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을 쓰다-8] 코레오그라피, 그리고 안무의 확장
[춤을 쓰다-8] 코레오그라피, 그리고 안무의 확장
  • 윤지현
  • 승인 2023.03.31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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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윤지현 무용연구자 = 우리는 방송을 통해 다양한 경연 프로그램을 접한다. 요리와 제과제빵, 취업, 심지어 일반인이 참여하는 연인 찾기도 서바이벌 형식으로 제작, 방송된다. 대중가수들의 가요 경연은 부지기수이고 아이돌그룹의 구성이나 새로운 가요의 제작도 경연 프로그램으로 방송되곤 한다. 그러니 힙합과 방송댄스 등의 춤 경연이 방송 프로그램으로 제작되는 일이 놀랍지는 않다.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댄스경연 방송은 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춤을 만드는 사람, 곧 안무와 안무가를 드러냈다. 사회 일반이 춤과 춤의 창작과정으로서 안무에 주목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안무'에 주목하다

2013년 엠넷(MNet)이 제작한 <댄싱9> 공연예술 장르인 현대무용과 대중춤 장르인 스트릿댄스와 힙합, 댄스스포츠 등 다양한 춤 장르의 무용수가 공동으로 참여한 안무경연 프로그램이었다. 정해진 음악에 맞춰, 그리고 무용수의 창의와 개성이 잘 드러나는 춤 공연을 구성하여 경합을 벌이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춤 자체가 아닌 춤을 만드는 안무를 주요 소재로 다뤘다. 2022년 엠넷의 댄스크루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스트릿맨파이터><스트릿우먼파이터>도 그러하다. 보여주는 춤의 경연만이 아니라 스트릿댄스 계열 안무가의 안무 과정을 댄스 크루의 연행과 함께 소개했다. 스트릿댄스 계열의 경연 프로그램에서 안무를 칭하는 영어 ‘코레오그라피(choreography)’는 춤의 장르이자 스타일을 표현하는 용어처럼 사용되었다. 10년 여 전 춤 경연 프로그램이 공연예술로 외화되는 퍼포먼스 이면의 안무'에 대중적 이목을 끌었다면, 2023년 오늘은 스트릿댄스의 코레오그라피가 생경한 외국어가 아닌 춤 현장의 일상어로 유입되었음을 확인하게 한다.

춤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전시

하버드대학의 예술과목 중 하나인 안무개론(Introduction to Choroegraphy)의 제시카 버슨(Jessica Berson)은 다음처럼 과목을 소개한다. “(~) 시간, 공간, 무게와 같은 요소를 탐색하는 움직임을 위한 움직임, 시각적 이미지, 텍스트, 소리와 같은 원자료의 사용, 스토리텔링과 등장인물, 자전적 서사 등 다양한 재료를 생성하는 전략을 탐색한다. 이어 병치와 축적, 역학이나 움직임 특성의 변화, 소품, 음악, 성격, 공간 관계의 사용 등 재료를 다루는 다양한 방법을 탐색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완성된 안무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 초연한다.” 이 교과과정 소개의 요지는 안무의 요소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근대적 공연예술인 춤을 만들 때 고려해야 할 요소들과 안무가의 역할을 가늠하게 해준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댄스 100>은 춤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서 안무를 소재로 한다. 대중춤 영역의 8인 안무가가 100인의 무용수를 무대에 세워 안무를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다. 우승자 1인에게 10만 달러의 상금이 시상되는 서바이벌 방식이다. 매회 제일 낮은 점수를 받은 안무가는 탈락한다. 첫 회 안무가들은 7인의 무용수로 안무 경쟁을 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무용수의 수는 늘어나고 무대의 규모는 커진다. 안무가는 선택된 음악에 자신의 개성과 창의로, 무용수의 개성과 역량을 살린 무대를 구성했다. 음악의 해석과 안무 프로젝트의 콘셉트에 맞는 움직임의 구성, 소품과 의상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는 과정이 전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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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오그라피, 스트릿댄스의 스타일들

스트릿댄스에서 코레오그라피는 이들 공연과 뮤직비디오에 비춰지는 춤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국내에도 코레오그라피를 전문으로 하는 댄스크루도 있고, 이들의 재능을 보여주는 쇼와 행사도 다양하다. 춤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안무가의 개성과 실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코레오그라피는 음악의 정서와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인 동시에 그 자체로 관객을 즐겁게 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안무를 소재로 하는 경연 프로그램의 방영과 그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

코레오그라피는 스트릿댄스의 스타일로 해석된다. 힙합과 브레이킹, 락킹, 왁킹 등 다양한 춤 양식을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차용하여 새로운 춤을 구성하는 양식으로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국내의 스트릿댄스 현장을 관찰했던 이아로미는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류의 춤을 국내에서는 어반댄스(urban dance)로 불렀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어반댄스는 점차 코레오그라피로 대체되었다. 그에 따르면 2020년 미국의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는 사회적 의제와 운동이 부상하면서 이 용어의 사용은 잦아들었다는 것이다. 곧 지역과 인종을 초월한 BLM 운동의 사회적 동참이 확산되면서 곧 문화예술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흑인음악으로 구분되던 어반뮤직(urban music)이란 용어의 사용을 자제하는 가운데 어반댄스의 사용도 잦아들었다. 이에 근래에는 국내외에서 어반댄스 대신 이 작업의 특성을 살린 용어인 코레오그라피를 사용한다.

스트릿댄스 현장의 코레오그라피는 다양한 장르를 구별 없이 하나의 작업에 사용한다. 이런 점에서 장르를 구분하기보다 장르의 경계를 해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코레오그라피는 스트릿댄스의 장르로 인식되기보다는 안무가에 따른 스타일로 수용되는 상황이다. 안무가의 수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스트릿댄스 코레오그라피가 존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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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공연예술로서의 춤과 안무

춤은 여느 공연예술과 마찬가지로 공연되는 순간 사라진다. 연극은 희곡에 기반하여 공연되고, 그 공연의 근거가 되는 기록물인 희곡이 있다. 음악 연주는 악보를 기반하여 공연되니 역시 공연의 근거인 악보가 있다. 이에 반해 인간의 몸으로 연행되는 춤은 행해지는 순간 흔적 없이 사라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대적 공연예술로서 춤의 등장은 재공연을 위한 춤의 기록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무용학자 안드레 레페키(André Lepecki) 1589년 투아노 아르보(Thoinot Arbeau)가 쓴 무용지침서 오르케조그라피(Orchesographie)에서 코레오그라피라는 용어가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코레오그라피는 고대 그리스어의 춤을 의미했던 코레이아(choreia)’와 쓴다는 의미의 그라피아(graphia)’가 결합한 합성어이다. 춤추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춤의 특성으로 인해 스승의 춤 기술을 전수 받고자 했던 이들은 춤 쓰기로 스승의 부재에 대비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연행 이후 춤을 기록하고 보존하려 한 근대의 기술이 코레오그라피였다. 1700년대 발레 마스터였던 라울-오제 푀이예(Raoul-Auger Feuillet)가 춤의 창작을 위해 춤 쓰기를 하기까지 코레오그라피는 춤의 기록과 보존을 위한 기술이었다. 코레오그라피(1700) 라는 저서를 남긴 푀이예는 춤의 연행에 앞서 춤 쓰기의 기술을 사용했다. 푀이예가 언급한 '창작을 위한 춤 쓰기'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안무의 개념에 가깝다.

안무의 확장’, 동시대 안무의 최전선

근대 공연예술로서의 춤은 연속적인 신체의 움직임을 주요 매체로 무대 위에 스펙터클을 만든다. 그 구조화된 움직임을 미리 짜놓는 작업이 안무이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이후 무용계에서는 근대적 안무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예술실험적 작업들이 시도되었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한 다원예술축제 봄페스티벌이나 다원예술 분야의 창작지원 사업의 존재는 이러한 작업 경향의 존재를 증명하는 사례이다. 2010년대 초반 이후 국립현대무용단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의 다수 실험적 공연과 수행적 전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미리 짜놓은 구조화된 움직임 대신 즉흥적이고 반사적인 몸의 반응을 끌어내거나 무용수의 신체와 움직임 대신 발화와 마임을 시도했다. 영상과 텍스트의 차용, 렉처와 설치, 전시 등의 작업이 안무의 이름으로 시도되었다. 이는 근대적 무용공연의 시간성과 장소성의 한계에 도전하고, 몸의 매체성을 기계와 기술과의 접점에서 찾는 등 안무의 확장으로 전개되었다. '안무의 확장은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MACBA)20123월 진행한 컨퍼런스의 제목인 확장된 안무(expanded choreography)’에서 소개된 개념이다.

레페키는 국내에 번역된 코레오그래피란 무엇인가-퍼포먼스와 움직임의 정치학에서 연속적인 몸의 움직임이 근대적 공연예술로서 무용의 본질이라고 정의하고, 코레오그라피는 근대적 공연예술의 기술로 수용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확장된 안무에 이르면 안무는 근대적 안무의 개념과 대척지점에서 관찰되는 작업이다. 곧 근대적 안무가 미리 정해진 무언가, 즉 춤을 제작하기 위해 사용되는 일련의 프로토콜 또는 도구라면 확장된 안무분석과 생산을 위한 포괄적 역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개방형 도구의 클러스터 라고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은 주장한다. 동시대 공연예술에서 안무는 근대적 안무 개념에서 확장된 안무로의 변형을 실험하고 있다. 

스트릿댄스의 코레오그라피는 가히 열풍이라 할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일반의 관심이 코레오그라피에 가닿는 일이 전에 없던 현상이라는 점에서 예술의 지형 변동에 일조하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누군가 안무의 최전선을 묻는다면 그 답은 스트릿댄스 계열의 스타일로서의 코레오그라피는 아니다. 경연 프로그램 속 스트릿댄스의 코레오그라피는 근대적 안무를 재생산할 뿐이다. 근대 공연예술의 규준을 전복해온 '확장된 안무에서 시대와 불화하는 힘을 본다. 하여 안무의 최전선은 동시대 예술의 확장된 안무에 형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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