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판타지 속에 진리가 숨어있다" - 서울시오페라단 '마술피리'
[공연리뷰] "판타지 속에 진리가 숨어있다" - 서울시오페라단 '마술피리'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4.19 0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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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지난 3월 30일-4월 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서울시오페라단의 <마술피리>가 공연되었다.

<마술피리>는 관객이 의문과 상상의 여지를 한껏 품게 만드는 작품이다. 밤의 여왕과 자라스트로의 정체성, 선악에 대한 분별에서 관객은 갈등한다. <마술피리>의 수많은 해석과 프러덕션들이 나오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레치타티보가 아닌 대사로 이어지는 징슈필 장르의 오페라이다 보니 프러덕션마다 가수들의 자유로운 애드리브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서울시오페라단 '마술피리' (파미나 황수미, 파파게노 김기훈)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서울시오페라단의 <마술피리>는 세종문화회관의 2023년 시즌 개막작이다. 개막작인 만큼 흥행불패의 작품을 선정했고, 성대한 스케일의 무대로 위상을 자랑했다.

막이 오르자 웅장하고 환상적인 무대는 이미 여러 공연과 뮤지컬에서 인정받은 무대·영상 디자이너 조수현의 능력을 입증했다. 조수현은 피라미드로 상승을 표현했고, 빛(자라스트로)과 어둠(밤의 여왕)의 공간을 대비시켰다. 이시스와 오시리스가 등장하는 오페라에서 피라미드가 특별히 참신한 해석은 아니지만, 상당히 세련되고 현대적인 판타지를 구현하는 공간으로서 <마술피리>의 세계관을 조성했다. 뱀이나 새 등의 영상 활용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번 서울시오페라단은 무대 디자이너이자 영상 디자이너인 조수현에게 연출까지 맡기는 실험을 시도했다. 조수현의 연출이 아주 뛰어난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무난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징슈필의 특성상 대사가 나올 때 음악의 흐름이 끊어질 수도 있고, 많은 대사들이 살짝 자연스럽지 않았던 부분은 연출력보다는 가수들의 문제 같았다. 대사와 노래 모두 파파게노를 맡은 바리톤 김기훈이 단연 돋보였는데, 김기훈의 연기를 다른 가수들이 받아주지 못해 파파게노만 두드러진 면이 있다.

서울시오페라단 '마술피리' (밤의 여왕 김효영)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소프라노 황수미의 파미나는 안정적이었다. 노래와 연기력으로 중심을 잡아주며 자칫 수동적으로 비칠 수 있는 파미나의 캐릭터를 지성과 결단력이 빛나는 여인으로 해석했다. 타미노의 김건우는 초반에 긴장한 듯 보였으나 점차 성장해가는 캐릭터를 충실히 표현했고, 파파게노의 김기훈은 그야말로 작품의 수준을 올려준 독보적 존재였다. 주로 무거운 배역을 맡아왔던 김기훈의 성공적인 변신이다. 파파게나의 소프라노 김동연도 김기훈과 더불어 유쾌한 연기를 펼쳤다.

반면 소프라노 김효영의 밤의 여왕은 절대적인 카리스마를 뿜어야 하는 역할인데 강렬한 효과를 주지 못했다. 젊은 성악가라 큰 무대 경험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또 캐릭터가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자라스트로 역시 저음으로 압도해야 하는데, 베이스 이준석은 저음을 낼 때마다 성량이 작아졌고 힘에 부쳐 보였다. 노련함으로 커버하려 했지만 노래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없으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권위를 보여야 할 두 캐릭터의 약세가 안타까웠다. 그밖에 밤의 여왕의 시녀들을 맡은 박현진·원상미·정주연, 모노스타토스의 김재일의 연기는 자연스럽고 디테일해서 작품의 이해를 도왔다.

이병욱이 지휘하는 경기필은 <마술피리>의 환상적인 색채감을 완성시켰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에서 공부한 모차르트 전문가다운 음악적 해석이었다. 한국에 점점 좋은 지휘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오페라 <마술피리>는 가장 모차르트다운 작품 같다. 오래전인 2001년, 역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려졌던 <마술피리>의 연출자 조성진 예술감독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는 모르죠. 어떤 것이 선이고 악인지. 타미노와 파미나가 밤의 여왕을 버리고 새롭게 출발한 자라스트로의 품이 사실은 더 거대 악일 수도 있지요. 관객의 상상이 작품의 결말입니다.”

서울시오페라단 '마술피리' (사진제공=세종문화회관)

<마술피리>는 보는 이의 상상으로 완성된다. 인생을 살면서 가치관의 혼돈을 겪고 어떤 일에도 침묵해야 하는 시련을 겪지만 늘 해피엔딩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시험에 실패하더라도 예쁜 신부를 얻는 파파게노같은 이도 있다는 것. 모차르트는 판타지 속에서 보석을 찾아내게끔 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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