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현대사진의 전설 윌리엄 클라인 ‘DEAR FOLKS’ 전
[전시리뷰] 현대사진의 전설 윌리엄 클라인 ‘DEAR FOLKS’ 전
  • 류은 미술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18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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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엄한미 삼청, 9월17일까지

[더프리뷰=서울] 류은 미술칼럼니스트 = 겁도 없이 권총을 가지고 노는 뉴욕 어느 골목의 아이들, 파리 롤링스톤즈 콘서트장에 몰린 군중 속에서 마주친 얼굴, 로마의 길을 신나게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 전위적인 포즈를 한 패션모델들...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 1926-2022)은 현대 사진사에서 그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사진사에 반드시 등장할 정도로 여러 장르에 걸쳐 독보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추상미술이 대중으로부터 인정받던 시대에 회화 작업으로 출발했던 그는 사진의 추상적 미학을 발견하고, 사진이 대중매체로 각광받던 시대에 사진작가로 활약했다. 영상시대로 접어들자 실험적 영상물을 제작했고, 사진이 외면받으려 하자 사진과 회화를 접목한 독창적인 작업을 시도했다. 사진작가, 화가, 영화감독, 그리고 그래픽 아티스트인 윌리엄 클라인은 20세기의 가장 논쟁적이고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뮤지엄한미(관장 송영숙) 삼청에서는 2023년 해외작가 기획전으로 지난 해 작고한 윌리엄 클라인의 첫 유고전 <DEAR FOLKS>가 지난 5월 4일부터 열리고 있다.

지난해 96세를 일기로 작고한 윌리엄 클라인의 첫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세계를 조망하는 국내 최대 규모 전시회다. 그의 작업경력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195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까지의 회화, 디자인, 사진, 패션, 영화, 책 등 작품 130여 점과 자료 40여 점을 한 자리에 망라해 소개하고 있다.

인류를 향한 부드러운 호소의 의미를 담은 전시제목 ‘DEAR FOLKS’는 윌리엄 클라인의 풍자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위트 넘치는 인간적 면모를 투영하며, 일상의 언어로 늘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 속에 있고자 했던 작가의 작업세계를 압축한 단어다.

윌리엄 클라인의 국내 최대규모 회고전

현대 사진을 비롯한 현대 영상미학의 시발점에 섰던 예술가로 회화, 디자인, 사진, 패션, 영화, 책 등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종래의 규칙과 금기, 한계를 뛰어넘어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을 보여준 전방위 예술가로서 클라인의 진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그간 특정 장르나 작품에만 국한되어 알려진 작가의 작업인생 전반을 연대별, 장르별로 충실히 조명한다. 지난 연말 새 건물로 옮겨온 뮤지엄한미 삼청의 두 번째 기획전으로 개관전과 달리 전시공간 전체를 작가의 작품과 어울리는 콘셉트로 디자인한 것이 눈에 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작가와 미술관은 2015년부터 협의를 시작했다. 전시의 실질적인 구현을 위해 미술관과 작가 스튜디오(FILMS PARIS NEW YORK)와 객원 큐레이터로 참여한 라파엘 스토팽(Raphaëlle Stopin) 등 세 팀이 의기투합했다. 미술관 측은 “2022년 9월 작가가 별세한 후, 전시의 세부항목을 조율하고 결정함에 있어 실제로 준비과정의 많은 부분을 세심하게 관여했던 작가의 선택지를 추측하고 따르는 데 집중해 작품 선택과 배열,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취향과 미적 감수성, 인간적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는 안을 모든 결정 사항의 최우선으로 삼았다”라고 설명했다.

객원 큐레이터 라파엘 스토팽은 “2022년에 세상을 떠난 클라인이 살던 시기는 카메라, 유성영화, 텔레비전에서 디지털 기술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스틸 이미지와 활동사진과 관련된 수많은 발명이 이루어진 시대”라며 “클라인은 이 대중을 위한 예술을 수용하고 대중을 겨냥해 활용한 1인”이라고 밝혔다.

장르를 넘어선 파격의 연속

전시는 총 8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작가 경력의 시작점인 1950년대 초기 회화부터 회화와 사진, 그래픽 디자인의 영역을 교차시킨 포토그램인 ‘황홀한 추상’, 야외에서 카메라로 촬영한 첫 사진작업인 ‘흑백의 몬드리안’, 현대사진의 도화선이 된 ‘뉴욕’과 도시 거리사진과 사진집 섹션인 ‘도시의 사진집’, 1960년대 문자와 추상을 결합한 ‘레트리즘 회화’, 1955년 패션 매거진『보그』와의 협업으로 시작한 ‘패션’ 사진, 다큐멘터리 영화와 장편 극영화(일부 상영)를 살펴볼 수 있는 ‘영화’, 1990년대 밀착 프린트 위에 색을 칠한 ‘페인티드 콘택트’까지, 작가의 전 생애에 걸친 작업 전반을 소개한다. 특히 ‘도시의 사진집’ 섹션에서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희귀 자료들 - 『뉴욕』 초판본과 클라인이 작업한 오리지널 편집구성안, 초판본과 함께 삽입되었던 책자, 그리고 『뉴욕』 사진집의 목업 – 을 선보인다.

〈그의 추상 작업 앞에서 윌리엄 클라인〉 c. 1952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
자신의 추상 작업 앞에서. 윌리엄 클라인. c. 1952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뮤지엄한미)

윌리엄 클라인은 사진이 탄생한 1826년으로부터 100년 뒤인 1926년 뉴욕의 헝가리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시티 컬리지 오브 뉴욕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던 그는 미술관을 자주 드나들며 그림을 그리거나 영화를 보고, 중고 카메라 1대와 렌즈 2개를 들고 뉴욕 거리를 헤맸다. 군에 입대해 독일 전선에서 무전병으로 복무했고 군인지원 프로그램으로 소르본에서 수학했다. 그는 제대 후 21세이던 1947년 파리에 정착한다. 제 2의 고향이 된 파리에서 그는 미니멀리스트이자 색면추상화가인 엘즈워스 켈리, 스위스 작가 막스 빌과 교우했고 바우하우스의 라슬로 모흘로나지(1895-1946)의 사진철학을 접했다. 페르낭 레제(1881-1955)의 아틀리에에서 잠시 일한 뒤 예술가로서 인생을 시작했다. 건축가들과 협업하며 추상벽화 연작, 실내용 회전패널 작업 등을 선보이며 암실에선 카메라 없이 빛을 이용한 실험적 사진추상작업을 했다. 그의 사진추상작업은 1952년부터 1961년까지 15회에 걸쳐 이탈리아 잡지 《도무스(DOMUS)》의 표지로 사용됐다.

〈Untitled〉 c.1952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
'Untitle' c.1952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뮤지엄한미)

군중 속으로 들어가 민낯의 도시를 담다

그는 35㎜ 소형 카메라에 28㎜ 광각렌즈를 장착하고 거리로 나섰다. 도시 탐험을 시작한 그는 고향 뉴욕을 도시 연작의 첫 소재로 삼았다. 1954년 《보그》지의 아트 디렉터 알렉산더 리버만의 초청으로 뉴욕을 방문한 뒤 파리의 살롱 데 레알리테 누벨에서 전시를 하고 그래픽 요소가 과감하게 가미된 첫 사진집 《뉴욕》을 출간한다. 직접 디자인한 이 사진집은 지금까지도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아 있다.

〈Candy Store, Amsterdam Avenue, New York〉 1954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
'Candy Store, Amsterdam Avenue, New York'  1954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뮤지엄한미)
〈Rolling Stones Concert, Auteuil Hippodrome, Paris〉 1982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
'Rolling Stones Concert, Auteuil Hippodrome, Paris'  1982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뮤지엄한미)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에서 동시에 출간된 뉴욕 사진집의 성공은 로마, 모스크바, 도쿄 세 도시의 사진집으로 이어진다. 이탈리아 영화의 거장 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의 초청으로 그의 영화 촬영장에서 일하기 위해 로마를 찾은 윌리엄 클라인은 이번에도 카메라를 들고 도시의 거리를 걸어다니며 도시 사람들의 표정을 담았다. 1959년에는 모스크바를 찾아 대규모 집회현장을 담는다. 1961년엔 출판사 초청으로 일본 도쿄의 아방가르드한 면모를 포착했다. 제 2의 고향인 파리에 대해서는 1947년부터 2000년대까지 도시의 격변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렇게 찍은 사진들은 클라인이 직접 디자인한 책으로 출간됐다. 각 도시의 사진들은 전시장의 지하 1층 멀티홀을 장식하고 있다.

레트리즘과 패션 사진, 그리고 영화

윌리엄 클라인은 1960년대 문자를 회화의 소재로 활용한 레트리즘 회화를 시도했다. 레트리즘은 글자의 의미보다는 글자가 보이는대로 소리의 시학, 의성어, 글자가 보여주는 음악적 요소 등에 귀를 기울이게 하는 것으로 프랑스의 이시도르 이주(1925-2007)가 주창했다.

〈Antonia + Simone + Barbershop, New York〉 for Vogue 1962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
'Antonia + Simone + Barbershop, New York'  for Vogue 1962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뮤지엄한미)
Antonia and mirrors, Paris〉 for Vogue 1963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
'Antonia and mirrors, Paris'  for Vogue 1963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뮤지엄한미)

클라인은 1955년부터 1965년까지 《보그》와 일했다. 전쟁 전 아방가르드 교육을 받은 편집장 알렉산더 리버만과 알렉세이 브로도비치는 상업 잡지를 통해 예술을 펼치고자 했고 예술가들에게 지면을 내주었다. 덕분에 클라인은 패션을 통해 상당한 창작적 자유를 누리며 모델 외의 인물들 얼굴을 지우거나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 작품을 남겼다. 패션 시스템에 대한 비평과 대중 매체를 통한 스펙터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은 그의 첫 장편영화 <Who are You, Polly Maggoo?>를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는 1960년대 중반 영화에 전념해 20여 편의 다큐멘터리, 장편영화 및 극영화를 연출했다. <Who are You, Polly Maggoo?>로 1967년 장 비고 상을 수상했다.

사진과 회화의 융합, 페인티드 콘택트

클라인의 후기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페인티드 콘택트이다. 그가 섭렵해 온 회화, 사진, 영화의 장르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일종의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클라인이 40년 간 이어온 작품활동의 아카이브를 돌아보고 재검토해서 내놓은 결과물이다. 밀착인화지(콘택트)를 보며 선택된 사진과 그 전후의 사진을 함께 배열한다. 3장의 사진은 마치 하나의 시퀀스가 되어 영화의 필름을 보는 것 같은 효과를 낸다. 여기에 밝은 색 선으로 페인팅을 해서 만들어 낸 것이 페인티드 콘택트 연작이다.

〈Gun 1(1954), 퐁피두센터에서의 회고전(2005)의 도록 표지와 포스터로 사용한 페인티드 콘택트〉 2005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
Gun 1(1954), 퐁피두센터에서의 회고전(2005)의 도록 표지와 포스터로 사용한 페인티드 콘택트. 2005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뮤지엄한미)
〈Self Portrait, William Klein Studio, Paris〉 1993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
'Self Portrait' William Klein Studio, Paris.  1993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제공=뮤지엄한미)

전방위 예술가인 클라인은 패션과 도시 거리사진 등과 같은 특정 분야에 혁신을 일으켰으며, 1956년 뉴욕, 1959년 로마, 1964년 모스크바, 1964년 도쿄, 2002년 파리 등 세계 주요 수도를 배경으로 한 작업들은 그를 당대 가장 저명한 사진 작가 중 한 명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2005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클라인의 사진, 회화, 영화에 대한 대대적인 회고전을 열었으며, 2012년에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 그의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클라인은 생애 마지막 날까지 자신의 작품들을 계속 전시해왔으며, 그의 스튜디오 또한 그의 작품을 전 세계에 계속 알릴 계획이다.

미술관에서는 전시 기간 연계 토크, 대상별 교육 프로그램과 큐레이터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자세한 정보는 미술관 홈페이지(https://museumhanmi.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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