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16] 응답하라, 2010년 8월! 국립현대무용단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낭만논객의 춤시선-16] 응답하라, 2010년 8월! 국립현대무용단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3.06.08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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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해마다 찾아오는 봄, 대한민국 공연예술계. 수장이 없던 자리에 속속 새로운 인물들이 등용되고 있다. 지난 1년 6개월간 공석이던 국립극장의 수장에 박인건 신임 극장장 임명 소식이 갑작스레 전해졌다. 국립발레단 강수진 예술감독은 국공립 예술기관 사상 최초 네 번째 연임이라는 화제의 인물로 부상하면서 뉴스와 인터뷰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4월 12일에는 국립무용단(김종덕)과 국립창극단(유은선) 예술감독, 5월 2일에는 국립국악원 전속 3개 단체(정악단, 민속악단, 창작악단) 수장들까지 선임되었다. 그러면 올해로 창단 13년을 맞은 국립현대무용단은 이제 누가 예술감독이 될 것이며, 상주 정규단원이 한 명도 없는 현재의 모습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몹시 궁금해졌다.

지난 2010년 8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국립현대무용단 출범식은 대한민국 현대무용계에게는 일대 사건이자 기나긴 숙원이 결실을 보는 대대적인 행사였다. 틈만 나면 국립현대무용단의 창단 필요성을 역설했던 우리 현대무용계의 대모 고 육완순 선생이 창단식에서 출범 선언문을 낭독하다가 눈물을 흘렸던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런 일이었다. 무용평론가 출신 이종호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예술감독이 작성한 이 선언문은 당시 우리 현대무용계의 위치와 상황, 한국무용이나 발레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었음에도 국립단체가 없었던 현대무용계의 절절한 소망과 기원, 그리고 미래의 비전을 담은 의미 깊은 글이었다. 이를 낭독하던 육완순 선생이 눈물을 보일만도 했던 것이다. 행사 마지막 무렵, 참석한 무용가들이 무대에 함께 자리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서 있던 모습이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2010년 국립현대무용단 출범식 사진 (사진제공=)
2010년 국립현대무용단 출범식 사진 (사진제공=)

이처럼 현대무용계의 숙원이던 국립현대무용단의 초대 예술감독으로 댄스 시어터 온의 홍승엽이 임명되었다. 지난 1994년 댄스 시어터 온을 창단해 민간단체의 모범적 선례를 남긴 인물이다. 민간단체로서 치열한 안무 작업 <달 보는 개> <말들의 눈에는 피가> <데자 뷔> 등으로 주목을 받은 데 이어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는 <빨간 부처> <아Q> <뿔> <두 개보다 많은 그림자&쉐도우 카페> <벽오금학> 등 다섯 편의 신작을 연이어 공동제작으로 무대에 올리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남성 안무가로 인정받았다. 그는 한국문인협회 선정 ’가장 문학적인 춤작가(안무가)’라는 수식어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아울러 리옹 댄스 비엔날레 초청공연으로 현지의 반응이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가운데 리옹 댄스 비엔날레의 예술감독 기 다르메는 홍승엽을 가리켜 ’동양에서 날아온 윌리엄 포사이드‘라고 부르기도 했다.

1대 국립현대무용단 홍승엽 감독의 '호시탐탐' (c)최영모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1대 국립현대무용단 홍승엽 감독의 '호시탐탐' (c)최영모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홍승엽은 국립현대무용단 창단 이후 <모자이크> <라쇼몽> <벽오금학도>(뉴 버전)를 안무하며 어느 누구도 걸어 본 적 없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정체성 확보와 시스템 구축을 위해 인적 자원마저 부족한 현실 속에서 정규단원도 없이 작품마다 오디션으로 출연자를 뽑아 무대를 만들어 올렸다. 연임제도가 없는 당시의 관례에 따라 다소 아쉬움을 남기며 임기를 마쳤다.

다음 제 2대 예술감독으로 중진 여성 안무가 안애순이 취임했다.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 2세대 선두주자로 인정받으며 <정한수> <굿> <씻김> <열 한번째 그림자> 등 독특한 한국적 정서를 담은 컨템퍼러리 춤 안무가로 수 차례 해외 무대에서 러브 콜을 받기도 한 실력파이다. 재임 시기 <이미, 아직> <불쌍> <춤이 말하다> 등 몇 편의 레퍼토리를 무대에 올렸고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 파리 국립무용극장인 샤이오에서 <이미 아직>을 공연하기도 했다(참고로,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한국무용 특집공연은 이종호 시댄스 예술감독이 샤이오측에 한국특집을 제안하고, 샤이오는 기왕이면 양국 수교 기념의 해에 맞추자고 수정제안을 하면서 진행됐다. 국립무용단과 국립현대무용단, 그리고 민간무용단 3개 등 총 5개 단체가 샤이오 무대에서 공연을 가졌다).

2대 국립현대무용단 안애순 감독의 '공일차원'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2대 국립현대무용단 안애순 감독의 '공일차원'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안애순은 임기 중 드라마투르그들과의 협업을 도입했으며 창작현장의 독립 안무가들을 초청, 공적 지원을 통해 몇몇 안무가들이 신작을 만들도록 돕기도 했다. 경제적 부담을 덜며 현장 작업을 후방에서 지원하는 이런 방식을 통해 이른바 ‘개념무용’ ‘농 당스’ 등 조금은 낯선 용어들이 자주 거론되기 시작했다. 춤의 '움직임'보다는 '의미'를 찾겠다는 의도로 몇몇 객원 안무가들의 작품 역시 동시대성을 반영했다. 그들의 안무노트를 통해 일반 관객에게 낯선 풍경의 작품들이 연이어 소개되기도 했다.

3대 예술감독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의 안성수 교수가 발탁되었다. 1980년대 초, 대학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 공부하던 시기 자의반 타의반으로 갑자기 영화공부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러다가 다친 허리의 재활치료를 위해 발레 움직임을 체험하면서 어느새 춤의 마력에 매료된다. 해서 줄리어드 예술대학에서 무용전공을 선택, 무용예술가의 길로 과감히 진로를 바꾸게 된 것이다. 미국 현지에서 안성수 픽업그룹을 창단하고 본격적인 프로페셔널 활동을 시작, 독창적인 춤사위로 신선한 작품을 선보이며 뉴욕 무용계에서 이미 안무가 반열에 올랐다. 귀국 후, 뉴욕 파슨스 스쿨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던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와 운명적 인연을 맺게 된다. 신작을 잇따라 발표, 단숨에 현대무용계의 블루칩으로 급부상하며 다른 이들과는 결이 다른 안무가로 자리매김했다.

3대 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감독의 '봄의제전' (c)황승택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제3대 국립현대무용단 안성수 감독의 '봄의 제전' (c)황승택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재임 기간, 사무국 행정은 사무국장과 제작PD들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자신은 오롯이 연습실에서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신작 준비에 6개월 이상씩 치열한 반복 훈련을 걸친 다채로운 작업의 결과물을 펼쳐 보였다. 유료관객 점유율을 상승시키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견인한 <혼합> <볼레로 시리즈> <쌍쌍> <쓰리 볼레로> <스윙> <쓰리 스트라빈스키> 등을 통해 이주희, 김설진, 김보람, 장경민, 이은경, 정현진, 김민지 등 컨템퍼러리 스타 무용수 시대를 열어나갔다.

어느덧 2020년, 국립현대무용단은 창단 10주년을 맞게 된다. 하여 기획팀과 이사진의 제언으로 다채로운 여러 프로젝트가 계획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울러 그간 50대 안무가들이 차례로 임기를 마친 직후라, 다음 예술감독 선임을 통해 어쩌면 세대교체가 이루어질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데 한예종 창작과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원로 안무가가 제 4대 예술감독으로 선임되어 다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제 4대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남정호 선생은 밝고 일상적인 움직임의 ‘유희정신’을 작품에 지혜롭게 잘 녹여내는 안무가로, 과거 중앙대 교수로 재직하던 이정희 선생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안무가로 인정받아 왔다. 부산지역 여고생 시절, 비교적 작은 신체에도 불구하고 발레에 입문해 이화여대 발레전공 입학했으나 좀 더 자유로운 춤에 매료되어 박외선 교수의 지도로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꾸고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나기에 이른다. 이론공부와 함께 장 고댕 무용단의 무용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귀국무대로 공간소극장에서 <대각선> <풍선심장> 등을 발표해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일약 스타 안무가 반열에 올랐다.

4대 국립현대무용단 남정호 감독 '빨래' (c)고흥균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4대 국립현대무용단 남정호 감독 '빨래' (c)고흥균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부산 경성대에 이어 한예종 무용원 창작과 교수로 있다가 퇴임, 가족들과 일상을 보내려 일본으로 떠났다가 국립현대무용단의 새로운 수장으로 임명되어 다시 서울로 복귀했다. 지난 팬데믹 3년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으로서 역할 수행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작품들의 성과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논하고 싶지 않다. 국립현대무용단 창단 10주년에 취임해 신작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를 토월극장 무대를 통해 선보였다. 이듬해인 2011년 재공연했고, 아울러 지난 1990년대 중반 초연했던 <우물가의 여인들>의 새 버전 <빨래>를 자유소극장과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서 다시 공연했다. 지난해 12월 송년 시즌에는 재임 마지막 작품으로 <겨울 나그네: 시간에게>를 올렸다. 남정호 감독이 직접 안무, 스스로 주역으로 등장해 아버지를 위한 헌정무대를 꾸몄다. 재임 기간, 일반 시민들을 위한 현대무용 이해의 학습기회 제공은 물론, 젊은 안무가들의 다채로운 작업을 유도하면서 금년 2월 16일, 3년 임기를 무난하게 마쳤다.

“그런데 말입니다!” - 차기 예술감독이 선임되기까지 전임 예술감독이 업무를 계속하는 것이 일반적 통례인데, 남정호 감독은 퇴임 이후 2월 하순부터 무용단 사무국과 연습실에 얼굴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얘기를 접하고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대표자의 업무를 비워놓을 수 없고 또한 차기 예술감독과 인수인계를 하려면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정호 감독이 떠나고 난 뒤, 국립현대무용단의 2023년 시즌 첫 공연으로 선정되어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공동제작) 작품으로 국립극장 해오름 무대에 오른 안무가 황수현의 신작 <카베에>(2023년 4월 7-9일)를 마주하면서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해오름극장 객석을 뒤로하고 무대 위에 육상경기장 모양의 계단형 객석을 제작해 놓았다. 마치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같은 공간의 응원석에 휩싸인 형국이다, 리서치 작업기간이 1년을 넘겼단다. 대극장용 ’인해전술‘로 보이는 39명이라는 출연진 숫자도 놀랍지만 지금까지 그 어느 안무자도 쓰지 못한 역대급(?) 작품제작비를 쏟아부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중견 안무가로 몇 편의 작품을 수행한 비교적 젊은 세대인 황수현을 선정, 엄청난 액수의 제작비를 들여 이 공연을 올렸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c)박수환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c)박수환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심지어 국립극장의 한 간부는 하늘극장에서 하면 될 작품을 구태여 대극장 객석을 봉쇄하고 무대 위에 원형경기장 트랙처럼 불편한 객석을 새롭게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었을까 하면서 갸우뚱했다. 오디션을 거친 출연진 숫자가 39명이라는 것도 어마무시하게 놀랍지만 작품 준비에 따른 리서치와 연습기간도 꽤나 길어 비용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내가 만난 국립극장 관계자는 이번 공동제작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는데, 그것은 그의 개인 의견일 수도 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하겠지만 어쨌거나 국공립 단체들은 일반 민간단체보다 매사 신중해야 한다는 상식적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다.

필자는 꽤 오랜 시간, 국내외 무대를 통해 전통춤부터 신전통, 발레, 한국창작춤, 그리고 컨템퍼러리 댄스까지 수 천 편의 공연을 직접 현장에서 두 눈으로 확인해 왔음을 자부한다. 지난 12년간 국립현대무용단의 레퍼토리 중 75% 이상을 봐왔다. 하지만 선뜻 국제무대에 내보낼만한 작품이 도무지 기억에 남아있지 않음은 왜일까. 물론 우리 정부의 공연예술에 대한 무관심과 1년 단위의 공연 제작 예산의 배정시기 적절성 여부와 함께, 공적 지원자금 운영상 현 회계시스템에서 중장기 플랜까지 요구하기는 무리라는 사실을 이해하지만, 지난 12년 동안 축적된 대표 레퍼토리 시스템에 오작동이 걸린 현실적 해결방안을 이즈음까지 찾지 못하고 있음은 조금 낯부끄러운, 하여 국립 단체의 이름에 걸맞지 않은 치부가 아닐 수 없다.

국립현대무용단 '카베에' (c)박수환 (사진제공=국립현대무용단)

그러던 중 5월 11일 오후. 앞서 3개월간 여러 인물들이 무시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중, 국립현대무용단 제5대 예술감독으로 김성용 전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임명이 언론을 통해 전격 발표되었다. 그에게는 늘 ‘최연소 혹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1997년 당시 20세 나이, 동아무용콩쿠르 최연소 금상 수상을 통해 병역 특례를 받았다. 또한 대구시립무용단 예술감독도 최연소 취임해 5년간의 임기를 2022년 12월 말, 무탈하게 잘 마친 바 있다. 특히 지난 3년 여 팬데믹 시기에도 불구하고 야외 공연과 댄스필름 제작 등 다양한 대안을 찾기도 했다.

이에 앞서 2013년 제34회 서울무용제에서 <초인>이란 작품으로 대상 및 4개 부문을 수상, 안무력을 검증받으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 국립현대무용단 수장직을 지금까지 네 사람의 취임 때보다 이른 40대 후반에 이루었다. 35년 무용계 활동이력을 근간으로 공적 기관 예술감독 선임으로 당당하게 인정받은 결과물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지난 12년 동안 나름 성과를 쌓긴 했지만, 아직도 연륜이 짧은 것일까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여전히 그 명성에 걸맞은 기대감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란 얘기들이 불쑥불쑥 들려온다. ’국립‘이라는 명칭을 완벽하게 충족시킨 건 아니라는 뜻일 게다. 심한 경우에는 개인무용단 운영 방식으로 흐르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질책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선가, 신임 감독에게 거는 기대와 응원의 마음이 크다. 무려 3년 4개월여 만에 ’팬데믹 종료‘가 선언된 날이기도 해서 기쁨과 기대는 더욱 커졌다.

김성용 감독. 그가 부디 국립현대무용단의 수준과 방식을 한 등급 확실하게 올려놓으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나만의 속마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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