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용 다시보기-2] 봄, 꽃, 청춘이 만나면 춤이 된다 - '봄처녀'와 '처녀총각'
[신무용 다시보기-2] 봄, 꽃, 청춘이 만나면 춤이 된다 - '봄처녀'와 '처녀총각'
  • 유화정 무용이론가
  • 승인 2023.05.14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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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유화정 무용이론가 = 오래도록 즐길 틈 주지 않고 바삐 사라져 버리는 것들은 늘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피고 지는 봄꽃, 앳된 얼굴의 청춘, 그리고 실행되는 순간 시야에서 흩어지는 무형의 춤이 그러하다. 한국에서 관심받고 호명된 수 많은 춤 가운데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자리를 내어준 장르를 꼽자면 그것은 신무용이다. 서구 문물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혼종의 문화들을 잉태하던 1920-30년대, 최승희, 조택원, 배구자로 대표되는 무용가들은 모던댄스, 발레, 그 외 다양한 외국 민속춤들을 학습함으로써 조선 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종의 춤을 무대에 올렸다.

작가정신을 가진 안무가가 풍부한 감정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고, 최신 유행의 음악과 의상을 차용한다는 점에서 신무용은 조선 땅에 뿌리내려온 전통춤의 위상을 가뿐히 밀어내고 1970년대까지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한국창작춤의 등장과 전통춤 보존 움직임에 밀려 신무용의 빛나던 명성은 급격히 퇴색하기 시작했다. 현재로서는 역사 속 기묘한 매력의 춤으로 기억되거나, 어린이 무용극의 기본 레퍼토리로 살아남았는데 그것조차 운이 좋은 경우다. 대부분은 몇 장의 공연사진과 신문기사만을 남긴 채 안무의 실체를 찾을 수 없다.

빈틈없는 춤은 생존에 취약하다

신무용이 전례없는 화려한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곁에 진득히 생존할 수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도 신무용의 인기란 안무와 실연을 담당한 무용가의 스타성에 의존하므로 해방과 한국전쟁의 복잡다단한 정치적 상황에서 위태롭게 발화하고 소멸했던 개인의 인생사와 동행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시대적 유행을 민첩하게 따르는 음반, 패션, 문학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사각형 무대 위 빈틈없는 안무와 연출을 선보이는 특성 때문에 유행이 지나는 순간 그 매력은 급격히 퇴색한다. 반면 전통춤은 어떠한가? 사회 변화와 유행에 민감하지 못한 탓에 신무용과의 인기 경쟁에서 패배하였으나, 현재까지 보존과 재창작 사이 모호한 중간지점을 유지하며 정부 차원의 전승 지원 혜택을 누리고 있다. 각자의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기법과 태도를 따르되 춤과 연주가 벌어지는 판에서의 즉흥적 요소를 중시하는 특성, 동시대의 트렌드보다는 집단적 전승을 관통하는 맥락에 무게를 두는 특성이 전통춤의 긴 생존력에 불을 지핀 것이다. 다만 춤의 수명과 매력은 필히 상응하지는 않는다. 다양한 세대를 거쳐 전승에 성공한 춤이든, 한순간 반짝이고 사라진 춤이든 세상의 모든 춤은 아름답고 각각의 의미를 갖는다. 이 글에서는 신무용 중에서도 역사에 충분히 기록되지 못했던 작품 <봄처녀>, 그리고 안무 소재와 스타일이 다양한 작품의 양분이 되었으나 원작에 대한 정보는 흐릿해진 작품 <처녀총각>을 다룬다.

<봄처녀>, 그리고 김민자

<봄처녀>는 따뜻한 봄날, 아리따운 처녀가 들꽃을 한아름 꺾어 바구니에 담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초연은 1938년 일본 히비야 공회당에서 열린 조택원의 ‘귀국공연’ 중 김민자(1913-2012)의 솔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김민자는 당시 최고의 흥행가도를 달리던 최승희의 곁에서 오랜 시간 수학한 제자로 일본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문하생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한국춤, 모던댄스, 발레 등을 섭렵하고 최승희의 파트너로 듀엣 작품에 자주 설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으나, 눈부시게 빛나는 최승희의 뒤에서 그림자처럼 인내의 시간을 보낸 탓에 그녀의 삶에 홀로 빛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란 쉽지 않았다. 본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무용가가 되는 것에 완강히 반대했던 부모로부터 일찍이 독립하였다. 이후 생활비와 수업료를 최승희로부터 지원받는 대신 최승희의 딸을 손수 기르고, 최승희무용연구소의 업무 또한 전담함으로써 무용가로서의 명성보다는 최승희의 수족과 같은 제자로 알려진 것이다.

최승희, 김민자의 '마음의 흐름'출처: 조선일보 1937.02.20. ‘연예와 오락 『마음의 흐름』’
최승희, 김민자의 '마음의 흐름'
(출처=조선일보 1937.02.20. ‘연예와 오락')

최승희가 해외공연을 간 사이, 남성 신무용가로서 이름을 날리던 조택원으로부터 듀엣 제의를 받아들인 그녀는 몇 번의 공연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알리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고 결혼 후 행복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남편의 행방불명과 이른 죽음, 공연 중 눈이 조명에 데이는 부상을 겪으며 세상과 단절되는 상처를 입고 절에 들어가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 2012년, 99세의 나이로 생을 달리했다.

현재 김민자가 추었던 원작 <봄처녀>의 형상을 기록한 영상이나 음악은 전무한 상태다. 상술하였듯 신무용 작품의 운명은 무용가 개인의 흥망과 밀접하게 동행하므로, 잠깐의 작은 빛을 밝히고 불자(佛子)가 되어버린 김민자의 삶처럼 <봄처녀> 역시 이미지가 전하는 잔향만을 남기고 사라진 작품이 된 것이다. 이후 1966년 한국무용협회에서 김민자에게 공로상을 시상할 당시 그녀의 제자였던 주리가 <봄처녀>를 공연했으며, 그의 삶과 작품에 관심을 가진 연구자들에 의해 김민자의 회고록이 발표되었다. 또 2006년 서울문화재단 '다년간 집중과제’의 발표회에서 <봄처녀>의 재현과 관련 논문이 발표된 바 있다.

김민자의 '봄처녀'(왼쪽), 박지혜의 '봄처녀'재현(2006)(오른쪽)
김민자의 '봄처녀', 박지혜의 '봄처녀' 재현(2006)
(출처=박지혜(2008) '신무용가 김민자 연구' p.37.)

재현 작품에서 무용수 박지혜는 연두색 저고리에 진분홍색 치마를 입고 한 손에 꽃바구니를 들었으며 머리는 곱게 땋아내렸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김민자의 <봄처녀> 사진 역시 저고리에 치마를 입고 한 팔로 꽃바구니를 꼈는데, 구불거리는 중단발의 헤어스타일만이 차이점으로 드러난다. 김민자의 회고록에 따르면 토슈즈를 신고 맨 살이 드러나는 튀튀를 입기도 했다니 <봄처녀>의 이미지를 생각할 때, 한복을 입은 다소곳한 자태와 한국 전통의 춤동작만을 떠올리는 것은 오산일 것이다. 신무용에서 전통적 요소는 다채로운 무대의 창작을 위해 차용하는 하나의 도구였으므로 다양한 양식의 춤을 자유로이 섭렵하며 개성있는 스타일을 지향했던 당시의 신무용을 가늠해야 한다. 다만 무대의 배경이 과거의 향수를 일으키는 한국 시골의 풍경이고, 자연 속에서 뒹구는 소박하고 순수한 아가씨를 묘사했다는 점에서 근대의 서구문물을 막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나 여전히 목가적 분위기가 남아있는 조선, 그리고 조선의 여성을 묘사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봄처녀>는 따스한 계절, 평화로운 자연, 순수한 사람의 키워드를 조합하여 언제든 맘놓고 편히 즐길 수 있는 평화로움을 그렸다. 들판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꽃을 따는 처녀는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 미약한 존재이며 어딘가 순박하고 어리숙해 마음껏 귀여워할 수 있는 관조의 대상이다. 초연 당시, 끝없이 밀려드는 새로운 문물 속에서 자극과 변화에 지친 이들을 위로하는 향수의 무대로서 제격이었으나, 바야흐로 시골처녀를 그리워할 수 있는 세대가 사라지며 <봄처녀>도 역사 속 무대로 남게 되었다.

처녀와 총각의 밀고 당기는 사랑놀이 <처녀총각>

10여년 전, 우연한 기회에 남원 권번 출신인 조갑녀 명무의 자택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밥상을 물린 거실에서, 제시된 안무도 음악도 없이 한 번 춤춰 보라 하시니 당혹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럼에도 귀한 시간임을 짐작하여 움직이기 시작했고 선생께서 그에 맞는 장구 장단을 치고 구음을 읇조리셨다. 나는 분명 전통적인 춤사위를 추었다고 생각했는데 가슴이나 시선이 조금이라도 상방을 향하거나 비틀어지면 어김없이 “그건 우리춤 아니고 신무용이야.” 하셨다. 이에 조금 더 다소곳하게 춰보려 팔을 축 늘어뜨리니 “그건 <천안삼거리> 할 때나 그렇게 팔을 쓰지, 올려라.” 하셨다. 내가 아는 <천안삼거리>는 초등학교 시절 음악시간에 불러봤던 민요 제목이고, 신무용은 눈썹을 치켜올린 채 맵시있게 어깨를 들썩이는 최승희의 춤이었기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씀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최승희 스타일의 춤이 신무용의 넓은 범주와 정의를 대변할 수는 없다는 것, 예술학교의 무용교육 절차를 체계적으로 밟은 나의 춤은 전통춤과 신무용과 한국창작춤이 뒤섞인 현대의 한국춤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1930년대 조선의 음악시장을 장악한 신민요가 무용작품의 배경음악이자 안무 소재로 흔히 활용되어 <천안삼거리> <아리랑> <도라지춤> <처녀총각> <군밤타령> 등의 춤을 양산했으며 신무용가들이 즐겨 추는 레퍼토리로 확산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중 <처녀총각>은 처녀와 총각의 장난스런 풋사랑을 재치있게 구성한 작품으로, 농촌에서의 일상적 노동과 젊은 남녀 사이의 호감을 묘사한 춤 동작 및 마임이 돋보이는 남녀 이인무다. 남성과 여성의 사랑을 묘사한 이인무는 한국춤 뿐만 아니라 현대무용과 발레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유형이지만, 전근대 한국사회에서는 궁중정재의 각 잡힌 군무를 제외하면 보통 독무를 많이 추었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인무는 찾기가 어렵다. 물론 조선시대 성행한 각 지역 탈놀이에서 <노장과 소무> <소무와 한량> <영감과 미얄할미> 등 이인무가 인기를 끌었으나 이들은 남녀간의 로맨스를 아름답게 그려내는 목적보다는 사회적으로 비판 받아야 하는 관계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어 <처녀총각>과는 다른 맥락의 이인무이다. 게다가 남녀 역할을 모두 남성이 추었다.

<처녀총각>의 최초 안무자가 누구인지 낱낱이 밝히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현재로서는 작품 제목과 안무 영상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는 권려성의 작품을 원작으로 말한다. 이전에도 조선권번무용단의 공연 레퍼토리 중 <처녀총각>(1937)의 기록이 있으나 작품의 내용과 안무자를 알 수가 없다. 권려성의 <처녀총각>은 1960년, 공보실 선전국 영화과에서 제작한 문화영화 <흘러간 옛노래>(감독: 양종해)를 통해 기록이 남아있으며 무용역사기록학회의 학술세미나 ‘근대의 춤 유산-신민요춤의 재발견’(2020)에서 안무가 남수정에 의해 재현 및 재구성되기도 했다. 영상에서 무용수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바지저고리에 조끼를 입은 총각 두 명과 치마저고리에 댕기를 맨 처녀 두 명이다. 경쾌한 <양산도> 가락에 맞춰 쌍쌍이 손을 잡고 걸어나와 한 손으로 옆머리를 쓰다듬듯 감았다가 허리를 감으며 뱅글 돌고, 잡은 손을 밀었다 당긴 뒤 앞뒤로 서서 투 스텝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이러한 구도는 각국의 민속을 활용한 레크리에이션의 포크댄스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한편 권려성의 작품을 포함하여 음악, 소재, 구성, 연출, 인물구도 등이 유사한 맥락으로 나타나는 작품들에 대해 무용학자 김영희는 ‘처녀총각 스타일’의 작품들이라 설명한 바 있다. 작품의 주인공인 나물캐는 처녀와 나뭇꾼 총각은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농촌사회 속 인물이며 이들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흥미를 갖는 소재이므로 한국 근대의 다양한 무용가들이 ‘처녀총각 스타일’의 작품을 안무하여 인기를 끌었다. 특히 “봄은 왔네 봄이 와~ 숫처녀의 가슴에도”의 구절로 시작하는 강홍식의 노래 <처녀총각>(1934)이 흥행하면서 이에 맞춘 안무가 다량 등장했다.

‘처녀총각 스타일’의 모태 작품으로는 최승희의 <조선풍의 듀엣>(1935)을 들 수 있다. 시골 청춘 남녀의 순박한 모습을 춤으로 묘사한 최초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같은 해 조택원 안무에 박외선이 함께 출연한 <만종>(1935) 역시 농촌 배경의 남녀 이인무이지만, 경건하고 고요한 조선의 농촌 아침을 묘사하는 데 주안점을 두어 장난기 많고 솔직한 감정 표현이 드러나는 작품들과는 색채적으로 차이가 있다. 최승희는 이후 월북하여 <목동과 처녀>(1950)를 발표했는데 총각의 직업 설정이 나무꾼에서 목동으로 변했을 뿐 전체 연출 및 구성 면에서 <조선풍의 듀엣>과 유사한 맥락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승희와 김민자의 조선풍의 듀엣출처: 정수웅, 최승희를 찾아서, 눈빛, p.108.
최승희, 김민자 '조선풍의 듀엣' (출처=정수웅 '최승희를 찾아서'  p.108.)
최승희와 안성희의 목동과 처녀출처: 정병호(1995), 춤추는 최승희, 뿌리깊은 나무, p.283.
최승희와 안성희의 '목동과 처녀'
(출처=정병호(1995) '춤추는 최승희', 뿌리깊은 나무, p.283.)

끝으로 1962년 창단된 리틀엔젤스예술단의 레퍼토리 <처녀총각>은 어린이들의 깜찍한 춤사위와 경쾌한 음악이 조화를 이뤄 사랑스러운 묘미를 극치로 끌어올렸다. 음악의 속도만큼이나 작품 속 사건 역시 빠르게 진행되는데, 나무꾼이 등에 지게를 지고 등장하다가 냇가에서 장난치며 놀고 있는 처녀들을 발견하고는 눈 가리고 술래잡기를 하던 처녀 한 명을 끌어 안게 되는 사고를 일으킨다. 서로 호감이 일었지만 총각은 괜스레 처녀의 바구니를 뺏는 장난을 치고, 처녀는 복수를 위해 총각을 넘어뜨리는 등 티격태격 정이 들어버리는 귀여운 서사구조를 지녔다.

리틀엔젤스의 '처녀총각' 공연. 왼쪽이 필자 유화정. (사진제공=유화정)

이처럼 ‘처녀총각 스타일’의 작품들은 스타 무용가 두 명이 무대 위에서 자아내는 사랑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문화영화에 출연하는 포크댄스 형식의 무용으로, 전문 어린이 예술단체의 기본 레퍼토리로, 초등학교 학예회의 재롱잔치로 그 위치와 유형을 바꾸어 가며 현재까지 생존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변천사를 전락(轉落)의 의미로 받아들일지, 전략(戰略)의 의미로 받아들일지는 관객의 몫일 것이다. <처녀총각>이 앞으로도 살아남아 무대에 설 수 있을까? <봄처녀>는 심폐소생에 성공할 수 있을까? 사실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봄, 꽃, 청춘의 순박한 만남이 관객들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났으므로, 복고의 기적은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에게 <봄처녀>와 <처녀총각>은 뉴트로(newtro)가 되는 재기(再起)를 기대할 수 있다. 전통춤만을 알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가했던 그 옛날 신무용처럼, 현대의 감각으로 전에 없던 가치를 부여한 새로운 춤이 곧 등장하리라 믿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유화정 무용이론가
유화정 무용이론가
hjyoo27@gmail.com
이대 무용과 박사. 어릴 적부터 춤춰온 몸의 기억을 머리와 손끝으로 전달해 좋은 글을 쓰고자 한다. 춤추는 사람들의 경계가 해체되는 순간을 포착할 때 짜릿함을 느낀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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