 해피엔딩은 아닙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지요. 작품에 나오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고, 이제 다음 단계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달려있는 거죠.

<에덴>은 기후변화를 생각하며 시작한 프로젝트이지만 점차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탄소감축이나 기후변화에 대한 운동을 펼칠 수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왜 우리가 이 시점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생각해야 해요. 인간사회는 인종차별이나 불의, 경제적 불평등 같은 문제들을 양산해 왔는데 사실 해결 방법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공동체로서 어떻게 서로 연대할 것인가, 어떻게 관심을 갖고 서로를 돌볼 것인가를 고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에게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에덴>을 통해서는 이런 생각들이 강화되었습니다.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도구가 아닌가 합니다. 마치 직물처럼 촘촘하게 말이죠. 그리고 마음을 만지는 도구이기도 하죠. 정치와 종교가 아닌, 인간성을 회복하게 하는 역할로서 예술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그런 예술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는 데 저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한편 인터뷰에 함께한 피아니스트 크레이그 테리는 첫 내한 무대를 앞두고 스릴을 느낀다고 말했다. 세계무대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는 한국 예술가들의 본진이므로.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조이스와 수없이 호흡을 맞춰왔는데 매번 새롭고 신선한 연주였습니다. 그녀는 같은 곡도 수천 가지 방식으로 표현해내거든요”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의 또 다른 크레이그 테리를 꿈꾸는 피아니스트들에게 “자기의 것을 자신만의 소리로 표현해야 합니다. 흉내와 모방은 예술성의 적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조이스 디도나토는 아직까지 호흡 레슨을 받고 있다고 했다. 바로 크레이그 테리의 오랜 룸메이트로부터. 성악가에게는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는 무대에 오르기 전에 끝낸다. 무대에 오르면 그녀에게는 청중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한국 청중과의 뜨거운 교감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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