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리뷰] 자생력을 키우고 있는 부산국제무용제
[축제리뷰] 자생력을 키우고 있는 부산국제무용제
  • 김혜라 무용평론가
  • 승인 2023.06.1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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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9회 부산국제무용제를 보고
프랑스 에르베 쿠비 무용단의 폐막공연 (사진제공=부산국제무용제)

[더프리뷰=부산] 김혜라 무용평론가 = 부산은 매력적인 도시이다. 거친 듯하나 따스한 구도심과 휘황찬란한 신도시, 여기에 산과 바다가 품고 있는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풍광이 절묘하게 섞여 있다. 아름다운 도시 부산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부산국제무용제(운영위원장 신은주)는 대중성과 공공성을 지향하는 축제로 자리매김 한 듯하다.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자연환경에서 펼쳐지는 무용제는 올해까지 19년 간 지속적으로 개최되었고, 미래를 향해 성장하려 노력하고 있다.

6월 2일 개막공연(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을 시작으로 해운대 특설무대 공연들(3-4일), 그리고 프랑스 에르베 쿠비 무용단의 폐막공연(4일 하늘연극장) 중심으로 무용제는 펼쳐졌다.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폴 나시오날 쉬페리외르 드 당스(Le Pôle National Supérieur de Danse)의 부안무가인 에르베 쿠비(Hervé Koubi)의 <낮이 밤에 빚진 것 What the day owes to the night> 이 부산국제무용제에서 처음 선보인 점이 주목할 만하다. 단지 부산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현대무용 관객 유치가 척박한 현실에서 부산국제무용제가 공적 지원금을 넘어 유료관객을 확보하여 자생력을 키우려는 의지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이 작년에 비해 한 단계 진보한 지점이다.

스트릿 감성이 충만한 작품 선정으로 대중성을 겨냥한 프로그램

올해는 '춤과 하나로, 부산과 세계로'라는 주제에 걸맞게 유럽과 아프리카, 북·남미와 아시아 40여개 단체가 두루 참가했다. 특히 스트릿 감성이 충만한 대중적인 작품 선정에 방점을 두었다. 무용제 개막식과 갈라 공연, 해운대 특설무대는 작년과 유사하게 각국의 민속춤과 전통춤,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 컨템퍼러리 댄스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2030 세계박람회 유치 기원을 담은 1분 릴레이 공연, 시민 모바일 댄스 수상자들, 코리아 댄스 수상자들, 부산예술고등학교와 브니엘예술고등학교, 부산유스발레단)로 공공의 축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이미 검증받은 국내 작품들의 수준이 더욱 눈에 띄었다. 해운대 거리는 외국인과 여행객들이 뒤섞여 이미 글로벌한 분위기로 들떠 있었고, 춤을 추는 예술가와 관람객 모두 편안하게 해무의 변화와 오가는 유람선을 배경으로 춤을 즐길 수 있었다. 더불어 보름달까지 환하게 해운대 특설무대를 비추어 낭만적인 정서를 배가시켰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공연 모습 (c)hanida

수준 있는 한국팀 작품으로 현대춤 인식에 변화 기대

2일 개막식 갈라 공연은 서울교방의 <결>(김지영 안무)로 문을 열었다. 군무로 창작된 구음 검무는 춤꾼들의 숙련된 몸짓과 기운으로 아우라(aura)를 뿜어내었다. 서울교방의 춤은 격조가 있으면서도 자유분방하여 군무를 추는 무용수 저마다의 개성들이 발현되는 점이 미덕이다. 유려한 김보라의 구음에 춤꾼들은 무거운 듯 경쾌한 비장함으로 칼놀림을 한다. 이는 무대의 터를 닦고 액운을 씻는 터벌림 격의 춤으로 개막에 적절하였다. 다음날 3일 오후 해운대 무대에서는 어느 나라보다 한국 팀들의 수준 있는 공연이 만족스러웠다. 이미 거리축제나 무대에서 셀 수 없이 시연한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바디 콘서트 리믹스>와 개성만으로는 국보급인 안은미 컴퍼니의 <만경창파>, 그리고 모던테이블의 <다크니스 품바>는 혀를 내두를 만큼 능숙하고도 능청스럽게 관객과 교감했다. 아마도 현대무용이 난해하다는 선입견을 모래성처럼 허물어 버렸지 싶다. 특히 김재덕이 재해석한 품바 소리는 낭창하면서도 서글픈 소리로 관객의 심금을 울리며 현대판 해학과 신명의 춤판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다양성에서 한 걸음 나아갈 시기

정형일의 <엣지 오브 앵글>은 신고전주의풍의 발레로 미니멀한 동작구성에 기하학적인 공간미로 말끔하게 춤을 추었고, 광주광역시립발레단 공유민-이상규의 사랑스러운 <다이애나&악테온>은 토슈즈를 신고 추기에는 악조건인 무대에서 최선을 다했다. 남영호 안무 코레그라피컴퍼니의 <침묵의 외침>은 즉발적인 에너지의 교감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바닷바람과 파도소리와 함께 호흡하는 춤이었다. 아르헨티나 펠린&미겔 칼보의 희극적인 탱고 <내 사랑 밀롱가>, 힙합과 무술, 마임적 요소를 결합한 캐나다 퀘백 당스 텐타클 트립의 <고스트>, 그리고 화려함의 끝판을 보여준 필리핀 바콜로드시티 마스카라 페스티벌의 <마스카라 축제>도 춤결과 색채가 뚜렷했다. 대만의 잇찌민속무용극단, 카자흐스탄 댄스엠블러 투칸저어, 싱가포르 중국무용극단도 전통적인 민속춤류를 선보였다. 다음날 해운대 무대 공연은 관람하지 못했으나, 현대무용단 자유의 <파라다이스>, 더파크댄스의 <손목이 꼬여버린 낯선...>, 인천시티발레단의 <창작발레춘향>이 함께했다. 가시적으론 유럽, 북·남미, 아시아,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각 단체마다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겨 모든 대륙의 문화를 간접적으로 느끼며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관객석 앞까지 내려온 민속무용단 (사진제공=부산국제무용제)

이러한 구성이 대중을 고려한 다양성 측면에서는 설득력이 있으나 포괄적인 장르가 주는 혼선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아시아 몇 단체의 춤은 쇼적인 성격이 강해 민족적 정통성보다는 볼거리 중심으로 각색된 인상이어서, 작품 선정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여 국내 작품들도 숏 폼 형식으로 보여줘 작품성을 음미할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참가 예술가들에게 부산국제무용제(야외무대)에 적합한 재안무나 연출을 하도록 요청하면 좋겠다. 따라서 예술가들부터 무용제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겠다. 부산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이어야 공연을 보러 오지 않겠는가. 개인적으로는 민속춤과 전통춤류, 모던 발레와 컨템퍼러리 춤을 분류하여 배치하고, 바닷가 배경만을 넘어 더욱 바닷가 환경을 공격적으로 활용한 춤축제가 되면 이상적이지 싶다.

‘국제’라는 타이틀을 건 축제를 평가하는 기준이 소위 몇 개국, 몇 단체가 참가했다는 양적 수치에서 우리나라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듯하다. 다시 말해 공적 지원금에 대부분을 의존하는 국내 순수춤축제가 당면하고 있는 숙제이기도 하다. 행사의 소요비용을 기부금이나 유료 입장권 수입으로 충당하는 외국의 경우와 달리 우리의 현실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경제적인 불이익을 불사하고 질적인 면과 예술성만을 내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축제 운영위 입장에서 최선의 방향을 모를 리 없겠고, 다만 여러 여건상의 어려움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그럼에도 20주년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무용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몇 개국, 몇 단체 참가에 의미를 두는 것에서 탈피해 부산국제무용제의 예술적 지향점이 무엇이지를 보여주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할 필요가 있겠다.

안은미컴퍼니 공연 (사진제공=부산국제무용제)

부산만의 차별화된 무용제를 위한 방안 모색

이와 같은 고민들은 포럼(3일. 펠렉스바이 STX호텔 세미나실)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되었다. <부산국제무용제 20주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비전>이란 주제로 장광열(서울·제주 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강해상(동서대 관광컨벤션학과 교수), 서승우(영화의전당 예술경영본부장)가 발제를 했다. 김종덕(국립무용단 예술감독), 김정환(한국축제문화연구소 소장), 정옥희(이화여대 초빙교수), 사공경(한·인니문화연구소 소장), 변휘장(하와이한인문화회관 부회장), 그리고 필자가 질의와 응답으로 부산국제무용제의 정체성 구축과 확장 가능성에 대한 방안을 모색했다.

장광열은 ‘공연예술축제와 지역 이미지 고양’이란 발제로 해외와 국내의 성공적인 축제 사례를 비교하며 지역문화 발전의 플랫폼으로 나아가야 함을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강화해 마산 울산 대구와 협력해야 하며, 부산시립단체와 재단과도 연계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현재와 같이 운영위원장이 감독 역할까지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감독제를 도입해 5년 이상 전권을 줘야 무용제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강해상은 ‘부산국제무용제 활성화 제안’이란 발제로 먼저 전반적인 무용제의 재무, 전문인력 부족과 시민들의 관심 부족을 진단했다. 이어 미국의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정보기술과 영화음악을 아우르는 축제)의 성공적인 협업사례, 부산축제와 문화관련 정책 등을 소개했다.

서승우는 ‘부산국제무용제 발전을 위한 제언’에서 부산국제연극제와 부산국제무용제의 단계적 통합운영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장르별 특성의 상호보완 및 마케팅과 예산 통합운영의 긍정적인 측면을 분석하면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사례로 들었다. 나아가 부산을 대표하는 공연예술축제를 만들고 전용관을 건립하여 부산공연예술마켓과 연동 가능성을 제안했다. 서승우의 발제에 필자는 가시적인 통합의 장점과는 달리 최근 매너리즘에 빠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의 문제를 짚으며, 무엇보다 역량 있는 감독과 실무진의 전문성이 요청되며, 부산만의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면 부산을 찾지 않을 이유가 없음을 강조했다. 발제자와 토론자 모두 예술감독 선임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며, 지역의 관심을 일으키는 네트워킹 강화와 협력으로 부산국제무용제만의 정체성을 찾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는 중론을 모았다.

부산국제무용제 부대 프로그램 진행 (사진제공=부산국제무용제)

에르베 쿠비 안무가의 유전적 뿌리와 춤적 자산이 녹아든 폐막작

이번 무용제의 기대작이자 폐막작으로 에르베 쿠비의 <낮이 밤에 빚진 것>은 개인적으로 작품을 만든 과정이 더욱 흥미로웠다. 기자 간담회에서 나눈 안무가와의 인터뷰는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프랑스인이라 생각했던 에르베는 아버지가 임종하기 전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알제리 출신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는 25세 나이로 혈기왕성할 시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의 일환으로 고향인 알제리를 여행하기로 결심했고, 현지에서 만난 무용수들과 작품을 만든 것이다(2013년). 당시 무용수들은 대부분 스트릿 춤만을 출 줄 알았고 극장무대에 한 번도 서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에르베는 프랑스 칸의 저명한 로젤라 하이타워 국립무용학교(Le Pôle National Supérieur de Danse Rosella Hightower) 출신이었다. 그가 교육 받았던 세상과는 첨예하게 다른 춤과 문화를 만나 서로 흡수되고 충돌하게 된다. 에르베 자신의 유전적 뿌리를 찾으며 만든 작품은 야스미나 카드라(Yasmina Khadra)의 동명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 안무가는 ‘낮과 밤’이 대립적인 관계도 아니고,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문화와의 적대성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공존함을 지향한다고 했다. 그는 춤이야말로 정치와 역사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다고 했다.

부산국제무용제 포럼 참가자들 (사진제공=부산국제무용제)

한 눈에도 작품은 다양한 춤들이 섞여 있었다. 덤블링과 비보잉 같은 기술과 이슬람 수피즘의 의식을 구성하는 수피댄스가 융합되어 있다. 긴장감과 속도감을 연결하는 정적 경건함이 작품에 공존한다. 턴을 하며 무아지경에 이르러 신과 교접하는 수피댄스의 동작과 현란한 헤드뱅잉, 여기에 안무가가 교육받은 발레의 뽀르 드 브라(port de bras)가 자연스럽게 녹아든 무용수들의 몸과 춤에서 혼종된 문화와 역사를 보게 된다. 다종의 동작들로 구성된, 그야말로 안무가가 몸소 경험한 춤적 자산이 집약된 작품이다. 안무가는 일정한 패턴 이상의 춤을 구사하지 않는다. 어쩌면 구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용수들이 살아오며 체득한 스트릿 동작을 중심으로 상대와 교감하고 호흡하며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갈 뿐이다. 인위적이고 정형화된 발레다운 구성은 배제된다. 구태여 사유와 의미를 정면에 내세우지도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필자에게는 절제와 절충이란 겸손의 미를 생각하게 한다. 달이 차오르면 이지러지듯이 모이고 흩어지는 삶의 운행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는 생각이다. 두 그룹이 리프팅 시퀀스를 수행하는 것은 아마도 서로 다른 문화(프랑스, 알제리)의 현재성을 의미한다.

특히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무용수의 등을 타고 인간 사다리를 만들어 높이 올라가다가 이내 떨어지며 모두가 한 무용수를 받아내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무심하게 보면 스트릿 춤에서 자주 구현되는 구성으로 지나칠 수도 있으나, 이는 마치 이카루스의 추락 같은 비극적인 현실을 극복하여 연대하며 살아가자는 희망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식민이란 근대사를 겪으며 문화의 혼종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세대들의 역사는 기록되지 않았어도 공동의 유산으로 존재하며 살아있는 몸에 새겨져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선도적인 컨템퍼러리 작품이라 말할 수는 없으나, 다양한 춤과 문화를 소개하는 부산국제무용제 주제에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대한민국에 축제가 넘쳐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축제는 분명히 일상적인 삶을 활기차게 살아갈 힘을 주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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