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베트남 에피소드-8] 카렌 타오 라(Karen Thao La)
[춤과 베트남 에피소드-8] 카렌 타오 라(Karen Thao La)
  • 임선영 무용가
  • 승인 2023.06.10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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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임선영 현대무용가 = 나는 메신저로 낯선 타오(Thao)로부터 인사를 받았다.

호치민 일본인 타운에 있는 카렌 쇼룸의 매니저 카렌 타오 라(Karen Thao La)에 관한 이야기를 베트남 비건 레스토랑 주인을 통해 들은 바 있었다.

자신만의 의류 브랜드를 로스앤젤레스(LA)에서 론칭한 후 쇼룸을 운영하다가 그들의 고향 베트남으로 돌아 온 디자이너와 매니저는 베트남계 캐나다인이었다.

쇼룸 매니저로 일하는 카렌 타오는 개인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면서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개인 프로젝트? 쇼룸 매니저가? 아마도 의상과 관련된 춤, 그 무엇이겠지 생각하며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Thao 글 (사진제공=임선영)
타오(Thao)의 그림 모습 (사진제공=임선영)

벙거지를 깊게 눌러쓰고 가슴이 깊게 파인 남색 점프 슈트를 입고 도도하게 걸어 들어오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조금은 빠른 듯 매우 유창한 말솜씨로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테이블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춤을 좋아한다, 자신을 찾고 싶다, 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다며, 편집해 온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의 춤과 팝 댄스 필름들을 꺼내놓았다. 무엇인가 정리되지 않은 듯한 춤의 개념과 그럼에도 매우 열심히 준비한 편집영상... 나는 그녀가 하고자 하는 춤이 어떤 것인가에 관한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Thao 집으로 가는 길 (사진제공=임선영)
집으로 가는 길의 타오 (사진제공=임선영)

선영 = 타오, 만약 네가 편집해 온 팝 댄스를 원한다면 내가 가르칠 수는 없고, 다른 강사를 소개해 줄 수 있어. 그러나 네가 너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싶다면, 움직임이 낯설고 어설프다 하더라도 모든 움직임을 너를 통해 만드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팝 가수들의 움직임을 외우고 기교를 배우는 것도 즐겁겠지만, 타오, 너처럼 분명한 이유, 너 자신에 대한 고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이건 절대 쉬운 프로젝트가 아니야. 긴 호흡을 가지고 너만의 춤을 만들면서 너 자신을 발견하고 느끼는 과정이 필요해. 물론 모든 선택은 너를 통해 이루어지겠지. 만약 춤과 함께 이야기하고 찾아가는 동행자가 필요하다면 나는 도와 줄 수 있어.

Thao = 그래, 나는 춤을 좋아해. 춤 출 때 가장 나한테 집중할 수 있어. 춤을 통해 무엇인가 하고 싶은 거야,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위한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아. 쇼룸 매니저로 일하면서 나는 “이 옷이 당신에게 잘 어울려요” 하며 사람들의 몸과 옷을 끊임없이 봐주며 그들을 위해 내 시간을 쓰지. 때로는 옷을 더 팔기 위해 옷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거짓말을 돈과 바꿨지. 난 이제 남을 위해 사는 삶 말고 적어도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싶은 거야. 남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을 위한 시간 말이야.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을 위한, 내 몸에 관한 전시를 하고 싶어.

Thao 춤 수업의 일부(사진제공=임선영)
타오를 위한 춤 수업 (사진제공=임선영)

“내 자신을 위한, 내 몸에 관한 전시”

나는 그녀의 발상에 너무 놀랐고 그 순간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그녀는 어떻게 스스로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자신의 정체성, 잃어버린 자신을 찾고자 하는 열망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이지? 그녀는 그저 쇼룸 매니저일 뿐인데... 머릿속이 하얗게 텅 비워지는 듯했다. 자신을 위한 전시를 위해 자신이 스스로 기획하고, 그리고 도와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그녀는 공연이라는 단어 대신 전시라는 단어를 줄곧 사용했다).

타오에게 일반적으로 전시(공연)에 필요한 항목, 공연 형식의 다양한 방법 등을 알려주었고, 제작비를 마련하면 좋겠지만 제작비가 없다 하더라도 나는 그녀를 위해 함께하겠다 약속했다.

나는 몸의 유기적인 연결성에 중점을 두고 그녀가 몸의 움직임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수업하고, 타오가 스스로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움직이는 방법의 과정이 편안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면 그녀의 몸에 관한 챕터를 만들어 안무해 주기로 했다.

제대로 이 과정이 실행된다면 멋진 프로젝트가 될 것이란 예감에 서로 즐거워했다.

나는 그녀에게 단지 춤의 기술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그녀를 좀 더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읽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고 자신에 관한 글쓰기를 제안해 보았다. 그녀는 고맙게도 그것을 받아주었다.

Thao와의 첫 만남(사진제공=임선영)
타오와의 첫 만남 (사진제공=임선영)

타오는 그녀의 엄마, 할머니와 함께 몇 주간 베트남 여행을 하는 동안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글로 써서 나에게 전해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만남은 그녀의 글 그리고 춤 수업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녀의 할머니는 보트 피플(Boat people, 1955-1975년 베트남 전쟁 당시 배를 타고 해로를 통해 다른 나라로 이동한 베트남 난민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최근에는 국내 사정이 좋아져 보트 피플들이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고 있는 추세인데 타오와 그녀의 가족들도 그런 경우였다. 타오의 엄마와 할머니는 보트 안에서 죽음과 삶,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시간을 마주하며 삶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위의 시간을 평생 잊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항상 했었다고.

그들이 캐나다 생활을 하면서 느낀 이방인 느낌(할머니, 엄마의 언어소통 문제를 모두 나서서 해결했던 초등학생 타오가 집안의 중심인물이었다. 나는 이방인, 그 단어에 공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언어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느껴야 했던 유색인종으로서의 이질감(백인 남자친구와의 갈등), 직업활동을 통한 소외와 멸시(LA 디자인 쇼룸에서 일하며 자신의 존재를 없애야 했던 괴로운 일상), 캐나다와 미국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의 부재'에 관한 그녀의 소리 없는 항변을 글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그 무렵 우리는 코로나(COVID-19)를 겪게 되어 무용 스튜디오 출입이 불가능했기에 나는 그녀의 집으로 가서 움직임 수업을 시작했다.

완전히 자유로운 그녀의 방.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외부의 간섭이나 관계, 접촉도 사양하는, 고립된 그러나 가장 자유롭고 은밀한 그녀의 방에서 우리는 시간을 함께했다. 그녀의 방은 함석현 작가의 "이 세상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 세상의 냄새가 들어오지 않는, 은밀한 골방” 같은 곳이었다.

그녀는 건강상의 문제로 길고 풍성했던 머리카락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 항상 모자를 쓰거나 터번을 두르고 다녔다. 나는 금기시됐던 터번에 관한 질문을 통해 타오의 머리카락과 몸에 관한 생각을 그녀가 정리하길 원했고, 그녀 몸의 챕터 중 머리에 관한 춤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녀가 활짝 웃었고 흔쾌히 허락했다.

Thao, 캐나다 가기 전 호치민에서 찍은 사진(사진제공=임선영)
캐나다로 가기 전 호치민에서의 타오. (사진제공=임선영)

어느 날 그녀는 수업 중에 움직임으로 송골송골 땀이 맺히기 시작하는 순간, 그녀가 절대 벗지 않던 머리의 터번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그녀의 머리에 자유를 주고 싶은 듯했다.

자신에 관한 질문과 답! 이것은 춤, 즉 예술이 주는 가장 큰 힘인 것이며, 삶에 있어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타오의 방에서는 예술가와 일반인의 경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 예술가이자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동행인이었다.

사람들은 늘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보이는 것을 보고 판단한다.

타오, 그녀는 그러한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했고 그녀 자신의 안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맛보고 자신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몸을 움직일 때 자신을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하며 찾을 수 있었다고, 몸을 움직일 때 가장 행복했다는 타오, 그녀는 내가 만난 아름다운 베트남 친구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는 사이 전 세계적으로 심각해진 COVID-19로 인해 호치민에서는 탱크가 도로를 막고 군인들이 식자재를 옮기며 시민들을 보호하겠다 하였다. 결국 택시마저 다니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고, 사람간의 모든 만남이 통제되었다. 오토바이 배달을 통해 유기농 야채와 바질 페스토를 직접 만들어 보내주었던 그녀의 안부 인사 이후 우리의 전시는 무기한 연기되고 말았다. 그녀는 지금 캐나다로 돌아가 여전히 자신을 찾기 위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더 이상 터번은 쓰지 않고 당당한 그녀 본연의 모습으로 사진을 찍는 그녀, 우리의 만남이 그녀의 인생에 변화를 주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베트남은 나에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향유할 기회를 주었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읽고, 사람을 알아가며, 그 사람을 통해 내가 그간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으니,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인생의 귀중한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임선영 무용가
임선영 무용가
sunyounglim@hotmail.com
이대 무용과 졸업. 2018년 아르코 국제레지던시 선정.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는 베트남 아라베스크무용단 초빙안무가로 활동 중이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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