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무대에서 써내려간 몸짓의 회한(回翰)
[공연리뷰] 무대에서 써내려간 몸짓의 회한(回翰)
  • 김혜라 무용평론가
  • 승인 2023.04.26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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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컨템퍼러리무용단 30주년, 박현옥춤 50주년 기념공연 <고귀한 눈물>
대구컨템퍼러리무용단 30주년, 박현옥춤 50주년 공연 <고귀한 눈물> (사진제공=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더프리뷰=대구] 김혜라 무용평론가 = 대구는 국립현대무용단이 창단되기 전부터 국내 유일의 공립(시립) 현대무용단이 있었던, 현대무용 분야에서 저력 있는 도시이다. 주로 경상지역 현대무용 전공 학도들이 직업무용수로 진출하는 유일한 창구로, 대구에는 시립무용단 단원들을 비롯하여 좋은 무용수들이 많다. 대학 무용학과 통폐합 이전의 전성기 같지는 않겠으나 대구는 여전히 현대무용에서 중요한 도시이다.

지역 대학들과 연결되어 경상도 특유의 기질로 풀어내는 대구 현대춤 스타일이 궁금했던 차, 대구컨템퍼러리무용단 30주년이자 박현옥춤 50주년을 기념한 공연 <고귀한 눈물>(4월 6일 아양아트센터 아양홀)을 통해 이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었다. 대구카톨릭대학 출신과 대구시립무용단원들을 포함한 단원들의 훌륭한 기량과 단체의 춤 지향점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작품은 대구의 역사적 장소인 달성구 태고정의 현판 일시루(一是樓)의 의미(모든 것은 본시 하나이다)를 조형적인 공간감으로 구획하고, 안무가가 걸어온 춤 인생의 궤적을 회고한다.

대구컨템퍼러리무용단 30주년, 박현옥춤 50주년 공연 <고귀한 눈물> (사진제공=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거대한 자연의 폭과 품을 상징하는 이미지(1장)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갈등으로 조망되어(2장) 개별적인 내적 상실의 문제(3, 4장)로 작품은 전개된다. 짐짓 호기로운 스케일로 태고정의 풍경은 사각박스 오브제로 공간적 의미를 치환하고, 현판에 각인된 절개(박팽년과 사육신)는 마음의 문제를 안고 사는 우리들의 현실과 접속하고자 한다. 특히 감정의 소요로서 눈물의 의미가 치유와 성장의 동력으로, 작품의 주된 메타포로 제시된다. 댄서들은 (눈)물방울 자체가 되기도 하고 좀 더 뭉뚱그려진 감정체로 눈물의 실체를 대변한다. <고귀한 눈물>이란 제목에서 다소 고답적인 인상을 받으며, 전형적인 눈물 서사(1장 생명의 눈물, 2장 상실의 눈물, 3장 성취의 눈물, 4장 고귀한 눈물)로 표현하지 않을까 했던 기우가 무색하게 전반부(1, 2장)는 사색적이고 추상적이다. 특히 댄서를 정서적 주체와 분리시켜 객관적인 대상으로, 장치(오브제)와 공간을 마련하는 퍼포머로 양립시킨 안무와 연출이 컨템퍼러리답다. 오브제를 설치하는 퍼포먼스 수행을 하고 춤을 추며 댄서들은 수행과 행위를 가로지른다.

대구컨템퍼러리무용단 30주년, 박현옥춤 50주년 공연 <고귀한 눈물> (사진제공=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대구컨템퍼러리무용단 30주년, 박현옥춤 50주년 공연 <고귀한 눈물> (사진제공=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인상적인 첫 장면으로 파도 소리가 들리고 오케스트라 박스에서 댄서들이 무대로 올라온다. 마치 파도 너울에 밀려오는 생명체인 양 댄서들은 세상(무대)으로 사각의 구조물로 떠밀려 와서 정착한다. 건조하고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는 구조물 사이로 스며든 댄서들은 무언가 발언하지만 고독한 외딴섬에서 부르짖는 메아리 같다. 가까스로 겪어낸 팬데믹 시기 내·외면으로 고립되었던 우리들의 모습 같기도 하며 자연의 일부로서 생명성의 환기, 상호단절로 인해 정신적인 어려움을 안고 사는 현대인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각기 제멋대로 배치된 구조물은 이내 단일한 평면으로 눕혀지고 마치 미로 같은 효과로 연출된다. 검정 수트를 입은 한 사람이 공간에 서사를 만들고, 그 사이사이 댄서들은 고요하지만 유려한 동작으로 미로의 공간을 가득 채우며 운율이 된다. 마치 공기와 바람 같은 인상을 저버릴 수 없는 장면으로, 참 시적이다. 서성이는 남자는 고뇌를 되뇌는 오늘의 박팽년이자 안무자 자신을 투영한다. 안무가는 산다는 것이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는 고행의 시간임을 말하려는 것 같다.

대구컨템퍼러리무용단 30주년, 박현옥춤 50주년 공연 <고귀한 눈물> (사진제공=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다시 오브제의 변주 시작, 구조물은 무대 테두리로 이동하고 일종의 집 터(태고정) 같은 인상을 풍긴다. 댄서들이 마련하고 조직한 공간에는 직설적인 화법으로 혼돈스런 정서가 버무려진다. 대립과 갈등이 표면적으로 기염할 기세로 몰아친다. 역동적인 춤으로 전환된 군무진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간의 대립이 극명하여(개조된 한복과 수트 의상, 흑백의 색감 등) 전반부의 시적 감수성이 상쇄된다. 딴딴한 춤들이 연속적으로 쌓여갈 즈음 군무진과 괴리된 정서를 표출하는 남자는 어떤 힘을 상징하고 있는 듯하고 상대적으로 군무진의 존재감은 미미해진다. 강한 아우라를 풍기는 남성은 아마도 인간성을 상실한 거만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공동체(사회)와 개인과의 관계성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눈물이란 보편적인 감정의 상흔이 네 개의 장에서 펼쳐지며, 시적이며 은유적으로, 때론 사실적이고 상투적인 표현으로 생명, 상실, 성취의 의미 맥락으로 이어져 ‘고귀한 눈물’로 귀결된다.

대구컨템퍼러리무용단 30주년, 박현옥춤 50주년 공연 <고귀한 눈물> (사진제공=대구컨템포러리무용단)

안무가는 역사적인 장소에 각인된 ‘일시루’를 모티브로 자본주의 삶에 찌든 현대인의 불감한 감성과 현실을 진단하며 자성의 의미로 눈물의 다면적인 의미를 들춰보려 했다. 이를 형식적으론 댄서들의 몸짓과 오브제의 배치로 공간성과 생명성을 매개하려 하였다.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컨템퍼러리 면모가 발휘된 전반부와는 달리 후반부에서 모댄 댄스의 전형적인 문법(역동적인 움직임의 과잉)으로 전체 의미망을 관망하기 다소 버거웠다. 안무가의 춤 여정을 사색적인 춤결로 그려낸 작품이기에, 후반에서는 숨을 고르고 여백의 여유로 비워냈더라면 더할 나위 없었겠다. ‘무위(無爲)’의 춤으로!

모든 춤은 사라지고 수 십 장의 빛바랜 인물사진만이 영상에 띄워진다. 춤에 입문한 지 50년이 되는 박현옥의 역사이자, 그 길을 함께한 제자이자 동료들의 땀과 열정이 담긴 사진이다. 화려한 무대 밖에서 경험했을 숱한 감정들이 귀한 것이었음을 사진으로 말하는가 싶다. 긴 세월 때론 성공적이었을 터이고, 때론 그만두고 싶었을 무대를 향해 내디딘 행보에 마르지 않았을 눈물! 작품 <고귀한 눈물>은 박현옥 춤 인생을 회고하며 써내려간 몸짓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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