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마침내 마주하게 된 라흐마니노프의 진면목
[공연리뷰] 마침내 마주하게 된 라흐마니노프의 진면목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1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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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든 최 X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앵콜 콘서트
브랜든 최 X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앵콜 콘서트 포스터 (사진제공=뮤직앤아트컴퍼니)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2023년 4월 8일 세종체임버홀. 모든 연주를 마치고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가 청중에게 그간의 소회를 밝혔다. “작년 9월에 시작한 라흐마니노프와의 여정을 이렇게 앵콜 콘서트로 마무리해서 기쁘다. 올해는 라흐마니노프의 탄생 150주년이자 서거 80주년으로 의미가 깊다. 올해를 위해 계획했고, 음반도 발매했다. 다음에는 일리야와 함께 모든 작품을 암보로 연주하기로 약속했다.”

브랜든 최 공연 모습 (c)Photographer CWC

재능이 넘치고 명민한 두 예술가가 분명한 방향성을 가지고 치밀하게 프로그래밍한 콘서트를 통해 필자는 격동의 세월을 살다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 예술의 진면목을 마주했다.

색소폰이라 하면 바로 재즈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프랑스 리옹 국립음악원과 미국 신시내티 음대를 거치면서 충분한 음악적 자양을 흡수했고,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작곡가를 역임한 수산 보티의 색소폰 협주곡을 세계 초연하는 등 클래식 음악가로서 주목을 받아온 브랜든 최는 이것이 단지 선입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그간의 행보에서 입증한 바 있다. 미주와 유럽의 주요 연주 무대 그리고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뿐 아니라 국내외 콩쿠르 입상을 통해 명실상부한 예술가로서 위치를 다지고 있다.

브랜든 최 공연 모습 (c)Photographer CWC

라흐마니노프는 그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걸작인 <교향적 무곡>에서 색소폰을 통해 그의 첫 번째 교향곡을 지휘했던 글라주노프를 기리는 동시에 고향을 향한 수구초심을 그렸다. 그만큼 색소폰은 그와 깊은 인연을 가진 악기이다. 이런 점에서 브랜든 최는 또 하나의 걸작인 <첼로 소나타>를 색소폰으로 접근하여 작품의 본질을 투영해 냈다. 악기 특유의 깊으면서 풍부한 사운드를 통해 첫 악장에서 그는 매력적인 저역의 농담을 미묘하고 섬세하게 조절하여 라쉬코프스키의 강력한 피아니즘과 절묘한 대조의 미학을 자아냈다. 강렬하면서도 보다 유려하게 흐르듯 표현한 제2악장도 좋았고, 낭만적인 감성이 폭발하는 제3악장에서 연주는 절정을 이뤘다. 애절하면서 감미로운 저음의 효과가 극대화하면서 색소폰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마음껏 발휘했다. 높고 낮은 음역대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활달한 운지로 마음껏 기술적인 자유로움을 표현한 마지막 악장도 좋았다. 연주 내내, 그간 들었던 첼로 연주가 오버랩되면서 브랜든 최만의 음악성이 분명하게 인식되었다.

그가 이처럼 효과적인 연주를 하도록 한 훌륭한 조력자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의 뒷받침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실 필자가 그의 연주에 대해 다시 한번 주목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 작품이었다. 어느 첼리스트와 협연 무대에서 라쉬코프스키는 이 곡의 놀라운 연주를 들려주었고 그간 음반을 통해 접했던 완벽한 연주가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경험을 필자에게 선사해 주었다. 그 뒤 박유신과 취입한 음반(SONY)에서도 어떤 역사적인 명연에도 견줄만한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예리하고 강력하고 명료한 피아니즘으로 낭만적인 감정의 격랑을 몰아치도록 쏟아내는 그의 깊은 음악성이 돋보였다. 이날 라흐마니노프의 여러 독주 피아노 작품의 하일라이트를 엄선해 들려주었는데 천둥번개가 치다가 이내 촉촉하게 눈시울을 적시는 서정으로 가득했던 피아노 연주의 꽃밭이 펼쳐졌다. 프로그램의 구성 역시 훌륭해서 강렬함과 서정성을 골고루 맛볼 수 있는 조화로운 짜임새가 일품이었다.

브랜든 최 공연 모습 (c)Photographer CWC

이들의 아름다운 조화는 앙코르로 들려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에서 절정을 이뤘다. 낭만과 서정 그 자체였다. 한 가지 더, 1부의 마지막 연주곡이었던 크라이슬러 편곡의 <기도>는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의 두번째 악장을 모티브로 한 작품인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원곡이 색소폰과 피아노로 적절하면서도 자유자재로 변모하며 전개되는 악상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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