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 짙은 여운으로 남겨진 대중성
[공연리뷰]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 짙은 여운으로 남겨진 대중성
  • 김미영 무용평론가
  • 승인 2023.04.27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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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트리올 재즈 발레의 'Dance Me'

[더프리뷰=프리드리히스하펜] 김미영 무용평론가 = 2023년 3월 11일 오후 7시30분, 독일 남부 프리드리히스하펜의 그라프-체펠린-하우스(Graf-Zeppelin-Haus).

짐을 풀고 바로 호텔을 나섰다. 공연 시작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공연장까지 가는 보덴호(Bodensee)를 따라 난 길을 걷고 싶어 서둘렀다. 수평선이 보이는 호수라니. 규모가 어마어마해 바다인 줄 착각하게 되는 보덴호는 독일의 거의 최남단에 위치해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인접해 있다. 호숫가를 따라 걷는 동안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던 곳, 프리드리히스하펜은 생애 첫 나홀로 여행길이라 너무나 낯설면서도 설렘이 가득했던 곳이다.

(사진제공=김미영)
보덴제 (사진=김미영)

공연이 열린 그라프-체펠린-하우스는 보덴호수 앞 아름다운 자연경관 속에 위치해 있었다. 관객들은 대부분 이 아담한 소도시의 시민들로 보였다. 삼삼오오 모여 샴페인을 한 잔씩 들고 친교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이 편안하고 행복해보였다. 독일에서 만난 공연장들은 일상이 된 예술의 모습을 경험하게 했다. 공연장을 찾는 것이 그저 생활의 한 부분으로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무용 공연장이 대부분 전문가나 관계자들을 관객으로 하는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이것이 나라에 따른 문화수준의 차이인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배경이 있는 것인지 하는 등의 의문이 들게 했다.

(사진제공=김미영)
그라프-체펠린-하우스 전경 (사진=김미영)

로비에서의 친교에 이어진 객석에서의 친교에서도 극장이 가지는 어떤 위세 같은 것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엄청나게 시끌시끌하며 저마다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고 로비의 일정 지점을 들어서면서 입장권 검사를 받은 터라 공연장 내부를 들락날락하는 것도 매우 자유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입장권을 찾으며 외투를 맡겨둔 관객들은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객석과 로비를 오가며 여유 시간을 즐겼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편안했던 그라프-체펠린-하우스는 1천석 정도의 규모로 객석은 만석이었다. 여기저기 들려오는 말소리 속에 조용히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조명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객석의 시선도 무대에 집중되었다.

몬트리올 재즈 발레(BALLET JAZZ MONTREAL, BJM)의 <Dance Me>는 몬트리올 출신의 시인이자 가수인 레너드 코언(Leonard Cohen, 1934-2016)의 작품들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다. 1972년 설립된 BJM은 지난해 창단 50주년을 맞이했다. 클래식 발레를 바탕으로 다양한 현대적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BJM은 재즈라는 장르를 도입해 좀 더 대중적인 모습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애썼다. 특히 크리스탈 파이트(Crystal Pite)를 비롯, 세계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안무가들과의 작업을 통한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몬트리올 재즈 발레의 'Dance Me' 공연 (c)Thierry du Bois

<Dance Me>는 2017년 몬트리올시 3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소설가였던 레너드 코언의 음악을 활용하게 된 것도 이런 제작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코언의 작품이 대부분 종교, 정치, 고립, 우울, 상실, 죽음,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점철되다보니 <Dance me> 역시 이런 코언의 철학이 가득 담긴다. 안무는 안도니스 포니아다키스(Andonis Foniadakis), 아나벨 로페스 오초아(Annabelle Lopez Ochoa), 그리고 이산 루스템(Ihsan Rustem)이 맡았다. 이들의 안무는 음악과 춤, 연극적 요소, 영상 등과 더해지며 다양한 자극을 제공해 대중성을 높이면서도, 동시에 무엇보다 코언의 생전 이슈들에 집중함으로써 예술적 가치를 잃지 않았다.

몬트리올 재즈 발레 공연 (c)Cosmo Imange 

작품에서는 레너드 코언의 노래 16곡을 만날 수 있다. 중절모를 쓴 남성이 나올 때마다 장면이 전환되거나 무대 정서에 변화가 일어난다. 그는 작품의 내레이터 역할 혹은 레너드 코언의 화신으로서 작품을 이끌어 간다. 구체적인 서사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음악이 주는 정서와 몸짓언어를 통해 전해지는 진한 감정선은 삶의 다양한 장면들을 상상케 했다.

어두워진 무대 중앙에 중절모를 쓴 남성이 조명을 받고 서서 시작하는 첫 곡은 <Here It Is>(2001)이다. 서 있던 남성이 사라진 무대, 뒤편의 막이 열리고 검은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등장한다. 양 사이드에서 깜빡이는 조명 사이를 걷는 무리가 빛과 어두움의 경계를 넘나들며 존재를 확인시킨다. 삶과 죽음, 약속과 사랑, 욕망, 책임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첫 곡은 작품 전체의 방향성을 드러내며 앞으로 보여줄 작품들을 예고한다. 노래가 전하는 분위기와 리듬에 따라 다양한 조합으로 선보이는 군무는 유연하면서도 고난도 테크닉을 끊김 없이 매끄럽게 물 흐르듯 보여준다. 훈련량을 가늠케 할 만한 무용수들의 기량과 서로간의 호흡은 무대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몬트리올 재즈 발레 커튼콜 장면 (사진=김미영)

세 안무가 중 어떤 장면을 누가 안무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씬 별로 보여지는 다양한 개성에서 각각의 안무가의 특성이 반영되고 있음은 알 수 있었다. 전체를 다 나열할 수는 없지만 흥미로웠던 부분을 조금 안내하자면 <Tower of Song>(1988)에서 흰 스툴을 이용한 하체의 움직임과 타자기로 추측되는 영상 속 물체를 다리로 이리저리 쳐내거나 붉은 입술이 노래를 부르는 미디어 장면, 객석 쪽을 환하게 비추던 조명들 앞에서 가장 환하게 춤을 추던 장면을 지나 삶에 대한 지독한 고민을 안기거나 눈이 시리도록 푸른 무대에서 눈이 내리는 장면을 연출하며 춤 추는 장면들에서 삶의 다양한 면면들이 떠올랐다.

코언의 사망(2016년) 이후 재조명을 받으며 미국 빌보드 핫 100 차트에 진입한 <Hallelujah>(1984)가 꾸미지 않은 담담한 목소리로 불리고 무용수들이 천천히 걸어나와 무릎을 꿇는다. 조명이 꺼졌다가 다시 흐릿하게 들어오면 중절모를 쓴 남성이 무대 왼편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와 뒤를 돌아본다. 이후 무대 뒤편으로 그가 춤을 추는 영상이 크게 비춰진다. 차분하게 들려오는 코언의 노래소리가 이전의 흥분을 가라앉히면서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를 들여다보게 한다. 짙은 여운이 마음 깊숙하게 박혀든다.

대중성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대중적이면서 예술적 완성도를 높여 함께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 이상 어떤 가치가 더 필요할까. 물론 이번 작품은 이미 대중적으로 유명한 곡들을 사용해 정서적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더 몰입감이 있었고 코언의 목소리가 주는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그라프-체펠린-하우스 로비 (사진=김미영)

무대가 끝난 것이 못내 아쉬웠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객석은 커튼콜을 마친 무용수들을 보내주지 않았다. 흥겹게 나오는 노래에 맞춰 한참동안이나 몸을 흔들며 손뼉을 쳐댔다. 무용수들 역시 떠나지 못하고 무대 뒤로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무용수들을 포기한 관객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객석에서 리듬을 즐겼다. 오래도록. 나 역시 발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동안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보내며 눈웃음을 교환했다. 한국에서 한 번 더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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