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모니터] "클라이밍: 시지프스가 가진 유일한 저항의 언어"
[공연모니터] "클라이밍: 시지프스가 가진 유일한 저항의 언어"
  • 나수진 무용이론가
  • 승인 2023.03.3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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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컴퍼니의

[더프리뷰=서울] 나수진 무용이론가 = "수직의 절벽에 매달려 가까스로 버텨보지만 결국 손의 힘이 풀리면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 평범해 보이는 악몽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어딘가에 매달려 있고, 날마다 어디를 향해 오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른바 실존의 문제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2022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모든컴퍼니은 이러한 현대인들의 고민을 담아 2월 3-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On the Rock>을 올렸다. 이 작품은 안무가 김모든이 스포츠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한 세 편의 시리즈 중 하나로 클라이밍은 펜싱에 이은 두 번째 소재다.

"인간의 삶은 목표를 향한 도전과 시련, 성취와 좌절의 연속이다." 매달리고 버티고 미끄러지다 끝내 정상에 오르는 클라이밍의 몸짓만큼 우리 인생을 잘 표현해주는 오브제가 있을까? 이 작품은 이러한 모티브에서 탄생했다. 무대에는 암벽을 상징하는 가벽 세트가 세워졌다. 무용수들은 그 위의 오브제와 서로의 몸을 홀드 삼아 벽을 오르내렸다. 관객이 무대 위 클라이머에게 감정이입되어 저마다의 암벽 위에 자신을 매달고 고통과 희열을 맛보게 하는 장치가 흥미로웠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사진제공=ChadPark)
모든컴퍼니 'On the Rock' 공연 (c)ChadPark

작품의 시작과 함께 가로 조명 위로 무용수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처음에는 오가는 이를 무심히 스쳐 지나가거나 잠시 멈춰서서 객석을 응시할 뿐이지만 곧 몇몇이 손으로 입과 코를 가리고 기침하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모두가 가파른 암벽에 매달리게 되었다는 위태로운 상황에 대한 상징적 묘사이다. 사실 팬데믹이라는 인류 공동의 위기는 광범위하고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는 했지만, 근원적인 위기는 아니다. 우리는 날마다 다양한 실존적 위기에 놓인 채 단단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살아간다. 암전 후 드러나는 벽 설치물은 이러한 상황을 직관적으로 설명한다. 실제 암벽이나 클라이밍장의 인조 벽체와 달리 무대 위 가벽에는 테이블, 의자, 책장, 시계 같은 오브제가 달려있다. 이러한 벽은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마저 극복할 대상이 되는 실존의 문제를 무대 위로 소환한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또 어디를 향해 올라가는 것일까? 왜 올라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우리는 클라이밍에 내몰려 오르고 또 오른다.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현대인들의 실존 양식이다.

매일 우리는 중력을 거슬러 침대에서 일어나 앉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우리는 사무실에 출근할 때도 집에 돌아올 때도 계단 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수직의 공간을 활강한다. 매달려 ‘버티고 오르는 행위’는 삶의 곳곳에서 우리를 침윤케 만든다. 인간은 자기 안의 한계를 넘어서서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질량이 큰 개체일수록 중력의 영향을 크게 받듯이 인생이라는 클라이밍 역시 욕망의 크기와 무게만큼의 저항을 수반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동물과 달리 끊임없이 더 큰 것을 욕망한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사진제공=ChadPark)
모든컴퍼니 'On the Rock' 공연 (c)ChadPark

수평적 무대에 익숙한 관객에게 수직 공간과 파스텔톤의 색감, 음영으로 연출한 기하학적 무늬, 루프탑 위에 걸려 있는 달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 작품 속 배경 같은 몽환적인 공간감을 자아낸다. 이러한 초현실적 공간감을 지닌 벽을 배경으로 무용수가 다른 무용수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거꾸로 올라타는 등 다소 기괴한 모습으로 오르내린다. 이로써 극복할 대상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불확실하고 복잡한 현실과 내면의 불안함이 고조된다. 무대세트 곳곳에 문을 만들어 등장과 퇴장에 활용한 점 또한 특별하다. 문으로 들어오는 빛줄기와 옷장 문을 열고 퇴장하는 무용수의 모습은 극한의 상황에서 쉼표 혹은 물음표를 던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때로는 당연한 것에 대한 체념이나 반문이 희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무대장치, 오브제와 더불어 무용수들의 다양한 몸짓은 인간 존재의 좌절과 갈망을 적나라하게 시각화한다. 오브제와 서로의 몸을 의지해 높이 올라갔던 무용수의 몸이 이내 바닥으로 떨어진다. 혹은 애써 잡은 견고한 자세가 허무하게 흐트러진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온 힘을 다해 살아도 시시각각 넘어지고 때로는 추락하기까지 하는 인생을 재현하는 듯했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사진제공=ChadPark)
모든컴퍼니 'On the Rock' 공연 (c)ChadPark

<On the Rock>은 ‘인간관계’에 집중한다. 군무와 듀엣으로 다양한 움직임을 구현하며 자기 극복이나 목표를 향한 도전만큼 절실한 ‘관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무용수들은 서로 부딪히거나 사람 ‘인(人)’ 형태로 기대기도 하고 다른 이에게 안기며 상호작용한다. 바닥에 드러눕는 듯하다가 어느 순간 서로 허리를 숙이고 몸을 붙여 어떤 이를 위한 디딤돌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그러한 인간 바위 위에 우뚝 서거나 심지어 사뿐히 걸음을 옮긴다. 이로써 무용수들은 자신의 길을 걷는 동시에 불현듯 서로의 벽이 되는 관계 문제를 형상화한다. 각자 동그란 빛을 따라 돌다가 어느새 또 다른 빛을 돌며 마주 오는 사람과 어깨를 맞대고 힘겨루기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손바닥이나 어깨, 무릎 등으로 몸을 지탱한 채 멈춰있는 무용수에게 다른 무용수들이 자기 팔과 다리를 엮어 바닥을 누빈다. 이윽고 몸을 타고 오른다. 즉 무용수들 스스로가 ‘올라서서 버텨야 하는 인간 바위’가 된다. 이로써 무용수의 몸 자체가 모든 오브제를 넘어서는 가장 중요한 오브제가 된다. 이는 ‘관계’를 작품의 서브 주제로 끌어올린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장-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그곳에 자리하고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의 오브제로, ‘알 수 없음’의 상태로 존재하지만 동시에 그 지옥인 타자로 말미암아 내가 실존할 수 있다는 역설을 잘 보여준다. 혼자서 외로이 고군분투하는 듯한 순간에도 절망인 동시에 그곳에 그저 존재하기 때문에 비로소 나로 하여금 바위를 지고 산을 오르도록 만드는 타인들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알고 보면 그들도 그들만의 무대에서 나와 비슷한 춤을 추며 자신을 극복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로써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지 혹은 조력자, 곧 발을 디디거나 잡고 버틸 크랙 혹은 홀드가 된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사진제공=ChadPark)
모든컴퍼니 'On the Rock' 공연 (c)ChadPark

솔로 부분에서는 각자가 고독하게 암벽을 오를 때의 처절함이 만개한다. 한바탕 군무를 춘 뒤 정돈된 무대에 등장한 무용수가 신발까지 고쳐 신으며 의지를 다지지만, 곧 무대 바닥 여기저기에 그어진 조명선에 갇히고 만다. 또 다른 무용수는 암벽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오브제 위에 올라가려고 애쓰지만 자꾸 미끄러지고 바닥에 뒹굴기 일쑤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한계를 넘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려는 열망은 더욱더 커져만 간다. 이러한 몸부림은 관계의 벽, 성취를 위한 도전보다 더 심오한 내적 가치들을 향한 갈망을 연상시킨다. 이들이 기어이오르며 도달하고자 한 것은 암벽 곧 삶에 자신을 붙어있게 만드는 가치관, 정체성이 아닐까? 인간은 늘 불안함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시행착오와 유혹에 흔들리며 여러 번 미끄러지고 떨어져 본 후에야 자기 나름의 오르는 방법을 소유하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클라이밍은 ‘극복’의 다른 말이다. 동시에 <On the Rock>의 클라이밍은 ‘도전’과 ‘성취’의 상징이다. 특히 한 무용수의 음성 언어가 몸의 언어에 더해지는 순간 이는 한층 더 명료해진다. “시간이 빨라지거나 느려지거나, 지금 · 과거 · 새로운 시간이 매 순간 생겨나는 것, 그것이 지금인가. 지금은 우리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비슷한 일상이 무한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우리의 매 순간은 언제나 새롭다. 따라서 이 외침은 ‘바로 지금’이 도전해야 할 적기임을 일깨워준다.

모든컴퍼니 'On the Rock' (사진제공=ChadPark)
모든컴퍼니 'On the Rock' 공연 (c)ChadPark

거듭 실패할지라도 도전을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지만 도전 자체를 포기하면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기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암벽의 한 지점에 매달려 버티기에 급급할 게 불 보듯 뻔하다. 이러한 <On the Rock>의 메시지는 꽤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추측하건대 이번 작품이 실패를 반복할지언정 끝내 도전을 멈추지 않음으로써 맺은 결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들이 무대를 수직으로 세우고 중력을 거스르며 관객에게 건넨 몸의 언어는 자신들 앞을 가로막은 견고한 벽을 넘어선 경험담이 틀림없다.

다만 너무 움직임 자체에만 치중한 듯한 인상이 아쉽다. 이러한 구성이 오르거나 버티는 삶의 여러 단상을 담아내기 위한 선택임은 분명하지만, 리드미컬한 모션과 극도로 절제된 정적 움직임의 배합이 오히려 더 큰 충격과 떨림을 자아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러한 동적 움직임은 스포츠를 무용의 소재로 삼은 만큼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였으리라. 그래서 스포츠의 움직임으로부터 치밀하게 관찰된 응용, 안무로 그 특성을 충실히 구현한 점이 이 작품에 창조성과 혁신성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만약 "미끄러지고 굴러떨어져서 더는 올라갈 수 없는 상황도 괜찮다. 클라이밍의 목표는 정상이 아니다."라는 현실을 실제로 반추하는 주제의식이 투영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는 시지프스의 바위는 꼭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한 관객의 이러한 작은 바람이 모든컴퍼니의 다음 클라이밍, 곧 이후 작품에 홀드가 되어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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