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부천아트센터의 장한나와 빈 심포니
[공연리뷰] 부천아트센터의 장한나와 빈 심포니
  •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21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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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심포니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
빈 심포니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더프리뷰=서울]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 아마도 2023년 한국 클래식 음악계의 가장 큰 뉴스는 부천아트센터가 문을 열었다는 것일 것이다. 이미 한국에는 비교적 많은 수의 공연장이 있지만 이 가운데 클래식 음악 전용 홀은 그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몇몇 홀들은 클래식 음악에 적합하지 않거나 클래식 음악 공연의 비중이 현저히 낮은 것이 현실. 게다가 여기서 추려진 클래식 음악 전용 홀 가운데 음향의 완성도가 높은 것을 손꼽자면 열 손가락을 채 못 채울 정도로 적다.

이러한 가운데 부천아트센터는 세계적인 음향건축 디자이너인 나카지마 타테오의 설계로 탄생한 회심의 장소로서 투명한 울림과 플랫한 대역 밸런스, 자연스러운 저역의 울림과 훌륭한 어우러짐을 보여주는 직접음과 간접음의 비율, 현미경 같은 디테일과 폭 넓은 음장감, 다소 짧은 듯하지만 매력적인 느낌을 주는 잔향의 여운 등등이 돋보였다.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음향을 보여주는 콘서트 홀로 자신 있게 평가할 만하다.

브루스 리우 및 빈심포니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브루스 리우와 빈 심포니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1500여석의 의자들이나 바닥, 벽면 마감의 퀄리티도 높고 로비나 건물외관의 디자인이 대단히 훌륭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무대에 집중하기 힘들만큼 보기 싫은 천장의 많은 조명들을 가능한 한 보이지 않게 가린 아름다운 반사판 디자인이야말로 크게 환영받을 만하다. 물론 조명의 조도나 색, 온도감 모두 최고 수준. 앞으로 점진적으로 홀 튜닝이 이루어지며 자연스럽게 개성적인 음향이 자리잡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이제 단순히 음악을 연주하는 공간이 아닌, 클래식 음악을 보다 본격적인 의미에 있어서 수준 높은 퀄리티의 음향으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리고 야스히사 토요타가 설계한 롯데 콘서트 홀과 전혀 다른 개성적인 음향을 선보이는 만큼 콘서트 홀 음향의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있어서 부천아트센터 개관의 의미는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개막 연주회 가운데 6월 13일 화요일에 열린 장한나가 지휘하는 빈 심포니 공연은 이러한 홀의 특성을 확인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였다. 무지크페라인잘이나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접했던 악단의 음색과 음향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기에 더욱 그러했다. 첫 곡은 브루스 리우가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 저역현들의 낮은 울림으로 도입부가 진행되면서부터 장한나는 오케스트라의 성부별 밸런스에 자신만의 어조를, 다이내믹의 낙차에 변화로움을 부여하며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오케스트라 파트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부여해 나갔다. 쇼팽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로서 브루스 리우는 감각적이면서도 색채감 짙은 터치부터 개성적인 프레이징과 섬세한 루바토 템포까지 첫 악장을 흥미로운 에피소드의 연속처럼 이어나갔다. 특히 목관과의 이중주를 연상시키는 대목들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자신의 스타일을 강하게 드러낸 매혹적인 카덴차는 대단히 훌륭했다.

함께 호흡하는 지휘자 장한나, 빈 심포니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조금 긴 연주시간이 걸린 1악장이 끝난 뒤 이어진 2악장에서 지휘자는 피아니스트에게 자신의 감수성을 마음껏 발산하게끔 빈 심포니의 목관과 현악의 표현력을 살짝 부여잡는 배려를 보여주었다. 다만 피아니스트가 너무 조심스럽게 리듬을 장식적으로 다듬어 간 탓에 오케스트라와 완벽하게 어울리지는 못한 느낌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3악장은 빠른 템포로 진행되었다. 피아니스트의 다이내믹의 지구력이나 테크닉의 안정성이 조금 불안한 대목이 있었는데, 이를 의식한 듯 장한나는 총주의 악센트나 피아노와 앙상블을 이루는 파트의 입체감을 강력하게 처리했다. 그 결과 베토벤 피날레 악장으로서의 활력과 극적인 굽이를 절묘하게 컨트롤하여 멋진 결말을 이끌어냈다. 두 곡의 앙코르에서 브루스 리우는 자신의 본연의 음색과 터치를 보여주었는데, <아리랑> 즉흥은 한국 청중에 대한 배려로서 많은 갈채를 받기도 했다.

부천아트센터의 탁월한 음향을 만끽할 수 있었던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 첫 도입부부터 강력한 현악의 넘실거리는 리듬과 홀을 가득 메우는 목관의 사운드, 곧바로 이어지는 총주에서의 강력한 금관의 타격감, 전개부에서의 파트별 절묘한 디나믹과 대화의 앙상블을 선명하게 선보이며 악장 마지막까지 장한나 특유의 개성 넘치는 쾌속의 질주를 이끌었다. 비엔나 혼의 청명한 음향이 돋보인 2악장은 특히 마지막 클라이맥스 부분이 감동적이었는데, 지휘자가 부여한 강세와 대비가 쉼 없이 번복되어온 기나긴 장송행진곡을 마무리 지으려는 단호한 의지와 폭발적인 음량의 폭포수에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실황사진] 지휘자 장한나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지휘자 장한나 (사진제공=부천아트센터)

스케르초 악장에서 약음과 강음의 대비와 발전부에서의 음량 조탁이 조금 거친 듯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질주감 사이에 터져나오는 의도된 타격감은 장한나 음악 만들기의 장점으로 환원되었다. 마지막 변주 악장의 주제에서도 현악군의 거침 없는 진행(1바이올린의 속도감과 첼로의 기민함 등)과 아찔할 정도의 수비토 효과를 바탕으로 목관과 금관의 세련되면서도 명징한 색채감이 혼합되어 각 변주들이 하나의 드라마를 이어나가기 위한 특징적이고 의미 있는 파트로서의 존재감이 과시되었다.

마지막 코다의 질주가 끝난 뒤 터져나온 청중의 박수에 화답하듯 장한나는 자신이 부천의 딸임을 고백하며 빈 심포니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레퍼토리인 <피가로의 결혼> 서곡과 <피치카토 폴카>를 선보여 대미를 장식했다. 장한나의 패기 넘치는 음악 만들기와 빈 심포니의 음향을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연주회이자, 홀 컨디션이 음악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준 중요한 기회였다. 앞으로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 중심으로서 부천아트센터의 화려한 비상을 기대해 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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