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베트남 에피소드-9] 호치민에는 산이 없다
[춤과 베트남 에피소드-9] 호치민에는 산이 없다
  • 임선영 무용가
  • 승인 2023.07.03 0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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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타운 거리 (사진제공=임선영)
내가 살던 타운 거리 (사진제공=임선영)

[더프리뷰=서울] 임선영 현대무용가 = 호치민에는 산이 없다. 달랏 지역을 가야 비로소 산을 마주할 수 있다. 창 밖으로 지평선이 멀리 보인다. 늘 무엇인가가 서울과 매우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그것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밤이 되면 어디에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열어두면 한낮의 더위를 바로 잊게 된다.

맑은 날에는 태양의 뜨거움을 즐기며 자전거를 타고 타운을 돌아다니고 이름 모를 꽃을 한 아름 사서 꽃병에 담고 나만의 사치를 즐겼다. 그렇게 온몸에서 긴장을 하나, 둘 허물 벗듯 벗어 던지며 나는 자연스러운 호흡을 부드럽게 찾아가고 있었다.

여유 있는 삶에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야 이런저런 잡생각도 하고 보지 못하는 것들도 보게 되는 것 같다. 사이공강의 지류가 내가 살던 2군 지역의 작은 타운을 지나갔는데 물을 좋아하는 나는 그 강을 따라 자주 혼자 걸었다.

물길을 따라 걷다보면 저녁에 밥하는 냄새, 나무 타는 냄새, 도로를 지나가는 닭과 개를 보며 너무나 인간적인 삶의 한 편이 스냅 사진처럼 찍히는 듯했다.

2019년 야외 연습 베트남 무용수 Thu와 함께 (사진제공=임선영)
2019년 야외 연습. 베트남 무용수 투(Thu)와 함께 (사진제공=임선영)

21세기 한 도시는 바쁘게 앞만 보고 살아가고, 한 도시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내가 있었던 도시는 평화로운 시간, 살아서 부드럽게 움직여지는 시간이었다.

“그대의 눈길을 안으로 돌리게나

그러면 아직 보지 못한 무수한 고을들

그대 마음 속에 있나니

그 고을들 두루 여행하여

그대 마음 천문학의 전문가가 되라“

윌리엄 해링턴의 시를 읽으면서 나는 안으로 집중하기를 시도한다. 환경에 적응하여 이방인으로서의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19년 야외 연습 베트남 무용수 Thu와 함께 (사진제공=임선영)
2019년 야외 연습. 베트남 무용수 투(Thu)와 함께 (사진제공=임선영)

“씬 짜오, 미스 림(안녕 미스 림)”하며 무용수들이 인사한다. 나도 “씬 짜오, 반 꾸어 또이(안녕 내 친구들)”를 외치며 무용수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이름을 부른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면 그의 이름과 몸이 살아나는 듯하다. 아침의 활기와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인사와 소리는 내게 늘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아침에 누구가를 만나 몸을 통해 나가는 첫 소리와 몸짓은 나를 위해서도, 타인을 대할 때 잊지 않는 나만의 중요한 사항이다.

베트남에서 지낼 당시 한국에서 공연할 기회가 생겨 아라베스크 무용단 단장과 상의, 무용수 섭외를 마치고 듀엣 작품을 구상하며 연습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무용단 오전 수업이 끝난 후 잠깐 휴식시간을 갖고 바로 작품 연습을 시작했다. 연습실이 무용단 행사 연습으로 사용이 불가할 때는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 잔디밭에 가서 연습을 하곤 했다. 한국에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발칙한 발상과 용기가 어디서 생겼던 것인지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2023, 베트남 페스티벌 참가 Melting안무 (사진제공=임선영)
2023 베트남 페스티벌 참가작 'Melting' (사진제공=임선영)

내가 베트남에서 지키고 나아가고자 했던 삶은 호화로운 삶이 아니라, 되도록 방해 받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었다. 현재의 순간에 서서 줄타기하듯 흔들흔들거리며 그 균형을 찾아가며, 현지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들...

칼 세이건이 말했듯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자체는 우주 속에서 하나의 점에 불과하다. 나의 행동과 일들이 그 점보다도 작은 행위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의 두려움도 망설일 필요도 없는 시간이 되었다.

집중해야 할 것은 현재 이 시간, 내가 얼마나 가치를 부여하고 즐거워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이 마음이 가볍고 신이 났다.

어느 날, 나는 프랑스에서 온 세바스티앵 리(Sebastien Ly)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베트남계 프랑스인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안무가, 무용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베트남에서 페스티벌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매우 천천히, 조용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선한 이미지를 지닌 그는 대화하는 동안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프랑스에서 예술가로 활동하면서 늘 마음 한켠이 허전한 이유를 스스로 묻기 시작하며 자신의 뿌리를 찾아 부모님의 나라 베트남을 방문하게 되었다 했다.

베트남 아라베스크 무용단 Thinh&Giang 출연 (사진제공=임선영)
베트남 아라베스크 무용단 'Thinh&Giang'에 출연 (사진제공=임선영)

자신의 정체성,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자신의 뿌리가 시작된 베트남에서 페스티벌을 만들기로 했으며, 베트남 무용수들이 춤을 통해 자신에 관한 질문과 답을 찾는 장을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베트남에서는 검열 때문에 외국 작품이 공연되는 과정이 복잡하고 쉽지 않기 때문에 그는 오히려 베트남 무용수들이 주체가 되어, 작품의 수준이 높고 낮음을 평가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무대를 인정해 주고 표현할 기회를 지속적으로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외국 단체의 공연이 주가 되는 행사가 아니라 베트남 무용수들을 위한 장을 많이 제공하고 싶다며 자신의 생각을 진지하게 설명해 주었다.

2019년 페스티벌 공연 후  Sebastian과 함께 (사진제공=임선영)
2019년 페스티벌에서 공연 후 세바스티앵과 함께 (사진제공=임선영)

어떤 일의 목적이 뚜렷한 사람, 그 목적이 어떤 이유에서 시작되었는지 그 활동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 나는 그런 이유에서 그가 좋았다. 그 후 그에 대한 낯선 거리감이 빠르게 좁혀졌고, 그의 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함께하겠다고 했다. 무료 워크숍, 베트남 무용수와의 공연 참가를 통해 페스티벌의 활동 가치와 의미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코로나 이후 3년간 멈췄던 페스티벌은 올해 다시 그 활동을 시작하였다. 2023년 4월, 나는 그를 다시 만나 작품을 함께 나누고 지난 과거의 추억과 그간 서로의 소식을 전하며 춤을 공유하는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춤을 통한 우정, 서로에 대한 관계의 신뢰를 삶의 공기와 장소를 바꾸어 이방인이 되었던 경험을 통해 얻는다.

2019년 참가작 white language (사진제공=임선영)
2019년 페스티벌 참가작 'White Language' (사진제공=임선영)

 

임선영 무용가
임선영 무용가
sunyounglim@hotmail.com
이대 무용과 졸업. 2018년 아르코 국제레지던시 선정.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는 베트남 아라베스크무용단 초빙안무가로 활동 중이다.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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