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스산한 봄날에 만난 따스한 브람스의 향기
[공연리뷰] 스산한 봄날에 만난 따스한 브람스의 향기
  •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0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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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산 공연

 

브레멘 필하모닉 ©
브레멘 필하모닉 부산문화회관 공연 (사진출처=Bremer Philhamoniker Facebook) 

[더프리뷰=부산]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브레멘이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그림(Grimm)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를 통해 익숙해진 이름이다. 브레멘에 가서 음악대를 만들겠다던 동물들이 길을 가던 중간에 쉬려고 들어간 불 켜진 집에서 도둑을 쫓아내고 눌러앉는 바람에 결국 브레멘에는 못 갔다는 것이 함정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오래된 도이칠란트 북부 도시 브레멘을 거점으로 하는 브레멘 필하모닉(Bremer Philharmoniker)이 한독수교 1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이 교향악단은 1820년 성당 오르간 연주자였던 빌헬름 프리드리히 림(Wilhelm Friedrich Riem, 1779-1857)이 '브레멘 콘서트-오케스트라(Bremer Concert-Orchester)'라는 이름으로 창단했고, 1825년에는 '개인 콘서트를 위한 게젤샤프트(Gesellschaft für Privatkonzerte)'로 설립되어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최초의 부르주아 오케스트라 중 하나이다. 역사의 부침에 따라 몇 차례 이름이 바뀌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후 '브레멘 필하모닉 주립오케스트라(Bremer Philharmonisches Staatsorchester)'가 되었다가 2002년 '브레멘 필하모닉 주식회사(Bremer Philharmoniker GmbH)'가 되었다. 무려 200살이나 된 교향악단이다.

브레멘 필하모닉은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와 인연이 깊다. 1855년 피아니스트로서 오케스트라 협연을 위해 데뷔한 곳이기도 하며, 13년 뒤인 1868년에는 전년도 빈 초연에서는 부진했으나 6번째 악장을 완성해 추가하고 브레멘에서 다시 초연을 올린 <성경 본문에 따른 독일어 레퀴엠(Ein deutsches Requiem, nach Worten der heiligen Schrift), op. 45>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경력에 전환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지휘했고 슈톡하우젠(Julius Stockhausen, 1826-1906)이 바리톤 솔로로 함께 연주해 유럽 전역과 러시아에서 큰 호평을 받아 브람스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때도 브람스는 객원지휘자였고, 상임지휘자는 라인탈러(Carl Martin Reinthaler, 1822-1896, 재임 1857–1893)였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악가 브람스와의 인연을 자랑스럽게 여겼는지 이들은 공연 프로그램 모두를 브람스 작품으로 채웠다. 슬로베니아 출신 지휘자 마르코 레토냐(Marko Letonja, 1961-)는 <대학축전 서곡, Op.80>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 a 단조, Op.102> <교향곡 4번 e단조, Op.98> 등을 선보였다. 협연은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과 첼리스트 문태국이 함께했다.

긴 시간 여행을 거쳐 우리나라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4월 22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하는 공연이라 그들의 피로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솔직히 큰 기대를 갖지도 않았다. 주말 오후라 교통체증을 고려하여 조금 일찍 공연장을 찾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공연장이 붐비지 않아 의아함과 함께 약간의 불안감마저 들었다. 오후 5시 정각, 공연 시작 벨이 울리고 80여 명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입장했다. 피곤함이 엿보이는 단원들의 얼굴 사이에서 첫 눈길을 끈 것은 여성 악장이었다.

브람스 전문 오케스트라

연주회의 첫 문을 연 <대학축전 서곡, Op.80>은 브람스의 관현악곡 중 악기편성이 가장 크다. 게다가 자유로운 형식으로 여러 개의 선율이 이어져 나와 구조적으로 복잡한 작품이다. 그러나 걱정은 잠시였다. 피아니시모로 조심스럽지만 소홀하지 않게 시작하는 오프닝에 이어 잠시 후 언제 들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그러나 너무나 익숙한 트럼펫 선율이 울리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제2곡 '국가의 아버지(Der Landevater)'에서는 첼로의 피치카토 위에 하나씩 쌓아 올라가는 클라리넷, 오보에, 플루트의 시퀀스와 곡 전반에 들리는 관악기들의 스타카토와 싱코페이션은 작은 소리지만 단단하고 자신감이 가득 찬 균형 잡힌 연주였다. 마지막 제4곡 '기쁨의 노래(Gaudeamus igitur)'에서 새로운 시작을 기뻐하는 열정과 감격에 찬 환희가 터져 나와 첫 곡부터 마치 새로운 세상의 길을 여는 듯한 인상을 선사했다.

두 번째 프로그램을 위해 무대가 교체되는 동안에도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 a 단조, Op.102>는 교향곡 4번 완성 후 작곡된 브람스의 마지막 관현악 작품이기도 하다. 그가 이 작품을 쓸 당시 그의 음악적 동료인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Joseph Joachim, 1831-1907)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관계가 멀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요하임은 여전히 브람스의 음악에 한결같은 지지를 보냈다. 브람스는 이 작품을 통해 요하임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건넸고 결국 그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제1악장의 오케스트라 투티(tutti) 이후 나오는 첼로의 레치타티보는 문태국의 호흡과 첼로의 공명으로 공연장 바닥이 떨리는 소리까지 더해져 현장감이 제대로 느껴졌다. 이어 바이올린의 선율이 더해지면서 대화를 시도하며 충돌, 마치 브람스와 요하임이 서로의 입장을 다투어 표출하는 것 같았다. 이 곡의 백미는 제2악장이다. 브람스가 애정을 보이던 호른과 플루트의 오프닝에 이어 바이올린과 첼로의 아련한 슬픔과 아픔에 소소하고 담대한 서정성이 켜켜이 더해졌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바이올린과 첼로가 표현하는 화해 모드의 듀엣이 끝나고 첼로 솔로의 아타카(attacca)로 악장이 이어졌다. 제3악장에서는 소박하지만 약간은 분주한 파티를 연상시켰다. 첼로와 바이올린의 유쾌함에 이어 균형감 있는 오케스트라와의 음악적 대화는 또 다른 한 편의 교향곡처럼 마무리되었다.

1부가 끝나고 청중의 환호가 계속되자 두 곡의 앙코르가 연주되었다. 임지영과 문태국은 할보르센(Johan Halvorsen, 1864-1935)의 <헨델 주제에 의한 파사칼리아와 사라방드>를 소개했고, 이어 글리에르(Reinhold Glière, 1875-1956)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8개의 듀엣 중 제4곡 칸초네타>를 들려주었다. 이 두 젊은 연주자가 앙코르를 연주하고 있을 때 브레멘 필하모닉의 악장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집중하면서 감상했고, 연신 아빠 미소를 지어 보이는 비올라 수석과 제2 바이올린 수석의 모습을 객석에서 바라보는 필자는 아주 흐뭇했다.

바이올린 임지영, 첼로 문태국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65분간의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 때 몇몇 관객들이 하는 대화를 우연히 들었다. 오케스트라 소리가 독주 악기들의 소리를 뒤덮어 아쉬웠다며, 앙코르에서야 협연자들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는 얘기였다. 사실 브람스의 <이중협주곡>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악 협주곡과 달리 고전적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로 이해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만족했던 필자와 달리 보편적인 시각에서는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클래식은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은 것 같다.

<교향곡 4번 e단조, Op.98>은 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고 바다에 이르는 인생의 긴 여정 속에 묻어 있는 가쁜 한숨과 탄식이 비극적으로 다가오며 시작됐다. 제2악장 시작에 나오는 풍성한 호른의 프리지안 모드와 대화하듯이 노래하는 클라리넷과 바순은 가슴을 설레게도 하면서 희망을 갈구하지만 결국 포기해야 하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했다. 스케르초 풍의 제3악장은 화려한 축제 분위기를 느끼게 했지만, 파사칼리아 풍의 제4악장은 다시 비극적이었다. 무엇보다도 12번째 변주에서 플루트 솔로가 만들어내는 처연함은 숙연한 마음마저 들게 했다.

이들의 전체 연주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가지고 있는 진중한 애티튜드와 음악을 향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다양한 소리와 폭넓은 음량을 내는 팀파니 소리는 약 1초간 울리는 잔향을 맛보게 했다. 현악기가 내는 다이내믹이야 자주 듣는 경험이지만 플루트와 금관악기, 타악기가 내는 촘촘한 다이내믹까지 부산문화회관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이들이 앞선 연주자들의 기록을 샅샅이 분석하고 토론을 통해 음악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앙코르에 앞서 지휘자가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자 객석에서 뭔가 반응이 나왔다. 그러자 무대 가운데 자리한 한국인 바이올린 주자를 소개하면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No.10>을 연주했다. 그리고 다음 앙코르를 연주하기 전에 이번 곡은 절대 알 수 없을 것이라 했지만 너무나도 유명한 <헝가리 무곡 No.5>이었고, 객석에서는 탄성과 함께 박수가 나왔다. 위트가 넘치는 지휘자는 객석의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고 박자가 바뀌는 느린 부분에서 객석을 향해 그만두라는 사인을 보내기도 하며 지휘로 객석과 소통했다.

예술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모두가 긴 시간 이동으로 여독이 쌓여 피곤함이 겹쳐 있었을 텐데도 개인의 책임을 다해 오케스트라의 응집력을 끌어내는 헌신적인 모습에 감동했다. 저 원동력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브레멘이라는 도시를 살펴보았다. 브레멘은 자유를 숭상한 유럽의 대표 도시이자 최초의 도시 중 하나이다. 서유럽의 혼란이 끝나가던 10세기경부터 부를 쌓던 브레멘은 당시 서슬이 퍼렇던 주교로부터 화폐주조권을 넘겨받은 도시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로부터는 자유제국도시(Freie und Reichsstädte)로 지정받았고, 13세기 한자동맹(상인연합) 가입으로 완전한 자치를 누릴 수 있었던 도시다. 주교를 포함한 영주들로부터 도시 내의 재산권을 보호받았으며, 다른 곳에서 브레멘으로 도망쳐온 농노들의 신변상 자유도 인정받았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다(Stadtluft macht frei)'라는 도이칠란트 속담은 여기서 나왔다. 그래서 공식 도시 이름은 현재 ‘브레멘 자유 한자시(Freie Hansestadt Bremen)’이다.

그들이 다른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2025년이면 200년이 된다는 말은 그들의 기원을 어떤 한 사람의 설립자를 기준으로 하지 않고, 앞서 약간은 길게 설명한 '개인콘서트를 위한 게젤샤프트'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즉 자유로운 장인들의 이익을 위한 공동체가 그들의 이념인 것으로 보인다. 오케스트라는 그런 자유로운 장인들의 연합이다. 그것을 한 방향으로 모으는 것이 지휘자의 역할이다. 객석에서 바라보면 지휘자는 특별히 하는 것이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휘자의 역할은 그 자유로운 장인들의 소리를 낱낱이 듣는 것이다. 이날 연주에서는 연주자들이 어떤 유명세만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가진 자유로운 생각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다른 연주자들과 무언으로 소통했다. 지휘자는 그 모든 음악을 한데 모아 객석과 소통했다.

19세기 프랑스 실증주의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상가이자 비평가인 이폴리트 텐(Hippolyte Taine, 1828-1893)은 영국 문학작품을 설명하면서 예술을 작가가 속한 환경의 산물로 보았다. 당연히 예술작품이 환경만이 만들어내는 산물은 아니겠지만, 환경이 많은 예술작품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다. 브레멘 필하모닉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한 자주적이고 통합적인 교향악단임을 확인시키는 시간이었다.

프랑스 음악학자 롤랑 마뉘엘(Roland Manuel, 1891-1966)의 말처럼 브람스는 비범함으로 경지에 오르려 한 음악가가 아니었다. 그는 옛 형식에 새로운 관념들을 담아냈다. 그는 음악이라는 공통언어를 구사하면서도 자기만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의 위대함과 새로움은 ‘환상적 상상력을 통제함으로써 고전파와 낭만파의 상호모순적인 힘들을 더 높은 차원에서 합쳤던 것’이다. 이런 브람스의 정신은 외적 화려함보다는 내적인 진중함으로 음악을 대하는 브레멘 필하모닉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해양도시 부산과 비슷한 브레멘

브레멘의 규모는 부산보다 작지만,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다. 작은 어촌에서 시작해서 큰 항구도시로 발전한 것이나 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나온 것(비록 브레멘은 구석기, 부산은 신석기의 흔적이긴 하지만), 그리고 도시의 가운데를 큰 강이 흐른다는 것 등이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온 많은 사람들의 조합으로 도시가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비슷하다.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브레멘 필하모닉의 첫 방문지가 부산이었다는 것에 묘한 감정이 들었다. 객석을 가득 채운 서울 공연과 달리 330만 시민을 보유한 부산의 공연장을 채우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인구 68만 명이 사는 도시에서 장인들이 모여 만든 '브레멘 필하모닉 주식회사'가 부럽고, 그들이 연간 1만 명이 넘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는 사실이 더 부럽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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