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생명의 화가’ 노은님 추모전 ‘내 짐은 내 날개다’
[전시리뷰] ‘생명의 화가’ 노은님 추모전 ‘내 짐은 내 날개다’
  • 류은 미술칼럼니스트
  • 승인 2023.05.1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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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짐은 내 날개다' 전시 포스터 (이미지제공=)
'내 짐은 내 날개다' 전시 포스터 (이미지제공=가나아트센터)

[더프리뷰=서울] 류은 미술칼럼니스트 = 지난 해 작고한 노은님 화가의 추모전 <내 짐은 내 날개다> 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5월 28일까지 열리고 있다. 전시명은 작가가 2004년 발표한 동명의 그림 에세이 제목이다. 노은님은 예술가로서 자유를 얻기까지 현실적, 내면적으로 겪었던 고통, 곧 ‘짐’이 결국은 ‘날개’가 되어 스스로를 흐르는 물이나 공기처럼 가볍고 자유롭게 만든다고 책에서 서술했다.

가나아트센터는 2019년 개인전 <힘과 시>를 시작으로 해마다 다양한 접근방식을 통해 노은님의 예술세계를 탐구해왔다. 작업을 관통하는 화두인 '생명'과 '자연' 이야기, 삶의 계기마다 변화하는 '색'의 운용 등이 그 주제였다.

'내 짐은 내 날개다' 전시 전경 (c)함혜리

​작가가 떠난 뒤 처음 열리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깨달음'이다. 생명의 화가 노은님이 남긴 궤적에서 1989년의 다큐멘터리 독일어 원제 〈Meine Flügel sind meine Last〉에 등장하는 '짐'과 '날개'가 2004년 수필집에 다시 화두로 등장하며 자유를 논한 사실에 주목했다. 작가의 ‘날개’, 다시 말해 ‘날고 싶은 의지’인 표현의 욕구와 심상은 해결해야 할 ‘숙제’ 곧 ‘짐’으로 받아들여져 작업의 주제인 생명과 자연에 대한 고뇌를 엄청난 에너지의 퍼포먼스로 표출하고자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작가는 ‘날고자 하는 그 의지 자체가 날개’라는 깨달음과 확신을 얻은 듯하다. 해결해야 할 숙제는 애초에 없었고, 이미 날개가 달려있기에 그냥 날면 된다는, 자유롭게 표현하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작가의 글 <내 고향은 예술이다>(1997)에서 ‘내 앞을 가로막던 벽이 사라지고 내 뒤에 있었다’는 깨달음, 그리고 ‘내 앞의 높은 담벼락만 쳐다보고 담벽을 더 높이 쌓았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자기 고백과 상통한다.

'내 짐은 내 날개다' 전시 전경 (c)함혜리

"이제 나는 산이나 혹은 흐르는 물 같다. 공기처럼 가벼움을 느끼며 끝없이 땅과 하늘 사이를 떠도는 것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 짐은 내 날개였던 것이다." - 노은님 『내 짐은 내 날개다』 (샨티, 2004).

이번 전시에서는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의 영역을 확장해 온 노은님의 1973년부터 2021년까지의 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다. 함부르크 미술대학 시절의 초기 드로잉과 80년대 초반의 색면추상 작품들, 다큐멘터리 <내 짐은 내 날개다(Meine Flügel sind meine Last)>와 1980년대 퍼포먼스 사진 기록들, 그리고 작가의 '자유’에 관한 에세이 일부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이어서 2, 3전시장에서는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응축된 에너지를 생생히 쏟아낸 1980-90년대 대형 회화와 2000년대 이후 색과 선의 사용, 생명의 형태에 대해 훨씬 자유로워진 회화와 모빌 등을 선보인다.

'내 짐은 내 날개다' 전시 전경 (c)함혜리

검은 종이에 흰 분필로 짧은 선만을 그려 화면을 구성한 1976년 작품 <무제>와 1980년대 초에 떠난 아프리카 여행에서 느낀 생명과 자연에 대한 인상을 검은 배경에 거침없이 쏟아낸 가로 길이 8.5m의 작품, 또한 원시미술에 대한 흥미와 탐구, 즉흥성과 단순함의 표현에 몰두해 있었던 1980년대 작품 중 프랑스 중학교 문학교과서에 수록된 <해질 무렵의 동물>(1986)도 선보인다. 노은님 회화의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한 즉흥성과 단순성을 극명히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노은님의 예술에서 이례적인 표현인, 서정적 색감이 돋보이는 <하얀 눈의 황소>(1986)와 아프리카 원시미술의 현생과도 같은 <밤중에>(1990)를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내 짐은 내 날개다' 전시 전경 (c)함혜리

‘날개’와 ‘자유’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반 시기의 작품 <무제>(1998)는 수레바퀴가 연상되는 검은 도형 위에 붉은색 물감으로 손바닥을 돌아가며 찍어낸 강렬한 인상의 작품이다. 당시 작가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생과 죽음, 자연의 섭리에 대한 고뇌를 엿볼 수 있다.

“나는 그림 속에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깨달았고, 내가 큰 대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작은 모래알 같은 존재임을 알았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있는 것, 없는 것, 사는 것, 죽는 것 모두 마찬가지다.” - 노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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