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논객의 춤시선-17] 일무(佾舞)가 'One Dance'라고? 정구호 스타일도 좀 아쉬웠고...
[낭만논객의 춤시선-17] 일무(佾舞)가 'One Dance'라고? 정구호 스타일도 좀 아쉬웠고...
  • 장승헌 공연기획자
  • 승인 2023.06.2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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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제된 무대 미장센과 강렬한 음악은 좋았지만...

[더프리뷰=서울] 장승헌 공연기획자 = 서울시무용단(예술감독 정혜진)이 작년 봄 초연했던 <일무>를 보완해 최근 다시 무대에 올렸다. 지난 2021년 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를 엄청난 양의 물로 채우며 역대급 비주얼과 무용수들의 격한 역동적 움직임과 에너지를 과시했던 창작춤 <감괘>에 이어 다시 한번 정혜진 감독의 의욕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일무>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정구호 스타일의 연장선에 있다. 그의 이름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그의 전공인 패션을 넘어 공연예술계 여기저기에 호출되기 시작했다.  그는 국립무용단, 국립오페라단, 경기도립무용단, 전북도립국악원무용단 등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전통예술의 현대화’를 실천해 왔다. 이번 작품 <일무>는 오는 7월 미국 뉴욕 링컨센터 초청공연(7월 20-22일)을 하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까지 들려온다. 뉴욕 파슨스 스쿨로 유학을 다녀 온 정구호 연출가의 입장에서는 남다른 감회가 있을 듯도 하다. 하지만 필자는 그만의 색채가 담긴 심플한 미장센과 세련된 의상색감에는 찬탄하면서도, 깊은 내면적 감성을 자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초연 당시의 논란을 새삼 상기하게 된다.

서울시무용단의 '일무'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종묘제례악'의 '일무'를 현대화한 것이다. (사진제공=서울시무용단)
서울시무용단의 '일무'.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종묘제례악'의 '일무'를 현대화한 작품이다. (사진제공=서울시무용단)
서울시무용단 '일무' (사진제공=서울시무용단)

일무(佾舞)는 조선시대 선대 왕들과 왕후의 공적을 기리며 신주를 모신 종묘에서 거행하던 제례의식에 사용된 기악, 노래, 춤 등이 어우러져 승화된 <종묘제례악>의 일부분으로 '문무' '무무'라고도 한다. 기본 구성은 <주역>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8열, 8행의 의미를 실천하며 64명의 무용수가 관복을 입고 일렬로 서서 각을 맞춰 군무를 추는 일종의 제례의식이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우리의 전통문화예술로서 궁중음악(정재)과 복식, 아울러 특별한 장신구와 무구 등을 통해 ‘조화와 균형’의 ‘가무악일체’를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종묘에서 시작된 이 제례는 무대화되면서 현재 국립국악원의 대표 브랜드 공연물이 되었으며 최근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한독수교 140주년 기념으로 공연되기도 했다.

서울시무용단 '일무' (사진제공=서울시무용단)

지난 5월 25-2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 이번 작품은 관복 색상을 바꾼 점부터 눈에 띄었다. 제1막 '일무연구' <전폐희문지무>의 진한 푸른색 관복을 흰색으로, 아울러 <정대업지무>에서도 붉은 암적색에서 보다 밝고 화사한 주황색(오렌지색)으로, 복식 색상의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간결하고 깔끔하며 세련됐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기존 원형 복식의 짙은 푸름과 강한 붉음의 대비가 주는 복식 분위기를 생각하면 다소 의아하게 느껴졌다. 한민족의 상징인 흰색의 제의적 색상 복식을 연상시키고 있었지만, 어쩌면 예술가의 자기복제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5월 25일 밤 세종문화회관 로비는 무용인들은 물론, 일반관객들로 몹시도 북적거렸다. 공연장에 자리를 잡고 프로그램을 펼쳐보니 지난해 공연의 3막 구성이 4막으로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난번 정구호 디자이너 본인이 연출한 국립무용단의 대표작 <향연>에서 이미 한 줄로 서서 시작을 알렸던 것처럼 이번 무대에서는 2열 24명이 대무형식으로 시작을 알렸다. 합일의 몸짓에 담긴 조선조 선대 임금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은 우리의 고유한 예악사상으로 인식되는 <종묘제례악>.  8열 8행으로 가지런하게 줄을 맞춰 선 무용수들이 구령에 맞추어 오차 없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일무다. 그토록 많은 이들이 무대에 서 있지만 그 거대한 춤의 대열은 누구 하나 튀는 모습 없이 적확한 일체적 형식미를 표현한다. 정악의 음악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무용수의 느린 움직임은 현대의 속도감과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느림의 미학’이 역사를 관통해 이 땅에 존재하는 조상숭배 사상을 보여 주어 웅장함과 경건함을 함께 느끼게 한다.

서울시무용단 '일무' (사진제공=서울시무용단)
서울시무용단 '일무' (사진제공=서울시무용단)

제2막 ‘궁중무 연구’의 <춘앵전>은 무대는 그대로 유지하며 한 평 조금 넘는 화문석 돗자리를 무대미술로 활용했다. 큰 꽃 한 송이로 장식된 무대 장치에 의한 공간연출을 몇 차례 높낮이를 변형시키며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노란 앵삼은 봄을 상징하듯 했고, 여무 의상의 물결치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감성을 자극했다. 논란의 여지를 제공했던 궁중정재 <가인전목단>은 과감히 들어낸 반면, 제3장 <죽무>를 새롭게 해석해 남성군무로 안무를 추가했다. 긴 봉을 사용해 곧고 푸른 대나무를 상징한 남무를 통해 남성적 기상을 표현하려는 안무 의도가 엿보였다. 새롭게 안무된 제3장 <죽무> 부분에서는 무대 상단의 은빛 물결 같은 흐름의 영상효과가 신비롭게 객석의 시선을 끌었다. 24명씩 군무 위주의 대열에서 10명의 남성춤으로 대나무를 상징했던 다소 격한 춤들이 무대 위에서 아래로 내려진 봉과 영상효과에 아쉽게도 묻혀버렸다. 조금은 낯선 이 남무의 자유스런 몸짓의 춤 풍경은 제4장 <신일무>를 강조하기 위한 예고편 같은 모습으로 읽혔지만 앞으로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서울시무용단 '일무' (사진제공=서울시무용단)

제4장 <신일무>는 상·하수 무대는 물론, 깊은 뒷무대에서부터 두 명 혹은 네 명씩 짝을 이루며 뛰쳐나오는 무용수들의 빠르고 과격한 움직임이 시간이 흐르면서 가속도를 더해 켜켜이 쌓아가기를 반복한다. 어쩌면 동시대, 너무도 빠른 찰나에 모이고 흩어지는 바쁜 현실 속 길거리 풍경들이 한 순간 오버랩되며 지난 3막까지 60여 분간 진행됐던 춤 풍경을 일순간 삼켜 버릴 정도다. 이를테면 푸른 상의와 붉은 빛깔 바지 모양을 변주한 컨템퍼러리 의상으로 변신한 49명 군무진이 사력을 다해 달리다 일순 정지하며 ‘가속도의 힘’을 보여준다. 아울러 토해내는 거친 호흡과 숨소리와 땀방울들. 이 일사불란한 군무는 3200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의 심장을 관통하며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서울시무용단 '일무' (사진제공=서울시무용단)
서울시무용단 '일무' (사진제공=서울시무용단)

필자는 그동안 수 차례 <종묘제례악> 속 원형본 <일무>를 관람해 왔다. 웅장하고 장엄하게 정악 합일을 이루는, 확실하게 거의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간단한 상체 움직임 표현과 하체 굴신으로만 진행되는 춤의 특성이 오늘날 관객에게는 다소 정서의 괴리를 야기할 수도 있다. 오랜 역사를 관통해 온 시간의 이미지들, ‘그 느림의 미학’이 지루하긴 하지만 한편으론 경이로움을 느끼게 함이 분명하다. 기실, <일무>에는 시선을 모으는 힘이 있다. 그것은 경건하리 만큼 웅장하다. 특정한 동작이나 복식보다는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맞춘 대열에서 비롯되는 궁중정재의 풍경인 것이다. 이 대열은 결코 흩어지거나 변형되지 않는다. 음악과 한 몸처럼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 이 춤은 시종일관 철저하게 열을 꿋꿋이 고수하며 기품 있는 모습을 유지한다. 해서 <일무>는 도열의 형태와 음악과의 완벽한 호흡을 통해 고유의 미적 감각을 표현한다.

이번 서울시무용단의 <일무>는 전통예술의 깊이와 달리 변화와 상징을 통한 현대화 과정에 있어 속도감을 강조하여 재해석된 느낌이 강하다. 연출자 정구호는 이번 <일무>가 자신이 그동안 추구해 온 전통예술의 현대화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7월 뉴욕 링컨센터를 찾을 현지 관객들을 위해 작품 제목을 영어로 옮기면서 <일무>를 'ONE DANCE'라고 표기한 서울시무용단의 결정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무용단측의 설명으로는 "한중일 동양권 춤에 대한 차별성을 위해 선택한 단어"라는데 이건 또 무슨 얘긴지 더 어렵다. 필자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제목 번역은 반드시 재고해야 할 것 같다. '일무'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영어 단어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고유명사임을 내세워 'Ilmu'로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전문가들의 진지하고 본격적인 재고가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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