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2022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무용부문 총평
[공연리뷰] 2022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무용부문 총평
  • 김혜라 무용평론가
  • 승인 2023.04.23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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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창작방식 모색은 긍정적, 결국은 비판적 사유로 연계돼야
서울발레시어터의 <클라라 슈만>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더프리뷰=서울] 김혜라 무용평론가 = 춤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2022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이 지난 1월 13일에 시작해 4월 1일까지 총 7개 팀의 작품을 선보였다. 선정된 작품은 댑댄스 프로젝트의 <〉“hello world”;>, 화이트큐브 프로젝트의 <Recall;불러오기>, 모든 컴퍼니의 <On the Rock>, 시나브로가슴에의 <태양>, 노네임소수의 <WHITE>, 미나유의 <THE ROAD>로 모두 현대춤이고, 서울발레시어터의 <클라라 슈만>이 유일한 발레 작품이었다.

2022 올해의신작은 예년과는 다르게 장르별(한국춤, 현대춤, 발레), 연령별 안배가 지양된 편이고, 독립단체와 신진들이 파격적으로 다수 선정되었다. 여전히 3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불만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한국에서 창작되는 모든 춤을 아우르는 ‘한국 창작춤’이란 범주에서 구태여 전공분야를 나눌 필요는 없지 싶다. 장르의 특성상 현대춤 전공자들이 동시대적 콘셉트에 민감하기에 상대적으로 해마다 가장 많이 선정되는 수혜를 누리기는 한다. 발레와 한국춤의 동반 성장을 위해 고려해야 하는 면도 있으니 항시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다. 최근 들어 한동안의 소강상태를 극복하고 약진한 젊은 한국춤 전공자들과 의욕적인 발레 창작자들도 기대를 모으고 있으니 좀 더 지켜보면 창산 사업에 선정될 장르별 비율이 바뀌는 것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지 싶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문예위)가 주관하는 창작산실은 창작자들에게 좋은 제도이다. 여타 유사한 사업보다 비교적 합리적인 심의와 예산을 제공하고, 대관과 홍보 같은 업무에 힘을 뺄 필요가 없으니 대체적으로 안정된 환경이다. 이 사업은 촘촘한 심사절차를 거치는데, 1차 서류심사, 2차 프리젠테이션(PT)과 인터뷰, 3차에서 20분 길이의 실연심의(showcase, 관객평가단 포함)을 거쳐 대략 6-7개 팀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심의도 분야별 전문가들(비평가, 기획자, 안무가, 예술감독, 교수 등)로 매해 다르게 구성되어 가시적으론 장르, 인맥, 학맥 편중을 지양하려는 구성이다(위원들의 전문성은 일단 차치하자). 선발된 단체는 8개월 이상의 기간을 확보하여 작품을 만들고 대략 8천만 원 상당(쇼케이스 2천만 원, 최종공연 6천만 원 내외 차등 지급)의 지원을 받는다. 작품 발표 이후에는 분야별 평가위원들의 결과보고서와 합평회로 마무리된다.

화이트큐브 프로젝트의 <Recall;불러오기>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은 지난 2008년 '창작 팩토리'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발레(2011년)와 현대무용, 전통무용 분야(2013년)로 확장되었다(각각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에서 주관함). 창작산실은 2014년부터 문예위로 주관처가 바뀌고 좀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무용계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는 사업이 되었다. 그럼에도 행사가 끝나고 나면 여러 평이 무성하고 특히 최근 몇 년간은 ‘위기의 창작산실’이란 중론이 모아진다. 심사과정의 문제인가, 창작력의 문제인가, 아니면 주최기관의 문제인가.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올 해의 신작을 들여다보며 전반적으로 사업을 진단해 보자.

올해의신작에선 팬데믹의 영향으로 환경문제(<〉“hello world”;>)나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을 통찰(<THE ROAD> <태양>)하려는 시의적인 주제가 우선 눈에 띄었다. 연극(희곡)을 춤으로 재해석하거나(<태양>) 여성의 관점으로 음악가의 삶을 재조명(<클라라 슈만>)하려는 시도와, 스포츠와 서커스 같은 물리적인 운동성의 원리를 삶과 유사한 단면으로 해석한 시도(<On the Rock> <Recall;불러오기>)도 흥미로웠다. 단발성 작품보다는 긴 호흡으로 작품을 지속적으로 탐구한 일종의 시리즈(<WHITE> <On the Rock>) 작업도 여럿 있어 관심을 모았다. 몇 해 전부터 활발해진 디지털 기술과 춤의 미래를 조망하는 방향과 거대한 무대장치를 활용하는 경향도 지속되고 있다. 타 장르와 춤의 교접 지점을 찾는 안무적 탐구도 점차 심화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개성 있는 움직임 탐구부터 다양한 오브제의 실험으로 안무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려 노력하였다.

시나브로가슴에의 <태양>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디지털 환경에 잠식당할 인간상 제시

먼저, 댑댄스 프로젝트의 <〉“hello world”;>(1월 13-15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제목에서 프로그래밍 언어임을 알 수 있듯이 소극장 공간을 디지털 세상(화면)으로 치환한 재기발랄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디지털(digital)의 어원이 라틴어 디지투스(digitus, 손가락)이듯, 신이 선사한 지구 생태계를 호기롭지만 무심하게 손가락 하나로 클릭하며 재배치하고 조작한다. 눈이 부실 정도로 변화무쌍한 사각의 LED 조명 바닥은 디지털 전기회로판과 닮아 있다. 태블릿 패드로 계보의 선을 구획하고, 화면에서 제시하는 영상으로 인간과 자연이 살아온 인류의 다양 다종한 이미지를 나열한다. 인류사의 상징적 키워드인지 무작위로 선정한 것인지 엇비슷한 제시어(원시인, 과일, 자연재해, 신체부위 등)가 반복되며 늘어진 감이 있었지만, 픽셀 영상에 몸이 가려지는 순간이나 모니터 같은 장치에 파묻힌 몸의 형상은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인간이란 종(種)이 디지털 첨단기술 매체에 몸과 의식이 지배당할 미래(현재일지도)를 환기시킨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댄서로서의 김호연과 임정하가 지워지고, 퍼포머로만 분주하게 소품(패드, 전자장비)을 옮기고 매개하는 역할이다. 이 둘은 인간과 장치의 관계 맺기를 주선하며 테크니션 정도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더 이상 훈련된 몸과 동작이 아닌 기능적인 일만 한다. 따라서 노니는 듯 슬렁슬렁 패드를 조작하는 행위가 디지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란 생각도 든다. 보는 이에 따라 춤 작품에 춤은 없고 영상만 있다고 갸우뚱할 수도 있으나, 필자에게는 이들의 역할이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의 쓰임새일 거란 비관적인 함의로 포착된다. 한시도 없으면 불편한 디지털 환경에서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지, 우리 세상은 안녕하신지, ‘헬로 월드냐고!' 예언하며 또한 경고한다. 작품은 소극장에 적절한 사이즈로 디지털 환경 속 피폐해져가는 인간상의 문제를 가볍지만 예리하게 제기하였다.

댑댄스 프로젝트의 <〉“hello world”;>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돋보이는 연출력, 감각적인 무대장치 활용

화이트큐브 프로젝트의 <Recall;불러오기>(1월 13-1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다양한 무대장치를 활용하는 연출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댄서 각자의 기억과 감정이 소환된 무대는 시간의 흔적을 더듬는 행위가 불현듯 떠오른 독백으로, 아크로바틱한 동작과 무대장치로 기억이란 의식의 구조 해부에 초점을 맞추었다. 특히 트램펄린에서 펼치는 낙하와 회복의 원리로 몸이 기억하는 감정이 구체화된다. 무대에 매립된 트램펄린에서 댄서들이 떨어지고 튕겨져 오르는 행위가 반복될수록 트라우마나 단편적인 기억이 내면을 뚫고 나오는 것처럼 전체 서사를 이끈다. 이 점이 여타 아크로바틱 요소만을 차용해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던 엉성한 컨템퍼러리 서커스 협업 작품들과의 차별점이다. 뻔한 장치도 인과성이 분명할 때 예술적인 오브제가 된다.

리콜되는 기억 현상의 작용 원리를 무대장치로 파헤치려 하나, 그 연계점이 모두 선명하지만은 않다. 후반부로 가면 무대 뒷막이 시원하게 열린 공간에 철골 구조물과 천장에서부터 연결된 대형의 경사무대 구조물에 우선 시선이 쏠린다. 꽤나 공력을 들인 장치로 전기회로가 유기적으로 연동하는 배경 영상이나, 혹은 뇌의 내부에서 혈류가 조직적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의식의 순환적 기제를 추적하는 듯하다. 댄서들은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수행하나 거대한 구조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미미해 주객이 전도된 인상이다. 장치를 활용한 퍼포먼스는 사뭇 신선하지만, 구태여 기억의 실마리를 시각화하는 이유가 설득력 있지는 않다.

화이트큐브 프로젝트의 <Recall;불러오기>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커스의 기예와 춤이 결합된 시도는 국내외에서 꾸준히 있어 왔고, 최근 요안 부르주아의 내한공연을 통해 물리적인 몸의 한계에서 휴머니즘으로 확장시킨 사례도 경험한 바 있다. 서커스의 주요 동작인 리프트와 공중회전, 역반동과 플립 같은 기술을 차용한 것만으로 새롭다 할 수는 없으나, 정성태 안무가는 전체 작품 흐름에 상관적인 발생으로, 자연스러운 안무로 서커스 동작들을 체화시켰다. 서커스와 안무의 접점을 찾고자 비교적 초창기부터 시도해온 그의 집념이 이번 작품에서 심화된 모습으로 발휘된 것이다. 다만 본인이 장착한 무기가 가장 돋보이게 하는 연출에서 한 발 나아가 기억의 소환 이상의 생각할 거리로 연계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기억의 메커니즘을 찾아 시공간적으로 구현한 정도에 만족하기에는 정성태의 잠재력이 덜 발휘되었다고 믿고 싶다.

클라이밍의 원리에서 고된 일상적 삶의 모습을 포착

모든 컴퍼니의 <On the Rock>(2월 3-5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클라이밍 종목의 원리를 안무에 적용하여 일상적 삶과 병치시킨 흥미로운 작품이다. 일반적인 방을 뒤집어 놓은 무대 장치에 댄서들은 타고 오르고 버티는 클라이밍의 기본 동작을 실행한다. 클라이밍의 행위가 목표를 향해 몸의 한계를 극복하듯, 버티다 떨어지는 좌절을 겪지만 다시 한번 성큼 나아가는 우리의 일상적 모습을 은유하는 것이다. 우울하지만 아름답다. 무대를 방으로 설정하고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무척이나 설득력 있다. 김모든 안무가는 스포츠의 물리적 특성과 원리에서 추출한 움직임을 안무로 연계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고, 이를 사회라는 공동체에서 겪고 있는 서사로 풀어내는 안목과 재능이 주목된다.

고된 훈련을 했음직한 댄서들은 벽에서 버티고 올라타며 마침내 벽을 넘어가는 행위로 개인의 한계가 극복되는 성취감이 전달되나, 그 과정의 지난한 반복성으로 감동이 상쇄된다. 예를 들면 ‘홀드(hold)’의 행위는 중력에 대한 저항성이고, 이 저항적 사투는 벽이라는 대상과의 대면과 연대로만 성립되는 필연성이 있다. 몸이 밀착하여 버티는 순간은 다음 행로를 위한 선택인지 포기일지를 몸 스스로 판단한다. 동작 하나에서 파생되는 문제에 대한 다면적인 사유보다는 행위 자체에만 사력을 다한 것이 못내 아쉽다. 이 작업은 이미 다른 지원사업에서 혜택을 받았고, 창산에도 선정된 만큼 리서치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영민하게 클라이밍의 콘셉트(클라이밍 무브먼트의 규칙성)를 안무의 요소로 확장해 낸 가능성 있는 작품이나, 오브제와 몸의 관계성이 피지컬을 넘어서 더 파헤쳐졌더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남는다.

모든 컴퍼니의 <On the Rock>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태양을 상징하는 조명장치만이 제 역할

시나브로가슴에의 <태양>(2월 10-12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동명의 일본 희곡을 춤으로 해석한 작업이다. 무대 중앙 태양을 상징하는 몇 십 개의 조명을 설치한 오브제가 시선을 압도하고 실제로 작품의 생동력을 촉발하는 장치이다. 작품은 태양 아래 살아가는 생명체의 공존을 희망하는 몸짓으로 진행한다. 바이러스로 인해 탄생한 신인류와 구인류의 대립과 갈등이 작품을 이끄는 주요 내용이나, 이 부분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아 희곡을 모르면 맥을 잡기 가 쉽지 않다. 무대 설치물인 태양의 뒤편 무대에서 두 인류의 상반된 세계관이 생각보다 두드러지지 않아 화합도 모호해진다. 따라서 분열과 차별을 극복한 빛나는 생명성의 환희로 태양이 담지한 의미와 목적은 무대장치로만 설득력을 갖추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구태여 연극과 달리 춤으로 봐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움직임의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조직하여 사뭇 장인의 포스를 풍기는 시나브로가슴에의 순도 높은 춤을 기대한 관객들은 다소 의아해 할 수 있었겠다. 그럼에도 우연하게 혹은 의욕적으로 이재영 안무가의 이전 작업에 변화를 부여해보려는 극적 시도는 긍정적이다. 새로운 방향으로 나갈 땐 대개 저항적인 피드백이 발생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나브로가슴에의 <태양>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댄서의 연기가 작품의 성공을 담보하는 대표적인 작업

서울발레시어터의 <클라라 슈만>(2월 17-18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슈만과 클라라, 브람스의 러브 스토리를 창작발레로는 처음 다룬 작품이다.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 슈만을 동시대적 인물로 재해석하기보다는 강인하게 살아온 여성상에 주목한다. 사연 없는 곡이 없는 슈만과 브람스, 클라라의 음악들은 유려한 연주로 모던한 다색의 영상 프레임에서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실제 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은 오선지에 써내려 간 악보 자체를 은유하며 연기한다. 여기에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실황 연주도 무대동선을 달리하는 데, 단순한 연주를 넘어서 춤과 밀접한 교감으로 전체 극 내용에 자연스럽게 동조한다. 곡에 담긴 순수와 열정, 사랑과 책임, 연모와 존경을 상기시키며 러브 스토리는 발레만의 곧고 우아한 동작으로 낭만성을 배가시킨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구성된 이 작품에서 음악가들의 곡은 발레와 함께 생동감의 차원을 달리한다. 변하지 않는 사랑의 테마이지만 식상하지 않다.

무엇보다 클라라 슈만 역인 이윤희의 탄탄한 연기와 표현적인 테크닉이 작품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는다. 작품은 주로 클라라가 사랑한 남자 슈만과 클라라를 사랑한 남자 브람스와의 삼각관계로 조명된다. 정신병을 앓는 슈만과 클라라의 아픈 사랑은 내적 갈등의 극치를 보여주고, 브람스 식 연모의 감정이 클라라의 윤리적 가치관과 대립각을 이루는 장면도 극적 몰입도를 올린다. 개인적으로는 권위적인 아버지의 영향에서 유일한 피난처인 피아노에 쏟은 '클라라 조제핀 비크'의 열정과 집념의 ‘강인함’과, 동시대적 여성상으로서 인간 클라라의 ‘강인함’까지 입체적으로 다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클라라를 연모하고 슈만 사후에도 연민으로 위로했던 브람스의 신의가 다소 직설적이고 유아적인 사랑으로 표현된 면도 아쉽다. 그럼에도 슈만 역을 맡은 정운식의 중후한 연기와 안정된 춤이, 이윤희의 놀라운 열연이 드라마투르기의 아쉬움을 보상해 주었다. 안무가 제임스 전의 음악에 대한 믿음과 창작발레에 대한 열정이 서울발레시어터 단원들의 균형 잡인 춤으로 비교적 잘 구현된 작업이다.

서울발레시어터의 <클라라 슈만>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무미건조한 감정의 무게

노네임소수의 <WHITE>(2월 25-2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2020년 창작산실에 선정된 <블랙>의 후속편으로 극대화된 감정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나, 전작과 달리 직접적인 감정은 배제한다. 전작에서 최영현 안무가는 빛을 매개로 댄서의 몸을 왜곡되게 보이는 낯선 감각을 선사했고, 신체와 오브제와의 관계성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내밀한 감정을 파헤쳐 적잖게 주목을 받았다. 몸으로만 전해지는 감정의 민낯이자 개인과 사회의 이면을 들추는 안목으로 전작 <블랙>에서 재능을 보여줬던 것이다.

노네임소수의 <WHITE>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화이트>는 전작과 유사한 패턴을 구사하는데, 세 단계의 굵직한 장치를 활용하여 감정이 생성되고 소진되는 과정을 제시한다. 전작과 다른 점은 사라짐으로 완결되는 상태에 무게감을 두고 ‘화이트’라 칭하는 것이지 싶다. 형광조명 아래 투명한 아크릴 박스에서 생경한 신체성을 전시하는 장면, 통제 불가능한 극한감정인 사각박스에서 펼쳐지는 거친 사건들이 주요 뼈대이다. 이 외에도 여러 장면들이 제시되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댄서와 오브제의 관계성이 드문드문 짚어질 즈음 댄서들은 갑작스런 죽음(사라짐)을 선택한다. 박스 위에서 떨어지는 씬으로 급작스럽고 동시에 허무해진다. 마지막 장치인 바람에 날리는 비닐 씬은 진정한 비어짐의 상태로 ‘화이트’에 도달한 정신을 나타내나 다소 상투적이다. 의식을 비워내고 몸이 사라진 상태를 은유하는 작품은 이미지를 구사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생성된 감정이 와 닿지 않기에 소멸의 감정도 공감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따라서 안무가가 지향한 ‘소멸의 미학’이 제대로 의미를 획득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역량을 지닌 안무가이기에 여전히 가능성은 있다. 연작 시리즈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으나, 더욱 높은 잣대에서 새롭거나 깊어지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실망감을 줄 수 있다.

노네임소수의 <WHITE>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제는 명징하지만, 그러나...

미나유의 <THE ROAD>(3월 31일-4월 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팬데믹 이후 인간이 자연과 동행하는 동반자임을 깨우치길 바라는 안무가의 질문이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얻은 재앙을 환기시키려는 작품의 의도는 미니멀한 조명으로 구획된 세 공간에서 갈등과 고립의 일상적 단면을 보여주며 옴니버스 식으로 각기 전개된다. 현실을 자각하게 하는 자연의 반란을 감지하게 하는 것은 춤보다 오히려 새들의 울음으로,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새들의 펄럭거리는 날갯짓 사운드가 강렬하다. 자연생태계 구성원들이 내미는 레드 카드인 코로나19를 의미하는 것이다.

시의성 있는 주제이나, 그럼에도 구성에서 신선함이 떨어진다. 무엇보다 창작자가 전작에서 구사했던 방식과 유사한 이슬람 풍의 음악, 알아차릴 수 없는 단어와 말의 발화가 비슷한 풍광이다. 물론 종교, 인종, 문화의 화합을 상징하는 장치로 짐작되나 표현방식이 다소 정체된 느낌을 저버릴 수 없었다. 무브먼트 자체만으론 보면 팔순의 나이가 무색하게 정교하고 감각적이지만 전체의 관계성과 밀도가 선명하게 인지되지 않는다. 물론 익명성을 의도했을 수도 있으나 최고 수준 댄서들의 기량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쉽다. 미나유는 평소 분명한 콘셉트와 미니멀한 형식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왔고, 무엇보다 안무가의 기질에 맞게 돌직구의 메시지를 작품으로 표명해 왔다. 노령의 예술가답게 삶을 관통하는 질문으로 폐부를 찌르기도 하고, 댄서의 기량을 최고치로 끌어내는 교육자의 면모를 발휘해 왔다. 애매모호함과는 거리가 있는 안무자의 창작 성향에 비춰볼 때 이번 작품은 다소 의외이다.

미나유의 <THE ROAD>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그럼에도 비극적인 현 상황을 가장 잘 묘사한, 쓰러진 댄서를 안고 슬퍼하는 마지막 모습에서 작품의 의미가 읽힌다. ‘피에타’ 장면이 오버랩되며 죄의 짐을 짊어진 예수의 죽음처럼 인간의 무지를 환기시키고, 이를 지켜보는 마리아의 애도처럼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자연과 공존하는 길을 찾아 나선 <더 로드>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일 터이다. 작품의 주요 콘텍스트가 되는 무대장치를 최소화한 미나유는 오히려 비워진 무대에서 몸의 언어로만 관계성을 돌파하려는 강직한 의지로 자신만의 ‘더 로드’를 되뇌었다.

앞서 말했듯이 ‘올해의신작’은 성장 가능성 있는 단체들이 선정되었기에 보다 실험성과 동시대성을 견인할 작품을 기대했었다. 일곱 단체가 모두 자신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창작적 시도를 모색한 부분은 일정 부분 성취되었다. 다른 장르의 요소를 차용하고 협업하려는 열린 태도로 다양성의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진보를 보였으나, 그 내용은 부실한 면도 있고 아직 자기 철학으로 구체화되지 못한 면도 있다. 연작 시리즈는 심화된 면모를 보이질 못해 매너리즘에 빠진 것은 아닌지, 어느 단체는 기계적으로 사업신청을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도 들었다. 예술의 숙명인 ‘새로움’이라는 명제가 참 변덕스럽고 개인적이다. 다채로운 형식에 대한 고민과 차용은 심화되고 있다고 판단되니, 비판적인 시각으로 내용을 채우는 고민이 깊어지면 좋겠다. 자기만의 신조가 드러나면서도 우리 삶 속에서 함께 호흡하는 작품으로 지치지 않고 도전하길 바란다.

이렇게 7편의 작품이 1월에서 4월까지 대장정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그간 논의된 사업에 대한 문제점과 대안을 수렴하여 의견을 덧붙여 본다.

미나유의 <THE ROAD>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문적 안목을 갖춘 심의위원 선정과 유통의 문제

매해 창작산실실 사업 이후 춤 관련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대략 다음과 같다. 올해도 마찬가지인데, 주제의식이 결여된 작품이 많다는 점과 창작자의 비전과 시놉시스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또한 주최기관인 문예위가 표면적으론 다양한 분야의 심의위원을 선정하나 사회적 직함만으로 전문성 있는 심의위원이라 인정할 수 있을지는 애매한 부분이다. 질적 선별보다는 편파성을 비켜가는 형식적 구성에 주력한다는 볼멘소리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이를테면 자신의 장르만 고수하고 춤 현장을 고려하지 못하는, 심지어 1년에 공연 몇 편 안보는 위원들이 선정과정에 참여하는 게 적절한지 묻고 싶다.

단편적인 수치로 결과를 판단하는 것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으나, 출범 이후 10년이 넘은 창작산실 사업이 당초 목표인 '작품의 유통 및 레퍼토리화'를 얼마나 성취했는가를 살펴본다면 대체로 회의적이다. 초창기에는 창산 작품들을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나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스파프), 서울공연예술마켓(PAMS, 팸스) 같은 축제와 연계시키자는 의견도 나왔고, 지역 문예회관들과 연합하여 유통시키자는 제안도 나왔으나, 복잡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지지부진해졌다. 매년 전문가들은 창산이 단발성 프로젝트로 사라지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으나 이런 의견들이 얼마만큼 정책으로 수렴되었는지, 앞으로도 대안이 있는지 이제는 짚어볼 시점이다.

대본공모 사업에 무용분야도 참여해야

연극, 창작뮤지컬, 창작오페라는 대본공모 대상분야로, 극작과 작곡을 지원해 준다. 그런데 창작무용, 특히 발레는 태생적으로 대본과 음악이 중요한 장르이기에 무용대본도 이 공모대상으로 추가해 주길 희망한다. 양질의 창작발레 작품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 것은 수 십 년간 테크닉 연마에만 노력을 쏟아야 하는 발레 환경에서 양질의 대본이 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원대상 부문이 확장되어 현장에서 겪는 실질적 문제가 정책으로 고려되길 기대한다.

모든 컴퍼니의 <On the Rock>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심사내용 공개와 영상물 제작지원 및 공개 필요성

다수의 지원단체가 매년 실패를 맛보기에, 심사내용을 공개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선정 단체가 왜 선정되었는지 그 근거를 공개함으로써 창산의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심의위원 선정의 투명성 보장에도 효과를 볼 수 있겠다. 또한 춤계 환경에 맞는 진화된 제도 운영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팬데믹 이후 영상 교류가 익숙해지고 쉬워졌으니 공공기관은 작품 영상물 제작을 적극 지원해 주고 이를 유통시켜 공연의 특성인 일회성의 아쉬움을 보완하는 동시에 객관적인 의견 교류에도 적극 활용했으면 한다. 일단 올해의신작은 영상화되어 네이버 온라인으로 선보일 예정이라니 우선 지켜보자.

쇼케이스 이후 결과물에 대한 장치 보완

창작산실 사업의 과정을 살펴보면, 쇼케이스 선정까지는 꼼꼼하나 이후 최종 작품을 관리하는 장치가 형식적이고 느슨해 보인다. 기관도 작품 홍보와 기금 관리(초창기에 비해 예산 부분은 안무비와 무용수들 사례비, 연습실 대여비와 회계비용까지 세부적으로 구분되어 있다)에 적극적인 만큼, 실연 후에는 작품에 대한 전문가들의 면밀한 분석, 평론문의 확보와 활용, 창작자와의 피드백 교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획서 내용과 실제 쇼케이스 내용이 달라진 작품들이 종종 있다. 물론 현실적인 여건상 변경될 수는 있으나, 이 부분에 대한 이유도 타당하게 기록해야만 참가자들도 더욱 신중해질 것이다.

예술에 정도는 없으나 책임은 있어야 한다. ‘산실(産室)’의 고통을 뚫고 나올 내년 작품들을 기다린다.

댑댄스 프로젝트의 <〉“hello world”;>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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