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초여름밤을 달궈준 뜨거운 교향악의 향연
[공연리뷰] 초여름밤을 달궈준 뜨거운 교향악의 향연
  •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30 0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2023 교향악축제 ‘Infinite Challenge’
인천시향 오코너 (사진제공=)
인천시향 오코너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6월 1일에서 6월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는 35년간 이어져 온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클래식 음악 축제다. 올해는 17개 교향악단이 팔도 각지를 대표하여 참가했다. 거의 매일 차례로 무대에 올라 연주를 하는 시스템이라 사실 경연의 성격을 무시할 수 없다. 대부분의 참가 오케스트라가 실전 리허설격인 연주를 홈그라운드에서 치르고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그만큼 소위 ‘절치부심’의 무대다. 따라서 이름값으로는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의외성’이 상존하며, 바로 이것이 현장 예술의 묘미다.

예술의전당 전관 개관 30주년, 올해의 부제인 ‘인피니트 챌린지’에 부합하는 도전적인 무대가 많았다. 그 가운데 온화한 리더쉽과 깊이있는 음악성의 마에스트로 정나라가 최근 상임지휘자로 부임한 공주시 충남교향악단의 드보르작 <교향곡 제6번> 연주가 무척 빼어났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가운데 보헤미아적 흥취와 민속적 성격을 가장 강하게 띠고 있으면서 순음악적으로 가장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작품임에도 연주 빈도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아 무대에서 실연으로 접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지휘자의 분명한 음악적 지향에 따라 강력한 리드로 선이 굵으면서도 치밀한 지시를 쉴새없이 주문하며 끌고 가는데 탄력적으로 반응하는 오케스트라의 합주력이 인상적이었다. 치밀하게 직조된 마지막 악장의 피날레가 통렬했고, 활력으로 가득했던 제3악장 역시 훌륭했다. 목가적인 제2악장에서 절로 흥에 겨운 목관 앙상블의 자발적인 참여로 유려하게 흐르는 아름다움이 차분하면서도 각별했다.

공주시향 정나라 (사진제공=)
공주시향 정나라 (사진제공=예술의전당)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선택한 작품도 남다르다. 원래 <스페인 교향곡>처럼 협주곡으로 출발했으나 관현악곡으로 변모된 랄로의 <노르웨이 광시곡>은 작품의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음반으로나 감상해야 할 작품이었다. 낯선 곡에서 보물을 찾겠다는 다짐으로 출발한 장윤성의 리드는 오케스트라로부터 서늘한 정서에서 뜨거운 열정을 넘나드는 예리한 연주를 이끌어냈다. 다만 프랑스 음악 특유의 화려한 색채와 낭만적 여유를 가미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2부의 라흐마니노프 교향곡을 염두에 둔 포석이 아닐까 했다. 탄생 150주년을 맞는 라흐마니노프가 청년 시절 야심차게 세상을 향해 내놓은 작품이지만 그에게 평생동안 극복하지 못할 트라우마를 안겨다 준 <제1번 교향곡>을 선택했다. 만년의 라흐마니노프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완급의 미학이나 농밀한 정서를 접할 수는 없으나 기발하게 번득이는 음악적 아이디어와 상큼한 정서의 멜로디 그리고 시종 날이 서 있는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한 명작이다. 게다가 이날 장윤성의 뜨거운 리드로 필하모닉은 거의 일사불란하게 전진하는 완벽한 합주로 찬란하게 빛나는 음향의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작품의 본질에 닿아 있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다비드 라일란트의 지휘로 드보르작의 <제8번 교향곡>을 들려주었다. 모든 성부에서 정제된 연주를 하였다. 푸근하면서도 질박한 음색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음색으로 통일된 합주가 아름다웠고, 우아한 해석을 지향하면서도 밝고 흥겨운 축제적인 성격을 살리고자 한 연주였다.

국립심포니라일란트 (사진제공=)
국립심포니 다비드 라일란트 (사진제공=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의 묘미 가운데 하나가 프로그램 전반부의 협연 무대이다. 올해의 특징이라면 신예 연주자뿐 아니라 중견과 거장급 연주자의 무대도 준비되었다는 점이다.

인천시립교향악단은 평생 베토벤 연주에 천착한 아일랜드의 피아니스트 존 오코너를 초대하여 고전주의 피아노 협주곡의 정점에 있는 명작 베토벤의 제3번을 연주했다. 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와 협주곡 전곡 음반은 가히 기념비적이다. 품격있는 당당한 베토벤다운 중용적인 템포와 독오 계열의 피아니스트와 대비되는 다소 어두우면서도 바랜듯한 음색이 특징적이었다. 느린 두번째 악장에서 그의 이런 접근이 무척 설득력 있었다. 여타 악장도 밝고 명징하게 그렸다기 보다는 정연하고 차분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앙코르로 역시 베토벤의 소나타를 들려주며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부천필하모닉이 쇼팽 콩쿠르 우승자 케빈 케너를 초대하여 연주한 쇼팽 <협주곡 제2번> 역시 이번 페스티벌의 백미였다. 우리에게는 정경화의 음악적 동반자로도 잘 알려진 음악가로 그의 쇼팽은 정평이 나 있다. 섬세하게 갈고 닦은 명징한 피아니즘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쇼팽 연주가 대세가 된 최근의 추세와 거리가 먼, 무심한 듯 이어가는 다소 거친 진행이지만 음악이 담고 있는 풋풋하고 소박한 정서의 재현과 아련한 음색의 어울림이 좋았다. 저 유명한 라르게토 악장에서는 과한 낭만성을 드러내기보다 담백하고 솔직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꾸밈이 덜한 음악을 오랜만에 접하니 더욱 신선했다. 케너 자신도 꽤 만족스러운지 스피치를 곁들여 우크라이나의 상황에 대한 공감을 피력하고 우크라이나 작곡가 보리스 리아토신스키의 전주곡을 연주하며 음악적 응원을 보냈다. 이어 그의 본령은 쇼팽의 전주곡으로 차분하게 마무리하였다.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부천필 장윤성 (사진제공=)
부천필 장윤성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이번 축제를 위해 무대에 올릴 창작곡의 공모 역시 기대를 모았는데, 선정작인 이본의 <Cusco? Cusco!>는 국립심포니가 연주했다. 기존의 것과 그것에 완전히 반대되는 요소가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정반합의 시퀀스로 전개되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페스티벌으로서의 의의를 찾을 수 있는 지점이었다. 공주시 충남교향악단은 이신우의 교향시 <백제> 서곡을 연주했다. 백제인의 삶과 혼을 담았다는데 해상왕국의 호연지기가 느껴진 장쾌함이 일품이었다.

부천필케너 (사진제공=)
부천필 케빈 케너 (사진제공=예술의전당)

올해 교향악축제의 모든 공연은 예술의전당 분수광장의 대형 모니터와 유튜브 채널로 실시간 중계되었다. 이런 야외 중계를 염두에 두고 개최 시기도 조정되었다. 이렇게 콘서트홀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많은 사람이 교향악의 참맛을 만끽할 수 있는 시도는 참으로 바람직하다. 진정한 클래식의 대중화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내년에는 과연 어떤 시도로 이 아름다운 음악을 청중에게 전달할지 더욱 참신한 기획을 기대해 본다.

2023 교향악축제 (사진제공=예술의전당)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비평활성화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