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Koreality? Co-Reality?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KOREALITY'
[공연리뷰] Koreality? Co-Reality? 상상과 현실을 오가는 'KOREALITY'
  • 김미영 무용평론가
  • 승인 2023.04.1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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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LITY' 공연 장면 (사진=Marcus Bomski)

[더프리뷰=뮌스터] 김미영 무용평론가 = 2023년 3월 10-11일 독일 뮌스터 품펜하우스 극장(Theater Im Pumpenhaus).

누군가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누군가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각자의 안경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것 위주로 보게 될 확률이 높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쉽지 않은 이유는 이 모든 과정에 무의식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정체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각자의 눈으로 바라본 대상의 특성 정도가 될 수 있겠다.

이번 작품 <KOREALITY>를 보기 전 나의 머릿속은 꽤나 불편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한국성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머나먼 독일의 무용팀이 한국성을 이야기하겠다고 하는 데다가, 더구나 안무가가 일본인이라니.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겨 먼저 서울무용센터에서 진행 중이던 작업과정을 들여다보았다. 한국적이기보다는 일본적 정서와 독일 표현주의적인 성향이 두드러져보였다. 안무가 와키 요시코(바디토크무용단 예술감독)는 한국을 대표하는 한국성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저 외국인으로서 대외적으로 알려진 한국에 대한 정보들을 중심으로 관광객으로서 며칠 살펴보며 경험한 인상과 이미지 위주로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고 했다.

'KOREALITY' 공연 포스터 (사진=김미영)

초연은 독일 뮌스터에서 이루어졌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문화과학부, 뮌스터 문화부, 라이프치히 문화부의 지원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뮌스터 초연에 이어 라이프치히에서도 무대에 올랐으며, 가을에는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개막공연에 이어 베를린, 뮌헨, 쾰른 등지에서 순회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시댄스와 바디토크의 공동제작으로 출연자는 전원 한국인이다. 정필균, 조아라, 표혜인, 신혜수, 전중근, 이도현, 이현섭, 강다솜이 공동창작자 겸 무용수로 무대에 서고, 강안나가 음악감독으로 함께한다.

너무 좋은 기회를 얻어 초연작을 보기 위해 독일의 뮌스터로 향할 수 있었다. 종교개혁 30년 전쟁의 마침표를 찍는 베스트팔렌조약이 체결된 도시 뮌스터는 독일 북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위치해 있다. 대학도시라고 할 만큼 학교와 학생들이 많고 특히 자전거를 주요 이동수단으로 이용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을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다. 일조량이 연간 6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흐린 날씨의 도시답게 도착한 날 뮌스터 공항엔 눈보라가 치고 있었다. 흐리다 비오다 눈오다를 반복하더니 결국 공연 시작을 앞두고 눈보라가 다시 치기 시작했다.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던데 누가 공연을 보러 오려나 염려가 스물스물 일었다. 물론 기우에 불과했지만.

'KOREALITY' 공연 중인 품펜하우스 극장 내부 (사진=강안나)

품펜하우스 극장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최초의 독립 극장으로 120-150석 정도의 규모다. 1층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객석 출입구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작은 바와 로비를 겸한 테이블들이 있어 눈보라를 뚫고 들어온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표를 받은 후 맥주를 시켜 들고 테이블에 앉아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공연 시간이 다가오자 로비는 앉고 선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정말 간신히 서 있을 정도로 가득 찼다. 지역 커뮤니티 중심으로 구성된 관람객들은 저마다 손에 맥주를 들고 친교를 나누었다. 공연을 보기 위한 특별한 날이라기보다는 저녁식사를 마치고 동네를 산책하듯 자연스럽게 극장을 찾은 그들의 모습에 예술이 일상 속 깊이 스민 듯 보였다. 공연을 보기도 전에 그들의 마음은 완전히 이완되어 있었다. 어떤 공연이든 즐겁게 볼 수 있을 만큼. 공연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만큼.

무대 밖에서 소리꾼 조아라의 찰진 음색 ‘아~리 아~리랑’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주거니 받거니 소리를 받으며 리어카에 탄 조아라와 일상차림, 한복차림, 군복차림 등의 무용수들이 시끌벅적하게 들어온다. 강안나 음악감독의 “이 공연은 서울무용센터에서부터 시작되었다”라는 설명과 함께 몇몇 무용수들의 소개로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된다.

강안나의 라이브 연주로 시작한 첫 곡은 독일 가수 니나 하겐(Nina Hagen)의 <Naturträne>였다. 독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 가수의 노래인데 이걸 일부러 바그너(Richard Wagner)의 오페라라고 소개해 웃음을 자아내고, 이내 진지하게 부르던 조아라가 고음불가를 연기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한 번 더 유발한다. 안무자 와키 요시코가 정치적 성향이 강한 요한 크레스닉(Johann Kresnik, 1939-2019)의 절대적 영향을 받은 사실을 감안해볼 때 반유대주의적 성향으로 히틀러의 지지를 받았던 바그너를 일부러 언급한 이유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과 우리의 공통점이라면 분단의 아픔을 가졌다는 것인 만큼 전쟁에 대한 그들의 철학적 사고가 뒷받침된 것은 아닐는지.

KOREALITY 공연장면(사진제공=Bodytalk)
'KOREALITY' 공연 장면 (사진=Marcus Bomski)

작품은 크게 일본의 전래동화 <우라시마 타로>의 이야기 구조 안에 한국에 대한 인상들이 삽입된다. 요시코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일제 치하의 한국 모습, 관광객으로서 경험한 한국의 이미지,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얻은 K-드라마, 예컨대 <오징어게임>이나 <지금 우리 학교는> 등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의 사회문제를 비롯한 각종 정보, 공동창작자로 동참한 한국인 무용수들이 경험한 현실에 대한 정서가 복합적으로 표현되고 간간히 쇼적인 요소들이 첨가되어 지루할 틈 없이 진행된다.

잠깐 <우라시마 타로>의 이야기를 하자면, 용궁의 딸이었던 거북이를 구해준 우라시마 타로가 감사 인사로 용궁에 초대를 받게 된다. 용궁에 가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현실세계를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돌아와보니 300년이나 지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안무자는 부산의 해동용궁사를 찾았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모티브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작품에 해녀의 역할을 삽입, 해녀의 안내로 용궁에 가서 보니 현실의 어려움은 별것 아니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네온으로 물고기 등을 만들어 바다를 연상시키거나 긴 천을 활용해 바다의 효과를 냈다. 푸른 조명 아래 즐겁게 춤을 추는 무용수들과 금가루를 덮어쓰고 가부좌를 한 정필균의 모습은 현실의 고통을 잊고 행복해진 모습이다.

이번 작품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다양한 오브제이다. 총이나 미사일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연필(모양)부터 옛것을 상징하는 리어카, 한복과 장구 그리고 무용수들이 양 손에 쥐고 나온 실제 칼 등이다. 특히 칼의 사용은 다양한 은유를 불러일으킨다. 실제 칼에 투명 테이프를 감아 안전하게 사용했다지만 보기에는 위험천만한 이 장면에 대해 안무가는 '위험하면서도 반짝이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한다. K-Pop이라는 단어를 김치-Pop에 이어 Knife-Pop으로 연결하면서 나이프 씬으로 넘어가는데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서로 다른 문화기반에 있는 예술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도 생각해본다.

KOREALITY 공연장면(사진제공=Bodytalk)
'KOREALITY' 공연 (사진=Marcus Bomski)

관객들이 가장 열광했던 장면은 K-Pop을 메들리로 엮은 장면으로 다양한 춤과 칼군무를 볼 수 있었다. 너무나 예쁘고 멋진 한국의 무용수들이 기가막힌 테크닉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흡입해 버렸다고나 할까? 무대 위를 가르고 나르는 그들의 기량은 앞서 강안나가 각종 대회에서 수상했다고 무용수들을 소개할 때는 다소 허세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적어도 이 장면에서는 관객들이 무용수들의 진가를 완벽하게 인정했으리라. 옆에 앉은 관객이 어찌나 환호하며 보던지. 한편 이 장면에서는 한국의 여러 가지 어두운 모습도 묘사되었다. K-Pop의 화려함 이면에 있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상들을 볼 수 있다. 전쟁, 고립, 폭력 등 비단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 인간사에 드러나는 부정적인 모습들이다.

이번 작품은 독일에서 먼저 공연을 하게 되면서 이미 여러 가지 평을 받은 상태이다. 해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은 이 작품을 어떻게 보았을까 하는 의문을 다소나마 풀 수 있었다. 제목이 <KOREALITY>이니 한국을 벗어나 생각할 수 없었으리라. 전쟁을 통해 남북이 분단된 나라, 바다 씬이 나오는 만큼 세월호를 연상한 글도 있었고 어떤 장면에서는 이태원 참사를 떠올린 글도 있었다. 때문에 <KOREALITY>는 그만큼 책임감이 따르는 작품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뮌스터 품펜하우스 극장 전경 (사진제공=bodytalk)

따라서 장면장면이 지니는 수많은 상징과 은유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수없이 많은 동작을 무용수들이 선보였을 때 그 움직임이 가지는 파급의 의미를 안무가가 더 깊이 숙고하고 채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었다. 가령 누가 봐도 전쟁 씬인 장면 뒤에 여성 상의 탈의 장면은 위안부를 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지나친 경쟁과 서로 경계하고 피하는 장면, 칼을 가지고 성형을 하는 장면 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는가 하면 스스로를 공격하는 칼과 한 사람을 공격하는 여러 개의 칼 등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들도 이어진다.

무용수들의 깊은 내면에서 나오는 감정과 격한 표현은 그들이 겪어낸 한국이다. 경쟁과 심리적 어려움에 희생되고 마는 치열함과 기괴하고 다소 비정상적인 움직임조차 부둥켜안을 수밖에 없음은 그들이 경험한 어둠을 한국이 아니라고 외면하거나 되돌아 설 수 없기 때문이다. 턱끝까지 숨이 차오르고 이내 쓰러져 버리는 무용수들의 모습이 애잔하다. 작품은 현실과 가상을 오고 간다. 현실은 부정적이고 낙원은 상상 속에 머무른다.

KOREALITY 공연장면(사진제공=Bodytalk)
'KOREALITY' 공연 (사진=Marcus Bomski)

어둡고 위험한 모습, 안무가가 보는 한국은 이렇게 부정적인가? 아니라고 할 수 없으나 참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인으로서 한국에 대해 좋은 것만 보여지고 싶었던 욕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문화적 배경의 차이를 넘지 못한 표현방식은 조금 낯선 모습이다. 우라시마 타로의 이야기를 틀로 한 바다 씬의 경우 전체에 제대로 흡수되지 않아 작품 속 작품처럼 분리된 느낌이었고 관광객으로서의 시선은 어딘지 모를 부정적 이미지만 제시된 느낌이다. 한국을 파악하려는 노력보다 공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는 건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일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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