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끈질기게 주제를 관철하는, 플렉스가 전혀 없는 담백한 춤 공연
[공연리뷰] 끈질기게 주제를 관철하는, 플렉스가 전혀 없는 담백한 춤 공연
  • 최찬열 무용평론가
  • 승인 2023.04.1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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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나이무브먼트컬렉티브 'Alone, naturally'

[더프리뷰=서울] 최찬열 춤비평가 = 최근 몇 년간의 팬데믹 사태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른바 비대면 사회에서 개인은 타인과 조화롭게 어울리지 못하고, 그로 인해 실존의 고립감은 빠르게 깊어지고 있다. 얼마 전 선보인 김나이무브먼트컬렉티브(NKMC)의 <Alone, naturally>(3월 24-25일, LG아트센터 서울 U+극장)는 이러한 시대를 어렵게 견뎌내고 있는 고립된 이들의 고독감 혹은 외로움을 주제화한 공연으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김나이무브먼트컬렉티브 <Alone, naturally> ⓒ장호 

공연은 이들의 외로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포즈를 현시하며 시작한다. 관객이 보기에 무대 왼쪽 앞에 한 춤꾼이 뺨과 배를 무대 바닥에 댄 채 엎드려 누워있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든 사람 같기도 하고, 세상을 송두리째 외면하며 자기 내면으로 침잠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수동성과 능동성이 공존하는 포즈인 셈이다. 아무런 소리가 없는 적막한 무대에 한동안 덩그러니 누워있던 그가 고개를 살며시 들어 두리번거리다가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살핀다. 아무도 없다. 혼자인 그는 힘없는 걸음으로 느릿느릿 오른쪽 다리-막을 향해 걸어간다. 그 사이에 왼쪽 다리-막에서 다른 춤꾼이 홀로 등장해 곧바로 바닥에 엎어진다. 잠시 후 그도 일어나 주변을 살피고 느리게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연이어 예닐곱 명의 춤꾼들이 차례차례 등장해 앞선 춤꾼들의 행위를 비슷하게 반복한다. 차림새로 보아 미미한 존재감을 가진 일상인으로 여겨지는 이들은 각자 비슷한 자리에, 조금 다른 식으로 엎드렸다 일어나, 앞선 사람들이 간 방향으로 묵묵히 걸어간다.

김나이무브먼트컬렉티브 <Alone, naturally> ⓒ장호 
김나이무브먼트컬렉티브 <Alone, naturally> ⓒ장호

무채색 의상을 입고 무대 왼쪽에서 등장해 잠시 엎드렸다가 다시 일어나 무대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기를 반복하는 이들은 특별한 일 없이 평소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보통의 평범한 사람처럼 보인다. 외로움에 사로잡힌 듯한 이들의 행위는 점차 미세하게 변화하면서 반복되고,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서로서로 소통하고 관계 맺기 시작한다. 춤꾼들은 둘이나 셋 혹은 넷이 함께 등장해 서로 기대고, 등을 맞대거나 옆에 붙어서 앉고, 상대를 들거나 안아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가까워지는 그들의 몸만큼 그들 사이에 어떤 정서적 교감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들은 시종일관 서먹서먹하고 그런 만큼 온전하게 함께하지 못한다. 둘이나 셋이 혹은 여럿이 관계를 맺고 함께 춤을 추지만 여전히 혼자이고 고립감은 팽배해진다. 춤 만든 이가 관심을 기울여 살펴보는 요즘 세상의 풍경이리라,

김나이무브먼트컬렉티브 <Alone, naturally> ⓒ장호 
김나이무브먼트컬렉티브 <Alone, naturally> ⓒ장호 

공연은 A-B-C-A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곧 춤 만든 이는 공연의 처음과 끝을 오버랩하는 형식으로 주제가 도드라져 보이는 방법을 취한다. 이를테면 이번 공연의 시그니처 자세로 여겨지는 외로움에 휩싸인 한 춤꾼의 상징적인 모습(A)을 보여주면서 시작한 공연은 듀엣이나 트리오, 혹은 4인무 등 부분적인 군무(B)로 이어지다가, 의도적으로 기세를 낮춘 듯한 전체 군무(C)로 짧게 클라이맥스를 연출한 후, 다시 도입부 포즈, 곧 고독한 개인(A)의 모습을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혼자인 춤꾼들이 서로 관계를 이루며 둘이나 셋 혹은 여럿이 되다가 전체가 한데 모여 공동체를 이루지만 끝내 혼자만 남는 구조이다. 이번 공연 <Alone, naturally>를 만든 김나이는 이 공연을 통해 실존의 외로움 혹은 고독감에 천착하는 것이다.

이는 공연이 B나 C의 형식으로 진행될 때도 언제나 A가 병존한 사실이 증명해 보여준다. 둘이나 셋, 혹은 여럿이 함께 있을 때, 그 주변에는 항상 그들과 떨어져 존재하는 외로운 하나가 있고, 춤 만든 이의 관심의 초점은 언제나 이들에게 맞춰져 있는 것이다. 또 다르게 이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예가 바로 마지막 장면이다. 무대 오른쪽에서 춤꾼들이 하나둘 모여 공동체를 이루기 시작할 때, 그들과 멀리 떨어진 무대 왼쪽 앞에는 한 춤꾼이 시그니처 자세로 엎드려 누워있다. 그러다가 그도 다소곳하게 일어나, 마지막으로 여기에 합류하지만, 곧바로 공동체는 뿔뿔이 흩어지고 텅 빈 무대에 혼자만 쓸쓸하게 남는다. 하나와 여럿, 개인과 공동체를 대비해 보여주면서 둘 사이의 유동하는 관계를 통해 주제를 명쾌하게 전하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팬데믹 이후 변화한 우리 사회를 대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고독한 개인이라는 뜻이리라. 그래서일까, 춤꾼들은 두 팔을 앞뒤로 빠르게 저으며 뛰지만 제자리에서만 뜀박질하고, 춤을 추지만 협소한 지점에 머문 채 팔을 휘젓거나 몸통을 흐느적거리며 유연한 상체 동작과 팔 동작이 돋보이는 춤을 춘다. 그리고 길을 가더라도 자기가 오가던 길만 따라서 가고, 때로는 느리게, 또 때로는 회전돌기나 슬라이딩으로 미끄러지며 홀로 바쁘게 그 길을 오간다. 접촉을 망설이며 제 삶만 묵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김나이무브먼트컬렉티브 <Alone, naturally> ⓒ장호 

그런데 춤꾼들은 공연 내내 무대 왼쪽에서 등장해 오른쪽으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왼쪽으로 등장해 무대를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나가기를 반복한다. 영화 용어법을 빌려 말하자면, 이들은 프레임 밖 외화면에서 등장해 프레임 안, 곧 내화면을 가로질러 다른 쪽 외화면으로 빠져나간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관객의 눈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프레임의 안과 그 바깥, 곧 영화나 공연에서 무대 혹은 내화면과 그 바깥의 현실 공간인 외화면은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액자에 담겨 전시장에 걸려 있는 그림이 액자 틀 바깥의 공간과 완전히 다른 별개의 공간을 이루듯이.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 무대의 안과 바깥, 곧 내화면과 외화면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두 공간은 전혀 다른 별개의 공간이 아니다. 두 공간은 허구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으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를테면 춤꾼들이 무대 위에서 무덤덤하게 수행한 행동과 행위들은 현실 삶의 연장선처럼 보인다. 곧 무대 오른쪽으로 빠져나간 춤꾼들이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마치 귀가하듯 무대 왼쪽으로 등장해, 잠들 듯 쓰러져 누웠다가 일어나 일하러 나가는 사람처럼 다시 무대 오른쪽으로 나가는 일을 되풀이할 때, 관객들은 내화면에 보이는 춤꾼들의 행위와 퍼포먼스를 현실 속의 실제 행동처럼 실감하며, 저마다 처한 현실에 비추어 외화면에서의 ‘고단한 일과’를 각자 다르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춤꾼들의 춤과 퍼포먼스로 무대 위에 세워지는 단순하고 간결한 미장센은 무대 바깥의 고단한 삶 혹은 일상을 강하게 환기하는 현실의 한 절단면인 셈이다. 김나이무브먼트컬렉티브의 이번 공연 <Alone, naturally>는 무대에서 일어나는 행동과 무대 밖 세상 삶을 연결하며 팬데믹 시대를 사는 우리의 일상을 거듭해서 기억하고 음미하게 하는 흥미로운 공연이다.

김나이무브먼트컬렉티브 <Alone, naturally> ⓒ장호 

삶이 흘러가듯, 또 시간이 지속하듯 줄기차게 한 방향으로만 운동하던 춤꾼들이 간혹 뒷걸음질 치며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해 왼쪽으로 향하기도 하는데, 반대 방향으로 역행하는 동선을 그리며 수행되는 이들의 행위는 이미 지나간 일을 되돌리는 일일 것이다. 곧 이들은 되새겨야 할 일이 있는 듯 혹은 흘러간 시간을 되감는 듯, 거꾸로 등장해 춤이나 퍼포먼스를 수행한 뒤 무대 왼쪽으로 빠져나간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듯한 이들의 행위는 아마도 지난 일을 기억해 내는 반복과 재생 운동이리라. 그렇다면 공연이 지속되고 있는 무대 공간은 일상의 반복과 변주, 그리고 지난 삶의 재생과 되돌림이 중첩되는 장이자 과거와 현재가 뒤섞이는 시간의 결절점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기에 이번 공연의 내화면에서 펼쳐지는 춤과 퍼포먼스가 아무리 단조롭고, 건조해 보일지라도, 이를 대하는 관객들은 오늘 우리의 고된 삶과 암울한 일상을 여러모로 다르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공연은 평자에게 따뜻하고 편하게 다가왔다. 춤 만든 이가 공연에서 스펙터클적 요소 일체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화장도 하지 않고 일상복 같은 의상을 입은 춤꾼들은 테크닉을 과시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자신의 역할을 담담하게 수행하고, 별다른 장치나 아무런 오브제도 없고, 튀는 조명도 사용하지 않는 무대는 애써 뭔가를 드러내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꾸밈과 치장 없이 하고 싶은 말만 진솔하게 전하는 공연이다. 간결한 클라이맥스도 마찬가지다. 전체 9명의 춤꾼은 딱 한 번 짧게 같은 곳을 응시하다가, 무대 여기저기를 다니며 절정을 연출하는데, 군무의 밀도는 약하고, 역동성과 기세를 뽐내는 춤도 아니다. 절제된 클라이맥스가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김나이무브먼트컬렉티브의 이번 공연 <Alone, naturally>는 끈질기게 주제를 관철하는, 플렉스가 전혀 없는 담백한 춤 공연이다.

최찬열 무용평론가
최찬열 무용평론가
altai21@hanmail.net
한국춤 전공 후 모스크바대 인류학 석사,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인류학 박사과정 및 미학 박사학위 취득.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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